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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버티는 게 저의 가장 큰 의지죠"

2020.10.22GQ

이준혁은 언제나 그러했듯 걸어갈 뿐이다. 좋아하고, 상처받고, 응원받고, 또 좋아하고. 그래서 버티게 되는 길을.

니트 베스트, 펑첸왕 at 분더샵. 와이드 팬츠, 르메르.

실크 셔츠, 김서룡 옴므. 와이드 팬츠, 디벨. 블로퍼, S.T. 듀퐁.

화이트 수트, 베일가.

베이지 터틀넥, 와이드 팬츠, 모두 르메르.

<비밀의 숲 2> 애청자라면 모두 가장 먼저 이걸 물을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에 대체 뭐라 한 거죠?” 말할 수 없어요.

예상은 했지만 정말 말 안 해주시는군요. 시즌 3로 이어질 것 같은 기대감을 주는 장면이었잖아요. 시즌 3가 진행될지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다음 시즌이 만들어진다는 건 굉장히 많은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 거니까.

대본에 대사가 있었어요? 대본은 저희가 본 딱 그 장면 그대로였어요. 따로 대사가 있지는 않았어요. 애드리브로 이렇게 말해도 될까 작가님과 얘기했더니 “어, 그거 해도 되겠네요”라고 하셔서 했는데, (그 대사를 했을 때) 현장에서는 빵 터졌어요. 결과적으로는 대사가 안 나가고 적절히 편집되어서 나간 게 더 나았던 것 같아요.

더 궁금하게 만들어요, 지금. 다 그렇죠, 뭐. 하하하.

목소리가 굉장히 다정하네요. 그런 말 많이 듣죠? 제 목소리가 그래요? 몰랐어요.

<비밀의 숲>의 서동재는 굉장히 얄밉게 말하잖아요. 목소리 톤도 좀 높고. 아무래도 작품마다 목소리를 조금씩 달리하려고 하는데 동재가 유독 빈 수레가 요란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실제로 주변에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목소리는 큰데 내용은 별로 없는. 목소리가 커진다고 자신감이 커지는 건 아닌데. 동재가 허세이긴 해도 그래도 1편에서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있고 그랬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여러모로 많이 망가졌기 때문에 2편에서는 그 자신감마저 없어지고 좀 더 가벼워지지 않았나….

아주 부드럽게 여유로이 말하고 있는 지금 이준혁 씨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에이, 그냥. 그냥 평소 목소리예요.

이준혁 씨가 과거 어떤 작품 후에 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웃음이 나더라고요. 웃음이 날 정도예요?

“저도 빨리 긴 대사를 쳐보고 싶어요.” 으하하하. 내가? 진짜요?

“아직까지는 인상을 쓰거나 터프하게 짧은 대사만 쳐봐서 선배님들이 긴 대사를 하면 많이 부러워요.” 장편 드라마 데뷔작인 <조강지처 클럽>(2007) 후 인터뷰였죠. 와, 그게 벌써 13년 전이네요.

그리고 이번 <비밀의 숲 2>에서 8분 30초가량의 대사를 원 테이크로 갔죠? 이 정도까지 원치는 않았어요.

대사 양이 어느 정도였길래. 지금 제 말투로 읽으면 한 20분 정도 걸렸을 것 같아요. 엄청 빨리 말했는데도 8분 30초가 나왔으니까. 이런 말투로 읽었으면 아마 드라마 끝날 때까지 그 장면만 나오고 있었을 거예요. 연기 학원에 다니시는 분들께 선생님이 “이 대본으로 다음 주까지 연습해와라” 하면 나를 엄청 욕할 거야.

한 번에 성공했어요? 네.

정말요? 처음에 한 번에 성공하고 그다음에 다른 각도로 담기 위해 또 찍긴 했는데, 처음 연기했을 때가 제일 괜찮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힘이 빠져서. 워낙 길어서 대본 받은 순간부터 계속 외웠어요. 툭 치면 나올 정도로. 단기적으로는 좋은 편인 것 같기도 한데 제가 기억력이 진짜 안 좋거든요. 옛날 일 정말 기억 못 해요. 되짚어보지도 않고요. 대사는 아마 장기적인 기억을 지워서 생긴 용량에 채우는 게 아닐까.

사실 ‘긴 대사’라는 게 물리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 같진 않아요. 데뷔 초여서 더 그랬겠지만, 앞으로 좀 더 존재감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주역이고 싶다, 이런 포부이지 않았을까요? 음, 사실 제가 옛날 생각을 정말 안 하고 살아요. 사진도 잘 안 찍고. 슬프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그때 이야기를 들으니까 참…. 그때의 저와 같은 맘을 가진 연기 지망생들이 이 대사로 많은 연습을 하셨으면…. 하하하.

예전 생각하면 왜 슬퍼요? 글쎄요. 없는 거잖아요, 지금은. 어차피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슬프다’까지는 아니지만 옛날 일을 돌아보는 것 자체가 그런 감정을 일으키는 거잖아요. 무언가 애틋하고, 슬프고. 그게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지난 인터뷰를 보니 소소하게 언급됐지만 이준혁 씨에게 중요한 대상인 것 같은 키워드가 3개 있었어요. 전혀 모르겠다. 뭐지?

하나는 친구. 친구들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든지, 최근에는 모두가 극 중 서동재의 행방을 걱정할 때 정작 친구들은 아무 얘기 안 하더라고 한다든지. 끈끈한 관계의 친구들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어, 맞아요. 그런데 이번에 <비밀의 숲 2> 마지막 회 끝나고 초등학교 때 친구가 처음으로, 살면서 처음으로 “재밌다. 핵잼”이라고 문자를 보낸 거예요. 너무 당황했어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친구한테 그런 문자는 처음 받아봐서. 그런데 이번에 걔가 그렇게 좋아하는 거 보니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 한 명이 좋아했으면 됐다 그런 느낌도 들고 그렇더라고요.

이준혁의 친구들은 어떤 성향이에요? 저처럼 완전히 아웃사이더이거나 아니면 ‘핵인싸’. 왜냐하면 그 정도는 돼야 나를 알기 때문에. ‘나를 안다고?’ 할 정도면 걔는 진짜 많은 사람을 아는 거예요.

왜 스스로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해요? 저 정말 밖에 안 나가요.

밖에 안 나가면 뭐 해요? 영화 보고 집안일하고. 기자님은 밖에 안 나가면 뭐 해요?

저도 그래요. 저도 똑같아요. 하하하.

두 번째 키워드가 영화였어요. 왓챠 어플로 영화를 2천여 편 보고 별점을 매겼다고요. 그게 2년 전 소식인데 그사이 또 몇 편이나 더 봤을지 가늠이 안 돼요. 보기는 계속 봤는데 별점은 따로 안 남겼어요. 뭔가를 평한다는 게,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밌어서 매겼는데 후로는 나만의 그것을 어딘가 세상에 알리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원래 연출가가 되고 싶었다면서요. 그때는 어렸고, 해보고 싶었고, 관심이 계속 있었고. 그림이나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서 연출을 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때 만들고 싶었던 건 장르물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 <세븐> 같은. 그때는 우리나라에 장르물이 희소해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저와 비슷한 세대가 자라서 요즘 장르물을 많이 만드는 것 같아요. 미스터리한 거나 스릴러, 그런 장르 있잖아요. 지금의 <비밀의 숲> 시리즈도 그렇고요.

이렇게 영화를 많이 보게 된 계기가…. 이모가 영화를 좋아하세요. 이모는 특히 호러 영화 좋아하고, 같이 많이 봤죠.

그게 세 번째 키워드예요. 이모. 지금도 이모와 두 분이서 살아요? 네. 어릴 때부터 이모와 같이 살았어요.

누군가와 같이 살다 보면 서로 닮아가는 점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 어때요? 이모가 쿨해요. 그래서 같이 살 수 있지 않나. 물론 따뜻하시지만 그렇게 서로 너무 막 그러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이모, 영화 보러 갈래?” 그러면 “귀찮아”라고 하시고 혼자 보러 가세요.

그런 쿨한 태도를 배웠다고 보면 될까요, 이모에게서? 아, 이모 때문에 나초를 좋아하게 됐어요. 어릴 때 이모가 나초를 조금씩 줬어요.

착한 일하면 나초를 주신다든지? 아뇨, 그랬다면 조금 무서운…. 하하하. 그냥 모든 상황에 다 주셨는데, 조금씩 주셨어요. 저 어릴 때는 나초는 구하기 힘든 과자였어요. 수입 과자고,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이모가 주는 나초가 제게는 성공해서 사고 싶은 과자이지 않았나.

요즘 나초 많이 사먹고 있어요? 먹고 싶은데 계속 다이어트하라고, 작품의 캐릭터가 그러라고 할 때가 많아요. 나초는 지금도 굉장히 좋아해요. 생각해보면 나초는 영화관에 있었고, 그래서 영화관은 저한테 되게 설레는 곳이었어요. 우리나라에 멀티플렉스가 생겼을 때 갔던 기억도 나요. CGV 강변이었어요. 친구와 가서 너무나 좋아진 음향 장비와 의자를 보고 기뻐했죠.

그때가 언제쯤인 거죠? 중학생? 고1 때였나 그랬어요. 그때 제가 가장 충격받았던 영화가 <쉬리>, 그리고 <가위>. <쉬리> 때는 단관이라서 1년 내내 영화가 극장에 걸려 있었어요. <타이타닉>도 1년 내내 극장에 걸려 있었어요. 그리고 옛날에는 목소리가 잘 안 들렸어요. 후시 녹음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데 어느 순간 음향이 확 좋아져서 영화 <가위>를 보는데 목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되게 감동했어요.

그 무서운 공포 영화가 감동이었어요? 제겐 감동의 역사죠. 동시 상영관도 가봤으니까. 초등학생 때는 돈이 없으니까 동시 상영관으로 갔거든요. 그때는 필름 상영이었어요. 영화 상영하느라 필름을 많이 돌리면 이게 헤져서 싼값에 동시 상영관으로 가요. 싼값에 영화를 세 편씩 틀어주고 그래요. 그런데 필름이 다 망가진 거라 보다 보면 갑자기 화면이 막 흔들려요. 그럼 사람들이 “으악, 이게 뭐야” 소리 지르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그게 되게 기억에 남아요.

영화 이야기할 때 눈빛이 엄청 신나 보이네요.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그런데 영화를 엄청 좋아하는 것에 비해 막상 영화 작품은 별로 안 했어요. 갈증이 있을 법도 한데요. 갈증은 이제 없어요. 사실 영화는 제가 단기간에 빨리 소개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보다 영화가 좋다, 이런 게 아니라 영화는 함축적으로 얘기하고 극장이라는 시스템도 있다면 드라마의 매력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영화를 많이 보게 된 건 뭐랄까, 비디오 가게에서 빌리던 일이 설렜고, 나초를 먹는 일도 좋았고, 그런 설렌 기억이 있어서인 것 같아요. 업계 환경적으로 이제는 영화나 드라마나 큰 경계가 없죠.

앞서 이야기 나눈 <비밀의 숲 2>에서 8분 30초의 긴 대사는 서동재 검사가 자기 PR을 열심히 하는 내용이었잖아요. 이준혁이란 배우는 어쩌면 자기 PR에 능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동재만큼은 아니죠.

SNS가 꼭 홍보 수단은 아니지만 SNS도 안 하고, 지난 필모그래피를 보면 배역을 가린다기보다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해나가는 듯 보였거든요. 욕심이 없진 않겠죠. 그런데 이런 건 있어요. ‘내가 봐도 좋은 작품에 참여하고 싶어’, ‘내가 이 현장에서 잘 해나가고 싶어’ 이런 그때그때의 목표들이 있죠. 일단 제가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기 때문에, 왜, 정말 사랑하는 연인이 있으면 연인이 잘못해도 보통 관계보다 조금 더 참는 게 있잖아요. 좋아하니까. 상처를 많이 받아도 분명히 이 매체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관련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좀 더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버티는 게 저의 가장 큰 의지죠.

작품을 사랑하는 연인에 비유하네요. 그럼요. 굉장히 상처를 많이 주고, 굉장히 나르시시스트인 친구예요.

제 친구 중에도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애가 있거든요. 외로우신 분이네. 잘 챙겨줘요.

외로운 건가요? 음, 좋은 분인 거죠. 남의 얘기를 몇 시간 동안 잘 들어주는 사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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