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축구선수 버질 반 다이크 “위대함에 이르는 길은 여러 경로가 있는 법이니까요”

2026.05.17.김은희

리버풀에서도,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 활약하며 축구계의 신화적 존재가 된 버질 반 다이크가 종횡무진 중인 또 하나의 운동장이 있다면 스타일이다. 버질 반 다이크라는 감각에 대하여.

티셔츠, 엠포리오 아르마니. 데님, JW 앤더슨.

극락조 잎이 너무 커서 빅토리아 시대 온실 유리 지붕에 닿을 듯하다. 그 위로 어둠이 빠르게 내려앉고 있다. 세프턴 파크 팜 하우스 Sefton Park Palm House에서 진행 중인 우리의 화보 촬영도 막바지 순간에 와 있다. 이곳은 1896년, 지역의 어느 자선가가 리버풀에 선물한 공간이다.

이 장엄한 극락조 아래, JW 앤더슨이 만든 데님을 입고 압도적인 열대 식물들과 어우러져 앉아 있는 사람은 버질 반 다이크 Virgil Van Dijk다. 리버풀 시민들이 사랑하는 축구 감독 위르겐 클롭이 2018년 무려 7천5백만 파운드(당시 환율 기준 약 1천1백억원)라는 기록적인 이적료를 지불하고 안필드 Anfield로 데려 온 네덜란드 출신의 강력한 수비수, 클롭 감독이 리버풀이라는 도시에 준 선물 같은 존재.

거대한 나무처럼 상대방을 작아 보이게 만드는 일은 대개 ‘빅 버지 Big Virg’라 불리는 반 다이크의 몫이었다. 신장 193센티미터를 자랑하는 리버풀 주장은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위압적인 센터백으로서 아주 위협적인 공격수들(예를 들면 음바페, 홀란드, 케인)조차도 수월하게 막아 무력화시키는 실력으로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타고난 모델이기도 하다. 랩톱 스피커에서 오마 레이 Omah Lay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반 다이크가 에르메스 체크 패턴을 소화하며 지는 햇살의 마지막 한 줄기를 잡으려는 듯 얼굴을 하늘로 향하거나, 크림색 사카이를 입고 의자에 걸터앉은 채 매혹적인 눈빛을 보내거나, 자크뮈스 스니커즈를 신고 발뒤꿈치를 톡톡 쳐보는 중이다. “이렇게 입혀놓으면 누구라도 편안하게 했을 거예요.” 카메라 앞에서 보이는 그의 남다른 여유에 대해 말을 걸자 반 다이크가 어깨를 으쓱인다. 경기장에서 그를 독보적으로 만드는 바로 그 여유로운 모습과 똑같다. “사진이 잘 나오면 좋겠네요.” 평소라면 방문객들의 발길로 북적거렸을 온실은 오늘 문을 닫은 터라 식물들이 뿜어내는 고요하고 향기로운 분위기가 맴돈다. 그리고 이는 어쩐지 그와 잘 어울린다.

늘 흔들림 없는 반 다이크(관중석에서는 “Calm As You LiKe”라고 외치는)가 촬영장에 들어서자마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에게 어떤 애프터셰이를 쓰는지 묻는다. 그는 정중하게 답을 피했는데, 알고 보니 비슷한 질문이 이미 <보그> 소셜 미디어 팀에서 준비했던 Q&A에서도 슬쩍 삭제 요청된 상태였다. 이후 가느다란 대나무 느낌의 의자에 자리를 잡은 그와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 나는 그의 시그니처 향이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해줬다. 그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진다. “비밀은 아니에요. 다만 굳이 말하지 않는 편이죠.”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그 모든 요소는 반 다이크에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기를 원한다. “저는 제 자신을 가꾸는 걸 좋아해요. 그런 걸 만들어야 하잖아요, 자신만의···.”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오라? 나는 반 다이크가 경기 중 보여주는 모습에 수많은 소셜 미디어 영상이 붙이는 그 단어를 꺼내며 물었다. “그런 것, 네.”

반 다이크는 그런 오라가 넘친다. 잘생긴 건 물론이고, 키도 압도적이며, 조용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다. 스타일 감각도 뛰어나다. 화보 촬영장은 아침 훈련을 마치고 온 길이었는데, 그는 로고를 과시하는 애슬레저 룩이나 과한 액세서리와는 거리가 먼 검은 슬랙스에 고급스러운 갈색 니트를 매치한, 절제되고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차림새였다. 반 다이크와 그의 아내 리커 노이트헤다흐트 Rike Nooitgedagt는 패션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바탕으로 약 18개월 전부터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작업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제 패션계 역시 이들에게 점점 더 주목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브랜드 레인스 Rains는 이미 반 다이크의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알아봤고, 부부는 최근 영국 <보그>가 런던에서 개최한 2026년 봄/여름 컬렉션 기념 파티에도 참석했다.

스포츠 스타들에게 흔히 따라붙는 화려한 럭셔리를 그가 항상 멀리했던 것은 아니다. 반 다이크는 자신의 옷장 속에서 가장 아끼는 물건은 크리스털로 장식한 크리스찬 루부탱 스니커즈 (UK 사이즈 12, 310밀리미터)라고 고백한다. 연애 초기에 아내 리커가 선물한 신발이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에요.” 그가 웃으며 덧붙인다.

“아마 이제 신을 일은 없겠지만 절대 팔지는 않을 거예요.” 발롱도르 후보가 되기 훨씬 전, 고향인 네덜란드 남부 브레다 Breda에서 반 다이크와 리커는 처음 만났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그녀가 여전히 “모든 것의 기반”이라고 말한다. 열한 살, 아홉 살, 다섯 살짜리 딸들과 세 살 된 아들을 둔 엄마이자 그 비밀에 부쳐진 향수를 골라준 장본인, 경기에서 실망스러웠던 점들을 곱씹을 때 그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반 다이크에게 아버지로서의 삶은 최정상 무대에서 겪는 엄청난 기쁨과 처참한 좌절을 균형 있게 바라보게 해준다. “인생에는 우리가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말 많아요. 경기가 시작되면 그 어느 때보다 몰입하고 오직 그 순간에만 집중하죠. 하지만 이기든 지든, 집에 가면 다시 아빠가 됩니다.”

네덜란드인인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떠났다.(등번호 4번 유니폼에 ‘반 다이크 Van Dijk’가 아닌 ‘버질 Virgil’이라고 적힌 이유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 남매 중 장남인 그는 수리남 출신인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빚졌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축구에 푹 빠진 아들의 꿈을 늘 지지해줬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꿈은 놀라울 정도로 소박했다. 반 다이크의 가장 큰 목표는 자신이 유소년 시절을 보낸 네덜란드 틸부르흐 Tilburg의 팀 빌렘 II Willem II 1군에서 뛰는 것이었다. 그 소원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는 이후 자국 대표팀 주장으로서 역대 최다 경기를 이끌었고, 한때 그에게 성인 계약을 제안하지 않았던 유소년 시절의 클럽 홈구장 메인 스탠드는 최근 반 다이크의 이름을 따서 새롭게 명명했다.

후드 코튼 파카, 에르메스. 티셔츠, 팔라스. 팬츠, 레더 부츠, 모두 로에베.

이 모든 것은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늦게 핀 선수”라고 말하는 그는 네덜란드 빅3 클럽이 아닌 상대적으로 작은 클럽인 FC 흐로닝언 FC Groningen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2013년에 셀틱으로 이적했다가, 2년 후 사우스햄튼으로 옮겼다. 그의 운명, 그리고 그를 영입한 클럽의 운명을 바꾼 인물은 바로 위르겐 클롭 감독이다. 클롭은 반 다이크를 리버풀 수비진에 합류시켰다. 당시 7천5백만 파운드라는 이적료 때문에 논란이 컸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반 다이크가 합류한 지 세 번째 시즌이 끝날 무렵인 2019-2020 시즌,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서서히 쌓아 올린 놀라운 커리어는 반 다이크 본인에게 정신적으로 더 강해지고, 더 열심히 일하며, 더 나은 리더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게 제 성공의 큰 이유일 거예요. 저는 너무 앞만 내다보지는 않았거든요. 위대함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경로가 있는 법이니까요.”

최근 몇 달 동안 그는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경험을 끌어와야했다. 리버풀과 그의 이름을 외치는 안필드에서 수많은 영광스러운 시즌을 보냈지만, 우리가 만난 시점의 리버풀은 리그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이어지는 노팅엄 포레스트와 PSV 아인트호벤과의 경기에 패한다면 지난 시즌 찬란했던 우승팀의 이번 시즌 초라한 성적은 12전 9패로 늘어날 것이다. 주장 완장을 차고 있어 찬사도 비판도 첫 번째 대상이 되곤 하는 반 다이크는 PSV 아인트호벤과의 경기에서 대패한 이후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팬들의 분노를 인정하며 진심 어린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는 이 상황을 딛고 일어설 것입니다. 저는 이 팀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나흘 후, 리버풀은 웨스트햄을 꺾었다.

클럽은 지난 7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팀 동료 디오고 조타 Diogo Jota의 비극적인 죽음의 충격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이 이야기는 “여전히 말하기 힘든 주제”이고, 그는 무엇보다 조타의 가족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조타의 동생 안드레 실바 역시 같은 사고로 사망했고, 스물여덟 살이었던 조타는 막 결혼한 신혼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정말 힘든 일이에요···. 우리는 그를 너무나 그리워합니다.” 그가 어렵게 말을 잇는다. “그는 우리의 형제였어요.” 이제 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조타의 유산을 기리는 것이라고 주장인 그는 말한다.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요. 그리고 그의 가족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언제든 곁에 있어 주는 것, 그건 제가 개인적으로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후드 코튼 파카, 에르메스.

반 다이크가 또 하나 중요하게 여기는 책임은 미래 세대에게 롤 모델이 되는 것이다.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 10대 때 접시를 닦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은 이제 리버풀 레전드로서 그의 서사에서 중요한 일부가 되었고, 그는 자신의 여정이 다른 누군가에게 ‘인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정상에 이르는 길이 항상 ‘일직선’인 것은 아니에요.” 그가 단단한 눈빛으로 강조한다.

또한 자신의 옛 클럽인 윌렘 II에서 국제 유소년 대회를 창설했다. 지난 9월에는 첫 번째 ‘버질 레거시 트로피 Virgil’s Legacy Trophy’ 대회가 열렸다. “정말 완벽하게 진행됐어요.”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스친다. “모두의 열기가 엄청났죠.” 그는 아들은 물론이고 지금은 춤에 좀 더 마음을 뺏긴 상태인 그의 딸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여자 축구도 이제 훨씬 많은 존중을 받고 있어요. 정말 보기 좋은 변화죠.”

반 다이크의 일과는 예측 가능하게도 매우 규칙적으로 짜여져 있다. “사우나, 수영, 스트레칭, 요가, 명상, 수면.” 그러나 동시에 그는 가족이라는 삶이 주는 활기찬 혼란도 무엇보다 사랑한다. “정말 활력이 넘쳐요. 집에 혼자 있으면 바로 가족이 그리워지죠.” 식탁 위의 대화는 주로 네덜란드어로 오가지만, 리버풀을 품고 있는 머지사이드 Merseyside는 그에게 분명한 ‘집’이다. 근 10년을 리버풀에서 살아온 그는 제2의 고향인 이 도시와 팬들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스카우저(Scouser, 리버풀 토박이들을 지칭하는 별칭)는 정말 특별한 사람들이에요.” 그가 환하게 웃는다. “순수한 사랑이죠.”

이제 서른 중반에 접어든 반 다이크는 리버풀과의 계약이 2027년에 만료될 예정이고, 그의 미래를 둘러싸고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추측이 시작되는 참이다. 네덜란드는 월드컵 예선전에서 리투아니아를 꺾고 2026년 월드컵 진출권을 확보했는데, 당시 경기 후 주장으로서 반 다이크가 남긴 소감에 대해 많은 언론은 그가 곧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수 있다는 증거라 여겼다. “전 그런 말한 적 없습니다.” 그가 단호하게 부인한다. “저는 너무 멀리 내다보지 않아요.” 그가 늘 말하는 대로다. 그럼에도 장난스레 10년 후의 삶을 상상해보라고 물었다. “아직 선수로서 남은 시간이 있으니까···, 솔직히 전혀 모르겠어요. 제가 행복하고 아이들이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하겠죠.”

반 다이크의 ‘해야 할 일 목록’에 올라 있는 확실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패션쇼 프런트 로에 앉아보는 것. 지금까지는 바쁜 일정 탓에 밀라노나 파리로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그는 언젠가는 쇼를 직접 보러 가고 싶어 한다. 엑토르 베예린 Héctor Bellerín이나 데클런 라이스 Declan Rice 같은 선수들이 패션위크에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모델로서 깜짝 등장했던 일을 떠올려보면, 그도 런웨이를 걷는 일에 매력을 느낄지 궁금해진다. 세계적인 엘리트 선수에서 캣워크 모델로 이어지는 그 흐름에 ‘빅 버지’도 어울리는 후보 아닐까? 반 다이크가 코웃음 치듯 반응하다 이내 다시 익숙한 미소를 짓는다. “글쎄요,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요.”

Kerry Mcdermott
포토그래퍼
Jack Johnstone
스타일리스트
Jack O'neill
헤어 & 메이크업
Cassie Ste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