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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추천하는 숏폼에 절여진 뇌 건지는 쉬운 방법

2026.02.26.조서형, Dr Aaron Balick

무의식적으로 끝없이 스크롤을 내리고 있다면, 벗어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물론, 벗어나고 싶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심리치료사인 나는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안다. 그 더러운 작은 속임수들, 그 심리적 매력, 우리를 스트레스받고 불안하고 외롭게 만들 수 있는 수많은 방식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계속해서 다시 돌아가는지까지도. 지난주 월요일에 누군가가 내 스크린타임 관리에 대해 얼마나 자신 있냐고 물었다면 나는 “매우”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화요일 저녁이 되자 이미 나는 틀렸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금요일 밤과 토요일 새벽이 맞닿은 어둠 속 어딘가에서 내가 둠스크롤링을 하는 모습을 봤다면, 음산한 푸른 아이폰 불빛 아래서 좀비처럼 충혈된 눈을 번뜩이고 있는 나를 봤다면, 내가 정말로 크게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주까지 내 피드는 충분히 순진했다. 귀여운 강아지 릴스와 현지인처럼 프랑스어를 말하는 법에 대한 팁 정도의 무해한 구성이었다. 그러다 특히 끔찍한 뉴스 사이클이 이어지면서 내 피드가 바뀌기 시작했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갔다. 심지어 소셜 미디어 심리에 관한 책까지 쓴 심리치료사인 나조차도, ICE의 잔혹 행위에서 다음 잔혹 행위로, 이란 거리의 야만으로, 임박한 세계 경제 붕괴에 대한 긴급 경고로 광적으로 손가락을 밀어 넘기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내 귀여운 강아지 알고리즘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린 셈이었다. 나는 끔찍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정신 건강 전문가인 나 같은 사람도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미칠 수 있다. 며칠에 걸친 이 심각한 일탈의 강도는 여전히 나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내가 둠스크롤링에 빠져든 것이 나쁜 습관 때문도, 절제력 부족 때문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심리학에서 증상은 종종 그 원인의 반대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자기애는 과도한 자기 존중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 즉 깊이 자리 잡은 불안이다. 내 둠스크롤링 역시 비슷하게 뒤틀린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내 동기를 깊이 들여다보았을 때, 내가 찾은 답은 역설적이었다. 나는 재난을 먹어 치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안도감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둠스크롤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희망을 스크롤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희망을 찾으려고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 들어가는 것은, 더 많은 돈을 가지고 나오기를 기대하며 라스베이거스에 가는 것과 같다. 카지노는 항상 이긴다. 보상을 충분히 드물게 배급해 계속해서 베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희망 자체를 배급함으로써 이긴다. 나는 일곱 개나 여덟 개의 고통스러운 뉴스 영상을 넘긴 뒤, 거의 절망 속에서 포기하려는 순간이 되면, 희망적인 무언가가 피드에 떨어진다는 것을 관찰했다. 대규모 시위 행진, 용기 있는 개인의 저항 행위, 혹은 깜짝 선거 결과, 귀여운 아기와 강아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 희망의 번쩍임이 아무리 달콤해도 충분히 음미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고, 그 뒤에 오는 것은 언제나 쓴맛이었다.

결국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어서 둠스크롤링을 한 게 아니라,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절망이 아니라, 제정신임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둠스크롤링이 실패가 아니라, 희망을 찾기 위한 잘못된 해결책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치료 현장에서 우리는 이런 순환을 늘 본다. 불안이 어떤 행동(먹기, 자물쇠 확인하기, 술과 약물 등)을 유발하고, 그 행동이 잠시 불안을 완화시키지만, 그 완화는 오래가지 않고, 불안은 다시 돌아온다. 결국 그 안절부절못하는 불만족은 결코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당신은 연결을 찾기 위해 본능적으로 화면으로 향하지만, 오히려 더 소외된 기분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보를 얻기 위해 뉴스피드를 뒤지지만, 위로 하나당 천 개의 비탄이 쏟아지면서 당신의 세계관은 왜곡된다. 우리가 고립되고, 번아웃되고, 압도되고,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당신이 실제로 무엇을 찾고 있는지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그것을 잘못된 장소에서 찾는 것을 멈추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올바른 장소를 찾아야 한다.

뉴스피드에 펼쳐진 혼돈의 폭풍에 압도되고 있다면, 현관문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라. 아마도 그곳은 그렇게 종말론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조용한 고립 속에서 둠스크롤링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문을 나서서 당신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와 회복력 속에서 도전에 맞설 수 있는 잠재적인 인간적 연결로 가득 찬 세계로 들어설 수도 있다. 당신은 분노를 허공 속으로 쏟아낼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을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는 행동으로 바꿀 수도 있다. 그렇게 하라. 그러면 잘못된 장소에서 찾고 있던 그 덧없는 희망의 번쩍임이 점점 더 밝게 타오르기 시작할 것이고, 다른 이들의 희망과 함께라면, 어쩌면 혁명에 불을 붙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