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구는 무려 두 달 동안이나 벌어진 <2007 월드리그>를 통해 싱싱한 미래를 발견했다. 어느덧 대표팀 주장으로 성장한 이경수는 그냥, 아쉽다고만 했다.
아까운 경기가 많았어요. 한 고비만 넘기면 이길 것 같은데 그때마다 번번이 주저 앉았죠. 대표팀 훈련 기간이 짧았어요. 5월 초에 모였고 함께 훈련한 건 한 달이 채 안 돼요. 처음 맞춰본 선수도 있고, 예전에 뛰어봤던 선수들도 오랜만에 만난 거라 한 달 이상은 해야 되거든요. 연령대가 전반적으로 낮다 보니 국제 경기 경험이 전무한 선수도 있었어요.
득점 부분 6위라면서요? 신경 안 써요.
그래도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는 생각은 들죠?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쟁쟁한 선수들은 시합에 잘 안 나와요. <월드리그>는 워낙 장기레이스기 때문에 선수들을 계속 교체해 주거든요. 그래서 그 선수들의 득점이 떨어지는 것뿐이지, 제가 정말 세계적인 건 아니에요. 6주 동안 시합하면서 전 한 세트 빼고 다 뛰었으니까 득점이 높을 수밖에 없죠.
그럼 세계 톱 클래스 선수들에 비해 이경수가 모자란 건 뭐죠? 그들은 제가 봐도 너무 대단한 선수들이잖아요. 탄력이 좋아서 보면서도 속으로‘와!’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우리 선수들도 그런 탄력을 갖게 되면 뭐가 달라질까요? 노는 물도 중요한 것 같아요. 유럽이나 남미에선 국가 간에 배구 교류가 활성화돼 있거든요. 인접 국가끼리 시합도 많이 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것 같아요.
이번 대회에서 본 이경수는 빠르고 날렵하고 힘도 있는데 이따금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는 것 같은 표정이 있었어요. 공격에 성공해도 제가 이 정도에서 끊어줘야 하는데 그걸 못할 때가 많았으니까 그게 좀, 자신감은 있었는데, 그에 비해선 성공 못한 게 많았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분명히 포인트가 날 공격이었는데, 그걸 받아 올리는 선수가 있었어요. 그 정도 공격이었으면 포인트가 나야 정상인데.
브라질과 접전을 펼쳤을 때, 3세트 27 대 27 상황에서 당신에게 볼이 갔어요. 이제 한국 배구는 위기 때 ‘이경수’를 찾죠. 그런 순간들을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진 않나요? 저도 매 순간 결정짓고 싶었죠. 선수들이 신뢰해 준 것도 고맙고요. 그런데 제가 모자란 게 많아요. 그래서 이번 대회 나갈 때 긴 시간 동안 팀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힘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고맙게도 후배들이 많이 도와줘서 재밌게 뛰었어요. 어느새 대표팀 최고참이 됐고, 신진식 같이 듬직한 형도 없는데,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순간은 없냐는 거예요? 아쉽죠. 저도 힘드니까요. 6주 동안 시합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거든요. 한 나라에서만 하면 어느 정도 가능한데, 한국에서 했다가 브라질로 넘어가는 데만도 스물 네 시간이 걸리고. 거기서 시차 적응도 안됐는데 아침 경기를 했죠. 한국엔 아침 경기가 없잖아요.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질 않았죠. 그러다 또 핀란드로 넘어가다 보니 팀 주장으로서, 내색 안 해야 되는데도 짜증낼 때도 있고, 부족한 게 없지 않았어요. 우리나라가 98년도 이후부터는 <월드리그> 참가를 안 했어요. 대부분의 국제 경기는 길어도 보름을 안 넘겨요. 이번엔 무려 두 달이었잖아요. 정말 힘들었어요.
주장 입장에서 김요한과 문성민을 냉정히 평가해 주세요. 과대평가된 부분이 없지 않다고 생각해요. 공격은 잘하는데 그 외에 리시브라든지 전반적인 디펜스들이 다소 떨어지죠.
악착같이 수비하지 않고 공격만 잘하는 건 화려한 플레이만 의식해서가 아닌가요? 저도 리시브가 좋은 편은 아니에요. 주장이고,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했을 뿐이죠. 결코 훌륭히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근데 아무래도 요한이나 성민이 같은 경우는, 뭐, 동료들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론 얘기 못 하겠고, 좀 불안하죠. 걔들한테 공이 가면.
공격이 실패했을 때 분해서 죽을 것 같은 선수들도 있는데 그들은 조금 아쉬워하고 말더라고요. 아직 어려서 그런 거예요. 지금 걔들이 대표팀에 들어온지 근 1년, 아니 2년인가? 대학교에서만 뛰다가 국제 경기에서 처음 시합한 거잖아요. 선배들이 편하게 해준다고 해도 후배들은 선배를 어려워해요. 시합 때 자신감도 떨어지고 하나 미스하면 선배들이 뭐라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의지는 있는데 몸이 잘 안 따라 주는 거죠.
너무 자상한 선배네요.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대표팀에 들어갔거든요. 들어가자마자 아시안 게임 나갔고요. 그러니까 잘 알아요.
그때 가장 무서웠던 선배는 누구예요? 다 무서웠죠. 안 무서운 선배가 없었어요.
한국 배구의 최대 강점은 뭐예요? 젊다는 거죠. 그런데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어요. 무너지기 시작하면 한 없이 무너지거든요.
세대 교체를 단행한 한국 배구는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됐대요. 축구도 그렇고. 도대체 언제 그 미래가 오는 거죠? 뭐라 해야 되나. 아…. 선수 입장에서도 솔직히 고생하며 한 해 한 해를 보내는데 팬들 기대에 못 미치면 속상하죠. 기대치가 너무 높다는 생각도 들고요. 배구는 단체경기잖아요.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매 시합 때마다 준비 잘 된 선수도 있지만, 부상 때문에 몸이 엉망인 선수도 있고, 운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몇 년 후에 핀란드와 다시 싸우면 이길 수 있냐는 거예요. 아쉬운 건 뭐냐면요, 첫 시합을 브라질이 아니라 핀란드하고 붙었으면 이기지 않았을까 하는 거예요. 왜냐면 저희가 체력이 고갈된 상황에서 브라질에 갔다가 다시 또 핀란드에 갔거든요. 그때 핀란드는 이미 저희들 전력 분석을 끝낸 상태였어요. 우리는 핀란드에 대해 아는 게 없었는데. 지금 당장 다시 붙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전력이 어떻게 노출된 거죠? 사석에서 듣기론 유럽 각 나라 전력 분석관들이 자료를 공유한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전력 분석관이 아예 없어요.
국제 대회에서 맞붙을 때마다 이상하게 당신을 강하게 만드는 팀이 있나요? 이상하게 자신감이 생길 때가 있어요. 브라질하고 첫 경기 했을 때가 그랬어요. 강팀이잖아요. 예전 같았으면 3 대 0으로 끝났을 거예요. 누가 풀세트까지 갈 거라고 생각했겠어요.
브라질하고 붙는데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죠? 설명하기 애매해요. 잘 모르겠어요.
브라질 선수들이 괴물 같진 않았어요? 코트 위에서 상대 선수를 잘 안 보는 편이에요. 공격이 나올 코스가 아닌데 기가 막히게 기회를 만드는 걸 보면 신기하고 놀랍죠.
신진식과 이경수의 차이는 뭔가요? 진식이 형은 키는 안 큰데 나머진 다 좋아요. 점프, 탄력, 스피드, 지구력, 갖출 건 다 갖췄죠. 그런데 아무리 점프가 좋아도 신장 차이는 극복하기 힘든 거 같더라고요.
신장말고는 당신이 이기는 게 없어요? 진식이 형 무서워요.
올초에 신진식 선수를 만났는데 이제 당신한테 못 당하겠다고 하던걸요?‘이제’라고 한 거잖아요.‘이제’. 대표팀에서 같이 경기할 때 진식이 형이 볼 때리면 제가 그 뒤로 커버를 들어가요. 형 발이 제 얼굴에 와 있어요. 점프한 발이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제 얼굴에 와 있어요. 그만큼 점프가 높다는 거죠.
한국 배구 역대 최고 레프트는 누구라고 생각해요? 당신이라고 해도 돼요. 정말 배구를 잘 안 봐서 모르겠어요.
안 보고 어떻게 배구를 해요? 제가 한 거랑 제가 맞붙을 상대 경기는 보죠.
배구 선수로서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은 뭐예요? 소속팀이 우승하는 거죠.
V-리그에선 2년 연속 득점왕, 올스타전 MVP도 두 차례나 뽑혔는데 LIG 그레이터스는 내리 꼴찌를 했죠. 팀이 원망스럽진 않아요?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다 최선을 다한 건데.
저 팀으로 갔으면 나도 우승했을 텐데, 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런 생각은 안 해요. 남들 덕에 우승하면 뭐해요. 제 힘으로 우승을 시켜야죠. 다음 시즌엔 어떨 것 같아요. 우승할까요? ….
신진식 선수가 은퇴했어요. 당신에게도 그런 날이 올 거예요. 그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배구는 싫어요? 아들이 배구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너무 고생을 해가지고요. 아이 엄마가 못하게 때려 말린다던데요.
한동안은 당신이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 주장이겠죠. 너무 정신없이 달려왔어요. 시즌 끝나면 국제경기 또 시즌 이렇게 십 년을 했어요. 언제까지 더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국가대표 주장으로서의 꿈은요? 후배들이 더 잘하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 에디터
- 이우성
- 포토그래퍼
- 김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