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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림 “운명을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으려고요”

2023.09.24하예진

천천히, 부드럽게,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나가는 박유림의 템포.

민트 튤 블라우스, 가죽 뷔스티에, 튤 맥시 스커트 가격 미정, 시퀸 반바지, 모두 한나신. 리본 토슈즈, 레페토.

GQ 넷플릭스 <발레리나>의 유일한 발레리나라서 오늘 화보에서도 발레리나 콘셉트를 소화해봤어요.
YR 발레코어 룩을 입었더니 같은 포즈를 해도 뭔가 새로워요. 이번에 새로운 표정도 많이 시도해봐서 재밌었어요.
GQ 지금껏 딥한 화보가 많았는데, 오늘 비로소 진짜 박유림을 만난 기분이에요.
YR 저도 그런 느낌이에요. 저를 되게 진지하고 차분한 이미지로 보시는 분이 많은데, 조금은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서요.
GQ 본 모습을 들켜버렸네요
YR 네네, 오늘 풀어헤쳤어요.(웃음)
GQ ‘때마침’ 찾아온 기회가 많았죠? 마침 발레를 취미로 배우고 있었는데 발레리나 ‘민희’ 역할을 맡게 됐다고요. 과거에도 졸업 무대에 체호프의 4대 희곡을 올리는 학교를 다닌 덕에 그 작품을 매년 봐왔는데, <바냐 아저씨>가 주요한 장치로 쓰인 <드라이브 마이 카>의 오디션을 보게 됐잖아요. 때마침!
YR 진짜 타이밍이 너무 좋았어요. 균형있는 몸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생기던 와중에 발레 영상을 찾아봤는데 너무 아름답고 멋있더라고요. 발레를 배운 지 5개월쯤 됐을 때 오디션 기회가 온 거예요. 발레에 막 흥미를 느끼는 시기에 <발레리나>를 만나 재밌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프린지 레더 베스트, 쿠메. 워싱 데님 팬츠, 아워레가시. 새틴 리본 플랫 슈즈, 레페토. 블랙 끈 초커, 수앤수.

GQ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기회를 행운으로 만들 준비를 오래도록 해온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YR 저는 진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올 때마다 ‘세상에…!’ 했으니까요.
GQ 한편으로는 배우로서 알려지기까지 긴 기다림의 시기도 있었죠.
YR <드라이브마이카>가 길을 터준 것 같아요. 이충현 감독님도 그 영화를 보셔서 <발레리나>로 연결이 됐고, 많은 분에게 나를 알리는 토대가 됐어요.
GQ 전종서 배우와의 합은 어땠어요? 워낙 그림체가 달라 투샷이 더 궁금해져요.
YR 원래 되게 좋아하고 궁금한 배우였어요. 저는 <콜>이나 <버닝> 같은 작품으로 종서 배우님을 봤던터라, 촬영장에서 만난 또 다른 모습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전종서 배우님이 엄청 아이 같은 모습이 있거든요? 순수하게 웃는 미소가 너무 좋아서 자꾸만 막 지긋이 보고 그랬어요.
GQ 작품에서 만나보고 싶은 배우가 또 있어요?
YR 좀 쑥스러운데요. 박정민 선배님 팬이에요. 선배가 쓰신 책도 읽었는데 엉뚱한 모습도 있으신 것 같고, <유퀴즈>에 나온 것도 봤는데 되게 뭔가 궁금해요.
GQ 한 사람을 글로서 만나는 건 또 다른 발견이죠. 유림씨도 인스타그램에 종종 메모를 업로드하던걸요? 최근에는 어떤 글을 썼어요?
YR 일기장에 로봇이 되고 싶다고 썼어요. 제가 쓸데없는 상상을 좀 많이 하는 편 인데요. 가끔 생각이 많아지면 생각에 잡아먹힐 때가 있잖아요. 그게 좀 싫더라고요. 그래서 로봇이 돼서 잠깐 배터리를 꺼놨다가 깨어나면, 잘 쉬고 다시 일상생활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울 크롭트 재킷, 로맨시크. 튀튀 드레스, 페르트.

GQ 작품 노트도 늘 가지고 다닌다고요. <발레리나> 작품 노트에는 뭘 채웠어요?
YR 저의 설레는 마음이랄까. 제가 오디션을 보고 어딘가에 속해 있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평소 애정하던 감독님, 배우님들이 제 앞에 있고, 그 사람들 곁에서 리딩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너무 설레요. ‘내가 민희라니, 나 이거 꼭 잘해낼 거야’ 같은 즐거운 포부를 주저리주저리 적어놨어요.
GQ 어떤 단어가 좋을까요? 소속감, 내 집단, 나의 쓸모, 나의 자리.
YR 작품 타이틀이 <발레리나>인데 거기서 제가 발레리나가 된 거잖아요.(웃음) 민희 역할을 하게 됐을 때도 ‘해냈다’라는 표현을 썼어요. 그런 맥락에서 성취?
GQ 민희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고요. 발레의 매력은 뭐였어요? 몸을 움직이는 기쁨을 탐구하는 시간이기도 했을 것 같은데.
YR 음,발레는 기쁨도 있지만요 고통도있어요. 발레할 때 균형 있고 바른 자세를 하기 위해선 온몸과 정신을 집중해야 하거든요?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흔들리지 않고 서 있기 위해 집중하는 시간이 되게 좋더라고요.
GQ 오롯이 균형 잡는 일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거네요.
YR 뭔가 한 가지에 열중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집중하는 재미를 알게 되면서, 내가 빠지고 몰입할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기도 했어요.
GQ 실제로 취미 부자잖아요. 레고, 퍼즐, 필름카메라, 철권 등 좋아하는 게 정말 많던데, 혹시 예쁘고 멀쩡한 덕후?
YR 실은 제 친구들도 똑같이 말해요. 어렸을 때는 게임이나 퍼즐 같은 놀이를 친구들과 함께하는 게 저한테 되게 중요한 일이었어요.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최근엔 다시 그것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서 하게 됐어요.
GQ ‘어른이’의 취미네요.
YR 이제 레고도 제 돈 주고 살 수 있고(웃음), 혼자 즐기는 법을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참 신기한 게 커서도 재밌더라고요.

레이스업 디테일 드레스, 와이씨에이치. 시스루 러플 스커트, 앤아더스토리즈. 화이트 레이스업 부츠, 닥터마틴.

GQ 남몰래 혼자 좋아하는 취미도 있어요?
YR 여행 유튜브를 되게 좋아하는데 <원지의 하루> 원지님 팬이에요. 인도 미용실에서 인도 메이크업을 받는 걸 보고, 저도 나중에 여행 가면 거기서 현지 메이크업 받아봐야겠다 싶었어요. <명탐전 코난>도 엄청 좋아해서 아직까지도 보고있어요. 좋아하는 건 많은데 새로운 건 없네요. 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걸 지금도 좋아하는 거예요. 엄마가 그런 저를 보시면 “아이고 아직도 퍼즐하고 있네” 하세요. 아! 그리고 요즘 휘낭시 만드는 거에 빠져 있어요.
GQ 최근에 성향이 ISFP에서 ISTP로 바꼈다고요. 일상에서도 변화가 생겼어요?
YR 살기가 편해요. 예전에는 문제가 생기면 감정적으로 ‘어떡해’ 이랬거든요. 근데 지금은 ‘어떡하긴 어떡해, 고쳐야지’ 하며 뚝딱 해결하는 인간으로 바꼈어요. 그리고 가끔 ‘난… ᄀr끔 눈물을 흘린ᄃr…☆’ 모먼트가 오잖아요? 예전에는 그럴 때 하루 종일 울면서 보냈는데 이제는 스스로 ‘누구나 그런 시기가 온다. 야, 울어’ 해버려요. 깔끔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시간이 짧아졌어요. 

GQ 박유림을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로 기억하는 영화 팬이 많을 텐데요. 유나의 극중극 <바냐 아저씨> 수어 연기가 박유림을 알리는 데 한몫했어요. 박유림이라는 사람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내 인생의 극중극을 정해본다면요?
YR 진짜 옛날 영화인데 <귀신이 산다>라는 영화 아세요? 무서운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엄청 웃긴 코미디 영화 거든요. 차승원 선배님도 나오세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제가 말 없이 무표정으로 연기하니까, 저를 차분하게 보시는 분이 많은데요. 저도 들여다보면 <귀신이 산다>처럼 반전이 있거든요. 예를들면 호러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랄까.
GQ 도라에몽을 좋아하는 것만 봐도 각이 딱 나오죠.
YR (커다란 가방을 보여주며) 오늘도 도라에몽처럼 한가득 가져왔어요.
GQ 도라에몽은 요술 도구도 많잖아요. 그중에 가지고 싶은 도구가 있다면요?
YR 잊어라 방망이. 이거를 상대방 머리에다가 뿅 하고 갖다 대면 그 사람이 생각 하던 걸 잊게 해준대요. 그러다가 반대로 다시 방망이를 뿅 갖다 대면 잊고 있던 걸 기억하게 해주기도 하고요. 너무 쓸모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좀 생각을 잊고 살고 싶거든요. 수시로 잊어라 방망이로 뿅 하며 살고 싶어요.
GQ 로봇도 되고 싶고, 잊어라 방망이도 쓰고 싶고. 고민이 많은 시기라는 의미일까요? 그동안 <기적의 형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새로운 캐릭터로 박유림을 새로 고침 해왔는데요. 데뷔작이 강렬해서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어요?
YR 아직까지 못 해본 게 많아서, 부담보다는 뭐 재밌는 거 없을까 생각하며 도전 하고 싶은 시기예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오히려 즐거운 것 같아요. 

울 크롭트 재킷, 로맨시크. 튀튀 드레스, 페르트. 그레이 니트 워머, 레페토. 블랙 스니커즈, 아디다스.

GQ 두 번째 주연 영화인 <발레리나>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여요. <드라이브 마이 카>로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이후, 주연 배우로서 처음 참석하는 소감은 어때요?
YR 사실 <드라이브 마이 카>로 ‘부국제’에 참석한 당시에는 그때가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여기에 또 올 수 있을까 하면서 다른 배우들 구경 하고 그랬는데, 너무 빠른 시일 내에 가게 돼서 신기하고 감회가 새로워요. 그리고 그때는 제가 혼자 갔었거든요? 이제는 소속사가 생겨서 선택지도 넓어지고 많이 준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더 즐기고 싶어요.
GQ 드레스도 혼자서 준비했던 거예요?
YR 지인한테 부탁해서 추천받아 입어보고 스스로 팀을 꾸려서 바리바리 싸들고 부산에 갔었죠. 막상 혼자서 준비해보니 배우가 잠시 반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를 몸소 느꼈어요. 이제는 소속사분들이 으쌰으쌰 어깨동무를 하고 저의 예쁜 모습을 준비해주세요. 저를 금의환향 시켜 주려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주시는데요. 정말 제대로 준비를 해서 내려가고 싶어요.
GQ ‘부국제’ 룩이 벌써 기대되네요. 지난해 <GQ> 인터뷰에서 “살면서 어떤 운명 같은 시기가 오는 것 같다”고 했어요. 최근엔 또 어떤 운명을 경험하고 있나요?
YR 운명이 쉽게 오지 않더라고요. 저는 또 운명 같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잖아요. <드라이브 마이 카>도 찍고, <발레리나>도 찍고, 너무 들어가고 싶던 회사도 만나고. 운명같은 일이 뭉텅이로 찾아와서 이걸 이길 만한 운명이 지금은 없네요. 그래도 운명을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으려고요. 운명처럼 좋은 기회를 제 행운으로 맞을 준비를 해야죠. 가끔 잊어라 방망이도 쓰면서요. 

포토그래퍼
장덕화
스타일리스트
김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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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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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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