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이준 “열심히 했다는 것, 그 사실이 중요해요”

2023.09.27전희란

‘왜’로부터, 이준.

블랙 터틀넥 풀오버 니트, C.P. 컴퍼니. 블랙 가죽 팬츠, 인사일런스.

GQ 잘 잤어요?
LJ 잘 못 잤어요. 3시간쯤 잤나….
GQ 불면증이 있다고요.
LJ 네. 잠을 잘 못 자요. 졸려도 잠들지 못하는 밤이 많아요. 촬영 전날은 몇 시간 동안 가만히 누워만 있다가 나올 때도 있어요. 생각이 많아요. 다들 그렇겠지만…. 막상 하면 별거 아닌데, 그전에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GQ 잠을 가로막는 것은 대체로 어떤 생각이에요?
LJ 공허함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이렇다 할 취미 없이 줄곧 일을 해왔고,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탈출구가 없었죠. 스트레스 해소라고 해봐야 고작 혼자서 집 청소하는 것….(미소) 폐쇄적인 성격이에요. 지금까지는 엄마랑 같이 살았는데, 다음 달에 독립을 하게 됐어요. 이제는 새벽에 할 수 있는 취미를 새롭게 시작해보려고요.
GQ <7인의 탈출> 방송을 앞두고 있어요. ‘김순옥 유니버스’에 입성한 소감은요?
LJ 처음엔 그저 김순옥 작가님이 절 안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제가 동네를 잘 벗어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절 알아본다는 사실이 신기할 때가 있거든요. <7인의 탈출> 배우 중 제가 첫 미팅이었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작가님이 말씀하셨어요. 제가 (민도혁) 역할에 너무 잘 어울린다고, 나 한번 믿어보라고. 작가님이 제가 출연한 작품을 거의 다 언급하면서 좋았다고 해주셨어요. 미팅 갈 때만 해도 마음이 백지였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GQ 재고 따지는 것 없이.
LJ 제가 되게 쉬운 사람이에요. 어떤 작품을 결정할 때 깊게 재는 편이 아니에요. 사람이 좋고, 도전이 되겠다 싶으면 하죠. 막상 저지르고 나면 굉장히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어떤 작품을 하든 제게 남는 것은 있다고 생각해요. 단막극부터 8부작, 12부작, 50부작, 영화, 더빙, 오디오 드라마 가리지 않고 해온 건, 배우로서 여러 일을 다양하게 경험하는 게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서예요. 그래서 작품을 결정할 때 깊게 재지 않아요. 작가님이 저를 좋아해주시고, 믿어주시고, ‘잘 어울린다’고 말씀해주신다? 그러면 제 답은, “하겠습니다”.
GQ 얼마 전 <7인의 탈출>에 출연하는 이유비를 만났어요. 이준을 두고 스스로는 성숙하다 말하지만 아주 순수하고 소년 같다고 하더군요.
LJ 저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 성숙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어린 것 같아요. 저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일할 때 어른인 척하는 거지 사실은 철이 하나도 안 들었어요. 좀 유치한 것 같아요.

블랙 스팽글 롱 코트, 돌체&가바나.

GQ <이준의 영스트리트>에 바비가 나왔을 때, 불현듯 이런 말을 했어요. “빛나는 천재성은 엉뚱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러곤 생각했죠. 와, 뭐지 이 사람?
LJ 제가 그런 말을 했어요? 좀 멋있긴 하네요.
GQ 이준은 엉뚱한 사람이에요?
LJ 저는 잘 모르겠는데,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해요. 촬영 현장에 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거기 놓인 소품을 보면서 이걸 어떻게 이용해볼까,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나올까, 덜 지루할까를 고민하는 거예요. 제가 보는 입장이라면 지루한 게 너무 싫을 것 같거든요. 그렇게 고민하다 보면 감독님이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했어?”라고 말씀해주실 때가 있어요.
GQ 다른 길을 고민하는 거네요.
LJ 결과는 제가 판단하는 게 아니지만, 항상 색다른 느낌을 추구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때로는 과해지는 부작용도 있지만, 정형화되지 않은 것을 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요. 그것을 <불가살>에서 처음 실험해봤어요. 나쁜 놈인데 밝고 귀엽고 유치한 인물로 캐릭터를 해석했죠. 제가 가장 편하고 재밌게 하는 연기는 <풍문으로 들었소>, <아버지가 이상해>처럼 우리 삶과 현실에 맞닿아 있는 연기예요. 이번 민도혁 역할도 제가 굉장히 재미있게 했어요.
GQ 김순옥 작가 작품은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고 느낄 수도 있잖아요.
LJ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어요. 오히려 되게 현실처럼 느껴졌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별의별 일이 매일 일어나고 있잖아요, 우리가 다 알지 못할뿐.

화이트 슬리스리스 톱, 51퍼센트. 블랙 나일론 카고 팬츠, 오프화이트. 실버 체인 브레이슬릿, 크롬하츠.

GQ 처음 대본을 볼 때는 어땠어요?
LJ 대본만 보고 ‘와, 재밌다’ 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 대본은 만화책 보듯 봤어요. 진짜 재밌다, 하고 넘기다 보면 어느새 1권이 끝나요. TV보는 느낌이고, 완성품이 몹시 궁금해지더라고요. 글이 엄청 빨리 읽혀서 생각할 틈을 안 주죠. 가장 기가 막힌 것이, 엔딩이에요. 다음 대본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요. 피곤해도 ‘이 궁금증만 해결하고’ 하며 다음 대본을 보게 되죠.
GQ 대본의 성향에 많이 좌우되는 편이에요?
LJ 대본보다는 감독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디렉팅에 따라 저는 천양지차로 변해요. <풍문으로 들었소>의 안판석 감독님을 만났을 때 많이 배웠어요. 오죽 하면 제가 출연료를 받으면 안 되겠다고 느낄 정도였죠. “작품을 가리지 말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라는 말씀을 듣고 배우로서 정체성이 잡혔어요.배우는 연기하는 일 그 자체를 즐거워해야 하고, 그로부터 행복과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는 점을 그때 배웠어요. 그 생각이 계속 도전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GQ 맞아요. 모험을 즐기지 않는다면서, 자꾸 모험을 하더라고요.
LJ 언행 불일치죠.(웃음) 제 인생 자체는 그다지 재미가 없어요. 대신 일하고 있다는 감각에서 자부심을 많이 느껴요. 저는 자존감이 낮은 상태가 디폴트인 것 같고,수시로 왔다 갔다 해요. 스트레스 1을 부여할 때 1로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으로 받는 사람도 있고, 0 혹은 100으로 받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는 70 정도로 받는사람인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말해요.“못했어도 잘 했다고 해줘, 무조건 응원해줘.” 왜냐하면 저는 객관화가 잘돼 있어서 저의 부족한 점을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골드 디테일 블랙 셔츠, 르메테크.

GQ 늘 연기력으로 인정받아 왔는데 유독 자신에게 엄격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LJ 주동민 감독님도 제가 하는 연기를 굉장히 좋아해주세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보는 사람의 평가죠. 아무리 맛집이라고 소문났어도 내 입에 맛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누가 뭐라든 제가 정해놓은 기준에 도달했는가가 중요해요. 칭찬을 받든 비판을 받든, 결국 제가 판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작품으로 완성되어 화면에 나온 제 연기가 별로이면 고민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요. 연기한 순간에 내가 진짜였으면 그걸로 됐다고.
GQ 내 손을 떠났다는 걸 인정하게 된 건가요?
LJ 열심히 했다는 것, 그 사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왜?’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둬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어떤 이유가 명확하게 있으면, 해요. 누가 시키면 이유도 모르고 할 때도 있었지만, 사실은 지금도 할 수는 있지만, 연출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어떤 느낌으로 연출하고 싶은지라는 ‘Why’가 있으면 저는 더 잘 표현할 수 있어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너무 진지하죠. 일할 때 이유없이 웃고 떠들고 장난 치는 것도 싫어하고, (저라는 사람이) 재미가 없어요.
GQ 좀 아까 촬영할 때 느꼈어요. 집중력이 대단하고, 모드 전환도 빠르다고요.
LJ 효율에 미친 사람이거든요. 시간 낭비를 좋아하지 않아요. 집중을 해서 요구하는 것을 충실히 잘해야 결과물도 잘 나오는 거잖아요. 유일하게 효율을 안 따지는 순간이 연기할 때인 것 같아요. 그 순간만큼은 여유를 찾으려고 해요.

블루 벨벳 더블 재킷, 블루벨벳팬츠,모두 김서룡 옴므. 블랙 실크 슬리브리스 톱, 르메테크.

GQ 캐릭터에 다가가는 길이 배우마다 다르잖아요. 이준의 방법은 어때요?
LJ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작가가 대본을 쓴 의도와 작품의 최종 목적을 파악하는 거예요. 우리가 이것을 함으로써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게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는 ‘이해’예요. 제가 살아온 삶만으로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1백 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이 사람이 왜 이 말을 할까, 여기서 왜 이 말을 해야만 할까.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GQ 연출자, 제작자적인 마인드를 갖춘 것 같네요.
LJ 의도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작품에서 보는 사람이 얻어가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교훈이어도 좋고, 단지 재미라도 좋아요. 어쨌든 작품에 어떤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기본 중의 기본인 것 같아요.

지퍼 디테일 체크 패턴 트라우저, 카키 첼시 부츠, 실버 로즈 링, 모두 버버리.

GQ 2015년 <지큐> ‘맨 오브 더 이어’ 인터뷰에서 “이준은 좋은 배우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이준이 볼 때 좋은 배우라고 느끼는 사람은 누구예요?
LJ 연기 잘 하는 배우요. 연기는 주관적인 거라 평가할 수. 없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굉장히 객관적이라고 느껴요. 연기 잘한다, 못한다는 누구나 구별하잖아요. 진짜 맛있는 건 누구라도 맛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호불호는 존재할지라도 열 중 여덟이 감동하는 연기는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GQ 이준은 왜 연기를 계속하는 것 같아요?
LJ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이었거든요.
GQ 그것이 동력이 돼요?
LJ 엄청 많이 돼요. 신기하잖아요. 장래 희망 난에 ‘연예인’을 적었는데 그걸 하고 있으니까. 어릴 때부터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이 많았어요. 무용, 가수, 예능, 연기를 두루 경험한 것도 예술적인 분야를 좋아해서예요. 사람을 재밌게, 즐겁게 하는데 굉장히 흥미를 느껴요. 그게 저에게 제일 잘 맞는 일인 것 같아요. 제가 연기를 하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아요. 저는 그냥, 엔터테이너예요.

포토그래퍼
김희준
스타일리스트
구슬이, 안세진
헤어
이혜진
메이크업
서아름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