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의 노래.

영생과 영면의 차이를 한로로 씨는 알고 있어요?
저는 알지 못해요.
알지 못해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너는 알고 있니?”라고 물어봤어요. 아마 그 질문을 받은 ‘너’라는 애도 모를 것 같아요.
한로로 씨의 노래 ‘0+0’의 가사죠. “영생과 영면의 차이를 너는 알고 있니?” 몰라서 쓴 것이구나.(웃음) 와닿아요.
나는 모른다, 너는 아냐.(웃음) 근데 걔도 ‘나도 몰라’. 그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영원이란 건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영원을 한번 꿈꿔볼까? 이런 느낌. 영생과 영면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영원히 살고 영원히 잠든다는 것인데, 사실 저는 영원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전적 정의에는 둘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의 삶에 적용해보면 ‘과연 차이가 있나? 영원이라는 건 어차피 없는데. 그러면 영생과 영면도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늘 생각해왔어요.
영원이란 없다고 생각한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지금 이 순간만 있다고 여긴다는 것과 동의어인가요?
비슷해요. 사실 모순적인 게, 영원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제가 살기 위해서 ‘영원이 있다’고 어쩔 수 없이 믿어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보통 사랑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것들과 영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내일을 살아가잖아요. 저도 그런 비슷한 사람이라서, 영원이 없다는 걸 속으로는 알지만 ‘이 사람과는 영원을 한번 꿈꿔봐도 되지 않을까?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 사랑하는 동물들과의 세계는 영원하면 좋겠다. 그렇게 믿는다면 내가 내일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런 가사와 생각들이 나왔어요.
듣는 재미도, 읽는 기쁨도 있는 가사들이어서 한로로라는 싱어송라이터가 궁금했어요. 국문학도이기도 하죠? 제일 좋아했던 수업이 있다면요?
딱 하나 있어요. ‘현대 시인론’이라고 말 그대로 현대 시인들의 시를 분석하는 수업이었어요. 말투가 부드럽고 상냥한 교수님이셨는데 낭만 있는 시선으로 늘 시를 연구해오셨고, 그 수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노래를 만들기 전에 꼭 글을 써본다고요.
네. 저는 음악에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말 중요시하는 편인데, 그 메시지를 그냥 이렇게 연필로 써보는 거죠. 그렇게 하다 보면 적절한 표현법들이 무궁무진하게 노트에 펼쳐지고, 그걸 가사 형태로 풀다 보면 그에 맞는 코드나 곡의 분위기가 뒤늦게 따라와요. 그런 식으로 늘 작곡을 해요. 일기를 쓰는 것과는 또 다른 글쓰기인가요? 저에게는 그 경계가 불분명한 것 같아요. 비슷한 궤에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쓰는 가사들은 저의 실화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저의 솔직한 사고들을 바탕으로 쓰는 것들이기 때문에.
4월에 공개하는 신보를 준비하면서는 어떤 글을 썼어요?
이것도 모순적인데, 저는 노래에서 늘 사랑을 얘기하지만, 그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이유 자체는 세상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고 느껴요. 사랑을 받고 싶고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결국에는 내가 지금 미워하고 미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반대 것을 욕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앨범 제목이 <애증>이거든요. 저는 늘 생각해왔어요. 애증 자체가 우리 삶이다. 태어난 이상 우리는 사랑과 미움의 계속되는 반복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이런 얘기를 스스로도 친구들끼리도 해왔는데 이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다고 느껴요. ‘우리가 왜 이렇게 세상을 미워하는가’에 대한 불평부터 시작해서, ‘그럼에도 이 미움 끝에는 사랑이 있을 텐데’,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문으로 끝나는. 그런 글이 많이 펼쳐졌습니다.

로로 씨는 무엇을 그렇게 증오해요?
당장 떠오르는 건, 가끔 저를 미워할 때가 많고요, 그리고 제가 좋아해서 시작한 음악이 미울 때도 너무 많아요. 왜냐하면 종국에는 그것도 다 사랑하고 싶어서 미워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고 싶고, 음악 자체를 좋아했던 기억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런 욕망에서 비롯되는 미움이라고 생각해요.
애와 증은 맞닿아 있지 싶어요. 너무 좋아서 너무 싫을 때도 있잖아요.
응, 저는 미워하고 싶으면 관심을 아예 두지 않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내가 미워하고, 고치려고 하고, 잔소리하고, 이런 것들이 사실 다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래서 애와 증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아까 메시지를 굉장히 중요시한다고 말했죠. 한로로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곡들을 들으면서 몇 가지 채이는 단어를 적어와 봤어요. 이에 대한 한로로식 정의가 궁금해요.
네, 오.
첫 번째는 ‘생’. 그런데 인생이나 삶이라는 단어와는 조금 달라요. 한로로는 살아 있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건넨다고 느끼는데 어때요?
그러게요. 사실 이런 것들에 대해 완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 청자는 늘 의미를 부여하죠.(웃음)
그런 거 너무 좋죠. 생은, 생이 있기 때문에 인생도 있고 삶도 있는, 뿌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생을 우리가 어떻게 꾸려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하게 그리고 친절하고 다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항상 확장해서 이야기하려고 해요. 씨앗을 뿌리는 듯한 느낌으로.
두 번째가 그 ‘다정’이에요.
다정! 맞아요.
예전 콜드플레이 콘서트 오프닝 무대에 선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저는 이런 무대에 서겠다 같은 공간적인 목표보다는 그냥 세상이 더 다정해졌으면 좋겠다 같은 추상적인 목표를 꾸준히 가져온 사람이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런 모습을 알아봐 주신 것 같다.” 세상이 더 다정해졌으면 좋겠다는 한로로 씨가 생각하는 다정이란 무엇인가요?
확실한 건 다정은 미움이라는 감정보다는 훨씬 더 센 친구라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저라는 사람에 대한 호불호의 평가를 아예 간과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는데, 많은 미움을 받은 때가 한번 있었어요. 처음에는 조금 억울했죠. 약간 억울하고, 화나고, 미움을 이렇게 한 몸에 받는 듯한 느낌을 처음 알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들의 계정에 제가 들어가보게 된 거예요. 이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길래 나에게 이렇게 하나.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까지도 이렇게 힘들게 할까. 그래서 봤는데, 알고 보니까 그 사람도 누군가를 잃은 기억이 있고, 평소에는 맛있는 밥을 먹으러 다니고, 그냥 저랑 비슷한, 똑같은 사람들인 거예요. 그렇다면 그들의 평범한 삶을 알아주고 관심 가져주고, ‘너 이거 했어? 재밌었겠다’ 한마디라도 해주는 다정함이 전해진다면 과연 이들이 미움을 뱉을까?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정이란 건 증오라는 감정을 충분히 덮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정말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이걸 증명할 수가 있는 게, 변화가 눈에 보여요. 분명히 변화가 있어요. 제 음악을 들음으로써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과 용기를 얻게 됐다, 이런 얘기를 제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팬분들, 제 주변 사람들에게서 계속 들어왔어요. 정말 놀랍게도 저의 이번 타이틀곡 ‘게임 오버?’에 “내 무기는 다정함뿐인데”라는 가사가 있어요. 내가 휘두를 수 있는 건 다정함뿐인데 왜 이렇게 나를 미워하느냐, 이런 가사가 담겨 있어요. 그런데 저는 다정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할 예정이에요.

알아주고 관심 가져주는 것. 다만 인간이 타인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해한다는 표현이 어쩌면 반대로 무심한 공감은 아닐까요? 이런 냉소적인 시선에 대해서는요?
그 점도 늘 생각해요. 그러나 저는 이런 생각을 갖고 노래를 할 뿐이에요.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음악으로 계속 얘기하는 건, 결국 다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본인의 몸에 녹여내는 건 리스너들의 몫이에요. 저는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떠세요?” 제공만 해줄 뿐이고, “난 이렇습니다. 님들은 어떠세요?” 할 뿐이에요. 무엇이 다정일까, 그 딸깍이는 버튼만이라도 제공해주는 것이 아티스트로서 내가 할 몫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 음악을 내는 것 자체가 나의 올해 목표다,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야만 제가 덜 무기력해질 것 같아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군요.
네, 자기소개 같은 거죠. 제 음악 자체가. 자기소개서처럼 느껴질 때가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듣는 ‘나’들의 자기소개 같을 때, 그게 한로로의 다정 같아요.
맞아, 맞아요. 너무 좋은 말인데요?
마지막 단어는 이거예요. 전복. 전복시키는. 더 마땅한 표현을 못 찾았는데, 아까 로로 씨가 한 말에서 해답을 찾았어요. 한로로의 음악은 모순적이에요. 생을 말하면서도 사를 말하고, 애를 말하면서도 증을 말하고, 그러다 다시 생과 애를 말하는.
그게 저인 것 같아요. 저는 가끔 살아 있는 게 더 무서울 때도 있고, 죽음 자체가 더 무서울 때도 있고, 당장 그렇게만 떠올려도 답을 알 수 없는 것이 제게는 너무 많거든요. 그런 것들이 노래에 고스란히 담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 음악이 친구가 하는 말 같고, 구석에서 생각 많은 애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늘 얘기해왔는데, 그렇기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는 생각들이 마구마구 담겨 있어요.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잖아요. 이 모순적인 것들을 앞으로도 더 과감하게 담아내려고 해요.
“과감하게”라는 말이 좋네요.
무엇보다 제 음악과 제 메시지에 대한 상호작용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확신이 이제는 생겼거든요. 그리고 그것도 깨달았어요. 내가 내 노래들에 좀 더 솔직해져야 이걸 듣는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해지는 것도 저에게는 어느 순간부터 아티스트로서의 책임감으로 느껴져요.

어느 하나 아끼지 않는 게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번 신보 <애증>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가 있다면요?
바로 떠오르는 건 “내일도 무사히 만나요”라는 가사. 사실 이 가사는 저와 제 팬들 사이에서 쓰는 인사말이에요. ‘게임 오버?’ 맨 마지막 후렴에 딱 한 번 나와요. “내일도 무사히 만나요”. 이 말이 어떻게 나오게 됐냐면, 인스타그램 스토리 ‘무물보’(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어떤 다른 말로 할 거냐”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때 내일도 무사히 만납시다, 이렇게 표현할 것 같다고 답했어요. 그러면서 팬들이 저한테 그 말을 쓰기 시작했고, 저도 그 말에 익숙해졌어요. 사랑이 많이 묻어난 가사이지 않을까 싶어요. “내일도 무사히 만나요”.
한로로가 한로로에게서 가장 사랑하는 점은 뭐예요? 아니, 가장 애증하는 것을 물을게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점 같아요. 계속해서 사랑을 고집하는 것 같아요. 미워도 덮어낼 수 있는 사랑을 너무 중요시하다 보니까 내가 그런 사랑 자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생각을 가진 제가 저는 좋거든요. 그렇게 될 거라는 나만의 확신도 있고. 그 확신으로 만드는 음악들로 지금 사랑을 나눠주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사랑과 관련이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되게 좋아하고 있어요.
‘애정’이 아니라 ‘애증’하는 점으로 바꿔 물었던 건데, 그렇다 해도 같은 대답인가요?
네, 맞아요. 애증하는 거예요.
사랑이 많은 한로로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구나.(웃음)
네, 딱 그거예요. 가끔 힘들거든요? 가끔 미움 가득한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얘기하는 게 눈치 보일 때도 솔직히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이 좋으니까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외치고 싶은 거죠. 이런 제가 싫지 않고 오히려 좋고.
한로로가 생각하는 사랑은 뭐예요?
늘 생각해요. 내일을 무사히 만날 수 있도록 하는 힘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