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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축구, 그리고 월드컵

2014.06.13유지성

사랑과 증오는 애증이라 하는데, 축구와 섹스는 공존할 수 없는걸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언 긱스는 동생의 부인과 잤다. 8년 동안 그렇게 했다. 긱스의 동생은 긱스를 두고 “위대한 축구선수지만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벌레, 족제비, 바람둥이다”라고 했다. 지난 4월 말, 긱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대행 자리에 올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긱스는 마지막 홈경기에선 선수로도 나섰다.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답은 동생의 말에 있는지도 모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에게 긱스는 “위대한 축구선수”로 충분한 것이다. 아마 긱스가 그 사건 이후 축구를 못했으면 좀 달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꾸준히 출장했고, 살아남았다. 타이거 우즈는 혼외정사가 밝혀진 이후 거의 5개월 가까이 골프채를 잡지 못했고, 다시 우승하는 덴 30개월이 걸렸다. 긱스의 정신력이 뛰어나다 볼 수도 있고, 영국보다 미국이 스캔들에 관대하다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 동생의 부인과 불륜을 저지르는 것 역시 웬만한 자기 최면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닐 테니까.

“브라질의 호나우두는 섹스보다 자위가 안 좋다는 식의 주장을 한 적도 있어요.” <KBS N SPORTS>의 박찬하 축구해설위원이 말했다. “한국 선수 중에도 지금은 은퇴했지만, 경기 전날 꼭 섹스를 해야 경기가 잘 풀린다던 선수가 있었고요.” 긱스의 섹스가 경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축구와 섹스에 대한 입장은 제각각이다. 결과로 파악할 수도 없다. 브라질은 1994년과 2002년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했다. 1994년 대표팀 감독 파레이라는 선수들에게 섹스를 허용했다. 하지만 2002년의 스콜라리는 전면 불가였다. 40일 내내 선수들을 완전히 통제했다. 그는 다시 대표팀 감독을 맡아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하지만, 이번엔 좀 온건해졌다. “정상적인 섹스는 괜찮지만, 아크로바틱한 체위는 허용할 수 없다.”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면, 가장 정확한 결과론적 표본이 생기는 거라 말할 수 있는 걸까? 똑같은 감독이 섹스를 두고 다른 방식을 취하는 경우니까.

무하마드 알리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약 6주간 섹스를 하지 않았고 한다. 복싱과 축구의 공통점이라면 하체, 또는 ‘풋워크’가 매우 중요한 운동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격투기계에선 아직도 중요한 경기 전 섹스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격투기는 단판승부다. 6주를 참았어도, 이후 6주간 매일 섹스를 할 수도 있다. 축구는 다르다. 대회와 시즌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 이상 치른다. 매일 금욕을 요구할 순 없다. 그렇다면 쟁점이 되는 것은 경기 전날의 섹스다. 격렬한 섹스는 200~300칼로리 정도를 소모한다. 경기당 7~11킬로미터가량을 뛰어다니는 축구선수들에겐 영향력이 미미한 수치다. 그렇다면 논의는 호르몬의 관점으로 넘어간다. “주기적으로 섹스를 하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가 경기장에서 더욱 활발히 뛸 수 있다”는 주장과 “섹스 직후엔 되레 정자 생산을 위한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떨어진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신체적인 영향보다는 심리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스포츠 생리학자도 있다. 역시나 압도적인 근거는 없는 상황.

“아시아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절제를 잘하는 편이었어요. 일본이랑 중국 선수들. 그런데 한 브라질 선수는 여자친구를 브라질에 두고 왔는데,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동료 선수들한테도 하소연하고 그랬나 봐요.” 강원 FC 홍보 담당자 권민정 과장은 외국인 선수 지원 업무도 함께 맡고 있다. “그래도 브라질 출신인 저희 베르날데스 감독님은 전적으로 선수한테 맡기는 편이에요. 아예 터치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시죠. 전 감독님도 외박 때 술 마실 바엔 여자 친구를 만나라고 하셨고요.” 물론 모든 구단이 그런 건 아니다. K리그 구단들은 보통 경기 전날은 홈경기 원정경기 가리지 않고 합숙을 한다. 경기 전날 외에도 젊은 선수들은 대부분 숙소에서 산다. 감독의 외박 지시가 없이는 사실상 섹스가 불가능하다.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가 결국 선수의 한 시즌 출전 횟수만큼이나 그해의 섹스 횟수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표팀 소집 때도 유럽 팀과 달리 가족과 동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길어봤자 20~30분인데, 그 정도로 허벅지 근육에 무리가 간다거나 하진 않아요.” 익명을 요구한 한 프로 구단의 트레이너 역시 섹스는 경기력에 특별히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사실 한국에선 별로 이슈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지도자들이나 선수들이 겉으로 드러내서 얘기하는 경우도 드물고요.” 즉, 국내에선 섹스에 대한 얘기 자체가 아직 수면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국제심판 박해용은 스포츠심리학 박사 논문에서 “경기장 곳곳을 뛰어다녀야 하는 주심들은 아예 3일 전부터 부부생활을 금하고 있다”고 썼다. 이것 때문에 가정불화를 겪는 심판도 많다는 말과 함께. 호나우두는 한 인터뷰에서 “2002년 월드컵 우승은 멋진 추억이지만, 욕망을 참았던 일도 함께 늘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선수들의 하소연과 감독들의 걱정 사이에 아직까지 확실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연구와 실험을 통해 0.001초의 기록을 단축시켜나가는 당대에, 전 인류의 몇 안 되는 공통 관심사인 섹스와 축구의 상관관계를 밝혀내지 못한다는 게 의아하긴 하지만, 어쨌든 결국 선수 각자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일까? 누군가에게 섹스는 결승골만큼이나 중요한 일일 테니까.

    에디터
    유지성
    스탭
    ILLUSTRATION / LEE JAE HY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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