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너무 준비됐어요’ 원더걸스 혜림

상의는 H&M.

오늘 음악방송 1위 하자마자 인스타그램 업로드했죠? 단발머리 캐릭터 그림을 하나 올렸던 걸요? 우연히 문구점에 갔다가 본 엽서를 찍어둔 거예요. 약간 정색하면서 애교 있는 얼굴? 그냥 되게 저 같았어요. 좋아하지만 잘 표현 안 하고, 오히려 째려보면서 장난치는 그런 거….

혜림이 정말 그래요? 네. 조금 독특하고 엉뚱하고 좀 새로운 표현을 좋아하는? 근데 일을 할 때는 일단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잘 따라요. 최대한 상대 의견을 따라주려고 해요. 계속 의견이 없다가 한 번 의견을 내는데 그게 잘 통하는 그런 거.

예를 들면요? 이번 곡에 “언제 널 떠나버릴지 몰라 Tell me why, 뭐야” 라는 부분이 있어요. 여기 중간 부분에 영어 단어 세 글자가 들어가야 되는데, 다들 잘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제가 “텔 미 와이” 라고 이야기하니 다들 좋다고 해서 들어갔어요. 약간 고춧가루 넣는 느낌? 양념?

고춧가루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단어인걸요? 아뇨. 저는 긍정적으로 쓴 거예요! (웃음) 전 되게 생각 많이 하고 되게 조용히 있다가 다른 사람들 얘기 다 듣고, 얘기해도 될까 말까 생각하다가 의견을 내는 편이죠.

이번 앨범을 준비할 때도 혜림은 의견을 내기보단 따라간 쪽인가요? 각자 아이디어를 가져와요. 이번엔 특별히 멤버별로 팀을 나눠서 준비했어요. 저랑 선미랑 ‘I feel you’를 함께 작업했던 작곡가 오빠랑 한 팀, 그리고 유빈 언니와 예은 언니와 다른 작곡가 오빠가 한 팀이요. ‘I Feel You’ 앨범 때는 작곡가 오빠랑 저랑 1대1로 했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멤버랑 같이 했어요. 근데 솔직히 저는 ‘I Feel You’ 때 1대 1로 작업한 게 더 맞았던 거 같아요. 제가 책임감을 더 많이 느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조금 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상의는 올세인츠.

다른 사람 의견 존중하다가 하고 싶은 말 못하고, 혼자 하면 잘하는데 같이 하면 눈치 많이 보는 스타일? 네, 맞아요, 맞아요. 원래 그랬어요. 애기 때부터. 진짜 불편해요. 무슨 얘기를 했는데 상대방은 왠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거 같고, 그러면 그냥 내가 맞춰주는 게 마음이 편하고. 괜히 얘기했다가 그 사람 마음에 안 들어 서로 불편해지는 거보다는 낫다…. 되게 답답해요.

그런 성격 때문에 대중 앞에서 자기를 자꾸 다그쳐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계속 뭔가를 어필해야 하는 직업인데, 나는 계속 숨고 싶으니까…. 그래서 항상 예능 프로그램 하고 싶다, 하고 싶다 하면서 막상 나가면 그 성격이 너무 나와요. 그래서 예능 끝나고 집에 오면 너무 기 빨리고 힘들어요. 집에 오면 “나 예능 진짜 아닌 거 같아” 맨날 이러고 있고. 근데 또 기회가 오면 하고 싶다고 해요. 저도 저를 모르겠어요.(웃음)

그런 성격 때문인지 6년 전에 원더걸스 멤버로 새로 합류했을 때, 어딘지 모르게 대중들 앞에서 낯을 가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도 어색했는데 대중들은 얼마나 어색했겠어요. 너무 급작스럽게 들어오게 됐고, 그때부터 선미가 했던 파트를 내가 하니까, 나도 불편하지만 멤버들과 팬들한테 미안했어요. 왜냐면 보던 그림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선미 파트 안 부를게요”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정말 ‘go with a flow’, 흘러가는 대로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해줄 거야, 라는 그런 생각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진짜 여기까지 오게 된 거 같아요.

그 흐름 위에서, 언제 처음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원더걸스로서? ‘I Feel You’ 할 때부터요. 선미 들어오고, 그렇게 채워진 이 그림도 새롭잖아요. 그래서 뭔가 새로 데뷔한 느낌. 누가 빠져서 ‘replace’된 느낌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그룹 같은 느낌. 되게 좋았어요.

이제 원더걸스에 완전히 녹아들었는데, 또 다른 고민도 생겨날 것 같아요. 요즘은 아이돌 멤버라도 각자 개인 활동을 뚜렷하게 하니까요. 그건 항상 갖고 있는, 매일매일 하는 고민이에요. 아이돌 생활을 평생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언젠가는 나도 홀로 서야 하는데, 어떤 무기가 있을까? 아직 내가 뭘 해야 할지에 대한 완벽한 확신이 없는 거 같아서…. 지금은 멤버들이 옆에서 든든하게 있어주지만, 만약 혼자 서야 되고 결정을 해야 하면 뭐든 ‘오케이’ 하는 내가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상의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하의는 쟈니헤잇재즈.

그 고민 끝에 뭐가 보여요, 요즘? 일단 대학 진학을 하고 싶고, 연기 쪽으로도 생각을…. 풋…. (웃음)

왜 웃어요? 사실 연기에 대한 마음은 좀 쑥스러워요. 열정이 있는데 잘 못하는 거 같으니까. 내 안에 천사 혜림과 다크 혜림이 항상 공존하는 거 같아요. 작사, 작곡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냥 홍콩에 살던 평범한 혜림이로 돌아가는 것도 생각해봐요.

정말요? 네. 선예 언니도 그랬잖아요. 언니도 그랬으니까, 나도 그래도 돼.(웃음)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혜림은 줄곧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해온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그리고 생각해봤는데 저 징크스가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어떤 일을 싫어하면 그게 그대로 저에게 와요. 어렸을 때 랩을 싫어했어요. 멜로디만 듣고 싶어서 랩 부분 다 넘기고요. 그랬는데 연습생 때 제가 랩을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래퍼 역할도 하고 있고…. 칭찬받는 건 노래보다 랩이고…. 또 한번은 저 친구는 왜 눈썹 옆에 점이 있을까, 너무 신경 쓰인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저도 양쪽에 점이 있더라고요.(웃음)

불행해요? 아뇨.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주도적으로 인생을 꾸려갔으면 아마 지금 홍콩에 돌아가 있을 거예요. 연습생 시절 너무 힘들었으니까요. 그랬으면 원더걸스로 활동한 것들, 다 없었던 일 되는 거잖아요. 지금까지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진 않았어도 항상 순간순간 주어진 기회들, 상황들 속에서 인생이 꽤 괜찮은 방향으로 바뀌는 걸 봤어요. 아직 앞길이 막막하긴 하지만, 기대가 돼요.

벌써 밤 12시가 넘었네요. 새벽에 일어나야한댔죠? 바쁜데, 좋아요. 저는 새벽에도 알람 울리면 벌떡 일어나요. 저는 너무 준비됐어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몸을 일으켜요? 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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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Eat, Drink,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