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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 "고민 끝에 이제는 방향을 찾았어요"

2022.04.22전희란

걱정 마, 혜리인 걸.

화이트 슬리브리스 니트 보디 수트, 니트 스커트, 이어링, 모두 보테가 베네타. 니트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최근에 독립했죠?
HR 소문났죠?
GQ 물론이죠. 동네방네.
HR 아하하. 저, 소문 잘 내는 타입. 혼자 살면 심심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GQ 집에 혼자 있을 때 뭐 해요?
HR 뭔가를 계속하려고 해요. 청소도 자주 하고, 책도 더 읽으려고 하고, 운동도 열심히 가고요. 가족들과 살 때는 모든 게 갖춰진 상황에서 보통의 일상을 보냈다면, 지금은 좀 더 도전적으로 변했어요. 특히 청소. 지금 집이 아주 깨끗한 상태라 기분이 좋아요. 제 손에 주부 습진 생긴 것 좀 보세요.
GQ 유튜브 ‘나는 이혜리’ 보니까 없던 물욕도 생긴 것 같던데요?
HR 어디선가 이런 글을 봤어요.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맛있는 밥 한 끼를 스스로에게 해주는 것이다.” 순간 느꼈죠. 아, 접시는 무조건 필요하다. 저는 원래 배달 음식을 시켜도 그 상태로 대충 먹는 사람이었거든요. 지금은 예쁜 접시에 음식을 담아서 조금 더 잘 차려 먹으려고 해요. 그러니까 물욕이 따라오더라고요. 전에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죠.
GQ 나를 사랑하는 실천의 일환이군요.
HR 맞아요. 거기서 굉장히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GQ 그 외에도 실천하는 거 있어요?
HR 침대를 크고 좋은 걸로 바꿨어요. 독립한다니까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더라고요. 침대가 중요하다, 잠을 잘 자야 그날 하루가 잘 풀리는 것이다. 제가 또 귀가 얇거든요. 그리고 소소하게 환경 보호 실천하려고 노력해요. 휴지 하나를 고를 때도 우유갑으로 만든 제품을 고르고, 생분해되는 물티슈, 디시 비누, 천연 수세미를 구입했어요. 되도록 유리 빨대를 사용하려고 하고요.

프린트 톱, 데님 스커트, 이어링, 슈즈, 모두 루이 비통. 헤어밴드, 하스. 워터 로워, 노르드.

GQ 참, 최근에 연기 스터디도 시작했다면서요?
HR 맞아요. 친한 친구이자 배우 박경혜의 주도로요. 서로에게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는 또래 배우 네 명이서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됐어요. 현장에서 대본 볼 때 어려웠던 것들 극복하려고 함께 으쌰 으쌰 하는 중이에요.
GQ 연기하면서 안고 있던 고민은 뭐였어요?
HR 제가 해석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시청자분들께 잘 전달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어요. 보는 이들의 입장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
GQ 연기 선생님에게 어떤 피드백을 받고 있어요?
HR 제 기밀을 드러내는 기분이라 좀 창피한데···. 에헤헤. 그전까지 저는 표현에 집중했더라고요. 그런데 보는 이의 입장에서 더 효과적인 표현을 하려면 여기서 왜 이 말을 하고, 지금 이 상황에서 왜 이 행동을 하는지 궁극적인 것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오히려 표현은 그다음이더라고요.
GQ 또래 배우들이 함께 공부할 때의 시너지가 있나요?
HR 확실히 있어요. 한 신이 주어지면 네 명이 다 같은 역할을 하는데, 신기하게 넷이 다 다르게 하는 거 있죠? 각자 자기가 해석한 이유를 공유하면 이 해석은 조금 맞지 않는 것 같아, 이 아이디어는 너무 훌륭했어. 솔직하게 평가해줘요.
GQ 연기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
HR 맞아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네온 그린 컬러 재킷 원피스, 자크뮈스 at 무이. 블랙 컬러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블랙 컬러 로퍼, 보테가 베네타. 이어링, 이어커프, 링, 모두 센티멍. 스윙 타워, 노르드.

GQ 혜리 씨는 어때요? 다른 의견에 활짝 열린 사람이에요?
HR 굉장히 고집 세고 편견이 심한 사람요. 아하하하.
GQ 좀 의외인데요?
HR 편견은 굉장히 강한데, 그걸 깨는 걸 좋아해요. 이 친구는 여기서 이렇게 행동할 거야, 예상했는데 오늘따라 내 편견을 깨버렸어. 그때의 쾌감이 있어요.
GQ 편견이 심한 사람은 애초에 인정도 쉽게 안 하지 않나요?
HR 그래요? 저는 인정할 일은 인정하는 성격이에요.
GQ <지큐> 이번 달 주제가 ‘가족’인데, 그중에 가훈 컬럼이 있거든요. 문득 궁금해요. 혜리 씨 가족의 가훈은 뭐였는지.
HR 특별한 가훈은 없었지만 초등학교 때 가훈 적어서 내라고 할 때마다 엄마가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정직하게 살자.”
GQ 정직함을 가장 큰 가치로 성장했을까요?
HR 그건 어디까지나 가훈이고 저는 좀 다른···.(웃음)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이 좌우명을 써오라고 한 적이 있어요. 당시 저는 좌우명이 뭔지도 몰랐는데, “네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봐”라고 하시더라고요. 고민을 했죠.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뭘까? 고민 끝에 쓴 문장이 아직도 기억나요. “인정할 것을 인정하는 삶을 살자.”

실버 컬러 톱, 와이 프로젝트 at 무이. 실버 링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초등학교 4학년이요?
HR 그걸 발표한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반 친구 40명 앞에서 혼자 일어나서 읽는데, 선생님께 엄청 혼났어요. 그때 다른 친구들이 써온 좌우명은 대개 이랬거든요. “공부를 열심히 하자”, “부모님 말씀을 잘 듣자”, “항상 최선을 다 하자”. 선생님이 제 좌우명을 듣더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고, 설명해보라고 하셔서 제가 그랬죠.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인정을 잘하는 게 중요한 거 같다.” 그 말이 선생님 마음에는 안 들었나 봐요. 인생에서 그 하루가 너무 선명해요.
GQ 이상한데요. 그렇게 혼나고도 혜리 씨에게 여전히 중요한 가치인 것 같아서.
HR 그러니까요. 으하하하.
GQ 그런 면에서 고집이 세다는 거죠?
HR 그런 것 같아요. ‘정직하게 살자’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죠. 만약 누군가 실수를 했어요. 그러면 저에겐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됐어”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내가 이렇게 해서 그렇게 됐어. 미안해”라고 하는 사람의 가치가 훨씬 높아요.
GQ 나중에 가훈 짓는다면 뭐라고 하고 싶어요?
HR 일단 ‘가家’에 대해서도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저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질문 받아도 굉장히 신중해지거든요. 그 대답에서 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거니까. 하물며 가훈이란 건 저의 빅데이터를 함축한 한 문장이니까, 신중해볼게요. 오늘부터 한번 생각해볼게요.

베이지 컬러 브이넥 원피스, MM6 by 아데쿠베.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베이지 팬츠, 누메로벤투노 at 한스타일닷컴. 블루 컬러 슈즈, 지안비토로시. 이어링, 센티멍. 실버 링, 보테가 베네타.

GQ 인정할 것은 인정하지만, 절대 인정하지 않는 건요?
HR 제 MBTI 유형이 ESFJ거든요. 한창 MBTI 유행할 때, 지인들이 제가 어떤 사람인지 문항으로 체크하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대부분 ESTJ로 나오더라고요. F와 T의 큰 차이가 그거잖아요.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따뜻한 마음으로 공감을 한다(F), 해결책을 준다(T). 저는 분명히 전자인데!
GQ 혜리 씨에게는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HR 공감해줬으면 좋겠어요. 저 F라니까요.(웃음)
GQ 공감을 받고 싶은데 막상 지인들에게는 확실한 해결책을 건네는군요.
HR (수줍게 고개를 떨군다.) 맞아요. 다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GQ 작년에 <1박2일> 출연해서 고민 털어놨었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하는 게 어려운데, 마음이 잘 전해지지 않아서 속상하다고요.
HR 작년에 저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였어요. 저는 공과 사 구분이 확실한 사람이에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일적으로 잘못했으면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요. 친해도 일은 일. 그런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같이 일하던, 제가 아주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 혜리는 날 싫어하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당황스러웠죠. 고민이 됐어요. 직설적인 태도가 문제였나? 좀 더 살갑게 말을 했어야 하나? 솔직하게 말하는 게 잘못된 건가? 나를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야 하나? 고민 끝에 이제는 방향을 찾았어요. 사적인 시간에 상대방을 좋아하고 아낀다는 걸 많이 표현하면 되겠다고요.

프린트 톱, 마린세르 at 무이. 블루 컬러 팬츠, 로샤스 at 무이. 실버 이어링, 루이 비통. 실버 링, 센티멍.

GQ 매번 강조하는 ‘승부욕’은 여전해요?
HR 승부욕은 타고났죠.
GQ 이길 수 있는 데 투자를 하는 편이에요, 아니면···.
HR 전자요. 후자는 포기해요. 못하는 걸 보완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그걸 견딜 수 있는 끈기가 제겐 없더라고요. 대신 잘하는 것에 대한 끈기는 있어요.
GQ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더 신나요?
HR 신나죠. 안 될 것 같다 싶으면 빠르게 포기. 그래! 이건 내 길이 아니다.
GQ 인정할 것을 인정하는 삶을 살자.
HR 아하학. 또 나왔다.

체크 패턴 재킷, 팬츠, 모두 알렉산더 맥퀸. 실버 컬러 톱, 와이 프로젝트 at 무이. 이어커프, 센티멍.

GQ 요즘도 댓글 다 찾아본다면서요. 마음에 스크래치 안 나요?
HR 생각보다 좋은 댓글이 더 많아서 괜찮아요. 허무맹랑한 내용은 “이 사람 나 진짜 싫어하나 봐” 하고 넘기고요. 그런데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리는 댓글들이 있어요. 거기서 제 문제점을 보죠. 그것도 일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요.
GQ 주변에 악플로 상처받는 친구들에겐 뭐라고 위로해요?
HR “네가 제일 좋아하고 너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GQ 언젠가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사람을 대할 때의 마음이 화면에도 비친다고 생각한다”고 했죠. 그건 연기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HR 네. 연기를 비롯해 화면에 비치는 모든 것요. 드라마의 톤, 바이브, 여러 가지 현장에서의 마음이 영향을 끼치는 거 같아요.
GQ 그러면 늘 진심이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요?
HR 그러려고 하지만 연기에서 늘 진심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평소에 마음가짐을 하죠. 늘 우리는 진짜인데, 그게 화면에 비친다. 그렇게 된다면 편하니까요. 제가 기분이 좋으면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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