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GQ 어워즈 – 3

올해의 다문화 비정상회담, 올해의 한 방 혜리, 올해의 낭비 인천 아시안게임, 올해의 시선집중 러버 덕, 올해의 멜로디 AOA ‘단발머리’, 올해의 감독 염경엽, 올해의 블로거 이효리.

 

올해의 다문화 비정상회담 
JTBC <비정상회담>의 명료한 기획 안에는 다채로운 요소가 섞여 있다. 그들의 유창한 한국어에 한 번 놀라고, 말은 한국어로 하면서 사고의 깊이는 제각각의 문화권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두 번째 놀라움이 생긴다. 세 번째 놀라움은 그렇게 제각각인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면서 재미있기까지 한 토론을 밀도 있게 이어간다는 데서 온다. 과연 새로운 경험. 그동안 어떤 예능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1994년 MBC 시사 코미디 <청년내각> 정도를 떠올릴 수 있을까? 좀 더 본능적인 이유도 있다. 91년생 샘 오취리와 92년생 타쿠야를 제외하면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비정상회담>에는 ‘어린’ 남자들이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20대의 (멋진) 형이자 (잘생긴) 오빠 혹은 친구로서, 그러면서도 철저한 개인으로서 발언한다. 이 역시 어떤 판타지에 근접해 있다. 지금 어떤 방식으로든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팔 할은 여자라는 걸 정확히 알고 접근한 기획이라는 짐작도 할 수 있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보란 듯이 ‘스타’가 됐고 우리는 진짜 다양한 문화권에서 자란 열한 명의 개인이 자유롭지만 격을 갖춰 토론하는 걸 지켜볼 수 있게 됐다. 그들이 토론하는 안건의 경중을 떠나, 그들이 증명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옳고 그름은 딱 나눌 수 있는 게 아니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건 그저 폭력일 뿐이라는 것. 웃고 떠들고, 때론 진지하게 토론하면서 결국 이런 얘기를 전한다. <비정상회담>의 묵직한 역설이다. 언제부턴가 그들 모두가 ‘한국 남자’처럼 보인다는 건 또다른 역설이겠지만.

 

올해의 한 방 혜리 
<진짜 사나이>가 위기일 때 ‘여군 특집’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군 관련 사건이 많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진짜 군대와 예능을 분리해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여군 특집’에 출연한 혜리도 마찬가지다. 그전까지는 걸스데이라는 큰 틀에서 자신만의 어떤 것을 보여주지 못한 채 스캔들만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말을 똑바로 하라는 분대장에게 울먹이며 “이이잉” 하며 손을 흔들면서부터, ‘애교’, ‘먹방’, ‘앙탈’로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가 생기고, 광고도 여러 개 찍었다. 목청껏 웃고, 마음껏 먹고, 슬플 땐 울었을 뿐인데…. 군대 체질은 분명 있다.

올해의 한 칼 헨리
당황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는 건 늘 재미있다. 당황하는 누군가가 그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은 더 재미있다. 올해 <진짜 사나이>에서 헨리가 정말 그랬다. 과제를 수행할 때도, 상관에게 꾸중을 들을 때도, 궁지에 몰린 작은 새앙쥐가 두 발을 모으고 서서 작은 입으로 소리치는 것마냥 귀여웠다. 태권도 승급 심사 때 당황한 나머지 ‘넥 슬라이스!’라고 외칠 때는 커 보이려고 몸을 잔뜩 펼친 다람쥐 같기도 했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형식을 띤 <진짜 사나이>는 매 순간 극한의 조건을 부여함으로써 참가자의 리얼하다 못해 밑바닥이 드러나는 진짜 성격을 보는 재미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헨리는 마냥 순진하고 긍정적인 진짜 자신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 대가는 달콤했다. 헨리는 한동안 밀려드는 섭외 요청에 지상파부터 케이블까지 모두 장악했고, 솔로곡 ‘판타스틱’으로도 바쁘게 활동했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멋지게 켜던 올해 무대보단 작년 ‘트랩’ 무대를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래 초반 피아노 위에 올라가서 하는 안무 중 ‘넥 슬라이스’와 아주 흡사한 동작이 있다. 우연한 한 방이 아니라 필연의 한 칼이었을지도.

 

올해의 낭비 인천 아시안게임 

휑했다. 모든 선수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거기가 강남 어딘가의 클럽이었다면 그날은 수지를 못 맞춰서 망한 장사였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선수들을 위한 도시락에선 대장균이 나왔다. 화장실에선 소변이 샜다. 냉방 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선수들은 쉴 곳이 없었다. 숙소와 경기장 사이의 셔틀버스에도 체계가 없었다. 박태환은 100미터 결선을 앞두고 버스에 서서 이동했다. 400미터 레이스 직후 도핑테스트를 마친 박태환, 쑨양, 하기노는 40분간 버스를 기다리다 박태환 개인 매니저의 차를 타고 다 같이 숙소로 향했다. 아시안게임 금, 은, 동 메달리스트였다. 배드민턴 대회를 치를 땐 에어컨 바람에 셔틀콕이 날렸다. 폭우가 쏟아지자 경기장엔 비가 샜다. 심지어 성화는 약 10분간 꺼졌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는데, 이 대회를 치르는 데 인천시가 쓴 비용은 자그마치 2조 5천억원이었다. 주경기장을 비롯한 17개 경기장을 새로 짓고 보수하느라 1조 7천2백24억원, 운영비는 4천8백32억원, 이 중 정부 지원금이 2천7억원, 시 지원금이 1천2백82억원이었다. 앞으로 인천시는 이자까지 1조 7천5백2억원을 갚아야 한다. 2029년까지 앞으로 15년간 매년 1천여억원을 갚는 셈이다. 이게 다 세금이다. 아시안게임을 치르고, 인천 시민은 빚쟁이가 되었다.

 

올해의 게스트 <라디오스타> 박준형 
사실 ‘올해의 해동’으로 꼽을까도 고민했다. 아주 오랜만에 예능에 출연한 박준형은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운을 뗐다, “라디오스타라고 해서 진짜 라디오인 줄 알았어요.” 그러고는 한 여배우와의 스캔들을 포함해 자신의 과거를 한바탕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나이를 밝힌 기자회견에 관한 이야기, 가슴 큰 여자는 좋지만 수술한 여자는 싫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작은 가슴보다는 큰 가슴이 좋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거나,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영국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갈 때 하는 행동을 차례대로 흉내 낼 때면 속 없이 편히도 웃었다. 생각하기에 따라 그 말들은 원치 않는 ‘잡음’이 낄 수도 있었던 것들이었지만, 워낙 박준형의 시원시원한 성격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저 웃어 넘기고 말았다. 그런 웃음이 새삼 반가웠다.

 

올해의 힘 유동근 
얼굴, 목, 몸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몸을 돌릴 땐 무겁고 천천히, 눈썹은 끄트머리만 살짝 움직인다. <정도전> 속 유동근의 모습이다. 카메라도 그의 얼굴을 한번 잡고 나면 별 미동이 없다. 줌도 없고 장면 전환도 없다. 세상이 다 고요한데, 오직 유동근의 연기만이 브라운관을 후려친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도 임금, 왕, 할거우다.” 함경도 사투리의 낯선 리듬과 억양으로 한마디했을 뿐인데도 번개가 때린 듯 정신이 번쩍 든다. 이것을 연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꼼짝없이 TV 앞에 앉아 처음 만나는 것처럼 새로운 이성계, 이전에 본 적 없는 유동근의 에너지에 당했다. 물론 극중 이성계는 참 많이도 집어 던지고, 뒤집어 엎고, 내리꽂는다. 하지만 유동근은 이렇게 힘을 쓰고 난 뒤 나직하게 내뱉는 대사와 눈빛으로 진짜 힘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올해의 기 이유리 
이유리는 지난 11월에 < GQ >와 인터뷰하면서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 신드롬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특별할 게 없다는 쪽이었다. “전 그냥 평소처럼 연기했을 뿐이에요.” 그녀가 ‘평소’처럼 연기 했을 수는 있어도 연민정은 평소에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악을 지를 땐 목에 몇 개의 핏대가 있는지 확인시켜주고, 눈을 부라릴 땐 흰자의 넓이를 명확히 보여줬으니까. 연민정은 화를 내거나, 질투하거나 음모를 꾸밀 때도 기를 죽이는 법이 없었다. 기죽은 한 해였기에 통쾌한 건 당연했다.

 

올해의 대장부 김부선 
김부선은 쫄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거지발싸개같이 굴어도 김부선은 뜻을 세워 말하고, 호탕하게 웃는다. 그 길을 막는 자, 오직 모자란 머저리들뿐이다. 올해 그녀는 서울의 한 아파트 난방 비리 의혹을 세상에 던지며, 그녀 자신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시종일관 그녀는 웃었지만, 그 미소는 사실 벼린 분노였다. 처절한 외침이었다. 남한에서의 2014년이라는 현상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바, 그녀는 올해 이 땅의 유일한 대장부였다. 아, 2004년 <딴지일보>와의 인터뷰를 어떻게든 찾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침이 꼴깍 넘어가도록 흥미진진한 시간을 약속한다.

 

 

올해의 시선집중 러버 덕
지난 10월 14일부터 11월 14일까지 석촌호수에 등장한 ‘러버덕’은 키가 16.5미터다. 비현실적인 크기의 고무 오리가 욕조가 아닌 세계 곳곳의 도심에 떠 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간질간질하고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손목을 꽉 잡고 있다가 갑자기 풀면 손바닥에 피가 돌 때처럼 요상한데 좋은 기분….. 플로렌타인 호프만의 ‘러버덕 프로젝트’는 공공미술로 기능하며 늘 사랑스러운 이슈를 만들어왔지만, 서울에선 ‘롯데월드몰’이라는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러버덕을 초청한 롯데월드몰의 안정성 문제, 이유를 알 수 없는 잠실 일대의 싱크홀 문제는 러버덕의 진심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물론, ‘러버덕 프로젝트’가 흥행했다는 사실이 롯데월드몰에 대한 불안 여론이 사라졌다는 것으로 해석될 순 없다. 대중들의 시선은 두 곳 모두로 향할 수 있고, 감시와 감상은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하지만 잠시나마 흩어졌던 감시의 시선을 다시 제대로 한 곳에 집중시켜야 할 때인 건 확실하다. 세상 만사를 잊은 표정으로 물에 떠 있는 러버덕이 어쩌다 이런 눈초리를 받게 됐을까? 어쩌면 이 작은, 아니 이 큰 오리에게도 한국은 버텨내기 힘든 땅은 아니었던 걸까. 일상의 비현실화로 즐거움을 주려던 오리는 우리나라가 요즘 경험하는 비현실 같은 일상은 주로 비극으로 끝났다는 걸 몰랐을 테지…. 한 달간의 호수 유람을 마친 러버덕은 이제 떠나고 없다. 떠나는 궁둥이에 대고 말해주고 싶다. “러버덕은 죄가 없쪄.”

 

올해의 연결고리 이서진과 옥택연 
방송에서 이서진처럼 말하는 법 하나. “~ 같은 소리 하고 있네”를 연발한다. 응용하자면 “잭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촬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방송에서 택연처럼 말하는 법 하나. “으음….” 매사에 어깃장부터 놓고 보는 이서진과 뭐든 묵묵히 몸부터 움직이고 보는 택연이 만난 프로그램 <삼시세끼>는 딱 맞는 톱니바퀴처럼 연결고리가 단단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중이다. 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서부터 예능 프로그램까지, 썩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두 사람은 계산을 한 것마냥 요즘 합이 좋다. 이 둘이 외친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나영석’

 

올해의 레이블 일리네어 
일리네어 레코즈엔 뮤지션이 세 명뿐이다. 그중 도끼와 더 콰이엇, 둘은 공동 대표다. 그리고 빈지노가 있다. 도끼와 더 콰이엇은 < Show Me The Money 3 >에 멘토로 출연했다. 그리고 그들의 멘티 바비를 우승시켰다. 방송 초반엔 독설로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유쾌한 유머로 호감형 캐릭터를 구축했다. “‘만담 콤비 도덕(도끼와 더 콰이엇의 앞글자를 따서)’이야말로 < Show Me The Money 3 >의 승자”란 말도 나왔다. 빈지노는 텔레비전 밖에서 활약했다. 프로듀서 피제이와 의기투합한 < Up All Night > EP의 함량은 물론이고 그가 입는 옷과 머리 모양까지도 화제가 됐다. 오죽했으면 래퍼 블랙넛의 ‘빈지노’란 곡도 나왔을까. 노랫말은 이렇다. “빈지노로 살아봤으면. 딱 10분 만이라도.” 일리네어 멤버들이 뭉쳐 낸 음반 <11:11>의 커버엔 롤렉스 시계 세 점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가사 속의 “얼마를 벌었다”는 액수는 점점 커진다. 도끼가 작년에 쓴 ‘Illionaire Gang’에선 “스물하나에는 1억, 스물둘엔 거의 2억”이라더니 올해 11월에 발표한 ‘치키차카초코초’에선 “저번 주에 번 돈만 자그마치 억에 달하지”라고 말한다. 물론 여전히 일리네어는 독립 레이블이다. 타협하지 않고도 충분히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렇게 2014년의 일리네어 레코즈는 그들의 시계처럼 빛났다.

 

올해의 멜로디 AOA ‘단발머리’ 
‘단발머리’ 이전엔 ‘짧은치마’였다. 콘셉트 대 콘셉트라면 ‘단발머리’는 ‘짧은치마’보다 몰입도가 덜할 수밖에 없었다. 딱 치마에 달린 지퍼를 올리는 안무와 손으로 머리채를 찰랑거리는 안무 사이의 간극만큼. 대신 ‘단발머리’엔 변화무쌍한 멜로디가 있었다. 덕분에 자기장 같은 그 선율에 끌려 내내 집중하게 되었다. ‘단발머리’의 구성은 퍽 극적이다. 노래가 시작되면 단숨에 후렴구에 도달한다. 채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다음 파트는 거의 예측이 불가능. 계단을 두세 칸씩 뛰듯이, 힘차게 전진한다. 그러다 충돌하듯 생경한 후렴구로 전환된다. 후렴구가 끝나면 멜로디는 다시 한 번 더 상승한다. “우우우우우우, 날씨 참 좋아요. 분위기 참 좋아요.” 이쯤 되면 목을 쳐들고 이륙하는 비행기의 꽁무니를 지켜보듯, 그 거침없는 흐름의 끝이 궁금해진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전주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렇게 ‘단발머리’의 멜로디는 ‘짧은치마’의 검정 스타킹처럼 진하게 남는다. “단발머리 하고, 그댈 만나러 가.” 더벅머리 남자들도, 단발머리 여자들도 그 멜로디를 한 번쯤 흥얼거렸다.

 

올해의 라디오 <황덕호의 재즈수첩> 
한국에서 재즈는, 무스를 바르는 것처럼 한 시절 유행한 적은 있어도 신을 이룬 적은 없다. 하지만 <황덕호의 재즈수첩>이 15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곤,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만 일하는 야간 청소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직하고 소박하게 뭔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황덕호의 재즈수첩>은 한 조각의 퍼즐이기 때문이다. 하나만 있으면 완벽해지지만, 하나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재즈는 분위기를 근사하게 만들거나 딴짓을 하는 차에 썰렁해서 틀어놓는 음악이 아니라 매우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음악이라는 주장이 꽤나 한가하게 들린다면, 여전히 제일 먼저 권해줄 만한 답은 <황덕호의 재즈수첩>이다.

 

올해의 회한 정성조
정성조를 잃은 것은 <겨울여자>, <어제 내린 비>, <깊고 푸른 밤>, <외인구단>처럼 한국의 상업음악 풍토에서 예술성을 지켜낸 증거를 잃는 것이다. 정성조와 이별한 것은 실용음악과의 창설자이자 교수였으면서 KBS 관현악단의 단장, 20년이 넘게 지속해온 열정적인 재즈 클럽의 색소포니스트를 떠나보낸 것이다. 정성조가 돌아오지 않는 한 한국의 재즈 ‘메신저스’는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올해의 블로거 이효리 
이효리의 블로그는 나쁘게 보자면 나쁘게 보이고, 좋게 보자면 좋게 보인다. 지나치게 평범하고 흔한 대상은 개인의 판단 이전에 있다. 개인의 성격, 가치관, 세계관, 취향을 자극하는 부분이 없어서 어떤 판단도 별 의미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효리 블로그는 평범해서 성공했다. 물론 유명세가 없었다면 이 평범한 블로그의 성공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뭐 새삼스럽나. 텔레비전만 열심히 보고, 연예인이 한 건 무조건 따라 하며, ‘착한’ 것이 비범한 것과 혼동되는 나라에서.

 

올해의 극단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 
김민구도 하승진도 없었다. 9월 농구월드컵에선 5전 전패. 모든 경기가 10점 차 이상의 패배였다. 한마디로 바닥을 쳤다. 그런데 발밑에 용수철이라도 있었던 걸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은 완전히 달라졌다. 무패로 결승까지 승승장구. 상대는 지난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한 이란이었다. 4쿼터 1분 10여초를 남기고까지 5점 차로 뒤졌지만, 결국 대표팀은 2점 차로 경기를 뒤집었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결승 4쿼터, 현주엽과 김승현의 마법 같은 활약이 떠오르는 순간. 이번엔 김종규와 양동근이 있었다. 12년 만의 금메달. “진짜 죽기 살기로 하지 않으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몇 시간 때문에 제 생애 동안 후회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기어이 이란의 장대 같은 골밑을 파고들어 덩크까지 꽂아 넣은 김종규가 말했다. 그는 올해 겨우 스물넷. 다음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는 4년이면 충분할 것이다.

 

올해의 감독 염경엽 
무표정, 선글라스, 건조한 목소리. 염경엽은 차가워 보인다. 홈런이 나오거나 극적인 승리를 거둬도 투박한 박수를 칠 뿐이다. 그런 냉정한 얼굴로 그는 절실함에 대해 말한다. 한국시리즈 4차전에 이긴 뒤에도 “절실함으로 승리했다”고 했고, 올여름 대주자 요원 유재신을 2군으로 내려보낼 때도 “절실함을 느껴오라”고 주문했다. 염경엽은 선수로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전 어렸을 때 너무 안일하게 살았어요.” 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절실하지 않아 실패했다고 말했다. 감독 자신이 절실했기 때문에 선수들도 절실해야 한다는 주문이 간혹 권위적일 수 있다면, 자기가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수들은 절실해야 한다는 주문은 좀 다르게 들린다.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의 맛도 겪어본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또한 그는 공부하는 감독이다. 직접 모은 선수들의 자료를 꼼꼼히 정리하고, 매일 밤 경기를 복기하다 새벽에 잠든다. 그런 감독이 말하는 절실함이란, 어쩌면 그런 숫자와 자료를 훌쩍 넘어서는 미덕일 것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염경엽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 패배한 이후, 인터뷰 중 눈물을 보였다. “정말로 우승을 하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그 끝내기 홈런보다 진한 장면이야말로, 그가 올해 치른 총 138경기 중 절실하지 않은 경기는 단 한 경기도 없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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