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이름이 브랜드로 변화한다. 기사도 함께 개인화된다. 최근 주목받는 3명의 필자가 그런 것처럼.
2008년 출간된 <미디어 2.0 미디어 플랫폼의 진화>의 지은이 명승은은 기자 개개인에게 미디어 2.0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스타가 될 것을 주문했다. 다음에 이어 네이버도 올해 들어 검색기능에 ‘기자별 검색’을 추가했다. 호들갑일까?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 거라 볼 수 있을까?
강명석( 기자) 매체도 많고 기자도 많아졌다. 거대 매체에서도 기본적인 사실관계마저 틀린 기사가 나올 때가 허다하다. 하지만 검증된 기자는 그럴 실수를 좀처럼 범하지 않고, 한 개인으로서의 기자는 좀 더 날카롭거나 재미있는 글들을 쓸 수 있다. 앞으로 좋은 매체는 좋은 기자가 모인 집단이 될 수도 있다.
하재근(블로그 ‘TV 이야기’운영자) 개인 미디어 시대가 시작되는 징후라고 본다. 과거엔 기자나 필자들보다 언론사가 더 중요했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개인이 부각되고 있는 거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언론사의 중요성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개인의 위상은 앞으로 더욱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회(축구 칼럼니스트) 언론사의 이름만큼 기자의 이름이 독자들에게 각인되는 시대다. 거꾸로 기자들의 능력을 인정하는 독자가 많아질수록 양질의 기사가 나올 거라 생각한다. 긍정적인 변화라 생각한다.
한편으로 대다수의 기자들은 ‘만만해지고’ 있다 . ‘베스트댓글’ 중 가장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는 건 기자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댓글이다. 그들의 글이나 대중의 반응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강명석 매체와 기자 수는 많아지고, 특정 분야에 ‘마니악’한 관심을 가진 독자들은 늘어난다. 욕먹지 않으려면 기자들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하재근 대중은 제도화된 언론에 반감과 불신을 가지고 있다. 그런 요소들이 기자나 매체에 대한 악플로 나타난다. 또 인터넷 시대 이후 함량미달 기사들이 더욱 많이 나오는 것 역시 하나의 원인이다. 물론 언론사가 더욱 분발해야 하겠지만, 대중의 제도권 언론에 대한 무조건적 매도 역시 경계할 일이라고 본다. 균형 있고 심층적인 보도를 해주는 것으로 따지자면, 아직 기존 언론사 쪽에 무게가 실린다. 또 기자나 지식인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가 반지성주의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김현회 기자가 스타가 되면 인기 관리를 위해 대중과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 이름값에 현혹되어 스타 기자만 옹호하고 반대로 대다수의 기자들을 만만하게 보는 현상이 아쉽다. 기자는 인지도가 아닌 ‘지금 누가 가장 좋은 글을 쓰냐’로 인정받아야 한다.
50여 명의 기자가 활동하는 네이트 닷컴의 스포츠펍, 영화 섹션의 전문가 리뷰와 칼럼, 네이버 스포츠의 매거진 S, 네이버가 ‘스페셜 리뷰’란 이름으로 독점 게재하는 이동진의 영화풍경 등 최근들어 특히 문화 스포츠 분야에서 전문가적 식견을 가진 이들이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왜 문화 스포츠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질까?
강명석 문화나 스포츠에 관련된 어지간한 정보들은 대중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팩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평가는 쉽게 얻을 수 없다. 대중은 그에 대한 가이드를 원하는 것 같다.
하재근 타 분야는 취재에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신뢰성 문제가 특히 중요해 개인이 부각되기에 어려움이 있다. 반면 문화 스포츠 분야는 상대적으로 개인의 분석과 견해가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대중이 특히 제도언론의 대중문화 기사를 신뢰하지 않는 경향 역시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김현회 문화와 스포츠는 글이 정치, 경제만큼 무겁지 않다. 신문 등에서 만날 수 있는 딱딱한 기사 대신 다양한 주제의 자유로운 글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문화와 스포츠는 정치나 종교만큼 민감하지 않은 반면 전문가적 식견을 갖춘 독자가 많아 토론 분위기가 쉽게 형성된다. 클릭수가 꽤 나온다는 말이다.
기존 언론사 기자로서 글을 쓸 때와 개인 필자로서 글을 쓸 때 방식이나절차에 어떤 차이가 있나?
강명석 회사에서 하는 일은 하기 싫어도 무조건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개인적인 기고는 그럴 필요는 없다. 그 외에 소재 선정, 글을 쓰는 절차 등은 아주 큰 차이는 없다.
하재근 대체로 기존 언론사에 기고하는 글을 쓸 때는 좀 더 점잖은 표현, 보수적인(소극적인) 주장을 하는 데 반해 개인으로 글을 쓸 때는 훨씬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소위 ‘막 나가는’ 표현도 할 수 있고.
김현회 언론사에서는 부서별로 회의를 하고 주제를 정해 기사를 쓴다. 데스킹도 까다롭다. 내 주관과는 다른 기사를 써야 할 때도 많다. 타 분야 취재를 나가면 열의도 떨어지고 배경 지식도 부족해 양질의 기사가 나오기 힘들다. 개인 필자로서 쓰는 글은 구상에서 퇴고까지 모두 오롯이 필자의 몫이다. 아는 내용에 대해 즐겁게 쓸 수밖에 없다. 이름을 걸고 나가는 글이기 때문에 책임감 역시 더욱 커진다. 무엇보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은 안써도 된다는 점이 좋다.
개인 필자로서 글을 쓸 때 어떤 부분에 가장 공을 들이나?
강명석 팩트의 정확성과 관점의 명료함은 언제나 기본이고, 그 외에는 재미와 매체의 성격이다. 기성세대가 많이 읽는 한국일보 칼럼은 풀어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고, 는 더 복잡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최대한 지루하지 않도록 재미있게 쓰는 게 중요하다.
하재근 느낌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쓰려 한다. 기존 매체에 나오는 뻔한이야기나 좋게좋게 말해주는 것, 시비를 명백히 가르지 않는 태도 등은 지양하고 있다.
김현회 주제 선정이다. 주제가 정해지면 글을 50퍼센트 이상 썼다고 본다. 특히 현재 얼마나 이슈가 되고 있는지, 시의성은 적절한지 등에 대해 많이고민한다. 그런 맥락에서 월드컵 기간 중에 쓴 치킨 배달 기사, 여자 청소년월드컵 도중 개제한 점쟁이 낙지 기사 등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인기를 얻는 필자의 경우 주로 기사가 특종이 되었다기보다 ‘나’를 등장시키는 칼럼 형태의 글을 통한 경우가 많다. 기사의 형태로 미디어에 등장하지만 수필처럼 ‘나’를 호소하는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강명석 전달하려는 내용에 대한 감정이입을 돕는 수단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그걸 넘어 공적 매체에 스타 에세이 쓰듯 자신의 사생활을 늘어놓거나, 자신이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를 특권처럼 여기며 자의식에 빠지는 건 꼴불견이다.
하재근 과거 한국 언론에선 ‘나’를 드러내는 걸 금기시했는데, 이에 종종 답답함을 느꼈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글도 칼럼 형태라면 ‘나’를 드러내고 당당하게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김현회 예능 프로그램에 캐릭터가 있듯 칼럼에서도 ‘나’를 캐릭터로 포장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칼럼 속에서 ‘굴욕’을 당하고 때로 괄시받기도 하는 ‘나’에게서 공감을 얻는 독자도 있지 않을까? 보다 쉽고 재미있게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SNS도 하나의 언론 창구 역할을 할까? 실제로 SNS를 이용하고 있거나, 이용할 생각이 있다면, 왜 그런가?
강명석 어떤 기자는 기고한 매체의 판매부수보다 자신의 팔로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거기서 몇 가지 정보만 알려줘도 영향력은 엄청나다. 얼마 전 트위터를 열었는데, 기사화시키기는 애매한 수준의 정보나 생각을 푸는 데 편할 것 같다.
하재근 매스미디어가 하나의 변혁이었듯이, 통신망을 통한 개인 미디어의등장 역시 혁명적 변화라고 본다. 언론의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현회 일방적인 글쓰기 대신 귀를 열고 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장점이 있다. 그러나 근황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할 뿐 언론 기능의 역할은 칼럼을 통해서만 하고 있다.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창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당신이 ‘필자’로 활동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미디어) 필자는 누군가?
강명석 앨빈 토플러,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영화음악>과 그곳에 출연했던 정성일. 수많은 팩트를 기반으로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는 엘빈 토플러의 글은 기자와 칼럼니스트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을 가르쳐줬다. <정은임의 영화음악>과 정성일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방법과 애정을 가르쳐줬다.
하재근 특별히 없다.
김현회 축구 쪽은 1인 미디어 체계가 아직 확실히 잡히지 않았다. 이제 정착되는 단계랄까? 종종 이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그래서인지 아직까지 큰 영향을 준 필자는 없다.
당신의 글쓰기를 포함한 미디어 소통 형태는 그간 언론에서 보기 힘들었던, 뭐라 정의하기 힘든 새로운 형태다. 단순한 기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저 전문가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당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나?
강명석 일용직 노동자. 매번 다른 일터에서 요구하는 일거리들을 처리하면서 내 개성을 발휘해야 먹고 살 수 있다. 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정도는 된다.
하재근 특별히 정의해본 적은 없다. 굳이 쓰자면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 정도. 인터넷 개인 공간에도 쓰고, 매체에도 기고하고, 책도 쓰니까 뭐라 콕 꼬집어 말하기 쉽지 않다. 최근엔 블로그에 글을 많이 올리고 있기 때문에 블로거로 자주 불리는 편이다.
김현회 축구 팬들 입장에선 축구로 먹고 사는 전문가라 말할 수 있지만, 기성 언론에선 그다지 언론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다. 직접 정의해보자면, 팬과 기존 언론의 중간 어디쯤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닐까? 양쪽 어디에도 확실히 속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 에디터
- 유지성
- 스탭
- 일러스트레이터/이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