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드라마, 사극을 중심으로

박상연은 조선시대 한글 창제를 다룬 <뿌리 깊은 나무>와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선덕여왕>을 집필했다. 그에게 사극 속 한국어 대사와 한글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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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는 한글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대본을 쓰면서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텐데. 글자는 본래 자연스럽게 생기는 건데, 한글은 세종이라는 한 명의 천재가 발명했다. 그리고 우리의 어떤 문화유산보다 훌륭하다. 반면 한국어 자체는 너무 어려운 언어다. 법칙보다 예외가 더 많다. 한글과 한국말의 난이도 차이가 굉장히 심하다는 걸 드라마를 쓰면서 깨달았다. 또한 사극의 대사는 과거의 말과 현대의 일상어 사이에서 어디에 기준을 정할지 항상 고민이 된다.

대부분의 사극에선 ‘~이라 하옵니다’와 같은 하오체를 중심으로 대사를 잇는다. 정말 그런 말을 썼을까? 조선 시대 때 ‘하오체’를 사용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현재 사극의 말투는 신봉승 선생이 쓴 <조선왕조 5백년> 시리즈에서 시작되었다. 예상컨대 ‘하오체’를 중심으로 정형화된 것도 그때부터 이어져 오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지금 사극은 모두 신봉승 선생이 만든 커다란 틀이 바탕이다.

하지만 <선덕여왕>과 <뿌리 깊은 나무>에선 ‘하오체’를 일부러 절제하기도 했다. ‘하오체’를 역이용하고 싶었다. 비담은 일상어를 쓴다. 그는 왕족의 핏줄이지만 야생에서 자랐기 때문에 궁의 말투를 모른다. 하지만 덕만을 만나고 어설프게 ‘하 오체’를 배우고자 한다. 일상어 자체가 사극에 들어오면 시대적 분위기를 헤칠 수 있지만 낮은 연령층을 고려하면 적절히 이용할 수 있다.

일상어가 사극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사극의 틀이 되었을까? 사극에서 일상어를 자주 사용하다 보면 과거 <허준>의 “쇼하고 있네”와 같은 방송 사고가 날 수 있다. 당연히 작가가 쓴 건 아니지만, 일상어를 많이 사용하면 시대적 검열이 느슨해진다. 하지만 최근 가벼운 소재의 사극이 많아지면서 사극도 현대 일상어를 많이 쓴다.

<선덕여왕>과 <뿌리 깊은 나무>는 신라 시대와 조선 시대로 전혀 다른 데도 독특한 문어체가 공히 쓰인다. <선덕여왕>에서 화랑들이 공주를 만나면 “비천지도의 화랑 알천, 화랑의 주인 공주님을 뵈옵니다”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유럽 중세 의 기사도 기록을 참고해 문어체로 바꿔 적용했다. 이전 어떤 사극에서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사극의 말투가 대부분 조선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신라만큼은 우리 만의 상상력으로 신라만의 분위기를 새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뿌리 깊은 나무>에선 접속사를 중심으로 문어체를 만들었다. 대사를 ‘하여’, ‘다만’, ‘또한’과 같이 문어체에서나 쓰는 말로 시작해 시대 분위기를 내려고 했다.

정확한 고증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한 이유 라면? 돈과 시간이 가장 큰 문제겠지만 일단 당시의 말을 기록한 자료가 거의 없다. 그탓에 과거의 한국어를 복원하는 작업도 뚜렷하게 없었다. 지금 사극에서 쓰이는 한국어는 극단적으로 말해 작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든 ‘판타지’ 언어다. 하지만 지난 40여년 동안 수많은 사극이 방송돼 꽤 많이 축적되었기 때문에 과거를 재창조한 한국어로서 예술적 가치가 있다 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의 언어가 고증된다면 사극속 말투가 바뀌게 될까? 만약 고증된다 해도 드라마에서 사용하는 건 다른 문제다. 드라마는 시청자와의 빠른 소통을 기반으로 한다. 사극은 그 당시를 재연하는 도구가 아니다. 어쨌든 드라마이고, 재미있어야 한다. 지금 사극은 고유의 말투로 이미 시청자와 오랜 시간 ‘약속’을 만들었다. 용이 등장하면 판타지 장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듯이 사람들은 말투만 듣고도 이 드라마가 사극이란 걸 단박에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미 정형화된 틀을 완벽히 버리기는 힘들 것 같다. 멜 깁슨은 영화 <아포칼립토>를 만들기 위해 마야의 언어를 복원했다. 그 심도가 인류학적 자료로 쓸 수 있을 정도다. 사극이 점점 진부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당시의 한국어가 고증된다면 드라마는 현실적으로 어려워도 다른 매체에선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시대에 맞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단어와 개념은 명백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 양반이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라는 말은 사극에서 쓸 수가 없다. 양반이라는 말은 문반과 무반을 합친 신분의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누구도 ‘양반’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하지 못했다. ‘시간’이라는 단어도 근대를 지나며 생긴 말이다. 그 대신 세월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과 세월의 뉘앙스가 엄연히 달라서 모든 말을 세월로 포괄하긴 힘들다. 한자어는 사극에서 중요한 언어다. 하지만 많은 한자어가 일제강점기 이후에 생겨났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개념어의 많은 부분이 일본식 한자어다. 당시 순식간에 수많은 서구의 개념들이 전파되면서 그 서구의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필요가 있었다. ‘피플’을 우리는 국민이라고 말 한다. 그 말은 황국신민의 준말이다. 피플을 일본은 국민이라고 번역하고, 중국은 인민이라고 번역했는데 우린 일본식을 택했다.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학교 이름은 바꿨지만 국민이란 단어를 정말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자”라는 말도 모순이다. ‘청산’마저도 일본식 한자어니까.

그렇다면 일본식 한자어를 사극에서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나? <뿌리 깊은 나무>에서 이도와 정기준이 암자에서 토론하는 신이 있다. 우리만의 글자에 대해 토론하는데, 꽤 어려운 말이 많이 오간다. 그때 사용하는 개념어 대부분 일본식 한자어다. 세종대왕이 일본식 한자어를 말 한 것이다. 그 많은 개념어를 대체할 온전한 우리말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작가로서 무기력한 경험이었다. 이미 일본식 한자어가 한국어로 대체 불가능하게 많은 부분 자리 잡았다. 그러나 언어는 충돌이다. 파괴와 생성의 과정을 거친다. 영어는 노르만 정복(Norman Conquest) 시기를 거치며 프랑스어의 영향을 받았다. 앵글로색 슨족을 지배한 노르만족들이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했고 프랑스어를 영어보다 우위에 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그걸 하나하나씩 가려 사용하지 않는다. 이미 활발히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버리라고 강요하기는 힘들다.

현대가 배경인 드라마에선 불필요하게 영어를 많이 사용하기도 하는데. 영어를 무분별하게 쓰는 건 문제다. 하지만 ‘저 사람 정말 쿨하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저 사람 정말 멋져’라고 말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캐릭터다. 드라마에서 어떤 단어를 쓸 때 중요한 건 한국어인지 아닌지 보다 그 단어가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 이미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엔 대체 불가능한 영어가 많다. 아주 오래 전 우리말에 중국어가 덧붙여지고, 일본어의 영향을 받았듯이 지금 영어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 그 말을 지양해야 하는 여러 시민단체의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드라마가 나서서 교조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에선 욕이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그것도 대체 불가능하다고 봤나? 똘복이 ‘지랄’이라고 말하는 것을 어린 이도가 듣고 “참으로 적절한 말이 아니던가”라며 깨닫는다. 이후 왕이 되었을 때도 자신의 감정을 욕으로 드러낸다. 욕이 지닌 기능, 즉 묘하고 다양한 정서의 차이를 이도가 깨닫고 자주 사용하는 건 중요했다. 이도가 한글을 창제해야 하는 이유가 백성이 쉽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 많은 욕 중에서 ‘지랄’을 사용하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이전까지는 공중파 드라마에서 지랄은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욕이었다. 그 말이 간질병 환자의 발작을 낮춰 부르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도가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하는 것은 간질병 환자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명백히 아니기 때문에 용기내서 사용했다.

요즘 드라마엔 욕을 정말 많이 나온다. 나도 욕을 많이 써서,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욕은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 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욕이 지닌 공격성을 아이들이 무분별하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교조적인 역할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공공재인 공중파를 이용해 자극적인 말을 부러 만들 필요는 없다.

하필 지금 한국어로 드라마를 쓰면서 가장 고려해야 할 것은 뭘까? 욕이든 영어든 일본식 한자어든 지금 자주 사용하는 한국어의 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의 어원과 상관없이 지금 시대엔 대체 불가능한 한국어들이 있다. 그걸 캐릭터와 연결해 납득 가능하게 사용할 때 한국어를 제대로 사용한 드라마로서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단어와 단어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명확히 알고 기록하는 과정이 있다면 다음 세대는 좀 더 정확한 사극을 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