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rink

술 취향을 알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2023.08.04전희란

한국 주류 문화는 과도기를 거치고 있다. 이 과정의 끝에서 정말로 나의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술을 만날 수 있을까?

글 / 양유미(이쁜꽃 양조장 대표)

“소맥입니다.” 감사하게도 양조사로서 인터뷰할 기회가 꽤 있었다. 그때마다 가장 좋아하는 술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지만 이 답변은 한 번도 지면에 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통적인 산업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한국 술을 제시하는 양조사가 ‘소맥’을 즐겨 마신다는 건, 편집 방향과 결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지 않았을까, 하고 내심 짐작해왔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린 어떤 술에 대한 호오가 그 사람을 보여준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터뷰어를 곤란하게 만드는 답변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나는 버번 하이볼이 좋아.” 이 말엔 자신을 드러내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하이볼은 비교적 도수가 높은 술과 탄산수로 만든다는 기본 정보에 더해 기주에 따라 다른 캐릭터가 된다는 특성, 위스키의 하위 카테고리 중 하나인 버번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남들 다 마시는 하이볼이지만, ‘버번 하이볼’을 좋아하는 나는 ‘그냥 하이볼’을 마시는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다.

술은 나만의 독특한 개성을 내세우기에 아주 편리한 분야다. 소주, 맥주는 물론 한국에는 2천 종이 넘는 전통주 브랜드가 있고, 와인, 사케, 위스키 등 주종을 확장할수록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칵테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끝도 없다.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동전을 긁어 모아 사 먹을 수 있는 소주나 막걸리부터 살아생전 한 방울이라도 먹어볼 수 있을까 싶은 가격대의 술까지, 같은 술이라도 금전적 가치는 천차만별이며 그것을 둘러싼 사회 문화적 맥락과 배경도 각양각색이다. 때문에 나의 술 취향을 슬쩍 이야기하는 것은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에둘러서 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취향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회적으로 나보다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를 분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일찍이 그의 저서 <구별짓기>에서 우리가 취향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이토록 신랄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취향이 계급을 대변한다는 것은 사실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이미 깊숙이 자리잡은 진리다. 취향은 때로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고 과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를 집단으로부터 타자화하고 고유성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독특한 취향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그런데 오늘날 취향에 대한 이런 고전적인 관념이 흔들리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노숙자는 힙스터와 구분할 수 없다”라는 농담이 등장했다. 어떤 패션이나 물건을 보고 “저 사람 취향이 별로네”라고 느꼈다면, 우선은 혹시 내가 급진적인 유행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 사회학자인 리처드 피터슨 Richard L. Peterson은 1992년에 이미 “사람들이 속물이라는 꼬리표를 피하기 위해 문화 소비에서 잡식성 동물처럼 행동하고 있다”라고 분석했 다. 예술 영화를 보며 철학을 논하는 것을 즐기면서도 마블의 블록버스터를 꼭 챙겨 보거나, 소극장 연극과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모두 챙겨보는 사람이 주변에서 점점 많이 보인다. 클래식계의 신성 新星을 대하는 방식이 흡사 K-POP 아이돌 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최근의 음주 문화 트렌드에도 이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강력하고도 즉각적으로 발현하는 F&B 영역에서,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도 지역의 막걸리와 소주를 예찬하고, 성시경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초록병 소주의 복권을 외친다. 다양성을 중심으로 주류 문화의 패러다임이 전환하고 있는 지금, 와인이나 위스키는 고급 취향이고, 초록병 소주와 한국 맥주는 그렇지 못하다는 견해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취향과 향유의 외연에서 그 경계를 넘나들며 확장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만인의 만인을 향한 구별 짓기가 진행되면서 기존의 잣대로는 몰취향이라고 여겨졌던 것들과 고급 취향의 경계가 흐려지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때 “취향이에요, 존중해주시죠”라는 말이 유행했다. ‘취향’과 ‘존중’이 한 시대의 화두가 됐다는 건, 그만큼 그 시대에 개인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과 존중의 문화가 생소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후 삶을 둘러싼 거의 모든 영역이 ‘취향’이라는 키워드로 수렴됐다. 심지어 취향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취향이 되기도 한다. SNS에서 술의 주종을 가리지않는 분방한 풍류를 드러내는 것 역시 과시일 수 있다. 취향의 고수와 과시를 통한 구별 짓기 투쟁에서 벗어난 사람이야말로 나 자신을 타인에게 증명할 필요 없는, 자유를 획득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 취향의 부재도 취향으로 존중받는 지금이야말로 남들과 나를 구분짓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답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적기다.

여느 때보다 음주에 대한 개별성과 다양성이 중시되면서, 소비자의 요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그동안 존재감이 미미했던 전통주다. 10년간 시장 규모가 5백억 원대에 정체되어 있던 이 시장은 2022년 1천억으로 성장했다. 여전히 규모는 작지만, 1년 만에 두 배가 성장하는 시장은 드물다. 유일하게 온라인 배송이 허용된 주류이자, 전통주 면허만 있으면 타사의 주류도 판매할 수 있어 플랫폼으로 확장이 가능하기에 많은 사람이 전통주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눈뜨면 새로운 술들이 나왔다고들 한다.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로, “먹어도 먹어도 새로운 술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즉, 품목의 다양성을 선호의 기준으로 꼽는데, 전통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생산자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제품의 생명이 너무 짧아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취향은 타고나거나, 혹은 나의 폭넓은 경험의 소산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 내가 나의 취향이라고 믿었던 것이 얼마든지 타자에 의해 설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제시해준 동영상과 음악을 듣고, 인스타그램은 나에 대해 수집한 정보를 활용해 적재적소에 내게 필요한 광고를 보여준다. 수많은 품목 중 신중하게 선택한 전통주도 이런 과정을 거쳐 눈앞에 나타난 것일 수 있다. 유통기한과 상온 유통. 술의 납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다. 상온으로 유통이 가능하며, 유통기한이 1년 이상일 때만 공급할 수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제품이 가진 고유한 개성보다는 유통의 편의에 의해 선택되고 소비자에게 제시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소규모 양조장은 발효주를 중심으로 술을 만들고 있고, 살균 처리를 하지 않으면 신선식품과 같아 냉장 유통이 필수다. 저장 환경만 잘 갖춰진다면 술은 부패가 아닌 숙성의 단계로 넘어가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지만, 현행법상 살균 처리를 하지 않은 술은 유통기한을 6개월 이상 설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하는 한국의 양조사들은 제품을 만드는 프로듀서라기보다는 아트워크를 만드는 아티스트처럼 술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나다운 술을 만들기 위해 고투하며, 마시는 사람이 나답게 술을 즐기는 순간을 고대한다. 한국 주류 시장은 대략 9조 원 규모, 이 중 초록병 소주와 맥주가 약 80퍼센트를 차지한다. 양조사들의 소명의식은 제각각 이겠지만, 이렇게 양분된 시장을 다변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은 같다.

뮤지션 카디비는 빌보드 뮤직어워즈 2관왕이 되고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가장 큰 팬이 되어주세요. 노래를 들어주세요. 응원해주세요.” 한국의 주류 문화는 과도기를 거치고 있다. 이 과정의 끝에서 정말로 나의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술을 만나기를 원한다면, 팬이 되는 것도 진정한 향유의 발로일 수 있다. 술은 삶에 색채를 더하기 위한 도구다. 보다 많은 색이 더해질 수록, 우리의 생활이 보다 풍성해질 수 있다. 건강한 다양성과 개별성과 취향이 존재하고, 또 존중받는 때가 온다면 “가장 좋아하는 술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소맥입니다”라고 대답해도 지면에 실리지 않을까.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