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의 영예는?

지금 방송 3사의 가요 프로그램엔 기승전결도, 흥미로운 순위 경쟁도 없다. 예능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Music판형

 

 

매주 세 번, 지상파 3사에선 가요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KBS 2TV <뮤직뱅크>는 금요일, MBC <쇼! 음악중심>은 토요일, SBS <인기가요>는 일요일이다. 그걸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본방사수’ 하며 이 주의 1위가 누구일지 기다리는 풍경은 이제 없다. 여전히 뮤지션의 팬들은 직접 방청한다. 거기서 응원을 하고 ‘직캠’도 찍는다. 하지만 텔레비전 방송의 영향력이라면 글쎄. 시청률은 2~3퍼센트대에 머문다. 그러면서도 장수한다. <뮤직뱅크>는 1998년, <쇼! 음악 중심>은 2005년, <인기가요>는 199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가요 프로그램은 이 시대의 필수 교양 프로그램인가? 그래서 방송사는 손해를 감수하고도 주말의 오후 또는 저녁의 황금시간에 가요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건가? 실로 기묘한 풍경.

 

여전히 가요 프로그램은 순위를 매긴다. 3 사 모두 그렇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없애다 부활시키다를 반복했지만, 결국 지금은 세 프로그램 다 매주 1위를 발표한다.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아예 순위를 없애보기도 하고, 1위란 이름 대신 ‘뮤티즌송’ 같은 애매모호한 이름을 써 보기도 했지만 효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처참한 시청률만큼이나 파급력은 미미하다. 일단 예측이 가능해서다. 3사 가요 프로그램이 순위를 결정하는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배정하는 지표는 이른바 음원점수다. 음원 웹사이트에서 얼마나 좋은 반응을 얻었느냐. <뮤직뱅크>는 디지털 점수란 이름으로 거기에 65퍼센트를 배정한다. <쇼! 음악중심>과 <인기가요>는 각각 60퍼센트다. 매일, 매시마다 확인할 수 있는 음원 웹 사이트의 순위 차트는 곧 지금 어떤 노래가 가장 잘 팔리는지에 대한 정확한 증거다. 누구나 언제든지 접속해서 볼 수 있다. 가요 프로그램엔 동영상 점수, 방송 횟수 점수, 실시간 투표 등의 변수가 있지만 이미 공유되고 있는 차트를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벌써 김이 샌다.

 

대부분의 음악 관련 뉴스도 가요 프로그램 1위보다 음원 차트 1위를 기준으로 삼는다. 지금은 ‘5주 연속 1위’보다 ‘실시간 올킬’이 더 큰 사건이다. 뮤지션의 활동 성패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몇 번, 얼마나 오래 1위를 했느냐와 별 상관이 없다. 소비자들은 방송을 보고 음반을 사는 게 아니라, 음원 웹사이트의 차트를 보고 바로 거기서 음원을 구매한다. 당연히 뮤지션들은 굳이 가요 프로그램에 기를 쓰고 출연하지 않는다. 정상급 뮤지션의 경우 짧으면 3주, 길어도 5주를 잘 넘기지 않는다. 슈퍼주니어는 지난 8월 29일 새 음반을 발표했다. 2년 2개월 만의 멤버 전원 컴백이라 꽤 떠들썩했다. 그들은 8월 29일, 30일, 31일 방송 3사의 가요 프로그램에 모두 출연했다. 컴백 무대였다. 그리고 9월 둘째 주 방송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았다. 가요 프로그램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면 컴백에서 고별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슈퍼주니어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 컴백한 주는 순위 집계에 포함되지 않으니, 거의 1~2주 사 이에 정상을 찍은 것이다.

물론 뮤지션들에겐 여전히 가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별 비용 안 들이고 라이브 영상을 찍을 수 있는 무대니까. 뮤 직비디오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방송 3사의 제각기 다른 촬영 기법과 무대 기술에 따라 몇 번의 무대를 만들고, 보여줄 만큼의 의상을 선 보이고 나면 굳이 더 이상 가요 프로그램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같은 시간에 훨씬 더 고수 익을 올릴 수 있는 공연이나 해외 투어, 행사를 기획하는게 낫다. 그래서 요즘 가요 프로그램은 회전율이 빠르다. 한 시간가량의 프로그램 중 컴백 무대와 신인 가수의 데뷔 무대가 1/3에 서 절반까지 육박한다. 가장 최근 방영분인 10 월 11일 <쇼! 음악중심>엔 다섯 팀의 컴백 무대, 한 팀의 신인 데뷔 무대, 세 팀의 신곡 발표 무대가 있었다. 총 18팀의 무대 중 절반이다.

 

3사 모두 차트 순위는 50위까지 매긴다. 그렇지만 두세 팀의 1위 후보와 새로운 무대를 제외하면 거의 죽은 순위나 마찬가지다. 당장 순위권에 들어 있는 뮤지션들의 무대보다 처음 보는 무대가 더 많다. 그렇다 보니 방송에서도 순위는 찬밥 신세다. 순위를 표기하는 별도의 화면을 만드는 수고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나마 20위부터 3위까지만 따로 화면을 만들어 발표하는 <뮤직뱅크>를 제외하면, <쇼! 음악중심> 과 <인기가요>는 순위를 전부 자막으로 처리할 뿐이다. 그마저도 방송을 중간부터 본다면 확인 할 수도 없다. <뮤직뱅크>와 <인기가요>는 방송의 1/3 지점, <쇼! 음악중심>은 방송의 절반 쯤 지나면 이미 1위 후보를 제외한 모든 순위를 발표한다. 이렇게 할 거면 굳이 왜 순위를 달아 놓는 걸까?

 

출연자들의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차트에 새로 진입한 곡이나 신인 가수의 무대가 먼저 나오고, 차츰차츰 20위권, 10위권의 가수들이 무대를 채우는 방식이 아니다. 순위권에 있는 대부분의 가수들은 이미 활동을 끝냈으니까 섭외가 불가능하다. 대신 새 노래, 새 가수들이 쏟아진다. 9월 20일 <쇼! 음악중심>에는 총 18 팀, 21일 <인기가요>에는 19팀, 26일 <뮤직뱅크 >에는 16팀의 뮤지션이 출연했다. 방송이 한 시간에서 한 시간 10여 분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무척 많은 숫자다.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제작진과 MC는 그런 역할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한 번에 서너 팀이 연이어 우루루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신인급만 그런 것도 아니다. 꽤 파괴력 있는 뮤지션들도 마찬가지다. 출연진에 비해 시간이 모자라니 밀어붙인다. 9 월 21일 <인기가요>에선 스피카.S, 틴탑, 왁스, 티아라, 네스티네스티가 연이어 무대에 올랐다. 네임밸류도 순위도 뒤죽박죽이다. 그렇게 방송 시간 기준 34분부터 49분까지 쉴 새 없이 내달렸다. 중간에 MC가 등장하거나, 분위기를 환기 시키는 화면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전 곡의 마지막 소절이 끝나기 무섭게 다음 곡 전주가 나왔다. 그렇게 지금 가요 프로그램에선 기승전결을 찾아볼 수 없다. 한 시간짜리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 대신, 각자의 무대만이 존재한다.

 

어쨌든 그렇게 가요 프로그램의 무대에 오른 뮤지션들은 각각의 라이브 영상을 얻는다. 친절하게도, 3사 모두 유튜브를 충실하게 운영 한다. SBS는 SBS Music1이라는 <인기가요> 전용 채널이 있다. 거기엔 <인기가요>에 출연한 모든 뮤지션의 무대가 올라온다. 컴백 무대라서 두 곡을 불렀다면, 그것도 둘로 쪼개 차곡차곡 정리해놓는다. MBC Kpop 채널엔 MBC에서 방송한 모든 종류의 라이브가 있다. <쇼! 음악 중심>과 <보이는 라디오>에서 부른 노래가 동등하게 취급된다. KBS Kpop 채널 역시 MBC Kpop과 비슷하다. 모든 무대는 방송 당일 바로 볼 수 있다. 거기선 모든 뮤지션이 평등하다. 1위를 했건 그날 데뷔했건 영상은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 무대가 보고 싶으면 텔레비전을 켜는 대신 유튜브로 가면 된다. 굳이 황금 같은 주말 시간에 한 시간 동안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이유가 없다.

 

‘본방사수’를 위해서라면 방송의 힌트 정도만 남기고 전체는 숨겨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다시 보기 서비스를 통한 수익까지 계산 해 본다면. 물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것은 지금의 음악 소비자들, 더 나아가 아이돌 팬덤의 입맛에 맞춘 전략적 움직임일 것이다. 그렇다면 TV 예능으로서, 가요 프로그램의 시대는 완전히 끝난 것인가? 어쩌면 이른바 케이팝의 세계화, 케이팝의 경쟁력에 기여한다는 막연한 취지만 남아 있는 건 아닐는지. <뮤직뱅크>는 방송을 시작할 때마다 “114개국 동시 생방송 전 세계가 함께 보는 뮤직뱅크”란 구호를 외친 다. 3사의 유튜브 채널 중 두 곳이 Kpop이란 이름을 달고 있다. 결국 지금 가요 프로그램은 케이팝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고, 그것을 유튜브 란 채널을 이용해 국내외로 전파하는 교양 프로그램이 맞는지도 모른다. 주말 시청률을 위해 칼을 갈고 만든 한 시간짜리 예능이 아니라.

 

아이돌 팬덤 때문이든, 라이브 무대가 필요한 뮤지션들을 위해서든, 해외의 케이팝 애호가를 겨냥해서든, 그저 매 방송마다 열댓 개의 3 분짜리 무대 영상을 찍어 배출하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라면 지금의 가요 프로그램은 그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제작보단 차라리 유통에 가까워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프로그램은 없어지지 않으니까. 즉, 지금 가요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의 형태로 교양 프로그램 같은 지향점을 갖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도, 교양 프로그램의 야심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