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내일이 찾아오면 <2>

2013.10.14유지성

훈련장과 경기장에서 두산 베어스의 2군 선수들을 만났다. 기회와 위기 사이에서, 내일은 내일의 야구가 열린다.

1 1군 선수들의 사물함 앞에 놓인 2군 선수들의 가방.2 거울 앞에서 타격 자세를 살펴보는 타자들. 3 유난히 붐비는 웨이트 트레이닝장.4 투구를 마친 양현(우)과 불펜 포수 박성큼(좌).5 실내 타격장의 티배팅 훈련. 6 1군 라커룸에 새로 걸린 박건우의 유니폼.7 선배의 짐과 추석 선물을 든 김인태. 8 훈련 뒤 버스를 타러 가는 선수들.

1 1군 선수들의 사물함 앞에 놓인 2군 선수들의 가방.
2 거울 앞에서 타격 자세를 살펴보는 타자들.
3 유난히 붐비는 웨이트 트레이닝장.
4 투구를 마친 양현(우)과 불펜 포수 박성큼(좌).
5 실내 타격장의 티배팅 훈련.
6 1군 라커룸에 새로 걸린 박건우의 유니폼.
7 선배의 짐과 추석 선물을 든 김인태.
8 훈련 뒤 버스를 타러 가는 선수들.

 

DAY 3

9월 11일, 잠실야구장
오전 8시 30분. 경기 취소가 결정되었다. 엄경훈 매니저는 미리부터 성남 상무구장에 도착해 심판들과 경기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선수단은 소식을 기다리며 집합 장소인 잠실구장에 남았다. 비가 온다고 훈련까지 취소되진 않는다. 잠실구장엔 간단한 실내 훈련시설이 있다. 훈련의 시작은 언제나 스트레칭. 경기장엔 계속 비가 내리고 있어, 선수들은 경기장 복도에서 몸을 풀었다. 복도에는 두산과 LG의 스타급 선수들의 사진이 현수막처럼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예보대로라면 몇 시간 후면 비가 그칠 테고, 1군 경기를 보러 온 관중들이 이곳을 꽉 메울 것이다. 현재 두산 베어스의 2군 훈련장은 공사 중이다. 원래는 이천에 있었다. 홈 경기장도 거기에 있다. 덕분에 훈련은 한양대학교 경기장에서, 홈경기는 성남 상무구장을 빌려 치른다.

모여서 치르는 전체 훈련이야 큰 변화가 없겠지만, 선수들은 요즘 개인 훈련을 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가끔씩 오는 비는 좋죠. 그래도 빨리 던지고 싶어요. 아파서 2군에 내려왔는데, 요즘 저 몸 상태 좋거든요.” 1군에서도 중간계투로 좋은 활약을 펼친 투수 김강률은 서둘러 웨이트 트레이닝장으로 향했다. 새 훈련장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집중해서 근력운동을 할 만한 공간이 없다. 역시나 대부분의 근력운동 기구엔 이미 선수들이 앉아 있었다. 옆에 딸린 마사지실도 붐비긴 마찬가지였다. 비 오는 날의 훈련은 오전에 끝난다. 1군 선수들이 올 때까지 잠실구장의 내부 시설을 쓴다. 야외 훈련장보다 다소 느슨한 분위기에서, 선수들은 미리 짜인 조에 따라 움직였다. 타자들은 실내 배팅장에서 타격 훈련을 했다. 배팅볼을 던져주는 선수 대신,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공을 던지는 배팅머신이 공을 뱉었다. 오늘만큼은 배팅볼을 던질 일이 없는 막내 선수들이 번트를 대는 척하다 강공으로 돌아서는 버스트 동작을 연습했다. “막내라고 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어요. 그냥 조금 미리 나와서 준비하고, 공이랑 방망이 챙기고… 저 편해 보이지 않아요? 요즘은 학교도 똑같아요. 선배들이 조금만 괴롭히면 학교폭력이라고… 하하.” 김인태는 불과 열 달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다. 지난 8월 말에 새 시즌을 위한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가 있었다. 김인태는 얼마 남지 않은 시즌이 끝나고 나면 곧 후배를 받는다. 함덕주는 김인태와 동기인 신인 투수다. 9월 1일 엔트리 확정과 함께 1군에 올라갔다가, 다시 2군으로 내려왔다. “1군에서는 완벽한 구종만 써야 돼요. 거기서 잘했으면 열받았을 텐데, 제가 못 던져서 다시 내려온 거라…” 두 번째 1군 진입이었지만 안착하는 데는 실패했다. “7월에 처음 1군 통보 받았을 땐,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이번엔 테스트를 잘 봐서 준비는 하고 있었죠.” 함덕주는 95년생이다. 김동주, 홍성흔과 열아홉 살 차이가 난다. 데뷔 첫해에 두 번이나 1군에 진입한 것은 큰 수확이다. 두산 베어스는 좌완투수가 부족하다. 현재 1군 투수진엔 좌완투수가 유희관 한 명뿐이다. 도무지 들어갈 틈이 안 보이는 야수진에 비하면 상황이 좋다. 고다 투수 코치는 함덕주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덕주는 체력을 보강해야 돼요. 기술보다 체력. 몸에 축이 잡혀야 하니, 하체랑 복근 운동을 열심히 해야죠.”

내려오는 선수가 있으면 올라가는 선수도 있기 마련. 포수 박세혁과 외야수 박건우가 보이지 않았다. 박건우는 9월 8일자, 박세혁은 9월 10일자, 그러니까 바로 어제부로 1군에 합류했다. 마침내 박세혁을 1군에 합류시킨 김진수 2군 배터리 코치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네가 1군 가서 보여줄 수 있는 건 파이팅이라 그랬어요. 세혁이는 못할 때 자책하는 버릇만 고치면 충분히 거기서도 잘할 수 있는 선수예요.” 잠실구장 라커룸은 1군 선수들이 쓴다. 최고참 홍성흔부터 8월에 첫 진입한 유창준까지, 칸칸마다 유니폼이 가득했다. 박건우와 박세혁도 새 자리를 배정받았다. 홍성흔은 라커에 예쁜 딸 화리의 사진을 걸어놨다. 유창준의 명찰 옆엔 짧은 편지가 붙어 있었다. “유창준 선수님, 두산의 대표적인 신고 선수 신화가 손시헌, 이종욱, 김현수 선수인 거 아시죠? 세 선수는 모두 타자예요. 아직 투수 중에는 없죠? 유창준 선수가 두산의 신고 선수 투수 1호가 되어주세요. 그리 될 거라 믿고 응원 많이 할게요.” 유창준의 1군 평균자책점은 9월 15일 현재 1.80. 기대 이상의 활약이다. 불펜에선 원래 경기에 등판하기로 했던 선수들이 투구를 하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양현은 한화 이글스 투수 양훈의 동생이다. 양훈은 현재 경찰청에서 군복무 중이다. 예정대로라면 형제의 선발 대결이 펼쳐지는 날이었다. 양현이 원했고, 고다 코치도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비 때문에 고대하던 선발 맞대결은 내년으로 미뤄지게 됐다. “오늘 던졌으면 1승 했겠는데” 고다 코치는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양현의 투구를 점검했다. 양현의 구위는 무실점으로 1이닝을 막은 고양 원더스전에 비해서도 눈에 띄게 좋아 보였다. 양현은 데뷔 첫해인 2011년 이후 아직까지 1군 마운드 경험이 없다. 1, 2군 선수단을 통틀어 두산의 유일한 언더핸드 투수인 만큼 희소성이 있지만, 아직 고다 코치의 눈엔 보완할 점이 남아 있는 듯하다. “한 명이라도 많이 올려보내고 싶죠. 1군에서 통하는 투수란 어찌 보면 간단해요. 포볼을 줄이고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돼요. 타자랑 승부를 하겠다는 마음가짐.” 성남에서 잠실로 돌아온 엄경훈 매니저는 선수들에게 추석 선물을 나눠줬다. “견과류예요. 훈련은 추석 전에 하루 쉬어요.” 퓨처스 리그 경기가 끝나는 9월 15일 이후에도 훈련은 계속된다. 1군 선수단은 곧 포스트시즌 준비에 돌입한다. 선수들과 야구팬들은 가을을 기다린다. 일부 2군 선수들에겐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정리한다고 표현해요. 서운하죠. 같이 밥 먹다가 딴 팀만 가도 섭섭한데… 어린 선수들은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으니 그나마 나아요. 중고참급 선수들은… 자기도 알아요. 이 시기에 부르는 게 어떤 뜻인지.” 운영 2팀에서 통역을 비롯한 선수단 관리를 맡고 있는 황인권 사원이 말했다. 시즌이 끝나기 전, 더 이상 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운 선수들은 운영팀장과 면담을 한다. 그렇게 남을 선수와 떠날 선수가 결정된다. 남은 선수들은 스프링캠프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강한다. 신데렐라는 주로 거기서 탄생한다. 2군 선수들의 봄은 야구 팬들의 가을만큼 값지다.

오후 12시. 1군 선수들은 아직까지 야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올해는 야수는 계획만큼 잘 성장했는데, 투수진이 좀 아쉬웠어요.” 주로 타격장에서 시간을 보낸 송일수 감독이 눅눅해진 유니폼을 갈아입고 야구장을 나섰다. 선수들도 하나둘 짐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두산과 LG의 잠실 라이벌전이 있는 날이다. 선수 출입구 앞에는 벌써 열성 팬들이 돗자리를 깔고 선수들의 출근을 기다리고 있다. 출입구 앞은 바로 주차장이다. 첫 차가 도착했다. 번호판만 보고 선수를 알아본 여성 팬이 대번 우산을 펴고 차를 향해 달렸다. 올해 잠실야구장의 평균 관중은 약 1만 8천 명. 분명 누군가는 오늘 훈련을 마친 선수 중 몇몇의 승격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1군에서 막 내려온 선수, 부상 회복 중인 선수, 또는 기대하던 풋풋한 유망주…. 그들의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에디터
    유지성
    포토그래퍼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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