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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윤호 “성실한 모범생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모험을 해보고 싶어 하는 거죠”

2025.09.25.신기호

새로 피는 윤호의 이야기들.

코사지, 셀린느. 네크리스, 톰우드. 톱, 재킷, 모두 아크네스튜디오. 팬츠, 시몬로샤.

GQ 정말 테스트 컷을 모아요?
YH 네, (직접 보여주며) 이렇게. 정말이죠?
GQ 오, 이유가 있어요?
YH 작가님들이 슛 들어가기 전에 찍어둔 테스트 컷을 참고하면 현장의 톤 앤 무드를 빠르게 캐치할 수 있거든요. 공부까진 아니지만 참고가 많이 돼요. 필요하면 다른 현장에서도 좀 찾아보게 되고.
GQ 모범생입니다.
YH (웃음) 제가 좋아하는 일 안에서만 이래요. 관심 없으면 정말 확실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요.

셔츠, 팬츠, 코트, 슈즈, 모두 드리스 반 노튼.

GQ <지큐>하고 계절 사이에서 만났어요. 여름과 가을처럼 요즘 윤호 씨는 무엇을 마무리하고 있고, 또 어떤 일들을 새로 맞고 있는지 물으면요?
YH 먼저 ‘동방신기 20주년’ 프로젝트들이 잘 마무리되고 있어요. 일본 데뷔도 20주년인데 최근 콘서트도 잘 끝났고요.
GQ 벌써.
YH 그러니까요. 그런데 ‘동방신기 20주년’이라는 타이틀로 꾸준히 인사를 드리다 보니까 언젠가 한번은 매너리즘에 빠진 적도 있어요.
GQ 어떤 마음이었어요?
YH 이제는 정말 많이 소비됐다는 마음. 그래서 요즘 새로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새로운 경험들, 도전들, 이런 거요. 작년에 <파인 : 촌뜨기들>(이하 <파인>)이라는 작품 덕분에 잠깐이나마 새로울 수 있었어요.

셔츠, 보테가 베네타. 재킷, 팬츠, 모두 에곤랩. 타이, 비비안 웨스트우드. 링, 크롬하츠. 안경, 젠틀 몬스터X마르지엘라.

GQ 그럼 지금 윤호의 키워드는 ‘새로움’이겠네요.
YH 네. 사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좀 해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패션에 관심도 가져보고, 나름 제 자신과 대화도 많이 나눠보고요. 요즘 제가 꽂힌 단어가 ‘리브랜딩’이거든요? 리브랜딩, 그러니까 동방신기로 지나온 20년이 꽉 찼고, 그 시간을 나이로 바꿔보면 스무 살 성인이 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럼 이제 다음 스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고민을 하고 있어요.
GQ 방법은 좀 찾았어요?
YH 저한테 솔직히 물어봤어요. 그래서 넌 지금 뭘 할 수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그런데 자신이 없더라고요.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지? 어떤 전문성이 있지? 내가 새로워지려면 뭐부터 해야 되지? 제 차 안에서 이런 질문들을 계속했어요, 계속. 그러다 ‘그래, 그럼 올해 목표를 ‘리브랜딩’으로 잡아보자, 이걸 목표로 뭐든 해보자’ 마음먹게 됐죠.
GQ 그럼 결국 리브랜딩은 윤호 씨의 새로운 모습을 찾는 과정을 의미하는 거죠?
YH 맞아요. 나를 새롭게 표현을 좀 해보고 싶었고, 그동안 잘 해왔던 것들은 또 그것대로, 확실하게 저만의 색으로 두고요. 그러니까 이런 거 같은데, 예전에는 성실한 모범생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그 친구가 커서 모험을 해보고 싶어 하는 거죠. 그게 뭐가 됐든. 배우로서의 시간도 그래서 좋았던 것 같아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까. 모험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거죠.

티셔츠, 더블렛. 모자, 브레이슬릿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그런 의미에서 ‘벌구’의 모험은 성공적이었어요.
YH 아휴, 아닙니다. 좋게 봐주셔서. 네.
GQ 주변 반응도 상당했죠?
YH 감사하게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강윤성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인터뷰를 통해서나마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요.
GQ 그런 칭찬들 안에서, 윤호 씨의 마음은 어땠어요? 솔직하게.
YH 울컥했어요. 물론 다 알아요. 저의 연기를 향한 반응들, 너무 알죠. 냉정하고 썩 유쾌하지 않은 평가도 많았고.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인정까진 아니더라도, 내가 연기한 캐릭터가 인상 깊게 전해질 수 있진 않을까? 언젠가는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아주아주 가는 끈을 놓지 않고 잡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음, ‘배수의 진’이라고 하죠? 딱 그 마음으로 ‘벌구’를 만났어요.
GQ 감독님은 윤호 씨의 어떤 모습을 보고 ‘벌구’를 떠올렸다고 하시던가요?
YH 처음엔 다른 역할을 떠올리셨다고 했어요. 그런데 오디션 때 제 얼굴을 이렇게 보시곤 어떤 눈빛에서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요. “이 친구 비열함을 잘 표현할 수도 있겠다.”
GQ 그렇게 ‘벌구’가 됐군요.
YH 네, 처음엔 사실 혼도 좀 났어요. 그래서 제가 딱 2주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말씀드리기도 했고요.
GQ 흐에, 그럼 2주 뒤 감독님의 반응은 어땠어요?
YH 딱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얘한테 재만 몇 개 이렇게 뿌려놨는데 지가 알아서 활활 다 타서 왔다고. 2주 만에 다른 애가 돼서 왔다고.

코트, 팬츠, 모자, 모두 겐조. 신발, 로에베.

GQ 어떤 치열한 시간을 보냈기에 감독님께서 이런 반응을 보이셨을지, 저는 전혀 가늠이 안 되고요.
YH 일단 목포로 갔어요. 목포로 가서 택시를 정말 많이 타고 돌아다녔어요. 목포가 벌구의 고향이기도 한데, 배경이 되는 목포 곳곳을 제가 일일이 찾아다닐 수 없으니, 택시 기사님들의 도움을 받은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1970년대 목포, 그 시대를 이해해야 했는데,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시대를 가장 생생하게 경험할 방법으로 택시 기사님들의 기억을 들어보기로 한 것도 있고요. 그래서 그냥 택시 타고 이렇게 크게 빼앵 돌아가면서 이것저것 자꾸 물어봤어요. 그러면서 말투도 배우고, 지역도 익히고, 옛이야기도 들으면서 벌구 고향하고 좀 빠르게 친해졌던 것 같아요.
GQ 강윤성 감독님의 반응이 이제 조금 이해되네요.
YH ‘벌구’를 두고 감독님과 정말 많은 얘기를 했어요. 왜 벌구는 손부터 올라가는지, 그런 성격이 만들어진 배경은 어떤 모습일지, 이 친구가 골목대장을 하면서 무엇을 가장 지키고 싶었던 건지, 또 그 안에서 연민은 무엇을 향해 있는지. 그렇게 하나씩 벌구가 됐던 것 같아요. 감독님하고 같이 만들어간 거죠.
GQ 벌구의 서사를 그려본 거네요.
YH 네. 그러다 보니까 왜, 현장에서 대사가 바뀔 때가 꽤 많거든요? 그런데 예전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긴장하고, 걱정하고 그랬을 텐데, 이번엔 전혀 주눅 들지 않았어요. 왜냐면 이미 벌구가 돼 있으니까.

톱, 팬츠, 코트, 모두 버버리.

GQ 맞아요. 확실히 윤호 씨의 ‘벌구’는 이전에 연기했던 캐릭터들과는 뭐가 달라도 달랐어요. 그럼 이번 경험을 통해 얻고, 배운 건 뭐였다고 생각해요?
YH 너무 많죠. 당연한 얘기지만 작품은 다 같이 만드는 거라는 걸 다시 한번 진하게 느꼈고요, 개인적으론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좀 더 믿고 펼쳐도 되겠다는 거. 그런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
GQ 정말 귀한 걸 얻었네요.
YH 그렇죠. 귀하죠. 일단 이전에는 제가 ‘연기’라는 영역으로 들어가면 자신감부터 많이 떨어진 상태가 됐어요. 연기 이야기를 하든, 어떤 오디션이 됐든, 영화 얘기를 하든, 그게 뭐가 됐든. 제 기운이 그러니, 표현이 얕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단골 멘트긴 한데, 선배님들이 많이 하시는 말 중에 왜 “연기에 정답은 없다”는 말 있죠? 이게 어떤 말인지, 왜 이 말을 자주 하시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GQ 극 속의 캐릭터는 전부 다르니까. 이번에 정윤호는 정윤호가 아닌 완전한 ‘벌구’가 됐으니까.
YH 고맙습니다.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는 늘 좋기만을 바랐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굴곡진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그런 경험들이 다음을 잘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 버티니까 그다음이 있다고 하잖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버티는 중에 알게 모르게 다음으로 갈 수 있는 힘이 생겼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윤호라면 또 이겨낼 거야. 윤호니까 버티겠지. 이런 말들이 물론 큰 힘이 되기는 하지만 저도 사람이니까 때로는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분명 있거든요. 그래서 자신없던 ‘연기’라는 영역이 이제 조금, 내 생각을 믿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아주 조금 알 수 있을 정도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역시나 팬분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버티며 지나온 시간 안에 어떤 믿음들이 촘촘했으니까. 이게 없었다면 많이 흔들렸겠죠.

니트, 로에베.

GQ 그런 팬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시간이 곧 오죠?
YH 네, 정규 1집 앨범을 준비 중인데, 여기에 의미를 더하자면 20년 만에 갖게 되는 제 첫 번째 정규 앨범이에요. 그래서 이 앨범은 정말 우리 팬분들을 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강하고요. 이 시간을 기다려준 데 대한 고마움, 보내준 응원에 대한 보답, 그런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GQ 윤호 씨의 지난 20년은 어떠했다고 생각해요?
YH 찬란했다? 그게 어느 땐 서글픔으로 겹쳐지기도 하지만, 아무튼 찬란했다.
GQ 그럼 앞으로는 어떠했으면 좋겠어요?
YH 음, 모르겠어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는 지금 현실 직시는 잘돼 있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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