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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덕들을 위한 좀 유별난 맥주

2019.03.17GQ

크고 둥근 와인 잔에 따라 마시고 싶은 좀 유별난 맥주가 나타났다. 시큼한 맛이 불쑥 치고 들어오고 어지럽도록 향긋하다.

오드 괴즈 틸퀸
2009년에 처음 맥주를 생산했으니, 벨기에에서 가장 역사가 짧은 람빅 브랜드이다. 통계유전학 전공자인 피에르 틸퀸은 눈앞에 숫자보다 맥주가 더 어른거려 직업을 아예 바꿨다. 람빅(자연 발효 맥주) 중에서도 요즘 자주 보이는 종류인 ‘괴즈’이며, 내추럴 와인, 특히 펑키한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괴즈의 한발 나아간 ‘쿰쿰한’ 마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림 크리스털 싱크
내 집 없이, 다른 양조장에 위탁 양조를 하며 ‘집시 브루잉’을 하던 그림이 뉴욕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괴짜 장인’ 같은 맥주들을 만든다. 크리스털 싱크는 세종 Saison 스타일 맥주에 얼 그레이의 풍미를 더했다. 베르가못의 향이 열대 과일의 향과 자유분방하게 엉킨다. 이 양조장이 매주 붙여두는 화려한 레이블을 구경하는 재미도 풍성하다.

캐스캐이드 상 로얄 2016
캐스캐이드는 아메리칸 와일드 에일(야생 효모를 쓴 에일 맥주)의 개척자라고 부르는 것이 머쓱하지 않은, 포틀랜드의 브루어리다. 상 로얄은 오레곤의 피노누아 포도를 오크통에 숙성한 맥주에 들이붓고 22개월을 더 숙성시켰다. 크게 한 모금 마시기보단 와인 잔에 따라 향을 음미하는 게 좋다. 저절로 ‘이것은 와인인가, 맥주인가’를 되뇌이게 된다.

 

슈퍼스티션 초콜릿 마리온
꿀과 물로 만든 꿀술을 ‘미드 Mead’라고 부른다. 포도주보다 역사가 오래된 걸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야 발굴되었고, 크래프트 맥주를 좋아하는 이들의 응원으로 가속페달을 밟는 뜨거운 술이다. 이 미드는 아리조나의 ‘슈퍼스티션’에서 만들었고, 베리류와 카카오를 더해 맛의 층을 높게 쌓았다. 작은 와인 잔에 조금씩 마셔야 더 맛있다.

알빈 퀴베 소피 루바브
사워 맥주 중에서도, 두 눈이 질끈 감기는 ‘사워’한 맛을 찾는다면 이 양조장을 알아두면 좋다. 향만 맡아도 침이 줄줄 흐르는 듯한 이 벨기에 맥주는 프랑스 오베르뉴 지역의 한 치즈 공장에서 채취해온 효모를 사용해 일반 발효만 해도 신 맛이 잔뜩 첨가된다. 퀴베 소피는 보르도 와인을 담갔던 배럴에 맥주를 숙성시킨 뒤 생 루바브를 넣어 향을 더한다.

드 돌레 오르비어
‘드 돌레’는 벨기에 양조장으로 ‘미친 양조가’라는 뜻을 이름으로 내세웠다. 병목에 리본을 두르고 ‘오르비어 맨’이라고 부르는 캐릭터를 레이블에 그려 넣은 것만 봐도 이름이 이해된다. 락토 균을 넣어 만든 맥주라 요구르트처럼 시큼한 맛이 매력인데, 병채로 서늘한 곳에 두고 몇 년 더 발효시킨 뒤 마시면 묵직한 와인처럼 놀라운 한 방을 날린다.

 

부아홍 비반테 드 테이블 스페시알 비터
내추럴 와인 수입사에서 수입하는 일종의 ‘내추럴 맥주’다. 프랑스에 있는 양조장에서는 내추럴 와인을 만들 듯, 인공 첨가물을 최소화해 맥주를 만든다. 광귤이 들어가는 맥주라 코에서부터 귤 향이 즉각적으로 퍼지고, 입 안에서는 귤 껍질의 기분 좋은 쓴맛이 천천히 감돈다. 와인 잔에 따라 다양한 맛의 음식과 함께 내추럴 와인처럼 즐기기 좋다.

업라이트 오스티나토 세종
포틀랜드의 이름난 양조장 업라이트에서 만드는 향이 좋은 세종 맥주다. 맥주 양조 과정에 레몬그라스를 첨가해 와인 잔 안에서 동남아 마사지 부티크에서 자주 맡았던 향이 피어오른다. 한 모금 마시면 저절로 눈이 감기면서 기분마저 이완된다. 베르무트 오크통과 올드톰 진 오크통에 숙성한 맥주도 함께 블렌딩해 오묘하고 복합적인 맛이 완성됐다.

구스아일랜드 줄리엣
우리에게도 친숙한 시카고의 크래프트 양조장인 구스 아일랜드에서 만드는 사워 시스터즈 중 하나. 이 시리즈는 병 모양부터 라벨까지 누가 봐도 그냥 와인 같지만, 마셔보면 야생 효모를 사용한 벨기에 스타일의 맥주가 틀림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을 담갔던 오크통에서 숙성시켰으며 블랙베리와 호밀 맥아로 맛의 깊이를 더했다.

 

라트라페 위트 트라피스트
밀맥주 카테고리에 속하며, 네덜란드 수도원에서 만드는 맥주인 ‘트라피스트’이기도 하다. 전 세계 11군데 트라피스트에서 만드는 맥주 중 밀맥주는 이것이 유일하다. 와인 잔처럼 둥그런 전용 잔에 마시는 대표적인 맥주 중 하나다. 묵직하게 가라앉기보다는 과일을 확 씹은 듯 향이 상큼하게 퍼지는 맥주라서 날이 따뜻해질수록 더 생각난다.

설레임
부산 송정에 있는 와일드 웨이브 브루잉에서 만드는 한국 최초의 사워 맥주이자 국내 크래프트 맥주를 대표하는 가장 대중적인 맥주이기도 하다. 크래프트 펍에서 인기를 끄는 동안 레시피는 계속 진화했고 지난해 초, 병맥주로 드디어 날개를 달았다. 침샘을 자극하는 새콤한 맛과 함께 부드러운 탄산도 사이사이 존재감을 발휘한다.

듀체스 드 부르고뉴
와인처럼 마시는 맥주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벨기에 서부 플랑드르 지역의 플랜더스 레드 에일이다. 듀체스 드 부르고뉴는 짠맛과 단맛, 시큼한 맛과 떫떠름한 맛, 과일 향과 오크 향이 뒤섞이는 복합적인 맥주다. 딱 한 잔의 맥주로 긴 밤을 보낼 일이 있다면, 맥주 하나로 음식의 맛과 향을 확 돋우고 싶다면, 가장 큰 와인 잔에 이 맥주를 따른다.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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