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착한 놈 아니다

2008.10.10GQ

김강우는 남들이 보는 것처럼 자신이 사려 깊고 진중하고 착한 청년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도 화내고 질투하고 흥분하는, 배우였다. 때론 외면하기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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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에 매니저와 잠깐 얘기했는데 여자친구 관련 기사 때문에 매우 예민해져 있다고 들었다. 그런가?
예민해져 있는 게 아니고 화가 났었다.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기자의 시간과 나의 시간을 서로 투자하는 것이다. 한 시간가량 영화 얘기, 작품 얘기를 했고 끝날 때 지나가는 얘기처럼 “여자친구 잘 있죠?” 하길래 “네, 잘 지내요”했을 뿐이다. 그런데 기사는 ‘김강우, 한혜진 친 언니인 여자친구와 4년째 열애’라고 나왔다. 그 시간이 너무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그 한 시간 동안 난 뭘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친구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기사에 나가도 되는데, 그래서 영화 얘기 쭉 하고 그 얘기도 나갔다면 모르겠는데 그 전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그게 참 짜증이 났다.

매체의 반응에 신경 쓰는 편인가?
안 쓴다. 신경 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사실대로, 있는 대로 얘기하는 편이다. 거짓말 하려면 뭐 하러 시간 들여 인터뷰까지 하나. 그냥 이렇게 써달라고 자료 주고 말지.

인터뷰 와서 거짓말하는 배우도 없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여자친구 얘기를 계속 해 왔는데 지금 그렇게 크게 보도되는 것은 당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가 아닌가?
아니. 여자친구 동생 때문일 거다. 심지어는 내가 영화홍보 때문에 여자친구의 동생을 이용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게 사람일까? 사람이라면 정말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 아닌가? 순간적으로 이상한 놈 됐다. 씁쓸하다.

한국에서 배우로 사는 건 그렇게 화가 나는 일이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배우로 사는 것은 성인으로 산다는 것과 동류항이다. 예수나 부처를 원하고, 그래야 한다고 한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배우도 사람인데 이미지라는 것을 덧씌운다. 각자 원하는 이미지로만 보려고 하는 것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는 이미지, 즉 성실하고 착하고 그런 모습이기만을 바란다. 나쁜 짓 안 하고 법 안 어기려고 한다. 음주 운전 절대 안 하고, 싸움질 안 하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배우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배우는 돈벌이 수단, 직업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직업이 배우일 뿐이지 예술가이고 그런건 아닌 것 같다. 다만 단순한 돈벌이보다는 더 큰 게 있다고만 생각할 뿐이다.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고, 때때로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진다는 것에 대해 무겁게 생각할 뿐이다.

당신을 선택한 감독들이 당신에 대해 그리는 그림은 어떤 것이라고 하던가?
“내가 하면 거짓말 같지 않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신다. 그런데 나는 거짓말도 잘 한다. 그래서 더 잘 할 것 같다. 내가 거짓말하면 거짓말 같지 않을 것 아닌가.

거짓말을 잘 한다고? 보기엔 정말 진중하고 신실할 것 같다. 아닌가? 최소한 버라이어티 쇼에 나와 까불 것 같지는 않다.
진짜 하기 싫다. 차승원 선배나 이범수 씨처럼 MC를 능가하는 입담이 있다면 매일 할 것 같다. 못 해서 안 하는 거다. 얼마나 좋나. 놀면서 즐기면서 일하는 건데.

영화 계약서에는 홍보의 의무도 명시되어 있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하나?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기사 몇 개를 보고 있는데 “한국영화 위기”뭐 그런 기사였다. 그 밑에 “이 새끼들 영화 찍을 때만 연예 프로 이용해 먹고”이런 댓글이 수십 개였다. 이제는 다 아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싫다고 해서 안 할 수도 없는 거고, 홍보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니까 열심히 하려고 한다. 사람을 희화화해서 웃겨야 하는 어려운 일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하려고 한다.

당신은 집에서도 세 마디 말도 안 하는 아들일 것 같다.
언젠가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쟤는 내 자식이지만 어렵다’는 얘기를 하시더라. 근데 그건 내가 싸가지가 없고 이기적이라 그렇게 말 하신 걸 거다. 요즘에는 많이 순화됐다. 최대한 가족에게는 잘 하려고 한다. 집에 들어가면 하루 동안 있었던 얘기를 엄마, 아버지에게 모두 한다. 일부러 한다. 늙어가시는 게 보이고 심심해 하시니까. 막내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기쁘게 한다. 내 얘기를 들을 때 두 분의 눈동자가 완전히 아이들 눈동자가 되어 반짝반짝거린다. 사실 엄마가 나에게 연기를 잘 한다는 말씀을 한 번도 안 하셨다. 그런데 <경의선> 마지막 장면에 우셨다고 하더라. 그때 좋았다. 연기를 잘 했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내가 한 연기에 다른 사람의 마음이 움직 였다는 얘기라 좋았다.

NG 없이 찍었다는 5분짜리 롱테이크, 그 장면 말인가?
아, 그런 기사 너무 상업적이다.

그렇지만 그런 기사를 보면 영화를 보고 싶어지니까.

그런가? 홍보할 내용이 너무 없으니까 그게 다 기사화됐나 보다.

지금까지는 평균, 얼마짜리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하나?
절반 정도. 진심으로 했다는 생각은 든다. 아직 부족함이 많다.

그럴 때마다 당신을 자극하거나 긴장하게 하는 배우의 연기가 있나?
정말 많다. 숀 펜은 사생활도 엉망이고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 진심이 느껴진다. 영어를 하고 있긴 하지만 눈을 보면 진심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사람의 영화를 계속 보니까 어느 순간에도 그는 숀 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과연 맞는 건가 싶었다. 반대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보고는 기가 막혔다. 나는 아직도 그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 다. <갱스 오브 뉴욕>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의 왼발>의 역할로만 생각될 뿐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완전히 역할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정답은 없겠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방식이 더 맞는 것 같다. 나중에 나를 사람들이 봤을 때 안성기 씨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것도 좋겠지만 “<경의선>의 만수, <식객>의 야채 팔던 애 아니야?”하면 그것만큼 행복한 게 없을 것 같다. 나를 그 역할로 그렇게 믿어줬다는 것 아닌가. 정말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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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배우 김강우는 행복한가?
행복하다. 어제 소박하게 <경의선> 쫑파티를 했는데 고생한 스태프 들이 나를 보면서 반가워해주고 좋아해주시는 것 보고 너무 좋았다. 그런 대표성을 갖는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감독님이 모두에게 편지를 써 주었는데 “작은 영화였지만 고생 많았다. 우리 모두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써 있었다. 그걸 보고 가슴이 쿵 했다. 그래,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당신도 유명세가 배우의 행복으로 느껴지던 때가 있지 않았나?
드라마를 찍으면 많이 느끼게 된다. <나는 달린다> 하면서 처음 느꼈다. 어디에 가도 모두 나를 알아봤다. 그때 이게 내 인생 최고로 화려한 순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까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줄어들고, 기분이 묘했다.

상실감 같은 것이었나?
섭섭한 것도 있고 편안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작은 차이일뿐 인데. 그리고 나서는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때는 여자친구 손 잡고 다니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또래의 보통 사람들과 비교하면 창조적인 일을 하고 큰 돈을 벌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직업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똑같이 밤을 새우며 일하는데 훨씬 적은 돈을 받기도 한다. 그들 중에는 연기보다는 작품 하나로 스타가 된 사람도 있다. 스스로 그들과의 비교가 전혀 없을 것 같지는 않다.
한 번에 확 올라와 그만한 대가를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지하기가 힘든 것 같다. 그것보다 떨어지는 것을 안 하려고 하는 게 사람의 심리니까. 예전에는 그런 게 부러웠지만 지금은 내가 좋다. 어차피 긴 싸움이다. 길게 봐야 한다. 너무 큰 돈을 받으면서 한 작품 하는 것보다 그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으면서 오래 갔으면 좋겠다. 그 부담감을 가지고 어떻게 사나?

다음에는 더 잘해야 하는데. 사실 당신의 행보는 또래의 남자 배우들과 다르다. 다른 평론가나 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배우라는 것에 지나치게 큰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와 작품 선정에 본인 외의 입김이 큰 것 같다는 얘기다.
작품 선택은 전적으로 내 의사로 이뤄진다. 내가 하고 싶은데 제작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회사에서 얘기해 주면 심사숙고하는 정도다. <경의선> 같은 경우는 보통 매니지먼트사에서 젊은 배우에게 시키려고 하지 않는 영화인데, 그런 면에서는 회사와 내가 궁합이 맞 는 것 같다. 또래의 다른 배우들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사람이 내게 느끼는 분위기인 것 같고.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은 굉장히 사교적이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쉽게 잘하고 배우의 끼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다. 부러워서 더 어렸을 때는 비슷하게 보이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는데 잘 안됐다. 예전에는 내가 계속 배우를 해도 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나는 장점이 없다. 남보다 잘생긴 것도 아니고 연기가 특출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없는 느낌, 그게 존재감이라고 표현해도 좋다면 그런 게 있다. 그건 대단한 장점 아닌가? 괜히 연기를 잘 할 것 같고, 믿음이 가고. 그런 감정은 만든다고 되는 건 아니다. 정말 그 이미지대로 살아온 건가?

책임감은 있었다. 나는 남에게 도움되지 못할망정 피해는 주지 말자는 생각으로 산다. 내가 연기를 못하면 감독, 제작자 모두에게 피해다. 흥행은 안되더라도 나를 캐스팅해서 실패했다는 얘기는 안 듣고 싶다. 드라마 할 때 몇몇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들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흥행은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니지만 내가 맡은 위치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몫이다.

드라마 <세잎 클로버> 때 그런 욕심을 슬쩍 드러내기도 했던 것 같다. 제작발표회 때 그 드라마를 통해 관객의 70~80%가 모두 당신을 알게 하겠다는 말을 했었다.
<태풍태양>을 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열심히 하지만, 그 영화는 정말 열심히 한 작품이었다. 24시간 내내 그 작품을 위해 애썼지만 흥행에서 외면을 받고 고민했다. 왜 그럴까? 사람들이 나를 마이너 감성으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에 가보자. 스타가 나오는 드라마, 흥행이 보장된다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해보자 했었다. 그런데 하고 나니까 공허하고,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맞춰가려는 것이 조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것도 많이 없는데 흥행에 대한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이기적이지만 내 것을 쌓아가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행에 대한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쉬운 길로 가려는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선택한 게 <경의선>과 <가면>, 그리고<식객>이었다.

마이너 감성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주저함이 이제 없나? <경의선>도 그렇게 비춰질 수 있는 영화인데 왜 했나?
예전에는 싫었다. 그런데 메이저로 보이는 것은 순간이다. 흥행 한 번 하면 또 그렇게 가는 거다. 조니 뎁 같은 배우도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덕분에 이제 모두 메이저로 인식한다. 그 사람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는 또 다르다. 자신이 설정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그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근데 내게도 그건 있을 것 같다. 나중에라도. 그리고 배우가 제작비 규모와 개런티를 따지기 시작하면 그건 독이 될 것 같다.

<경의선>은 당신에게 그래서 큰 영화였다는 얘긴가? 당신의 필모그래피에 어떤 영향을 줄 거라 생각했나? 이기적으로 완전히 내 입장만 생각해서 봤을 때는 큰 영화였다. 내게 큰 영화는 내가 얼마나 연기할‘꺼리’가 있고 진정성이 얼마나 있는가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의선>은 큰 영화였다. 진정성이 보였다. 예전에는 영화를 정할 때 관객도 아니고 관계자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질까에 가장 신경을 썼다. 나라는 배우가 써볼 만한 배우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주목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신인이 아니다. 계속 영화를 찍을 것이고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겠지 만 ‘나이 쉰에 다시 내 작품을 보면 어떨까?’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준이 그렇게 바뀐 것이다.

요즘 영화말고 집중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집을 하나 사고 싶다. 하하. 분양을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나?
그냥 기다리고 있다.

좋은 집, 원하는 집을 살 만큼 부자인가?
아니, 대출을 받아야 하고 더 열심히 벌어야 한다.

결혼 계획 중 하나인가?
지금은 아닌데. 같이 살 여자한테 공간은 줘야 하지 않나? 없으면 쪽 팔리니까.

남자다운 남자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나 보다.
아니다. 되게 소심하다. 잘 삐치고. 여자친구가 다른 배우 멋지다고 하면 난리난다. 그 배우 사진 망가뜨리고 그런다. 질투도 많다. 건실 하고 담백한 남자, 진실되고 사려 깊고 남자다운 남자라고 말들 하는 데,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지 않다. 그렇게 안 보였으면 좋겠다. 그게 나다.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조경아
    포토그래퍼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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