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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늘 "젊은 날의 의무는 내가 젊다는 걸 아는 것"

2021.04.23GQ

강하늘의 오늘은 영원히 젊다.

화이트 티셔츠, 래그앤본. 코듀로이 팬츠, 구찌.

블랙 앵클부츠, 오프화이트. 프린지 스웨이드 재킷, 민소매 톱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화이트 데님 팬츠, 렉토.

베이지 셔츠, 팬츠, 그린 슈즈, 모두 보테가 베네타. LC4 체어, 크리에이티브랩.

오버핏 재킷, 미하라 야스히로 at 지.스트리트 494 옴므 플러스. 네크리스, 플랑. 실버 링, 라스카스.

레더 재킷, 레더 팬츠, 모두 발리. 옐로 터틀넥, 산드로. 화이트 스퀘어 토 더비 슈즈, 손신발.

GQ (앞에 놓인 맥주를 권한다.) 마셔도 돼요.

HN 하하. 거의 취중진담이 될 것 같네요.

GQ 곧 개봉할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로 만났어요. <스물>의 경재, <쎄씨봉>의 윤형주, <동주>의 윤동주, <청년경찰>의 희열까지, 강하늘의 필모엔 유독 청춘의 흔적이 많아요.

HN 솔직한 이야길 해볼까요. 저는 제가 맡은 역할이 한 번도 청춘을 대변한다고 의식해본 적은 없어요. 이번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도 청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청춘이 뭐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여태 어떤 역할이 청춘을 대변하는 캐릭터라서 선택한 적은 없거든요. 작품에서 정해진 시대에 열심히 살아나간 것이 청춘이라면 청춘인데, 사실 아직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GQ 만져지지 않는 느낌이죠.

HN 우리가 맡은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게 청춘이라면, 그건 나이에 국한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 청춘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GQ 저는 강하늘의 눈빛을 보며 종종 청춘을 떠올려요. <스물>에서 경재가 “젊은 날의 의무는 부패와 맞서는 것이다”라는 커트 코베인의 명대사를 외치곤 중국집 안에서 격투를 벌이죠. 가깝게는 <동백꽃 필 무렵>의 용식이. 동백이 지키려고 눈 뒤집힐 때 있잖아요. 거기서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용기가 새어나온달까.

HN 듣고 보니까 청춘이란 활어 같은 느낌일까요? 내재된 생동감, 생명력이 피어나면서 눈빛으로 표현되나 봐요.

GQ 강하늘의 삶에도 설명되지 않는 용기가 불쑥 튀어나오곤 하나요?

HN 매 순간이 그래요. 저라는 사람이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요. 남들 앞에 서는 것도, 누군가에게 칭찬받는 것도 즐기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쉽게 말해 끼가 없다고 하나? 아직 예능도 쉽지 않고 제 얘기를 하는 것도 어려워요. 그렇다고 (주먹을 불끈 쥐며) 아니야 할 수 있어, 이런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연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살아가는 모습이 어릴 때의 제 기준에서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던 모습이에요.

GQ 그럼에도 계속 연기를 하고 있네요?

HN 저는 스스로 운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고 평해요. 운이 잘 닿아서 작품을 계속 만나게 되었어요. 작품에 득은 안 돼도 해는 끼치지 말자, 그런 마음으로 계속 연기하고 있어요. 모두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면 제 자리에서 제가 잘하는 게 최선이더라고요. 이 영화 강하늘 쟤만 아니면 다 괜찮아, 이런 말 들으면 안 되니까요.

GQ <비와 당신의 이야기> 설명글 중 “이 작품과 만나게 될 것 같았다”는 하늘 씨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어쩐지 낭만적이라서.

HN 군대에서 시나리오를 봤어요. 한참 편지를 많이 쓰던 때였죠. 편지란 매체가 주는 감성에 젖어 있을 때 편지가 모티프인 작품을 보니 왠지 이 작품과 만나야 될 것 같고 내가 하게 될 것 같더라고요. 비도 무척 좋아하고요.

GQ 예능 <트래블러> 보니 비 맞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더군요. 스마트폰이 없나? 저 카메라 망가지면 어쩌지? 제가 다 걱정이 되더라고요. 불현듯 나탈리 골드버그가 책에서 쓴 “비를 맞는 바보” 란 표현이 떠올랐어요.

HN 군대에 있을 때 비 오는 날마다 부대를 크게 뱅뱅 돌았어요. 빗소리가 너무 좋았거든요. 그런데 나중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대요. 쟤 좀 이상한 거 아니냐고. 큭큭.

GQ 맞아요. 원래 4차원이란 얘기 많이 듣는다면서요.

HN 하하. 어떻게 아셨지? 근데 원래 다른 사람 생각은 별로 의식 안 하는 편이에요.

GQ 이번 작품에서 영호라는 캐릭터를 맡았죠. 영호는 강하늘과 닮았나요?

HN 감독님이 영호라는 캐릭터에 빈 공간을 많이 남겨두셨어요. 제가 느끼는 대로 편하게 영호를 더 그려보라고 주문하셨고요. 그래서 영호란 캐릭터는 강하늘로부터 출발했어요. 지금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순 없지만 예고편에 담긴 가로본능 신을 비롯해 영화에 사소하게 제가 느낀 점이 많이 담겨 있어요.

GQ 감독이 남겨준 커다란 여백을 채워가면서 어떤 고민들을 했어요?

HN 영호는 겉으로 쾌활한 성격이 아니에요. 외향적인 캐릭터라면 표현의 여지가 다양하지만 영화라는 영상 매체에서 내향적인 캐릭터를 지루하지 않게, 게다가 그 안에서 재치를 뽑아내기는 쉽지 않아요. 흔한 말로 관객이 볼 때 처지지 않게 하려고 고민을 많이 했죠. 여기서 허당미를 좀 넣어볼까요? 여기선 이렇게 해볼까요? 저렇게 해볼까요?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죠.

GQ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청년의 이야기인 시나리오를 보면서 자신의 20대 시절을 많이 떠올렸다고요. 강하늘이 느끼는 보편적인 20대 청년의 모습은 어때요?

HN 시대가 달라도 하나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답을 내릴 수 없이 갈팡질팡하면서 혼돈의 시기를 보낸다는 것. 제가 이제 서른셋인데 저를 비롯해 주변 친구들을 보면 혼돈의 20대를 지나 점차 자신이 뿌리내릴 곳을 알아가기 시작해요. 그럼에도 여전히 주변에 뿌리를 못 찾고 있는 친구들도 있는데 저는 그 친구들을 굉장히 응원하는 편이에요. 꼭 지금 나이에 뿌리를 내려야 하나, 무언가를 정해야 하나 싶어서.

GQ 하늘 씨가 좋아하는 류시화 작가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가 문득 생각나네요. “만약 우리가 삶의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면 지금의 막힌 길이 언젠가는 선물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걸 알까?” 라는 구절이 있어요. 작가는 쉽게 마침표를 찍지 말라고 하죠.

HN 굉장히 좋아하는 책인데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고 싶어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제목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사실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돼요. 저는 두 번 읽었는데 다 읽고서 느낀 건 ‘이 책의 정수는 제목이다’였어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이 말이 삶에 들어온다면, 모든 상황을 이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책은 읽을 필요가 없어요. 그만큼 좋은 책이에요.

GQ 두 번 읽으면서 생각의 변화가 있었나요?

HN 변화보다는 느끼는 점이 있었어요. 책을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서 인생에 대입시킬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책은 너무 많은데, 덮고 나면 바로 현실로 돌아와요. 읽은 후에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것 이 진짜 책 읽기가 아닌가 싶어요.

GQ 읽을 땐 반드시 되새기는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HN 그래서 한 권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복기하는 시간이 있어야 해요. 한 챕터 읽고 나서 생각하는 시간을 꼭 갖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더 많아요.

GQ 참, 오늘 그 팔찌 하고 왔나요? <신이 내게 준 것> 의 한 구절을 새긴 팔찌요.

HN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옷 갈아입을 일이 많은 날이라 오늘은 두고 왔어요.

GQ 팔찌에 적힌 구절이 “내가 부여하는 의미 말고 다른 의미는 없다”였죠? 팔찌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해요?

HN 그 말에는 ‘지금’이 나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나는 이 지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어요. 생각보다 지금을 사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사람이 지금을 사용하는 방법이 대개 이래요. 내일을 걱정하고, 어제를 후회하는 것. 내일이 되면 또다시 어제를 후회하고 그다음 날을 대비하고요. 하루하루가 똑같은 반복이에요. 그런데 <신이 내게 준 것>을 읽어보니 지금을 살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쉬워요. 지금을 인지하는 거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자꾸 잊게 돼요. 필요할 때마다 만지작거리려고 팔찌에 새겼어요. 눈앞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고 지금의 즐거움을 누리자는 어떤 다짐?

GQ 팔찌에 새기는 방식이 굉장히 고전적이고 좋아요. 보통 스마트폰 첫 화면에 새기지 않나요?

HN 스마트폰에도 있어요. (스마트폰을 꺼낸다) “삶은 그것이 무엇이든 의식의 진화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경험만을 준다.” 에카르트 톨레의 책에서 본 구절이에요. 카페에서 책 읽다 그 문장을 붙잡아 두고 싶어서 냅킨에 적었어요. 4년도 넘게 같은 화면이에요. 이 말이 제 삶에 거대한 영향을 주었거든요. 삶의 어떠한 고되고 힘든 일들도 나의 발전과 진화를 위해서 일어난다. 나를 합리화하는 게 아니라 그걸 진짜라고 믿으니 많은 일이 일어 났어요. 모든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었고요.

GQ 지금 생각나는 변화들이 있어요?

HN 너무 많아서…. (동공을 굴리며 주변을 살핀다) 단순한 거예요. 예를 들면 이런 거. 어젯밤에 맥주가 진짜 마시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화보 촬영 이 있어서 꾹 참았는데 촬영장에 와 보니 이렇게 맥주가 있네? 촬영 중이라 샌드위치도 나중에 먹어야지 했는데 마지막 남아 있는 맛이 제일 맛있는 거 있죠?

GQ 하늘 씨의 무한 긍정에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도무지 일희일비는 안 할 것 같네요.

HN 안 하려고 해요. 일희일비를 반대로 생각하면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예요. 일희일비할 필요가 있나. 이게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이렇게 풀면 (용식이 말투로) “다 뜻이 있겄지~”로 연결 되는걸요.

스트라이프 니트, 마르니 at 무이. 데님 팬츠, 발렌시아가 at 무이. 첼시 부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이너 스트라이프 터틀넥 니트, 핑크 스트라이프 터틀넥 니트, 커머번드, 아이보리 팬츠, 삭스, 샌들, 모두 디올 맨.

타이다이 레더 재킷, 느와르 라르메스. 민소매톱, 렉토.

GQ “오늘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라는 말도 좋아하죠?

HN 중학교 3학년 첫 수업 날이 정확히 기억나요. 당시 선생님이 “오늘 우리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죽은 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이다”라는 말을 칠판에 적고 학기 내내 지우지 못하게 하셨어요. 당시엔 매일 그 말을 보면서 와 멋있다, 정도로 느꼈는데 나이 들수록 깊은 뜻을 알게 되더라고요. 신기했어요.

GQ <트래블러> 보니 아직 MP3로 음악을 듣더군요. 쇼핑도 오프라인으로 하고요. 고전적인 방식에 끌리는 편이에요?

HN 디지털화되면서 만질 수 없는 것이 많아졌잖아요.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옷도 직접 만져보고 사면 맘 편하지 않나? 아날로그를 더 선호하는 건 아닌 데, 만질 수 있는 것에 마음이 더 가는 것 같아요.

GQ 영화 속에서도 영호와 소희는 주로 편지를 통해 소통해요.

HN 군대에서 편지 쓰던 기억이 많이 나더라고요. 연등 시간에 독서실처럼 막힌 곳에서 잔뜩 감성에 젖어선 그동안 간지러워서 꺼내지 못한 속마음도 많이 꺼내놨죠. 친구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도 많이 하고.(웃음) 병장 달고 3개월 동안 정말 많이 썼어요. 마지막 2개월은 스마트폰도 쓸 수 있었는데 저는 편지를 선호했어요. 이번 영화 속 편지 소품도 우희 누나랑 제가 직접 썼어요. 감독님 주문이긴 했지만. 직접 쓰면 뭔가 다르냐고요? 구겨지고 찢어져도 다시 쓰면 된다?(웃음)

GQ <동백꽃 필 무렵> 전만 해도 하늘 씨는 김우빈, 준호, 박정민, 박서준 등과의 남남 케미로 유명했죠. 천우희 씨와의 케미는 어땠어요?

HN ‘동백꽃’ 후에도 여전히 남남 케미로 기억되고 있지만.(웃음) 우희 누나는 예전부터 너무 좋아하는 배우였어요. 마치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그 안에서 살아 있는 듯 연기하거든요. 제가 배우 빌 나이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와도 비슷한데, 굉장히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우희 누나가 이 작품 한다고 해서 오케이, 나만 잘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만나는 신보다 편지 장면이 더 많았지만 가끔 누나랑 만날 때마다 (수식어를 길게 끌며 강조한다) 너어어어무 사랑스럽고 너어어어무 친절해서 반전 매력이었어요. 작품에서는 강하고 절제된 모습만 봐왔던 터라.

GQ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연기한다는 건 어떤 느낌 일까요?

HN 일단 호흡이 차분해요.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호흡이 떠 있는 거죠. (앞에 놓인 맥주 캔을 쥐며 목소리 톤을 두 톤 올리고) 맥주다! 이렇게 호흡이 떠 있으면 연기처럼 보이는 거예요. 우희 누나는 기본적으로 호흡이 굉장히 안정적이고 차분해요.

GQ 제가 하늘 씨의 연기를 보면서 느끼는 것과 비슷하네요. 아까 촬영 때도 “포즈하듯이 하면 안 돼” 스스로 주문을 걸더군요. 덕분에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어요.

HN 아이고 감사합니다.

GQ 좋은 향수가 완성되려면 그 안에 좋은 향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해요. 고약한 향, 불쾌한 향이 적어도 한두 가지쯤은 들어가야 밸런스 좋은 훌륭한 향수가 된다고. 좋은 작품을 향수에 비교한다면, 하늘 씨는 작품을 위해서 스스로 고약한 향을 뿜 어도 썩 괘념치 않을 배우 같아요. 스스로 어떤 향을 풍기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죠.

HN 오, 굉장히 좋은 말인 거 같아요. 그게 배우로서 항상 제 목표예요. 작품을 만들 때 이 역할보다 내가 튀지 않겠다, 이번에 맡은 영호보다 강하늘이 도드라지지 않겠다, 어떤 작품이든 그래요. 강하늘이라는 사람이 역할보다 튀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는 편이죠. 작가님, 감독님이 작품을 그릴 땐 이미 전체적인 밸런스를 만들어놓은 거잖아요. 그 안에서 영호라는 인물이 내야 하는 향이 있는 데 그 향을 벗어나거나 뛰어넘어버리면 밸런스가 무너지죠. 그래서 제 목표인데, 그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GQ 언젠가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 라고 한 말이 제 마음에 오래 남아 있어요.

HN 좀 전에 한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에요. 작은 배우란 외형적인 게 아니라 마음, 그릇의 크기에 대한 얘기예요. 자신이 어떤 신에서 조금 덜 나오거나 얼굴 한번 못 잡혀서 슬퍼하는 사람이 꽤 많아요. 역할로서 그 신에서 해야 할 것만 생각하면 사실 그런 슬픔은 많이 줄어요. 내 자신이 우선이 되면 멀어지는 것들이 있어요. 연기하다 보니 자신보다 역할을 먼저 생각하고 작품 전체에서 사람보다 그 역할이 잘 보이면 그 배우가 더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가령 연기하는 내가 불편할 순 있어요. 그런데 그 역할에서 생각하면 같은 행동도 불편하지 않을 수 있죠. 작은 배우 말고 작은 역할은 없다. 모든 신에서 모든 역할은 필요하다고 생각 하며 살아요.

GQ 배우로서 욕심은 없어요?

HN (강조하며) 없어요. 진짜 없어요. 다만 작품이 완성된 다음에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현실적인 얘기예요. 손익분기점(BEP)을 항상 목표로 두는 건, BEP에 도달하면 돈 버는 사람도 없지만 슬픈 사람도 없어서예요. 물론 플러스되면 더 좋지만요. 연기자로서의 내가 돋보여야겠다는 욕심이나 어떤 대단한 연기를 하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GQ 영화 속에서는 12월 31일에 비가 내리면 만나자는 다소 비현실적인 약속을 해요.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하늘씨가 지금 간절히 기다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HN 좀 딴 소린데, 이제 12월 31일에도 비가 올 것 같지 않아요? 지구온난화 심해졌으니까요. 인정? 하하하.

GQ 영화적으로는 비현실적인 설정 아니었나요?

HN 맞아요.(웃음) 처음 대본 읽을 때 혹시 지구온난화를 비판하는 내용인가, 했어요.(연신 껄껄 웃는다.) 홍보에는 도움이 안 되는 얘기네요.

GQ 애초에 비현실, 불가능 같은 거 없다고 생각하는 거 아닌지.

HN 솔직히 그래요. 모르는 일이잖아요. 학교 다닐 때 선배가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사람이 살면서 “네가 나한테 그럴 줄 몰랐다”라고 얘기하면 안 된대요. 왜요? “그건 네가 그 사람을 네 생각의 틀에 가둔 것뿐이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면 쉽다”라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 듣고 충격 받았어요. 구태여 내가 뭔가를 바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

GQ 정말 바라는 게 없어요?

HN 제 꿈은 하나예요. 내일도 오늘만큼 재밌는 하루였으면. 오늘만큼 웃을 수 있는 날이기를 항상 바라요. 모레 다음 영화 <스트리밍>의 클라이맥스 신을 찍거든요. 감독을 비롯해 모든 스태프의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저는 그런 게 없어요. 재밌으면 돼요. 웃긴 신이란 건 아니고요. 진지한 장면이든 슬픈 장면이든, 그 현장에 재밌는 마음으로 임하면 되더라고요.

GQ 듣다 보니 하늘 씨에게 재미란 건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하늘 씨가 만드는 느낌이네요. 혹은 외부 세계와 강하늘이 맞닿는 지점에서 생기는 것.

HN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맞아요! 맞습니다! 재미라는 건 웃을 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에요. 긍정적 상황이 다 재미예요. 근데 되게 좋은 말이네요. 재미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다.

GQ 재밌으면 한다는 말이 하늘 씨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아요. 아까부터 재미라는 말을 한참 해서 그런데, 그래서 이 영화 재미있나요?

HN 저도 아직 안 봐서 모르지만 확실한 건 매 신 재밌게 찍었어요. 감독님이랑 항상 웃었어요. 현장에서 느낀 건 대본보다 생동감 있고 재밌다.

GQ 자주 오는 느낌은 아닌 거죠?

HN 네.

GQ 재미라는 게 참 상대적이라, 제가 재밌어 하는 영화는 대부분 망하거든요.

HN 하하. 맞아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재미가 다 다르죠. 제 어휘력이 딸려서 어떻게 명확하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재미가 뭘까. 웃음이랑은 분명 다른 건데….

GQ 청춘처럼 규정되지 않아서 더 재미있죠.

HN 애매하고 오묘한 지금의 느낌도 재밌어요. 뭔지 모르겠는데 찾으려고 하는 이 노력도.

GQ 찾으면 연락주셔야 해요?

HN 하하하. 그럼요.

GQ 커트 코베인으로 다시 돌아가서, 문장에 공백을 만들어볼까요? 강하늘에게 젊은 날의 의무는 OO다?

HN 내가 젊다는 것을 아는 것. 내가 늙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 책에서도 읽은 말인데, 사람에게는 언제나 현재만 있다고 생각해요. 늙는다는 표현은 사람을 아주 쉽게 표현해버리는 말이에요. A형, B형, O형, AB형으로 규정하는 것과 똑같죠. 젊었을 땐 젊은 걸 모른다고, 그게 죄라고 하잖아요. 우리의 젊은 날의 의무는 내가 젊다는 걸 아는 것. 거기에 플러스, 내가 늙지 않고 항상 지금이라는 걸 아는 거예요. 이건 어릴 때보다는 젊을 때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표현도 참 애매하네요. 하루하루를 급급하게 살아가는 어린 시절엔 잘 몰라요. 젊은 날에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GQ 강하늘은 젊은 날의 의무에 충실하고 있나요?

HN 예전엔 그러지 못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충실해요. 오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 내일도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 그래서 지금 삶에 아주 만족해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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