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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윤 “그냥 인정 해버려요”

2024.08.26전희란

장동윤이 켜지는 시간.

슬리브리스, 바이 랑. 팬츠, 코스. 슈즈, 메종 마르지엘라.

GQ 이 근처 맛집 저장해둔 거 있어요?
DY 여기 앞에 진미평양냉면 자주 가요. 단골이에요.
GQ 좀 아까 촬영할 때 뒤에 계속 진미평양냉면 간판 걸렸던 거 알아요?
DY 네.(웃음)
GQ 신혼여행은 페루로 미쉐린 투어를 떠나고 싶을 정도로 음식에 진심이죠? 그간 인터뷰에서는 ‘사랑’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고요. 그럼 이 조합은 어때요? 음식과 사랑. 그 둘을 나란히 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메뉴는 뭐예요?
DY 전복, 소고기, 송이 구이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이 세 가지를 세트로 구워 주셨거든요. 엄마가 나를 대접해주는 최고의 음식. 군대 자대 배치 후 첫 면회 때도 버너랑 손수 손질한 전복, 송이, 소고기를 가져와 구워주셨어요.
GQ 진짜 사랑이네요.
DY 제가 소고기에 환장하거든요.(군침) 집에서 육회도 해 먹고, 스테이크도 굽고, 요리에 한참 빠졌을 때는 통안심을 사서 이틀 동안 비프 웰링턴도 했어요.

니트, 디올 맨. 팬츠, 코스.

GQ 허기지니까 여기까지···. 소속사를 옮기고 첫 화보예요. 최근 <사마귀>라는 차기작도 확정했고요. 그 작품은 어떻게 결정하게 되었어요?
DY 원작이 워낙 좋아요. 연출하는 변영주 감독님을 비롯해 작가님, 조명감독님, 제작진 대부분이 좋은 작품을 많이 하신 분들이고요. 굉장히 강렬한 장르물인데, 이 장르를 잘 살릴 수 있는 분들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저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 될 것 같고요. 연쇄 살인마 엄마를 둔 형사 아들이라는 관계 설정 자체가 쉽지 않잖아요. 어려워요.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느낀 것 같아요.
GQ 변영주 감독은 이 말간 얼굴의 장동윤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DY 잘 모르겠어요. 다음에 여쭤볼게요.(웃음) 감독님과 대본을 읽고 인물이 어떤 이미지, 분위기를 내면 좋을지 서로 의견을 나눴는데, 제가 “새롭고 강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할까요?”하고 의견을 말씀드렸더니 감독님은 제게 선하고 맑은 이미지가 있으니까 오히려 그걸 활용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GQ 장동윤이라는 배우가 선한 이미지로 많이 보여지긴 했지만, 저는 그동안 장동윤으로부터 서늘함, 알 수 없는 그늘 같은 것을 보았어요. 그리고 오늘 촬영하면서 한 번 더. 표정 변화 없이도 각도에 따라 다른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DY 그 점을 감독님도 알고 계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활용을 잘 해주시지 않을까 해요. 제가 연출을 해봐서 느끼는 걸 수도 있는데, 배우 본인이 많은 걸 하지 않아도 감독이 담아내는 게 엄청 크다고 느껴요. 저의 연기 철학은 무엇이다, 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참 부끄러운 수준이고 열심히 배워가는 단계지만, (지금의) 저는 생각을 비우고 단순하게 연기하려고 해요. 그럴 때 몰입이 더 잘돼요. 감정이 복잡하다고 연기를 복잡하게 생각해서 하면 명확해지지 않더라고요. 제가 연출할 때도 무언가가 명확하게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안으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고요. 현장에서 배우는 조금 더 생각을 비우고 단순하게 몰입해야 좋은 장면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셔츠, 폴로 랄프 로렌.

GQ 단편 <내 귀가 되어줘>에 이어 직접 연출한 첫 장편 영화 <누룩>도 지금 후반 작업 중이죠? 연출하면서 배우로서 명확해지는 지점도 있어요?
DY 감독의 몫, 배우의 몫이 따로 있다는 점. 배우는 감독의 예술에서 감독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대중이 보고 싶고 감독이 원하는 연기에는 정답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정답을 빠르게 캐치해서 현장에서 표현할 수 있도록 여러 준비를 해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요. 물론 감독이 예상치 못한 것을 더해 풍부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감독이 원하는 바를 표현할 줄 아는 게 좋은 배우인 것 같아요.
GQ 감독이 원하는 바를 빨리 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DY 경험으로부터 길러지는 눈치도 중요하고, 순발력 있게 바꿔 표현할 수 있게 평소에 신체도 단련해야 하는 것 같아요. 표현의 폭을 넓히고 낙차를 두어 다양하게 연기할 수 있으려면 다양한 작품을 해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GQ 감독 장동윤이 보는 배우 장동윤은 어떤 배우예요?
DY 저요?(웃음) 나름 성실하게 말 잘 듣고 자기 고집 안 부리고 선을 잘 지키면서 감독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임하는 배우. 작품에 맞는 도구가 되고 싶거든요.

재킷, 하우스.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중독에 취약한 사람이라고 고백한 적 있죠?
DY 맞아요. 전에는 잘못된 술 문화들 때문에 술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음식을 좋아해서 음식 페어링을 하다 보니까 와, 술이 너무 좋은 거예요. 마셔보고 알았죠. 빠지면 진짜 심각하게 빠지겠구나. 게임도 배우 되고 나서 시작했는데, 중독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스스로 늘 경계하려고 해요. 그냥 인정을 해버려요. 나는 술 너무 좋아해서 많이 마시면 안 돼, 나는 중독에 취약한 사람이야. 왜냐하면, 결국 자신만만한 사람들이 빠지더라고요.
GQ 먹을 때도 경계해요?
DY 파인 다이닝도 좋아하지만, 즐기면서 죄의식이 들 때가 있어요. 굉장히 탐욕적인 거잖아요. 맛으로 ‘끝판왕’을 보고 싶다는 게, 결국은 과잉 칼로리이고 쾌락주의니까요. 사실 닭 가슴살에 잡곡밥만 먹어도 사람의 몸은 건강한데.
GQ 그러면 행복하지 않잖아요.
DY 그렇죠.(웃음) 그래도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안 되는데, 주변을 돌아보고 도와야 하는데···. 물론, 좋아해요. 너무 좋아하지만···. 무슨 말인지 아시죠?
GQ 일은 어때요?
DY 일은 중독돼도 되죠. 그런데 몇 년 동안 다작하면서 달렸더니 그것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일 좋아하는 마음은 크게 절제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저는 현장이 너무 좋아요. 연출할 때도 좋고, 연기할 때도 좋고, 이 현장이 내가 가장 익숙한 공간이 돼버렸어요. 내 집에 온 것 같고, 마음이 편안해요.

재킷, 하우스. 팬츠, 굿라이프웍스. 슈즈, 메종 마르지엘라.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연기로 느끼는 쾌락은 다른 쾌락과 비교하면 어때요?
DY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자아 성취니까,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닌 것 같아요. 감독님이 좋아서 “OK!”를 외쳤을 때의 쾌감, 그것이 나중에 대중에게 보여져 “저 배우 연기 잘한다, 저 캐릭터에 공감이 많이 간다, 좋았다”라는 얘기를 들을 때 채워지는 인정 욕구. 내가 하는 일이잖아요. 내 직업이잖아요. 배우는 그걸 잘 해내고자 성취하는 거니까, 맛있는 음식이 주는 1차원적인 쾌락과는 완전히 다르고 훨씬 더 고차원적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연기를 위해 다른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GQ 절제하는 능력은 타고난 것 같아요, 단련된 것 같아요?
DY 둘 다요. 저는 어떤 일이든 인내심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인내인 것 같아요. 배우이기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도 참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훈련도 해야 해요. 그런데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저는 ‘내가 배우고 이 현장에 있기 때문에 배우가 현장 여건에 맞추는 게 100퍼센트 맞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쓰임 받기 위해서 현장에 온 사람이고요. 저는 배우도 연기하는 역할을 맡은 하나의 스태프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녹음을 하고, 누군가는 반사판을 들고, 누군가는 연기를 하고, 그렇게 다 자기 역할이 있는 거라고, 오롯이 나의 일을 수행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GQ 장동윤의 코어에는 인내심이 뿌리 깊게 버티고 있는 것 같네요.
DY 네. 저는 인내심이 강해요. 잘 참아요. 현장에서 사람들이 “너 괜찮아?”라고 물을 때가 많아요. 기분 나쁘지 않았냐고 묻는 거죠. 저는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는 사실조차 잘 몰라요. 단순한 게 좋은 것 같아요. 멍청하고 창의적이지 않다는 의미의 단순함이 아니라, 내 일과 역할에만 집중하면 감정이 복잡해질 일이 없더라고요. 점점 더 내가 할 역할 외에는 둔감해지는 것 같아요.

셔츠, 질 샌더.

GQ 아까 말한 ‘단순하게 하는 연기’와도 맞닿은 이야기인 것 같네요.
DY 맞아요. 김연아 선수도 그랬잖아요. 연습할 때 아무 생각 안 한다고요. 그게 대인배인 것 같아요.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김연아 선수가 그런 삶의 태도로 살아서 그 자리까지 간 게 아닌가 싶어요.
GQ 세상이라는 거대한 작품 안에서 제 역에 충실하면 기분 나쁠 일이 없겠네요.
DY 이런 생각도 점점 더 많이 해요. 모든 배우가 브래드 피트를 부러워한다고 쳐요. 그런데 작품에는 브래드 피트도 필요하지만, 브래드 피트가 3명, 4명일 필요가 없거든요. 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도 필요한 거예요. 마찬가지로 저 장동윤이라는 배우도 필요하고, 다른 어떤 배우도 필요하고요. 각자의 역할에 집중하면 그 각자는 독보적이잖아요. 그래서 배우가 천편일률적으로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고, 자기한테 점점 더 집중하는 게 본인에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하려고 해요.
GQ 배우가 아니었어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요?
DY 어떤 배우든 배우의 길로 들어선 건 운명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 역시요. 제가 만약 직장생활을 했다면 현실에 쫓겨 아등바등 살면서 이런 삶의 태도에 대해 깊은 생각은 못 했을 것 같아요. 저는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이거든요. 배우를 했기 때문에 창의적인 생각도 하고,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영화로 만들어볼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GQ 배우가 되길 잘했네요?
DY 진짜 잘했다고 생각해요. 너무 행운이에요. 배우가 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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