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자기만의 방

2014.12.23유지성

혼자 산다. 밤에 찾아오는 누군가를 열렬히 맞이하기 전에, 내 집을 다시 살폈다.

고백하자면 이런 일이 있었다. 여러 번. 여자가 돌아갔다. 집까지 같이 잘 왔는데. 문까지 열고 들어왔는데. 그러니까, 흥분은 복도까지만 있었다. CCTV가 있건 말건, 남의 집 문이 벌컥 열리건 말건 서로 엉겨 붙어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대망의 집에 들어선 뒤, 여자는 다시 짐을 챙겨 나갔다. 변심은 세 종류였다. 섹스조차 하지 않고 돌아서는 여자, 섹스를 마치고 부리나케 나가는 여자, 자다가 슬며시 사라지는 여자.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이제야 술이 깼나 보군. 알몸으로 있다 보니 부끄러워졌나? 어쩌면 통금시간이 있을지도. 그런데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의심이 생겼다. 혹시 집 때문인가? 이 집에선 섹스가 안 내키는 여자, 간신히 섹스까지만 할 수 있는 여자, 숙면을 취할 수 없는 여자.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딱히 실험을 감행하기도 어려웠다. 가구 위치를 바꿔볼까? 뭘 더 사들일까? 이불을 갈아볼까? 그럴 바엔 이사를 가는 게 나았다.

그래도 원인은 알아야지. 혼자일 땐 별 문제 없어 보이던 집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간단히 자문하자면, 이 집은 섹시한가? 모르겠다. 독립하기 전, 내 집이 어떤 모양이어야 한다고는 상상해보지 않았으니까. 집을 예쁘게 꾸며야 한다는 생각보단 집에서 나설 때 뭘 입어야 한다는 고민이 먼저였다. 집엔 가족과 가까운 친구를 제외한 누구도 들어올 일이 없었다. 간혹 오래 만난 애인 정도가 찾아왔을까? 그렇다고 굳이 거기서 섹스를 하진 않았다. 콘돔도 서랍 속에 꽁꽁 감춰두는데 무슨. 외출 전 거울을 보듯, 여자가 떠난 집을 살폈다. 눈에 들어오는 게 몇 가지 있었다. 일단 전면 통유리 창. 혼자 사는 작은 방은 빛이 잘 들어올 때 비로소 생기를 띠었다. 그래서 커튼도 달지 않고 그대로 뒀다. 그렇지만 자다가 슬며시 사라지는 여자 중엔 그 큰 창이 거슬리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창문 너머엔 높은 가로등이 있었다. 가까운 애인 사이가 아니라면, 서로의 민얼굴은 희미하게 보이는 쪽이 낫다. 쨍한 형광등도 너무 밝은 것 같았다. 켜두고 있으면 무심할 수 있지만, 스위치를 넣는 순간은 극적으로 민망할 수도 있겠군. 화장실 문을 열면 곧바로 침대가 보이는 건 또 뭐람. 씻고 나오면 남녀 공히 잠시 숨을 수 있는 순간과 공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고 보니 현관문을 열어도 곧바로 침대부터 보였다. 섹스조차 하지 않고 돌아서는 여자는 그걸 보고 정신이 번쩍 들고 마는 건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집에 가자”고 했지, “섹스를 하러 가자”고 하진 않았으니까. 그런 식으로 하나씩 따지다 보니 결국 원룸의 구조 자체가 문제인 것 같았다. 아니, 원룸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듯했다. 혼자 사는 남자, 독신, 싱글 같은 그럴싸한 말과 원룸이란 말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다. 하다못해 모텔은 낭만적이진 않더라도 음탕하기라도 하지. 하얀 시트를 더럽히거나 방 안에서 못된 짓을 해도 거기를 빠져나오면 툭툭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결론은 이사. 당연히 1백 퍼센트 섹스를 위해서는 아니지만, 섹스 생각을 아예 안 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일종의 도피였다. 마침 계약기간이 끝날 무렵이었다. 어차피 방 두 개를 채울 수 있을 만큼의 세간은 없다. 그러니 방은 여전히 하나였다. 새로 옮긴 집의 가구는 온통 하얀색이다. 우습게도, 잘 모르겠으면 흰 셔츠를 입으라는 교훈을 집에도 적용해봤다. 청소를 자주 하게 되는 효과가 생겼다. 창문엔 꼭 맞는 크기의 블라인드를 달았다. 현관을 열면 침대 대신 그 블라인드가 보인다. 형광등은 조도를 확 낮췄다. 그래서 달라졌나? 글쎄. 이 집을 찾은 여자들도 달라졌으니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표본값이 다른 통계를 비교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대신 새집에 뭘 자꾸 사들이기 시작했다. 형광등, 통유리, 커튼이 아니라 수세미의 색깔, 비눗갑의 모양, 빨래 바구니의 정렬 상태를 고민하게 됐다. 그걸 여기 뒀다 저기 뒀다 옮겨본다. 그러다 제자리를 찾는다. 그런 것들을 보며 집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친한 친구에게 더 관심을 갖듯, 집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보살피게 됐다. 과연 그때 돌아간 여자들이 지금 찾아온다면 어떨까? 역시나 모를 일. “집에 가자”는 말을 아무에게나 하진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다. 대신 예전보다 거기서 “집”을 좀 더 힘주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연말엔 트리라도 만들어볼까? 침대에서 빨간 코를 달거나, 여자에게 산타클로스 모자를 씌울 수도 있을 것이다. 긴 양말도…. 모닥불이 떠오르는 크리스마스 음반도 한 장 사두면 좋겠지. 긴 겨울의 새벽을 지새울 술은 넉넉하다.

    에디터
    유지성
    일러스트레이션
    조인혁(JO IN HY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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