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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번역가가 지큐 인터뷰에서 건져 올린 말 4

2023.10.23전희란

인터뷰의 미학.

박정훈 번역가
선문답처럼 툭툭 던져놓은 저 말이 내게는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가 <순수의 전조 Auguries of Innocence>에서 대비되는 두 극단을 불이 不二로 대한 게송 偈頌처럼 다가왔다. 한 톨의 모래알에서 세계를 만나고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네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 한 손에 무한을 쥐고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 한순간에 영원을 담네 And Eternity in an hour. 땅은 내려다보고, 하늘은 올려다본다. 땅은 사람과 사물로 가득하고, 하늘은 공허로 빈 데 없다. 하루를 잘 산다는 건 일기일회의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는 뜻이고, 여유가 있다는 건 간단 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작은 틈을 낸다는 뜻이다. 마치 사람 ‘인 人’ 자의 두 획처럼 대비되는 두 사항은 서로를 받쳐준다.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건 땅을 딛고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이고,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건 ‘잘 산다’라는 충만함에 파묻히지 않게 해주는 여유가 있는 덕분이다.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을 우러러보고 To look up to the sky standing on the ground / 충만한 하루를 보낸 내 마음을 비워내네 And to unfill my mind with a filled day. 땅과 하늘, 채움과 비움의 자리를 조금 옮겨보니 아래와 같이 같은 듯 다른 듯한 글귀가 나온다. 하지만 어차피 말과 글은 방편일 따름이니 같고 다름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저 선문답 같은 말은 그 속에 깃든 모호함이 우리의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니 언어에 머물지 말고 그저 행하기만 하면 된다. 하루를 더 잘 살기 위해서. 땅을 내려다보는 건 내 하루를 채우려 함이고 To look down the ground is to fill my day /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내 마음을 비우기 위함일세 And to look up the sky is to unfill my mind.

자넷 홍 번역가
BTS RM이 인터뷰 말미에 언급한 바 있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은 매번 나를 당황하게 한다. 당신의 수고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상대의 희생을 인정해주는 매우 한국적인 감정 표현이다. 나는 “수고하셨습니다”를 때로 “고맙습니다”, “잘했습니다”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문맥에 따라 “당신이 한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욕심’이라는 단어의 한국어와 영어의 뉘앙스는 굉장히 다르다. 진의 “기회가 왔을 땐 욕심을 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에서의 ‘욕심’엔 긍정적이고 성실하며 정직한 느낌이 담겨 있다. “설레다” 역시 한국 고유의 독특한 단어라 번역하기가 매우 어렵다. 슈가의 “여전히 공연하는 게 너무 설레요”란 말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려면 “흥분되고 긴장된다”라는 말을 더해야 할 것 같다. 제이홉이 말한 “흥”은 한국 정체성의 뿌리다. 한 편에 한이 있다면 또 다른 면에는 흥-에너지, 재미, 즐거움-이 있다. <지큐> 호주판을 위해 실제로 이 인터뷰를 번역했을 때, 길게 부가 설명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장난스러운’, ‘재미있는’ 같은 형용사를 가져와 덧붙였다. 번역 세계에서는 이를 “은밀한 광택 stealth glossing”이라고 부른다. 지민이 자신의 습관으로 꼽은 “잡생각”은 모든 면에서 ‘숏 컷’ 찾기를 즐기는 한국인의 성향이 낳은 합성어다. 잡생각처럼 원 의미도 내포하면서 귀에 쏙 들어오도록 바꿀 수 있는 단어를 찾을 수 없어서 곤란했던 기억이 난다. ‘~쟁이’처럼 한국인들은 기억하기 쉬운 ‘라벨’을 붙이는 데도 매우 뛰어나다. “감성쟁이”라고 자신을 일컬은 뷔의 사랑스러운 표현을 직역하는 것 역시 도무지 어려웠다. 정국이 말한 “빡시게”는 ‘강하다’는 의미의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다.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결국 직역을 택했지만, 말맛을 살리지 못한 건 아쉽다.

쿠지나 소피아 번역가
인터뷰를 읽는데 묘사가 생생하게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 말을 러시아어로 번역한다면, “나를 향한 따뜻하고 진실된 노을의 관심은 새 힘과 에너지가 넘칠 정도로 내 마음을 채워준다”란 뉘앙스로 다가온다. 나도 집에서 매일 해 지는 광경을 보면서 떨어지는 태양과 저녁 인사를 나누곤 한다. 바쁘고 지치는 일상, 때로는 서로에게 무정하고 무관심한 현실 속에서 그렇게 멍하니 창문 앞에 앉아 하루의 마지막 빛을 보면서 끝없는 위로와 평강을 느낀다. 쉴 새 없이 이 지구를 따뜻하게, 밝게 해주는 불덩어리 친구는 일과를 마치면서 따뜻한 안부를 내보낸다. “힘들지? 오늘도 열심히 달려왔지? 수고했다. 이제 모든 짐을 내리고 푹 쉬렴. 그동안 펼쳐온 인생 이야기, 오늘의 스토리도 관심 있게 봤단다. 얼마나 흥미롭고 즐거웠는지…. 고마워. 네가 있어 행복해. 네 모습을 보면 나도 힘이 나.” 주어진 인생길에서 지나치게 큰 그림을 한꺼번에 그릴 욕심을 버리고, 오늘이 우리에게 던진 도전 앞에서 겁내지 말고, 맞닥뜨리는 문제와 어려움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삶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조각들을 차근차근 맞추어 가보자. 우리의 소명, 우리에게 맡겨진 미션의 마스터 피스를 여유 있게 그려보자. 나는 네가 필요해. 나는 네가 있어서 좋아. 나는 네가 이 인생길을 기쁜 마음으로 보람 있게 걸어갈 수 있도록 매일 따뜻한 햇빛을 변함없이 내리쬘 거야. 하루가 저물어갈 때, 네 에너지가 바닥이 날 때 저녁에 한결같이 나의 잔잔한 석양을 보여줄 거야. 아늑한 네 집에 와서 편하게 안락의자에 몸을 맡기고 나의 다정한 안부/안녕을 받으면서 새 힘을 입도록. 내가 너를 위해 비춰주는 하늘을 마음껏 구경하고, 모든 것을 털어놓고 마음을 비우고 나서 석양의 햇빛으로 사랑과 인내의 에너지를 보충하고 재충전하렴. 우리 내일도 아자자 파이팅.

박선형 번역가, 번역가의 서재 대표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은 얼핏 모든 걸 허용하는 듯하지만, 한 겹 벗겨보면 일종의 명령어와도 같다. 단지 암묵적이라는 성격이 가미되어 있을 뿐 언어가 지칭하는 바는 명령어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또 이 말 속에는 “어떻게든 되겠지”와 같은 관조를 빙자한 방관의 마음이 들어 있다. 초탈한 듯하지만 회피에 가깝고, 순리에 맡긴 듯하지만 인위에 얽매여 있는 말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자주 쓰는 익숙한 말은 간혹 그 속뜻을 잊어버리게도 한다. 이 말은 원래 소설가 박완서의 작품에서 인용된 것으로, 다소 미흡하거나 석연치 않더라도 적당히 타협하면 좋다라는 암시로 쓰였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일상에서는 대화의 흐름에 따라 또 양측의 관계에 따라 어감이 달라진다. 일본어로 번역할 때 앞뒤 문맥을 떠나 직역하면 “이이모노와이이 いいものはいい”라고, 말 그대로 긍정적인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속뜻을 제대로 살리고 어감을 반영해 번역하려면 암묵적인 타협을 요구하는 문장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경우 어감이 곧 직역인 셈이 된다. “소레데모이인쟈나이 それでいいんじゃない (그걸로 괜찮지 않나).” 여기에 “난토카나루 なんとかなる(어떻게든 될 거야)”를 덧붙여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말이든 일본어든 이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양측의 힘과 위치가 동등하지 않을 때 잘 드러난다. 가식적인 타협이 아닌 눈높이를 맞춘 진정한 동의에 이르고자 한다면, 나아가 순리에 순응하되 참여의 마음으로 임하고자 한다면 “좋아지도록 함께 만들어볼까요?(요쿠나루요우니잇쇼니얏테이키마쇼우카 良くなるように 一緒 にやっていきましょうか)”라고 바꾸어 말해보면 어떨까.

    디자인
    오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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