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rink

넷플릭스 대신 배달 음식과 읽기 좋은 책 16

2024.03.13전희란

요리와 함께 책을 배달 시킨다면? 먹기와 읽기를 사랑하는 16인의 엉뚱한 상상.

낙지볶음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은행나무)

by 한충희(푸드 블로거 비터팬, F&B 컴퍼니 UGD 대표)
스트레스 폭발한 날, 매운 낙지로 ‘매운멍’을 때릴 준비를 한다. 무교동유정낙지 압구정점의 낙지볶음이 단골 메뉴다. 마늘을 듬뿍 넣어 감칠맛이 폭발하는 그 맛, 중독성 ‘쩐다’. ‘매운멍’을 때리다 보면 ‘이게 다 뭔 소용?’ 해탈하게 되는데, 그 때 귀농 바이블 <월든>을 읽으며 안빈낙도 안분지족 자연인이 될 계획을 세운다. 먹기와 읽기가 공존할 때의 즐거움? 책에 열중하다보면 다이어트에 성공하게 된다. 어쩌면?
The Sentence “나는 날품팔이가 가장 자유롭다 생각한다. 한 사람이 먹고사는 덴 일 년에 30일만 일하면 된다. 대신 그의 노동은 해가 지면 끝나고 그 후는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 시간에 그는 자신 내부에 사상을 위한 신대륙을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될 수도 있다. 그는 하나의 왕국의 주인이며, 그에 비하면 러시아 황제의 대제국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 얼음 땅 위 풀더미에 불과하다. 그러나 항상 궁리해야 하는 그의 고용주는 일 년 내내 쉴 틈이 없다.”

짬뽕 × 마영신, <엄마들>(휴머니스트)

by 형슬우(영화감독)
평소 매운 걸 대단히 즐기진 않지만, 해외여행을 마치고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배달 어플을 켜고 짬뽕을 검색한다. 만두, 딤섬 특화 맛집인 편의방은 짬뽕, 오향 요리까지 훌륭하다. 여기에 맞서는 독서라면 알싸하게 매운 마영신의 <엄마들>. 표지도 강렬한 레드, 내용도 레드 그 자체다. 우리가 무심히 스쳐가는 중년 여성들의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꽃에서 튄 질투와 열정, 치열한 사랑싸움까지 단순하고, 명확한 필치로 그려낸다. 먹기와 읽기를 함께하는 즐거움은 일찌감치 깨달은 편인데, 어린 시절 겨울이면 전기장판 위에서 이불을 몸에 돌돌 감고 만화책을 읽는 게 좋았다. 귤을 까먹거나 핫초코를 마시며 책장을 넘길 때의 소소한 행복. 한 권당 200원의 대여료로 작가의 스토리텔링과 세계관을 체험할 수 있었다니. 좋은 시절이었다.
The Sentence (작가의 말 중에서) “엄마가 깔깔깔 웃으며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다. 다른 누군가의 엄마들도 그렇게 봐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라즈지 × 윤형근, <윤형근의 기록>(PKM BOOKS)

by 전희란( 피처 에디터)
스트레스가 왔다는 신호를 뇌보다 빠르게 알려주는 건 매운 것을 갈구하는 나의 정직한 ‘위’. <윤형근의 기록> 속 문장들은 그의 그림과는 달리 퍽 매콤한데, 빨간 맛의 단상들을 읽으며 사천 요리를 곁들이면 꽤 짜릿하다.
The Sentence “내 그림은 나의 똥이요, 몸이요, 얼굴이요, 가슴이다.”

떡볶이 × 조위, <우리는 왜 임영웅을 사랑하는가>(한스미디어)

by 최이삭(K팝 칼럼니스트)
작년에 처음 경험한 임영웅 콘서트에서 깨달은 건, 그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유 중 하나가 탁월한 해석력 덕분이란 사실이다. <미스터트롯1> 본선에서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울려 퍼질 때, 60대도 아니고 배우자도 없지만 그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콘서트는 아티스트로서 임영웅의 해석의 총체를 보여주었다. 중장년층 여성을 열광하게 하는 요소도 발견했다. 그에겐 뭔가, 편지 한번 주지 못하고 속앓이하다 끝난 첫사랑 같은 고전적인 남성미가 있다. 이 책은 임영웅의 ‘해석’을 재해석한다. 주요 향유자가 문화 시장의 주류에서 소외되어 왔기에 미처 설명되지 못한 임영웅 현상을 팬이라서 가능한 치열한 사랑과 사명으로 분석했다. ‘엽떡’을 주문할 때의 지배적 정서는 외로움이다. 매운 국물로 마음의 그늘을 덮을 때 이 책을 읽으면 깊은 사랑이 깊은 성찰로 이어지는 빛나는 연쇄가 마음으로 감겨와 더는 외롭지 않다.
The Sentence “기교를 바꿨다는 것은 임영웅의 세계관이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기교는 단순한 표현 전략이 아니다. 예술가들에게 기교란 좁게는 작품 속 지배 정서, 나아가서는 예술가들이 외부 세계 전반을 대면하는 자세다.”

도넛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문학동네)

by 이혜승(프리랜스 에디터)
고독한 재택 근무자에게 도넛은 아침 식사로 아주 요긴하다. 도넛으로 끼니를 해결할 때마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떠올린다. 접시도 없이 식탁 위로 큰 키를 숙여 도넛을 먹고 손가락에 묻은 설탕을 털어내는 그녀의 모습을. 소설에서 도넛은 몸과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음식으로 서른다섯 번 이상 언급된다. 이들에겐 “도넛 먹을래?”가 “밥 먹었어?” 같은 안부 인사다. 시종 담담한 소설은 도넛의 맛에 대해서도 호들갑 떠는 법이 없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이 도넛을 부르는 이유는, 그 달콤한 한입이 주는 작은 기쁨 때문은 아닐까. <올리브 키터 리지>를 읽으며 도넛을 먹을 땐 반드시 손으로 집어 까칠한 설탕을 느껴야 한다. 칼로 잘라 먹었다가는 올리브가 한 소리 할 테니.
The Sentence “아니면 왜 내가 눈에 보이는 도넛마다 먹어 치우겠어?”, “아줌마가 굶주렸다고요? 하.” 니나가 역겹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구 말구. 우리 모두 다 그래.”, “와.” 니나가 나지막이 말했다. “굶주린 분이 통통하기도 하셔라.”

티그레 × 크리스티앙 보뱅, <작은 파티 드레스>(1984BOOKS)

by 백아영(미술 저널리스트)
티그레와 처음 사랑에 빠지게 해준 우스블랑. 언제나 나를 구원할 새로운 디저트를 찾아 헤메는 내게 티그레의 존재를 알려준 우스블랑의 분점, 쁘띠우스 베이커리의 티그레 곁에는 <작은 파티 드레스>를 두고 싶다. 책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잠시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매순간 나를 붙잡는, 닮고 싶은 문장으로 가득한 책. 식후 디저트로도, 요깃거리로도 손색없는 티그레의 부드럽고 달달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풍미는 저자의 의도를 따라 가기 위해 꽤나 골몰해야 하는 이 책과 닮았다.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는 것만큼 단시간에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행위가 또 있을까. 또 운동이 신체 발달을 돕듯이 독서는 정신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둘을 동시에 함께 하면 그만큼 시너지가 나 두 배로 행복하다!
The Sentence “피로는 사랑을 침범해 들어오는 미개한 잠이며, 광대한 사랑의 숲에 번지는 잠의 불이다.”

치즈케이크 × 이재연, <파도를 넘어서 케이크>(클)

by 김민지(요기요 에디터)
배달 주문할 땐 부러 집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메뉴를 고른다. 내게는 성수동에 있는 시즈니의 ‘보늬밤 바스크 치즈케이크’가 그런 존재다. 한 알 한 알 손수 손질하고 졸여서 만든 보늬밤이 시트 대신 그득하게 담긴 알찬 케이크. 사실 먹는 것과 읽는 것을 동시에 하는 것은 꽤 귀찮은 일이다. 읽던 책을 손에서 놓고, 다시 또 펼치는 일을 반복해야 하니까. 그럴 때마다 흩어진 집중력을 모아 한 문장을 여러 번 읽는 경우도 많아 평소보다 문장을 꼭꼭 씹어 소화하는 기분이다. 이 케이크의 짝꿍으로는 홈 베이커의 에세이 <파도를 넘어서 케이크>를 꼽고 싶다. 감정의 파도를 넘고 넘어 결국 디저트를 완성하는 이야기인데, 작가의 고군분투를 읽고 있으면 위로가 된다. 마치 디저트가 나에게 그런 것처럼, 위로에 위로를 더하는 순간.
The Sentence “최대한 맛있는 한입을 달성하기 위해, 입을 세로로 크게 벌리고 코 주변을 찡그리고, 때로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어가며, 그렇게 못난 얼굴로 먹은 한입의 머핀에서는, 한쪽에선 부드러운 케이크의 식감, 다른 한쪽에선 버터와 시나몬 맛이 가득한 스트루셀의 바삭함이 느껴진다.”

젤라토 × 김혜리,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어크로스)

by 표희선(드라마 프로듀서)
진한 바질 향과 ‘단짠’, 시원한 맛이 혀에서 녹으며 동시에 퍼져나가는 델젤라떼리아의 바질 소금 젤라토. 퇴근 후 심야 영화를 보러 가거나 집에 돌아와서 드라마나 영화 한 편은 꼭 보고 자려고 하는데, 그럴 때 이 젤라토가 좋은 메이트가 된다. 왜 퇴근한 뒤까지 숙제를 하느냐고? 첫 번째는, 물론 재미있어서. 그리고 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께 고민하고 치열했을지 뜨거움을 대리 체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는 창구가 되니까. 그런 작품들을 사려 깊은 문장으로 다정하게 안내하는 김혜리 기자의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는 한번에 완독할 필요가 없다. 목차를 훑다 끌리는 작품 하나를 골라 기자의 시선으로 이해한 영화를 경험하고 나면 그 영화가 다시 그리워지기도 하고, 보지 못한 것이 보이기도 한다.
The Sentence “영화관에서 우리는 완벽히 혼자지만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동료 관객의 감정에 감응하고 은연중에 갈등한다···. 우리는 공통의 근심과 희망을 확인한다.”

베지 부리토 × 로알드 달, <맛>(강)

by 한지인(브랜드 기획자)
먹는 것과 읽는 것을 함께하는 것은 ‘일탈’이다. 어릴 때부터 이 둘은 같이 하면 안 된다고 교육 받았으니까. 하나, 먹으면서 읽고 읽으면서 먹으면 도파민 낙원이 펼쳐진다. 몰입과 집중의 즐거움에 맛있는 것이 입에 계속 들어오니 말이다. 종종 주문해 먹는 트라타의 베지 부리토에는 로알드 달의 <맛>을 곁들인다. 이 책을 읽은 뒤의 로알드 달에게선 더 이상 초콜릿 향기가 나지 않는다. 이미지가 완벽하게 전복되는 반전 이야기가 줄지어 걸어 나오기 때문이다. 베지 부리토는 과연 부리토일까? 고기가 없으니 부리토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채식의 표정을 짓고 있는 기묘한 포만감이 주는 반전은 좀처럼 헤어나오기 힘들다.
The Sentence “이건···. 이건 아주 상냥한 포도주야. 새침을 떨고 수줍어하는 첫맛이야. 부끄럽게 등장하지. 하지만 두 번째 맛은 아주 우아하거든. 두 번째 맛에서는 약간의 교활함이 느껴져. 또 좀 짓궂지. 약간, 아주 약간의 타닌으로 혀를 놀려. 그리고 뒷맛은 유쾌해. 위로를 해주는 여성적인 맛이야. 이 약간 경솔하다 싶을 정도로 너그러운 기분.”

포케, 샐러드 × 하이케 팔러, <100 인생 그림책>(사계절출판사)

by 이정윤(다이닝 미디어 아시아 디렉터)
가볍고 산뜻한 식사를 선택한 순간엔 음식 넘기듯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 좋다. 먹는 것도 감각(시각, 후각, 촉각)이고, 책을 보는 것도 감각(시각)과 지각이기 때문에. <100 인생 그림책>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고, 청춘의 순간이 지나고, 오지 않은 날들이 – 하지만 곧 다가올 날들이 – 종이처럼 넘겨진다. 삶의 순간들이 이렇게 종이 한 장 넘기는 것처럼 덧없이 흘러간다. 사랑스럽고, 엉망이고, 소중한 순간들. 찰나를 살아내는 노력들이 모여 누구나 인생이라는 책을 한 권 쓰는 것처럼, 한 끼의 샐러드가 내 식생활을 구원하지는 못할지라도 배달 음식의 무수히 해로운(?) 유혹들 사이에서 인생의 한 페이지가 빛난다.
The Sentence “사는 동안 뭔가 다른 일을 해봤더라면 싶은 게 있니?”

그릭 요거트 × Ryan Holiday and Stephen Hanselman, (Portfolio)

by 이승민(국제갤러리 홍보 담당)
평소 꾸덕한 그릭 요거트를 즐겨 먹는데 근무하는 갤러리 근처에 땡스 오트의 시즈널 프룻 앤 베리란 그릭 요거트 맛집을 발견하곤 몹시 반가웠다. 계절마다 바뀌는 베리류와 그릭 요거트를 함께 즐길 수 있다니. 게다가 배달까지! 새해 들어 마음을 건강히 돌보고자 책을 여러 권 들였다. 그중 라이언 홀리데이와 스티븐 핸슬먼의 의 문장들을 요거트와 함께 음미하고 싶다. 매일 다양한 철학자들의 글귀와 짧은 글 한 편으로 구성된 본문을 읽고 명상을 하는데, 이 책과 가장 좋아하는 그릭 요거트를 먹을 수 있다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 것 같다.
The Sentence “his kind of clarity–about what they love most in the world–means they can enjoy their lives.”

포케 × 류은숙, <아무튼, 피 트니스>(코난북스)

by 김희성(럭키참 대표)
본격적인 운동과 식단을 하며 가장 어려웠던 건, 맛있는 음식을 참는 일이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입맛에 잘 맞는 연어포케를 만나 체지방만 6킬로그램 이상 감량할 수 있었다. 신선한 연어와 현미밥, 풍성한 채소와 소스의 조합이 황금 비율을 자랑하는 슬로우 캘리. 연어포케를 주문할 때면 피자, 떡볶이, 떡만둣국, 토스트를 먹고 싶은 유혹 앞에 흔들리곤 하는데, 풀리기 직전의 의지를 다잡아주는 책이 바로 <아무튼, 피트니스>다. 넷플릭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하는 식사는 스트레스가 풀리지만, 풀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몸과 마음에 관한 책을 읽으면 건강해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먹는 것이 곧 나’라는 명제를 다시금 곱씹으며,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
The Sentence “계속 마시기 위해선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

피자 × 박찬용, <모던 키친>(HB PRESS)

by 정재훈(약사, 푸드 라이터)
배달 단골집인 피자아이코닉엔 메뉴가 치즈 피자, 페퍼로니피자, 하프앤하프 딱 3가지여서 선택 장애가 올 일이 없다. 타협하지 않는다. 탄 걸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제대로 구운 피자에 짜고 기름진 맛을 일관성 있게 유지한다. 고집스럽다는 말이 미덕이 될 수 있다는 걸 눈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읽으며 먹으면 화면을 볼 때와 달리 여유롭게 천천히 먹게 된다. 먹기도 하고 책장을 넘기기도 해야 하니 손이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맛있다. 피자와 음미하고 싶은 책은 <모던 키 친>. 음식 현장을 들여다보고 싶다 해서 실제로 들어가서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식당에서 먹어도 주방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배달은 더욱 그렇다. 비대면 배달이 흔해진 요즘은 배달원조차 볼 수 없다. 공장, 주방, 농장의 사람들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면서 위안을 얻기에 이보다 좋은 책은 없다. 사진이 가득 담긴 책이지만 앞 표지에는 목차만 나와 있는 것도 맘에 든다. 배달앱에서 맛집을 찾는 안목을 지닌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알아볼 거라는 확신이 든다.
The Sentence “소비와 생산은 완전히 다르다.”

후라이드 치킨 × 아베 츠카사, <장송의 프리렌>(학산문화사)

by 김지우(MBC 예능 PD, <태계일주> 연출)
읽는 것과 먹는 것을 함께한다는 건, 불 앞에 둘러서서 음식을 먹고 불멍으로 긴 밤을 보냈던 인류의 선조들처럼 인간이 긴 시간 외로움을 버티고 타인의 온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는 시간이 아닐까? 나의 단골 배달 메뉴는 한강치킨의 후라이드 치킨과 생맥주다. 언제나 변함없이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이 40년 전통에 걸맞게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치킨의 바삭함, 맥주의 시원함과 함께라면 무겁고 딱딱한 전문 서적보다 가볍고 술술 넘어가는 만화가 좋다. 이를테면 만화 <장송의 프 리렌>처럼. 기름이 묻지 않게 조심조심 책장을 넘기며 모험을 떠난 마법사의 일대기를 따라가다 보면 만화만이 줄 수 있는 깊은 몰입감과 닭다리를 물고 있을 때의 포만감이 겹쳐지며 방구석이지만 모험을 떠나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피서가 아닐까?
The Sentence “1차 마법사 자격 시험이 끝난 뒤 먹는 프리렌 일행의 행복한 저녁. 80년 만에 방문한 식당에서 그때를 기억하는 일행은 없지만, 새로운 일행과 추억을 만들며 80년 전 동료의 말을 비로소 깨닫는 프리렌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이해와 성장’이라는 만화의 주제가 따뜻하고 유쾌하게 다가온다.”

치킨 ×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민음사)

by 이승재(카피라이터, 광고 회사 아이디엇 대표)
치킨을 무척 좋아하지만 건강 관리로 인해 자주 먹지는 못한다. 개중 단골 메뉴는 푸라닭 순살 씬 후라이드. 튀김옷이 가장 얇아 죄책감이 덜하고, 통다리살 부위 모음이라 부드럽고 담백하다. 먹으며 읽는다는 건 책 속의 무한한 세계관과 미식의 다채로움을 즐기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취미일 테다. 치킨을 자주 먹지 못하는 만큼 먹는 날만큼은 길티 플레저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자기 혐오 범벅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함께 먹고 싶다. 좀 변태같은가?(하하하)
The Sentence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니까 일해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말만큼 저에게 난해하고 어렵고 협박 비슷하게 울리는 말은 없었습니다.”

햄버거 × 허인, 김희종, <흔한 채소가 흔하지 않은 술안주가 되었습니다>(맛있는 책방)

by 정보연(<여행의 끝 위스키> 저자)
단골 배달 메뉴는 버거킹의 콰트로 치즈 와퍼. 비교적 두꺼운 패티와 풍성한 소스의 맛이 위스키와 페어링하기 딱 좋아서다. 위스키를 활용한 해외의 버거 몇 가지를 소개한다. 애버딘산 소고기와 크리미한 위스키 소스, 캉탈 치즈를 넣은 영국 ‘Whiskey Angus’, 그뤼에르 치즈와 아로마틱한 위스키 소스의 스위스 ‘The Whiskey Burger’, 직화구이 소고기, 위스키 바비큐 소스의 독일 ‘Whisky Jim’, 캐나다 ‘Maple Whisky BBQ King’ 등. 배달 음식은 대개 늦은 밤 찾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 마음 한편에는 반성의 마음이 함께 놓인다. 이 다음에는 기필코 건강한 밤참 또는 술안주를 함께하겠다는 작은 다짐으로. 이 책 그런 때 펼쳐보면 좋은 책이다. 냉장고에 잠들어 있는 채소로 안주를 만들어 먹으며 죄책감을 덜 수 있다니 근사하지 않은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다음 끼니를 궁리하거나 전에 맛본 음식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아는 사
람이라면, 반드시 권하고 싶은 책이다.
The Sentence “밥에 넣은 콩은 먹지 않는데 희한하게도 콩으로 만든 안주는 정말 좋아한다.”

    포토그래퍼
    김래영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보선, 이지희 at 스튜디오 로쏘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