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나와 나 1

2012.06.26GQ

낯익은 얼굴. 참 변하지도 않는 얼굴. 18년 동안 그를 봤지만 우리는 세월의 무상함 따위를 느끼지 못한다. 박진영은 좀처럼 그럴 새를 주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려고 노력한 적은 없어요. 항상 어떤 사람 자체가 되려고 했어요.” 새삼, 그 낯익은 얼굴을 다시 본다.

빨간색 재킷 곽현주, 화이트 셔츠 버버리 프로섬, 쇼트 팬츠 빈폴, 포켓치프와 선글라스 에르메네질도 제냐. 극락조가 프린트된 스웨트 셔츠와 팬츠는 모두 지방시 by 무이. 구두는 보테가 베네타.

빨간색 재킷 곽현주, 화이트 셔츠 버버리 프로섬, 쇼트 팬츠 빈폴, 포켓치프와 선글라스 에르메네질도 제냐. 극락조가 프린트된 스웨트 셔츠와 팬츠는 모두 지방시 by 무이. 구두는 보테가 베네타.

 

어깨 부분에 번지는 효과가 독특한 셔츠는 닐 바렛, 타이는 디올 옴므. 줄무늬 니트 톱은 마커스 루퍼 by 무이. 반지와 팔찌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어깨 부분에 번지는 효과가 독특한 셔츠는 닐 바렛, 타이는 디올 옴므. 줄무늬 니트 톱은 마커스 루퍼 by 무이. 반지와 팔찌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첫 번째 컷 찍으려고 아래위 모두 지방시를 입고 나왔을 때, 과하다면 과할 그 차림이 박진영다워 보였다. 새삼 반가웠다. 18년 전 그 박진영 같아서.
오래된 연예인으로서 가장 걱정스러운 게 일관성이다. 다 기록으로 남으니까. 내가 한 음악, 내가 한 말과 행동을 숨길 수가 없다. 숨겨지지가 않는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계속 성장해가는데 연예인을 짧게 할 생각도 아니라면 어떻게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까. 유일한 방법이라면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막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면 그나마 내 체질과 성분에서 나오는 일관성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결론을 내렸다. 옛날 박진영 같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그나마 일관성이 있었다는 말로 들린다. 성공한 건가?

그럴 수도. 변하지 않아서 지겹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니까.
죽는 날까지 신인이고 싶다. 그래서 사이사이 이상한 짓을 한다. 뭐, 유브이랑 ‘이태원 프리덤’을 한다든지, <드림하이>에서 코믹 연기를 한다든지, 이번에 <인기가요>에 나가서는 아이유한테 춤 동작을 막 가르쳐주고 그랬는데, 주변에서는 “진영아,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니가 그래도 위치가 있는데…” 그랬다.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나는 그냥 한다. 좋으니까 한다. <인기가요>에 나가서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러는 게 좋다.

이를 테면 조용필과 이미자가 신곡을 내서, 빅뱅이나 아이유와 1위를 겨루는 게 건강한 대중음악 신이라고 보지만, 여긴 당장 그렇게 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강준만 교수가 한 말인데, 한국은 기록과 평가가 없는 이상한 나라다. 그게 없으니까 판단이 안 선다. 횡으로 내가 지금 어느 위치인지, 종으로 따져 과거의 조용필과 지금의 나는 얼마나 어떻게 다른 건지, 그런 걸 생각할 기준이 없다. 연예계만 그런 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모두 마찬가지다. 누구나 동의하는 기준을 만드는 것, 사실은 그게 내 하반기 목표다. 아마 굉장히 힘들 거다. 하지만 내가 후배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인 것 같다.

그런데 하필 오늘은 신인 배우임을 강조하며 여기 있다. <500만 불의 사나이>라는 블랙 코미디 영화라고? 포스터를 보자마자 새나오는 웃음이 블랙 코미디스럽긴 하던데. 언젠가부터 텔레비전에 당신이 나오면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안다. 그래서 너무 좋다.

보면서, 박진영은 ‘컨셉의 왕’이구나 싶기도 했다. 뭔가 간파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나서야 그렇게 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결정한 후의 모습 같았달까?
무서울 정도로 맞는 말이다. 어떤 시작을 머리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한 5년 전쯤에 갑자기 따뜻해지고 싶다는생각을 했다. 방송용으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어서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한다. 어느 날 불현듯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주위에서 따뜻하단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전부터는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 아예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모든 게 다 진짜 재수가 좋아서, 말도 안 되는 축복을 받아서 이렇게 된 거구나. 그때부턴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도 복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저는 겸손하겠어요, 라고 말하는 건 이미 겸손이 아니지 않나?

당신 말대로라면, 복을 받아서 영화 주연도 맡은 셈인데, 도대체 박진영이 영화를 왜 찍었나 하는 의문이 사실 있다. 말하자면 영화제 신인상 후보에 오르려는 건가?
내 롤모델이 공옥진 여사님이다. 또 백남봉 선생님, 남보원 선생님 그런 분들을 존경한다. 그분들의 무대에서 노래니 춤이니 연기니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지 않나? ‘딴따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종종 썼는데, 그럴 수만 있다면 그 분들의 맥을 잇고 싶다. 17년 동안 무대에서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노래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진심, 그걸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드림하이> 보면서 박진영이 연기 잘한다고 박수친 사람이 있는 마당도 아닌지라, 여전히 물음표가 앞선다. 웃음을 주는 사람과 웃음거리는 차이가 난다. 크게 난다.
자신 있었다. 어떤 부분은 연기만을 업으로 삼는 배우보다 나을 거라고 믿었다. 사실 모든 작곡을 어떤 영상에서 시작한다. 지오디가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하는 부분을 그냥 음으로만 만들지 않았다. 말하자면 모든 음악을 어떤 영화의 OST라고 생각했다. 촬영 현장은 물론, 달랐다. 내가 생각한 연기를, 아무리 진심을 담아 표현해봐도 감독이 아니라고 할 때면 무너지는 거다. 그럴 때 조성하 같은 배우는 “아, 그거 아니에요?” 하면서 뭔가 다른 카드를 꺼낸다. 17번 연기가 아니라면 17-1이라는 카드가 있는 거다. 내겐 없었다. 이게 아니라고요? 그럼 어떡하지? 그렇게 민폐를 끼치면서도 또한 자신을 깨우면서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에디터
    장우철
    포토그래퍼
    신선혜
    스탭
    스타일리스트/김봉법, 메이크업/김범석, 헤어/ 김환, 어시스턴트 /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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