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듯 드러낸 두 얼굴.
ASTON MARTIN VANTAGE F1 EDITION
가는 발목, 탄탄한 하체, 곧고 잘록한 허리, 길쭉한 신장. 딱 봐도 잘 달릴 것 같은 육상선수의 몸처럼 밴티지 F1 에디션의 피지컬 역시 말해 뭐 할까. 굳이 시동을 걸지 않아도,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슈퍼카의 존재감이 이렇게 우뚝한데. 어딜 봐서? 질주하는 차를 타고 넘는 바람길, 그러니까 에어로 다이내믹만 살펴봐도 육상선수의 그것들과 닮은 구석은 꽤 많다. 21인치 커다란 휠을 신은 타이어는 가는 발목을, 그 위를 두툼하게 내려 덮은 휠 하우스는 탄탄한 하체를 떠올리게 만들고, 날렵하게 떨어지는 관능적인 옆 라인은 곧고 잘록한 허리를 닮았다. 여기에 옆에서 바라봐야 겨우 볼 수 있는 시원한 전장을 넋을 놓고 보고 있으면, 칼 루이스나 우사인 볼트 같은, 장신의 육상선수가 절로 떠오르고. 아, 그러고 보니 제로백 3.6초의 월드클래스 기록도 닮았지.
PORSCHE 911 GT3
전부를 보고 싶다면 높은 곳에서 바라봐야지. 언제 봐도 고풍스러운 포르쉐 엠블럼을 가운데 두고, 에어 아웃렛으로 불리는 컴컴한 배기구를 타고 올라가면 비로소 매끈하게 뻗은 카본 보닛이 파도처럼 등장한다. 유능한 서퍼가 파도에 몸을 맡기듯, 911 GT3를 흐르듯 넘는 유려한 에어로 다이내믹의 시작은 바로 여기, 보닛에서부터다. 안락한 운전석을 덮는 루프 라인에서는 고개를 빙 돌려 거꾸로 바라볼까. 반듯하게 깎인 리어 창과 카본 소재 루프는 사이좋게 절반씩 자리를 나눠 가졌고, 백조의 목을 닮은 우아한 리어 윙은 실루엣 중 유일하게 솟아올라 제 역할을 드러내며 앉아 있다. 그 아래로 혈관처럼 펄떡이는 붉은색 램프는 감상을 종료하기라도 하듯 선명하고 날카롭게 가로지른다. 걸작은 갤러리 밖에도 존재한다. 그 고귀한 모습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영 아쉽지만.
McLaren GT
맥라렌 GT의 앞과 뒤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앞쪽만 보면, 뒤로 숨겨진 터프한 마스크를 상상하기 어렵고, 반대로 묵직한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 너머의 날카로운 헤드 라인이 쉬이 그려지지 않는다. 지킬 앤 하이드, 아수라 백작처럼 양면성이 또렷한, 지루할 틈 없는 캐릭터다. 놀랍게도 이렇게 변검처럼 모습을 바꾸는 재주 말고도 맥라렌 GT가 가진 장기는 하나 더 있다. 날개를 펼치듯 위로 열리는 버터플라이 도어다. 그랜드 투어러가 가진 우아하고 안정적인 이미지에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역동적이고, 럭셔리한 도어의 존재감은 자연스럽게 다른 GT들과는 다르다는 선을 그었다. 편안하고 잘 달리는 데다 이목을 집중시키는 매력까지 갖췄다. 여기에 타고난 힘은 굳이 드러내지 않는 매너까지. 전부 맥라렌 GT기에 가능한 일이다.
- 피처 에디터
- 신기호
- 포토그래퍼
- 김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