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알랭 파비앙 들롱이 발렌시아가와 만났을 때

2019.01.02GQ

알랭 들롱의 아들이지만, 나는 알랭 파비앙 들롱으로 따로 불리고 싶다.

네이비 컬러 베스트, 집업 스웨트 셔츠, 체크 셔츠, 치노 팬츠, 트랙 트레이너 스니커즈, 모두 발렌시아가.

 

체크 패턴 3D 코트, 스트라이프 셔츠, 체인 목걸이, 부츠컷 데님 팬츠, 블랙 부티, 모두 발렌시아가.

 

스트라이프 셔츠, 만국기 패턴 셔츠, 체인 목걸이, 로고 반지, 슬림 팬츠, 워커, 모두 발렌시아가.

 

블루 셔츠, 로고 패턴 패딩 셔츠, 체인 목걸이, 블랙 팬츠, 워커, 바자 쇼퍼 XL 백, 모두 발렌시아가.

 

3D 오피스 재킷, 네이비 셔츠, 로고 반지, 모두 발렌시아가.

 

3D 오피스 재킷, 네이비 셔츠, 로고 반지, 모두 발렌시아가.

 

울 코트, 스트라이프 셔츠, 모두 발렌시아가.

 

오버사이즈 퀼팅 코트, 스트라이프 셔츠, 부츠컷 데님 팬츠, 블랙 부티, 모두 발렌시아가.

 

오버사이즈 터틀넥 셔츠, 체인 목걸이, 로고 반지, 레더 팬츠, 모두 발렌시아가.

 

3D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 스트라이프 셔츠, 체인 목걸이, 부츠컷 데님 팬츠, 페이턴트 부티, 모두 발렌시아가.

 

오버사이즈 베스트, 블루 체크 패턴 셔츠, 치노 팬츠, 워커, 모두 발렌시아가.

오늘 몇 시에 일어났어요? 7시 조금 넘어서요. 평소보다 굉장히 일찍 일어났죠.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힘들었어요. 일어나자마자 메트로를 타고 콜라를 마시며 달려왔죠. 콜타임보다 조금 늦었네요.

굉장히 지겨운 질문일 것 같지만 유명한 부모를 두었다는 건 어떤 건가요?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을 거예요. 어렸을 때는 별생각이 없었지만요. 좀 자라면서 그런 타이틀이 싫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들이 겉모습이나 이름만으로 아주 버릇이 없겠지란 식으로 말하는 편견이었어요. 프랑스 영화계에서 꽤나 유명했던 아버지의 좋지 않은 성격 때문이죠. 생각보다 안 좋은 기억이 훨씬 많아요. 그래서 어릴 적 방황도 많이 했고요. 하지만 유명한 부모님 덕에 가능한 것도 많았죠. 인정해요.

얼굴 말고, 또 아버지와 닮은 부분이 있나요? 글쎄요. 얼굴은 정말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성격과 가치관은 전혀 달라요. 아버지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이 정도로 마무리할게요. 완전히 다르거든요.

어떤 유년기를 보냈나요? 청소년 시절 철없는 행동을 많이 했죠.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을 때 부모님은 저를 집에서 쫓아냈어요. 6년 전에는 갈 곳이 없어 길에서 살았고요. 8시간 내내 목놓아 울어본 적도 있어요. 상상이 되나요? 아버지의 헬리콥터를 타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길에 나앉았으니 어땠겠어요. 혼자 햄버거 하나도 못 사던 형편이었으니까 그땐 힘들었죠. 그런 시간 때문에 오늘날 제가 있기도 하지만요.

어릴 적 꿈은 뭐였어요? 조종사? 대통령? 와, 정말 바로 맞췄는데요? 놀라워요. 아버지의 헬리콥터가 있었다고 했죠? 그래서 자주 헬리콥터를 타고 다녔는데요, 그 조종사가 너무 멋져 보였어요. 그때부터 꿈은 헬리콥터 조종사였어요.

정말요? 부모님도 그 꿈을 지지했나요? 조종사와 전혀 상관없는 모델, 배우가 된 당신인데 말이죠. 아뇨. 헬리콥터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아버지는 항상 배우를 하라고 하셨어요.

첫 커리어가 뭐죠? 런웨이 모델? 커버 보이? 2001년 티브이 시리즈 <파비오 몬탈 Fabio Montale>? 아뇨, 그 <파비오 몬탈>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 때, 아주 어렸을 때 찍은 거니까요. 제 의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죠. 첫 커리어는 모델이 좋을 거 같아요. 모든 게 굉장히 빨리, 한꺼번에 이루어졌어요.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죠. <보그 옴므> 커버 촬영은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우연히 패션계로 발을 디디게 된 거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패션계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하하. 오늘 촬영이 좋았던 건 모든 스태프가 굉장히 프로패셔널했어요. 모든 패션 촬영이 이렇다면 제 생각도 달라졌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이유도 모른 채 몇 시간 동안 기다리거나, 슈팅 전에는 파티나 패션쇼에서 뭘 했는지 등 지루한 이야기로 한참 수다를 떨어야 하거든요. 제 성격과는 맞지 않더라고요. 영화도 특정한 상하 관계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곳은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패션 쪽과는 많이 다른 거 같아요.

2013년에 안토니 곤잘레스의 첫 단편영화 <유 앤 더 나잇 You and the Night>에 출연했었죠? 그 영화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하지만 그다음에 온 기회들을 제대로 못 해냈죠. 지금 생각하면 철없고 어리석었던 것 같아요. 너무 어렸고 잘 몰랐던 거죠. 그 기회들이 얼마나 소중한 거였는지.

2016년엔 디올 옴므의 캠페인 모델이었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디올 옴므에서 전화가 왔을 때예요. 저녁 8시쯤으로 기억해요. 잠옷을 입고 소파에 누워 지루한 티브이를 보고 있었죠. 에이전트를 통하지도 않고 제 휴대 전화로 연락이 왔더라고요. 저와 캠페인을 찍고 싶다며. 내심 아무렇지 않은 듯 통화를 한 후 소파 위를 방방 뛰며 환호성을 질렀죠!

옷 좋아해요? 평소에는 편한 옷을 입어요. 아침에 입고 온 것처럼 청바지에 티셔츠, 스니커즈, 그게 다예요. 하지만 공항 갈 때는 꼭 수트를 입어요. 수트로 차려입고 가면 묻지도 않고 꼭 프라이어리티 라인으로 안내하더라고요. 하하. 한번 해보세요. 대우가 다르다니까요. 평소 편안한 차림으로 다닐 때는 아무도 저를 모르는데 수트를 입으면 대부분 누군지 알아봐요. 신기하죠.

요즘 열중하고 있는 건 뭔가요? 제 자신요. 철없던 시절은 좀 지났고 이제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은 잘 안 하는 것 같던데. SNS 별로 안 좋아해요? 트위터는 몇 년 전에 가입해서 한마디 썼다가 난리가 났었어요. 그 이후로는 절대 안 해요. 작년에 제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고작 200명 이었다는 거 아세요? 한동안 아무 이미지도 올리지 않을 때도 있고 하루에 몇 개의 스토리를 올리기도 하죠. 제 기분에 따라서요. 팔로워 수를 올린다거나 그걸로 혜택을 받으려는 마음은 없어요. 제 여자친구는 엄청난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데 인스타그램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더군요. 제 성격에는 절대 불가능해요.

타투 사진을 봤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손목에 있는 커다란 타투는 이전 여자친구의 이름을 가리기 위한 모티프죠. 그래서 타투는 신중하게 해야 해요. 가장 최근에 한 ‘AD’는 가족 이니셜 같은 거예요. 이제 타투는 조금 자제하려고요. 아무래도 한정된 이미지가 되는 것 같아서요.

파리에서 살고 있죠? 네. 전에는 스위스 제네바에 살았어요. 이전 여자친구와 살았던 집은 엄청나게 꾸미려 노력했는데 헤어지고 나서 소용없는 일이란 걸 깨달았죠. 사실 여자친구 집에서 자주 지내다 보니 제 집은 굉장히 단출해요. 평범함을 넘어 스타일이라고 부를 것도 없이 아주 심플해요. 필요한 건 오직 편안한 소파와 커피, 담배 그리고 넷플릭스를 볼 수 있는 스마트폰이면 충분해요.

파리가 좋은 이유는 뭐죠? 파리만큼 아름답고 살기에 불편한 도시도 없죠. 하하. 하지만 막상 다른 도시에 오래 머물다 보면 파리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어요. 문제 투성이인 메트로, 기차역 앞에는 담배와 대마초를 파는 사람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파리에 돌아오면 “아, 그래 이런 게 파리야. 네가 무척 그리웠어!”라고 말하죠. 이상하죠? 아직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의 매력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파리를 찾는 이유겠죠.

그럼 파리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어딘가요? 센 강변요. 가끔 혼자 몇 시간씩 강변을 따라 걷곤 해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에요.

곧 영화 <윈 저네스 도헤 Une Jeunesse Dorée>가 개봉하죠? 드디어 1월에 개봉해요. 순수했던 젊은 커플이 당시 유명했던 나이트클럽 팔라스에서 인생을 즐기는 나이 많은 커플을 만나며 생기는 에피소드예요. 소용돌이처럼 변해가는 그들의 인생 이야기죠. 배경은 1979년이고요. 저는 거기서 주인공의 친구 역할을 맡았어요.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작업할 수 있어 영광이었죠.

영화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이 있나요? 사실 영화마다 달라요. 철없던 시절에는 시나리오 한번 읽지 않고 촬영장에 간 적도 있어요. <윈 저네스 도헤>는 에바 이오네스코 Eva Ionesco 감독이 우리를 통해 진정한 오늘날의 프랑스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했어요. 그런 그녀의 생각이 저를 움직이게 했죠. 그리고 1월 내내 찍을 영화는 먼저 캐스팅된 친구가 직접 출연을 권유해 선택하게 되었어요.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 역시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2월에는 직접 쓴 소설까지 나오던데.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어요. 하지만 많은 출판사가 저와 제 아버지에 대한 그렇고 그런 가십에만 관심이 많았죠. 그래서 한동안 흥미가 없었는데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스톡 Stock 출판사에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승락을 하더라고요. 제목은 <드 라 하스 데 세니어 De La Race Des Seigneurs>. 이 소설은 악셀 델발 Axel Delval이란 유명한 아버지를 둔 열여덟 살 소년이 아버지와 겪는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 책이에요. 짐작하겠지만 제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쓰기 시작한 소설이죠. 물론 모든 게 다 사실은 아니지만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어요. 제가
쓴 글로 직접 영화도 만들고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물론 제가 좋아하는 배우, 영화, 감독도 있지만 그들과 꼭 일을 하고 싶다거나 특정한 배역을 맡고 싶진 않아요. 그만큼 활짝 열려 있어요. 아직 유명했던 아버지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오늘도 아버지에 대한 질문은 한두 개밖에 안 했잖아요? 전보다 훨씬 적어졌어요. 누구의 아들이라기보다 그냥 알랭 파비앙 들롱 자체로 궁금해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요. 지금은 아주 낮은 언덕이겠지만 조금씩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산처럼 점점 높게 만들어 나가고 있는 거죠. 언젠가 사람들이 나만의 산을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에디터
    방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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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ain Fabien De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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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usuke Taniguchi at B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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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 Kim at Wall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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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Rhee J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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