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서울의 시작 아파트

2008.07.16GQ

서울의 근원은 한양이 아니다. 한양에는 아파트가 없었다. 불과 50년여 년 만에 서울은 ‘아파트의 도시’가 됐다. 누군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초조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렇게 됐다. 여기 10곳의 아파트가 있다. 당신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거나 처음 보는 형태의 아파트들일 테지만, 서울의 시작은, 실은 이런 모습이었다. 듬성듬성, 상품이 아닌 쉴 곳으로 존재하던 그런 아파트들이었다.

성북아파트 (성북구 성북동) 흰 벽과 콘크리트, 중간통로와 네모난 창문들. 아파트란 단어 앞에 ‘성냥갑’같은 표현이 종종 붙던 시절의 ‘표준형’ 아파트들은 모두 이런 모양이었다. 성북동 길상사 방면에 있는 성북아파트는 5층짜리 아파트들에서 느껴지던 하릴없는 오후의 기운이 맴돈다. 그러니까 인터넷이나 휴대전화가 없던 그때. 딩동하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아니라 중간통로 전체를 공허하게 울리던 발자국 소리가 들리던 그때. 아파트에서 고즈넉한 기분을 느끼다니, 묘하다.

 

충정아파트 (서대문구 충정로3가) 1930년에 지어진,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공식적인 한국 최초의 아파트는 1958년 건설된 종암아파트(혹은 1956년의 중앙아파트)지만 충정아파트의 원래 이름은 유림아파트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지은 건물이다. 충정아파트를 아파트로 봐야 하느냐 마느냐는 논의와는 별개로, 일단 아파트 형태의 건물임은 분명하다. 충정아파트가 겪은 78년의 이야기는 한국의 역사나 다름없다. 충정아파트는 한동안 호텔이기도 했고, 술집이기도 했다. 해방직후에는 만주 등에서 귀국한 동포들이 무단점유했고, 6.25 때는 북한군이 점령했다. 미군은 ‘트래머 호텔’이란 이름의 유엔군 전용 호텔로 사용하기도 했다. 전후에는 전쟁에서 아들 다섯 명을 모두 잃었다는 김병조란 이에게 보상차원으로 정부에서 제공하기도 했다. 김병조는 ‘코리아 호텔’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했지만, 곧 모든 사실이 거짓으로 밝혀져 구속조치 되고, 몰수된 아파트는 여기저기 팔려 다니다 79년에는 도시계획으로 건물의 상당수가 헐리기도 했다. 사연이 많아서일까, 충정아파트에는 잊기 힘든 촉감의 공기가 맴돈다. 처연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면 촌스럽겠지만, 그나마 가장 가깝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외부와 달리, 내부는 중정中庭형으로 뻥 뚫려 있다. 도로변에 있음에도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져 갑자기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바깥 복도를 빙 두른 집들 앞에는 경연대회를 하듯 화분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서소문아파트 (서대문구 미근동) 압도적이다. 한쪽 측면부터 서서히 보이기 시작해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반대쪽 끝을 보려면 꽤 많이 걸어야 한다. 그야말로 ‘병풍형’ 아파트의 최고봉이다. 지금은 앞쪽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뒤쪽엔 경찰청 건물이 있어 멀리서 정면을 바라볼 수 없지만, 처음 지어졌던 1972년의 존재감이란 지금 상상하기 힘들 정도일 것이다. 누렇게 빛이 바랜 색깔 때문에 아파트 전체가 생활에 찌든 듯한 느낌이다. 각자의 집에서 푼 피로가 몇 십 년간 스며들어서일까. 대책 없는 낭만도 용서될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아파트만큼 긴 옥상에는 텃밭도 있고, 버려진 가구들도 있다. 전선들은 넝쿨처럼 난간을 타고 흐른다. 입구에는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전도연과 하정우가 주연이다)의 촬영협조를 구하는 인쇄물이 붙어 있다. 제목의 ‘멋진 하루’가 김승옥의 소설제목 같은 뉘앙스라면, 스태프들에게 참 잘한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회현 시범아파트 (중구 회현동) 1968년 금화아파트를 시작으로 우후죽순 시민아파트들이 지어졌다(그래 봐야 1970년 서울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던 비율은 4퍼센트에 불과했다. 지금은 이미 50퍼센트를 넘어선 지 오래됐다). 그리고 1970년, 와우 시민아파트가 붕괴됐다. 시민아파트 정책은 중지됐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했던 시범아파트는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성공을 거두면서 선망의 대상이 됐다. 1970년 지어진 회현 시범아파트도 당시에 지어졌던 대표적인 시범아파트다. 당시에는 중앙집중식 난방과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첨단’ 아파트였지만, 동대문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손을 쓰기 힘들 정도로 낙후되었다. 넓은 복도는 채광이 되지 않아 낮에도 캄캄하고, 구조가 너무 복잡해서 처음 들어가서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헤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계속해서 들리는, 혹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웅웅거리는 기계 소리.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밖으로 나오면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구름다리(6층과 이어져 있다)와 기둥. 중간에 높은 지반이 생기면서 이어진 걸까.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온 할머니에게 물어봤지만 원래부터 그랬다 한다. 할머니는 “보기엔 좀 그래도 얼마나 살기가 좋은지 몰라. 공기도 좋지 뒤에는 남산이지. 난 죽을 때까지 여기 그냥 살고 싶어. 재개발 그런 거 난 필요없어”라고 말했다.

 

동대문아파트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아파트는 ‘포토제닉한’ 아파트로 유명하다. 많은 블로그에 그 이국적인 풍광이 올라와 있고, 처음 방문한 날도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는 듯한 두 청년이 계속 옷을 갈아 입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1966년도에 지어진 동대문아파트는 대표적인 중정형 아파트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30년 넘게 근무한 경비아저씨는 “지금 타워팰리스나 그때 동대문아파트나”라고 말한다. 양쪽 복도마다 연결된 빨랫줄들과 ‘볼 테면 보라지’ 풍으로 널려 있는 수많은 빨래들은 과거에 없던 풍경이라 한다. 이유는 품위를 해치니까(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크게 다른 건 없다). 어떻게 공중에 옷을 걸 수 있었을까 궁금했지만, 양 끝에 설치된 도르래들을 발견하곤 누가 제일 처음 생각했을까가 더 궁금해졌다. 동대문아파트는 뻥 뚫린 중정 안에 모든 것을 품고 있다. 소음, 냄새, 빛. 빛이 빨래를 말리고, 저녁에는 밥 짓는 냄새가 진동한다. 어느 집에서 싸우면 멀리서도 들린다. 이런 곳에서도 떵떵거리며 잘 살았구나, 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중간통로 입구조차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야 하는 요즘 아파트들이 괜히 더 얄밉다. 어쨌거나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고, 지금은 고시원의 다른 버전처럼 보일 정도로 입주와 이사가 반복되고 있다.

 

스카이아파트 (성북구 정릉동) 오래된 콘크리트 덩어리가 얼마나 큰 시각적 공포를 안겨주는지는 스카이아파트를 보면 알 수 있다. 단, 멀리서 언덕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건물 외부를 봤을 때의 이야기다. 1, 3, 5, 6, 7동(특이하게 1969년 6동이 가장 먼저 지어졌고 2, 4동은 처음부터 없었다)의 다섯 동으로 이루어져 있던 스카이아파트는 현재 6동이 철거되고 네 동만 남아 있다. 그리고 3, 5동은 4층, 1, 7동은 2층짜리로 땅의 높이에 맞춰 지었다. 건물의 넓이도 제각각이다. 각 동이 언덕 위를 감싸고 있는 형태의 단지 안쪽으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나무와 풀들의 향연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쏴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안쪽에서 보면 아파트라기보다 마치 학교건물 같은 아기자기한 구조다. 옥상에 올라서면 주변 경관이 360도로 펼쳐진다. 아, 건물만 깨끗하다면 다들 살고 싶어하는 아파트일 텐데라는 생각에 안쓰러워 보였다. 6동이 철거된 이유는 붕괴위험 때문이었다. 나머지 건물들에는 아직 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철거가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 소개된 대부분 아파트들의 운명처럼. 최근 원신연 감독의 <세븐 데이즈>(동대문아파트도 나온다), 김기덕 감독의 <빈집>에 등장했고 갓 DSLR을 산 사람들이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양 와서 찍고 가는 ‘그런’ 아파트가 됐지만, 보존을 모르는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라도 소비되는 것이 더 낫다.

 

안산맨션 (서대문구 홍제동) 취재를 하면서 만난 정재호 작가(그는 이미 이 기사에 등장하는 아파트 몇 곳을 소재로 회화작업을 한 바 있다)가 말했다. “안산맨션 꼭 가보세요. 너무 아름다워요.” 그 말만 믿고 다음 날 급히 찾아갔다. 유일하게 주민들에게 미리 허락을 받지 않고 허겁지겁 찾아갔지만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경비아저씨와 입주민 대표는 마치 자기집 손님 대하듯 편안하게 맞아줬고, 화초를 다듬느라 잠시 나온 아주머니들도 마치 옆집 사는 사람 대하듯 이 얘기 저 얘기 들려줬다. 아파트에도 빈티지라는 수식어가 가능하다면 안산맨션은 정동아파트와 함께 ‘빈티지 아파트’라는 호칭을 달고 싶을 만큼 단아하다. 햇볕이 잘 들었고 화초들도 잘 자라고 있었다. 공기는 조용하면서 생기가 있었다. 낡았지만 지저분하지 않았다. 주민들의 온화한 태도와 눈빛은 안산맨션이 만든 걸까? 아니면 반대로 안산맨션이라는 공간이 그들을 온화하게 만든 걸까?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경비아저씨는 “예전에 서수남, 하청일이 살았다”고 하고, 601호의 아주머니는 “예전에 이 집에 배우 남정임이 살았었어”라고 했다. 동대문아파트에는 이주일, 회현 시범아파트에는 은방울 자매와 윤수일 같은 유명인이 살았었다. 지금 그 얘기를 들으면 “정말?”하고 반문하는 반면, 안산맨션에서는 “역시”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대성맨션아파트 (종로구 행촌동) 두 동밖에 없는 아파트지만 별도의 정문이 있고, 교문 같은 대문 위에 ‘대성맨숀 아파-트’라고 쓰여 있다. 웃기다기보다 오히려 따뜻하다. 글자체에도 기품이 있다. 어차피 70년대 고급 아파트에(혹은 그렇게 보이고 싶었던 아파트에) 너도나도 붙이던 ‘맨션’이란 호칭을 쓴 것뿐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지금의 ‘팰리스’ ‘캐슬’ ‘파크’같은 이름들도 나중에는 마찬가지 느낌으로 남을지도 모르지.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아저씨는 “예전에는 서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파트였지”라며 경비실 문 바깥에 누워서 조는 도둑고양이를 바라본다. 두 동의 옥상은 구름다리로 이어졌다. 뒤쪽으로는 야외로 난 계단이 있다. 그리고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엘리베이터가 있다(물론 내부는 그냥 허름하지만). 왜 우리는 타일 같은 아름다운 자재를 두고, 대리석 혹은 대리석을 흉내낸 ‘모던’하지 못한 소재로 내부를 두를까.

 

옥인아파트 (종로구 옥인동) 바로 뒤에 산이 있고, 베란다에서는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아파트. 위치는 서울 한복판이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있을까? 옥인아파트에 처음 간 날, 짧은 여행을 다녀온 듯 머리가 시원해졌다. 사진가와 그의 어시스턴트와 함께 사진을 찍던 날은 셋이 같이 여행 온 기분이었다. 경사를 타고 언덕 끝까지 아파트 단지가 이어져 있고, 아파트들 뒤로는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계곡을 이루고 있는데, 언덕 위쪽 방향은 인왕산이다. 언덕길을 오르는 건 고되지만(여름에는 더더욱) 주변환경과 아파트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답을 만났다. 아이들은 계곡 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뛰어 놀고있었고, 아파트 곳곳에 화분과 나무들이 가득했다. 공원화 사업이 진행 중이라 언젠가 아파트는 사라지겠지만, 그 전에 지금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들에게 참고할 만한 소중한 텍스트일 테다.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강남구 압구정동) 지금까지의 아파트들은 모두 강북지역에있다. 1970년대 말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강남 이주정책 이전의 강남은 허허벌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1976년 입주가 시작된 압구정 구현대아파트는 강남 아파트 시대의 출발점(1974년 완공된 반포주공아파트와 함께)이다. 그리고 지금의 ‘미친 아파트 시대’의 첫 주자기도 하다. 주로 동의 이름이나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이 붙던 아파트(지금까지 소개된 아파트들이 모두 그렇다)는 언젠가부터 노골적으로 시공사의 이름을 아파트 이름에 붙이기 시작했다. 이후 아파트의 이미지는 주변환경이나 동의 분위기보다 기업의 성향에 따라 나뉘었다. 그러나 이 또한 옛날 이야기다. 지금은 ‘브랜드’의 시대며 아파트가 아파트로 불리지 않는 시대다. 그리고 대부분 평생의 집을 잃었다. 8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아파트 옮겨 다니기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유목민이 됐다. 아파트를 잘 골라 살면 앉아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더 많이 오를 만한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돈이 없는 사람은 치솟는 전세 값에 계약기간을 주기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해결책은 없다. 앞의 아파트들은 대안이 될 수 없고, 그 시절로 돌아가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반대로 압구정 구현대아파트는 30년이 넘었지만, 관리만 잘 하면 얼마든지 나름의 풍요로운 환경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국에서는 관리보다는 지역의 영향이 더 크지만).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정문에는 ‘집 한 채 가진 것도 죄가 되는 조세제도!’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구현대아파트의 매매가는 크기에 따라 적게는 10억 중반, 많게는 30~40억이 넘는다.

    에디터
    문성원
    포토그래퍼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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