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욱 “어떤 상황에서든 재미를 찾고, 느끼길 바라는 것 같아요”

2026.06.25.신기호

이현욱의 낯선 얼굴.

재킷, 팬츠, 모두 앤 드뮐미스터 by 아데쿠베. 이너, 벨트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한창 <문무> 촬영 중이라고 들었어요. <원경>, 곧 개봉할 <몽유도원도>에 이어 다시 사극이잖아요. 같은 장르를 연속해 만나는 게 부담되진 않았어요?
HW 사실 제가 처음엔 감히 거절을 했어요. 그런데 그 이유가 장르의 연속이나 그로 인한 어떤 부담감, 이런 마음은 아니었고요. 많은 선배님이 KBS 사극을 통해 보여주셨던 그 큰 에너지를 저는 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요. ‘내가 이 큰 걸 어떻게 해’ 이런 마음에서 거절을 했어요.
GQ 그런 마음이었는데.
HW 네, 그랬는데 출연을 결심하게 된 건, 이번 <문무>는 KBS에서 기존에 그려오던 사극의 틀을 깨고 색깔을 바꿔보고 싶다고,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감사하게도 믿어주셨고요.
GQ 막상 시작해보니까 어떻던가요? 잘할 수 있겠다, 아니면 여전히 어렵다.
HW 아마 끝날 때까지 계속 숙제처럼 갈 것 같아요.

톱, 오라리. 팬츠, 페라가모. 링, 포페. 벨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골드랜드>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오늘 화보를 준비하면서 보니까 작품 관련한 인터뷰가 아직 없더라고요.
HW 맞아요, 없어요. <골드랜드>로 인터뷰를 하는 건 처음이에요.
GQ <골드랜드>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나요?
HW 마찬가지였어요. 어려운 숙제 같은 느낌. 많이 고민하고 탐구해야 하는 작품이었는데. 그래서 성장할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어요.
GQ 그 ‘성장’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HW 모든 작품이 그랬지만, 새로운 시도를 거듭해야 했어요. 불안함을 가지고 연기를 한다는 건 사실 배우로서 굉장히 모험적인 일인데, 결과적으로 감독님도, 저도 만족할 수 있는 내용으로 도출돼서 좋았어요. 기뻤죠.
GQ “불안함을 가지고 연기했다”는 지점이 궁금해지는데, 현욱 씨가 느낀 ‘불안함’은 대체로 어떤 모습이었어요?
HW 아무래도 감독님께서는 저뿐만 아니라 작품의 전체적인 균형을 보는 입장이니까요. 그래서 전적으로 감독님의 의견을 듣고 움직였는데, 디렉팅을 받고 움직이면서도 정말 내가 잘하고 있는지, 불안했던 거죠. 이를테면 이런 거요. 감독님께서는 살아 있는 반응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가령 사람이 진짜 급하고, 놀라고, 쫓기는 상황이라면 어떤 반응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드는지 설명해주시는 거죠. 연기를 정제하고 다듬어서 한다면 모든 배우가 같은 ‘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대중은 그 모습들이 익숙할 수밖에 없고, 현실적으로 날것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의견. 감독님의 이런 디테일한 조언들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레더 재킷, 보테가 베네타.

GQ 저는 이현욱이라는 배우의 얼굴이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작품에서 각인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방금 들려준 이야기처럼 그 작품에서 살아 있는 반응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연기’처럼 다듬고 정제했기 때문에 뻔히 예상되는, 그런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아니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당시 ‘유기혁’이라는 캐릭터가 더 섬뜩했다고 기억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HW 고맙습니다. 그런데 조금 차이가 있다면, <골드랜드>의 이도경은 현실에서의 날것을 표현해야 했고, <타인은 지옥이다>의 ‘유기혁’은 비현실적인 존재에서의 날것을 표현해야 했어요. 그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GQ 둘의 해석이 달랐겠네요.
HW 그럼요. ‘유기혁’은 비현실적인 존재였기에 오히려 별생각을 안 했어요. 공감할 수 없는 존재였으니 공감하지 않았는데, 이를테면 이 사람에겐 ‘이 끔찍하고 섬뜩한 일들이 일상이고 놀이다’라고 늘 생각했던 것 같아요. 덤덤하게. 그래서 연기도 표현도 대사도, 그게 뭐든 크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푹, 이 사람이 아픈가? 죽었나? 그래, 뭐 그런가 보다, 이렇게.
GQ 반면 이도경은 달랐죠.
HW 네, 같은 날것의 반응인데 이도경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까요. 누구나 이런 상황 앞에서는 이럴 것 같은 태도, 감정, 말투 이런 것들을 최대한 그대로,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러니까 총을 꺼냈을 때 목소리도, 손도 막 덜덜 떨면서 복합적인 감정들, 여러 호흡, 이 모든 걸 한 신에서 펼쳤어요. 근데 이게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창피할 수도 있거든요? 추해 보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감독님은 이런 연기를 원하셨어요.

재킷, 셔츠, 팬츠, 타이, 스카프, 모두 페라가모.

GQ 창피할 수도 있다, 추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건 지금 연기하는 내 모습이 상상되지 않아서, 예상되지 않아서 그런 거죠?
HW 맞아요. 말 그대로 ‘날것’이니까, 여러 감정이 혼재돼 있으니까 내가 지금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 전혀 감이 안 오는 거죠. 감독님은 이런 것들을 많이 원하셨어요. 가감 없이 지금 상황에서 드러날 수 있는 표정, 감정, 태도 이런 것들. 드러낼 수 있는 게 아니라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GQ 나도 모르는 내 얼굴이 나올 수 있게.
HW 네. 낯선 얼굴이 나올 수 있게. 어떤 배우든 내 얼굴에서 낯선 얼굴을 만나면 이질감 비슷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어요. 나는 이런 감정에서 이런 얼굴이 나온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내가 모르는 표정이 나오면 당황할 수밖에 없거든요? 내가 알던 내 모습이 아니니까, 지금 내 연기가 이상한가 싶어서요. 근데 이번엔 그런 마음보단 나를 확, 벗어 던진 듯한 느낌에 가까웠어요. 그런데 이건 감독님께서 굉장히 잘 잡아주셨기 때문에, 그 덕분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컷, 끝나면 괜찮을까 싶은데 막상 모니터링해보면 적당한 거죠. 그래서 새삼, 자주 느꼈죠. ‘아, 이래서 디렉팅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GQ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거듭 발견하고, 또 그 모습이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적당한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걸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 어떤 확신 비슷한 감정도 생겼을 것 같아요.
HW 맞아요. 그래서 나중에는 ‘더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 ‘좀 더 밀어붙여도 괜찮겠다’는 그런 믿음이 생겼어요. 든든했던 것 같아요.
GQ 아까 이야기했던 ‘불안함’도 좀 지워졌던 순간이었겠고요.
HW 그렇죠. 그런데, 맞는데 불안은 연기하면서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같고. 끝까지요. 그러니까 감독님을 믿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불안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재킷, 셔츠, 팬츠, 타이, 스카프, 모두 페라가모.

GQ 해석의 차이 때문에요?
HW 아뇨. 해석이 달라서라기보다는 이런 거 같아요. 제가 가보지 않은 길이라서, 그런 부분에서 오는 불안? 그런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안전하다고, 괜찮다고, 그러니까 가봐, 괜찮으니까 가봐! 하는데 저는 안 가본 길이니까, 이 사람을 믿지만, 믿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은 없어지지 않는 거죠. 믿지만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불안하고 긴장할 수밖에 없는.
GQ 이 불안을 지우고 가는 배우가 있고, 안고 가는 배우가 있잖아요.
HW 저는 후자요. 그래서 왜 현장에 가면 길에서든 화장실에서든 감독님을 만나잖아요? 그때마다 계속 물었어요. “감독님, 이거 진짜 맞아요? 저 정말 이렇게 가면 돼요?” 만날 때마다 계속 물어봐요. 화장실이건 식사할 때 건 수없이.
GQ (웃음) 그럼 그때마다 뭐라고 하시던가요?
HW 길게도 말씀 안 하세요. 그냥 “맞아”, “그거 맞아” 이렇게. 근데 결과적으로 정말 맞는 거죠. 감독님의 확신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GQ 불안은 확신이 삼킨다···. 그럼 이현욱이 배우로서 대중에게 각인될 수 있었던 작품, 어떤 확신을 전한 작품에 대해 물으면요?
HW <마인>이요. 그때 제가 굉장히 욕을 많이 먹었어요.(웃음)

셔츠, 보테가 베네타.

GQ 근데 그거 칭찬이잖아요. 그만큼 몰입할 수 있었던 연기를 보여준 거니까. 그럼 대중성과는 별개로 스스로 소중해서, 그래서 더 품게 되는 작품은요?
HW <원경>이요.
GQ 저는 <원경> 보면서 현욱 씨가 꽤 힘들었겠다 싶었어요. 말과 행동보단 정말 심리를 심리로 표현해야 했던 작품이었잖아요.
HW 네, 그렇긴 한데요, 저는 에너지가 막 커다란 연기자가 아니어서 오히려 작은 부분, 그러니까 작은 심리, 미세한 변화, 이런 것들을 캐치하고 해석하고 표현했을 때 희열을 느끼는 편이거든요? 다행히 그래서 <원경>이라는 작품을 더 재밌게 촬영했던 것 같아요. 물론 힘들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기쁘고, 즐겁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자랑스러운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 같아요.
GQ 최근 몇몇 작품을 쭉 통과해오면서 자주 드는 생각은 뭘까요?
HW 어떤 바람 같은데요, 요즘은 재미에 중점을 두고 사는 것 같아요. 내가 살아가는 재미, 연기하는 재미, 이런 재미들을 오래오래 느끼고 싶다는 생각? 왜 힘들어도 재밌을 수 있잖아요. 지쳐도 재밌을 수 있고요. 어떤 상황에서든 재미를 찾고, 느끼길 바라는 것 같아요.
GQ 그럼 연기를 제외하면 주로 어디에서 재미를 느껴요?
HW 이렇게 널브러져서 우주 다큐 볼 때요.(미소) 집에 천체망원경이 있는데 가끔 그걸로 달을 보거든요? 이렇게 초점 맞춰서 보는데 그때 재밌어요.
GQ 우주를 좋아해요?
HW 우주, 너무 궁금하지 않아요? 신비하면 빠질 수밖에 없어요. 그게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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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디렉터

신기호는 자동차와 테크, 기어와 관련한 정보성 기사를 작성하는 'GQ KOREA'의 피처 디렉터입니다. 이외 정치, 사회, 산업적 이슈를 다루는 르포 기사도 기획하고 작성합니다. 이전에는 아웃도어 매거진 'GO OUT KOREA'의 편집장으로 아웃도어와 레저, 스포츠 영역과 관련한 콘텐츠를 다수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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