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아재를 경계하라

2016.04.26GQ

한국 중년 남자를 통칭하는 말은 아저씨였다. 요즘은 아재가 더 흔한 말이 됐다. 아재는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표준어다. 여기에 ‘개그’가 붙어 귀여운 뉘앙스까지 생겼다. “과자가 자기소개를 하면 전과자”라거나, “딸기가 회사에서 잘리면 딸기시럽”이라는 식의 80년대 유머 사전식 우스개가 아재 개그를 만나 되살아났다. 여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아저씨를 좀 귀엽게 삼촌팬이라 부르기 시작한 지도 이미 좀 됐다. 여 기에 ‘개저씨’가 맹렬한 기세로 가세했다. 다분히 공격적인 비속어다. 이른바 ‘개저씨 체크 리스트’를 보면 그들의 존재가 분명해진다. 식당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에게 반말한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성적 농담을 한다, 직장 후배에게 업무 외 개인적인 일을 시킨 적이 있다…. SBS 스페셜 < 아저씨, 어쩌다보니 개저씨 >가 제시한 몇 가지 목록의 일부다.

아저씨와 아재, 삼촌과 개저씨의 그 풍성한 예시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꺼번에 발견 할 수 있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은 이미 중년 남자가 장악해 패거리를 이뤘다. 그 패거리 안에서 여자는 쉽게 배제되거나 성적으로 대상화된다. JTBC < 냉장고를 부탁해 >에 현아와 제시가 출연했던 에피소드는 여러모로 상징적이었다. 김성주는 “야, 우리가 이런 시간을 가져도 되나 모르겠어”라는 말로 운을 뗀다. 이어 말한다. “손만 까딱해도 섹시함이 묻어나는 현아 씨인데 (중략) 약간 좀 그, 어… 섹시함이 묻어 날 수 있도록 우리 현아 씨한테 잠깐 좀 그 몸 동작을 배워보는 시간을 해보죠.” 순간 제시가 말했다. “근데 여기서 왜 춤을 춰요 갑자기?” 뒤에서 현아가 받았다. “맞아요.” 안정환이 김성주 옆에서 말했다. “배워서 요리할 때 접목시킬 수 있으니까.” 현아는 ‘빨개요’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모두 중년 남자인 여덟 명의 셰프와 예능을 장악한 중년 남자 김성주와 안정환이 현아를 둘러싸고 흥겨워서 웃었다. 자막에 ‘흐뭇’이 뜰 때, 제시가 외치는 말도 자막 처리됐다. “오 마이 갓.”

SBS <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에서 서장훈과 김구라가 맞붙는 장면도 같은 맥락이었 다. 자신을 무용수로 키우고 싶어 하는 어머니와 딸의 갈등을 다룬 에피소드에서 서장훈은 단언했다. “본인의 의지만으로도 1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정말 (따님이) 세계적인 무용수가 되길 원하신다면 한번 내버려 둬보세요. 만약 본인이 계속 먹고 살찌고 해서 안되고 2등하고 3등하고 그렇게 된다, 그럼 세계적인 무용수가 안 될 사람이에요.”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김구라는 농구와 무용은 다른 운동이라면서 반박했다. “서장훈씨에게는 뭐가 있냐 하면, 자기는 부모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잘했다는 일종의 자기 과시가 있는 발언이에요. (중략) 이거 아주 오만한 발상이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운동선수로서 정점을 경험한 중년 남자는 경험을 바탕으로 단언하듯 조언했다. 예능인으로서 또 다른 정점에 있는 중년 남자는 그를 윽박질렀다. 웃음이 터졌다.

스탠포드 대학 구세웅 교수가 영문 뉴스 웹 사이트 < 코리아 엑스포제 >에 기고한 글, ‘개저씨는 죽어야 한다 Gaejeossi Must Die’에는 이런 단락이 있다. “많은 한국 ‘아저씨’들이 창피를 무릅쓰고라도 이성을 잃어버리는 광경을 너무 자주 목격했다. 이것이 일반적인 개저씨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신으로 여기며 우주의 중심에 두기 위해 이상하고 잘못된 질서를 남에게 강요하고,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앞에서 막무가내로 구는 사람.” 개저씨는 전혀 특이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너무 흔하게 벌어지는 일, 아재나 ‘개저씨’의 실상은 그저 불특정 다수의 한국 아저씨라는 뜻이다.

지금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한 아저씨들은 한국의 중년 남자로서, 아재와 ‘개저씨’ 사이에서 이런 폭력을 우스개로 만드는 데 충실하다. 적극적으로 공헌한다. 그게 그런 건 줄도 모르고 패거리 안에서 안전하게 웃는다. 무심코 같이 웃으면, 폭력이 폭력인 줄 모르고 지나치면 누군가는 순식간에 같은 사람이 된다. 속하고 싶지 않은 패거리에 무심코 속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옳고 그름의 판단을 모호하게 만들 때 아재는 전혀 귀엽지 않다. 웃음마저 위험하다.

    에디터
    정우성
    일러스트레이터
    O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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