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농부 홍순영

2011.03.03장우철

어느 날 곶감 하나를 먹었는데, 만든 사람이 궁금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구례로 갔다. 눈이 피자 두께로 쌓였는데, 그 속에 밀 싹이 텄다.

사진은 논에서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저리 가시지요. 이 못난 놈, 뭐 볼 거 있다고 사진까지….

하하, 무슨 말씀을요. 선생님 얼굴 때문에 찾아온 건데요? 근데 저 녀석(주변을 맴도는 개) 이름은 뭐예요?
우리 진순이. 이제 열한 살 되었지요. 지금 새끼를 배갖고. 진순아, 이리 와봐. 여기로 나온 지가 이제 15년 지나요. 저쪽 마을에 살다가.

그러게요. 집이 마을과는 좀 떨어져 있네요.
여기서 축사 하나 지어갖고 관리사 두고, 나는 왔다 갔다 할라고 계획을 세우고 했던 것이, 짓고 본께 그냥 농가주택이라도 하나 더 지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데요. 그래서 농가주택을 짓고 보니, 추우니께 창고 지야지, 저장고 지야지, 그러고 뭐 또 뭐, 또 건조기 같은 거 시설해야지. 또 냉장고 지야지. 어쩌고 하다 본께 이렇게 됐어요. 한 번에 다 진 게 아니라서, 모양이 영 두서가 없지요.

농사일도 그렇게, 하다 보니 계속 욕심이 늘어나신 건가요?
욕심은 아니고, 뭐 제가 초등학교밖에 졸업 못해서, 그것도 바듯이 졸업만 했고, 열일곱 살 때부터 마을 정미소에서 일했는디, 열아홉 살 때 논 두 마지기 샀던 것이 제일로 좋았지요.

부모님께 물려받은 땅은 없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예 없지는 않고 한 이백 평 있었지요. 그게 지금은 몇만 평 되었고요. 9남매 중 여덟짼데 형제들은 다 떠나고 혼자 여그 남았지요. 항시 누구한테 얘기하더라도, 나는 배우도 못한 놈이고, 내가 내 욕심에 땅을 천직으로 알고 살응께 이것을 한 것이라 그라요. 실제로 1년 내내 농사짓고 살면서 시간 내서 나간 것은 마을 애경사나, 친척 애경사에나 찾아댕긴 것밖에 없어요. 유기농 시작하면서 여기저기 배우러는 많이 다녔지요. 그 외에는 한 게 없거든요. (한쪽을 가리키며) 여기는 밀을 심었습니다. 금방 싹이 올라오지요. 그건 틀림없지요.

유기농은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그놈의 농약에 지쳐가지고요. 농약값만도 1년에 평균 들어간 것이 2천만 원 3천만 원이여, 죽어라 농사지어갖고 수매하면 뭐이 남는 게 있어야지. 허다 보면 맨 마이너스 같아. 아, 이거 아니다. 그러다 진주 쪽에서 농약 대신 천연재료로 제재를 만들어 쓰고 있다는 얘길 들었지요. 농약보다 낫다 한번 써봐라, 인체에도 해롭지 않고 괜찮다 그러길래, 그 뜻을 받고, 준대로 갖다 써보고, 결과는 이렇더라 어떻더라 얘기하면서 시작했지요.

주변에 난 풀로 농약을 대신하는 제재를 만드신다는 건데요. 풀박사님 다 되셨겠어요.
전부 풀로 만들지요. 내 눈에는 모든 게 약초로 밖에 안 보여요. 내가 이걸로 특허를 내겠어요, 뭐하겠어요. 그냥 서로서로 공부한 거 해본 거 나누면 좋은 거지요. 어떤 건 논 작물에만 제초가 되지, 밭작물엔 제초가 안 된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전부 찾아서 맨들어서 써보고 알게 되지요. 하나 좀 뵈기 싫은 것이 뭐 있냐 하면, 어디서 얘기를 듣고 찾아 와서는, 성분검사 좀 해보겠다고 가져가서, 그걸 농약회사에다 팔아먹어뿐단 말이요.

결과를 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니, 성질 급한 사람은 못할 일 같습니다.
농사일이라는 거 자체가 사람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땅이 하고 하늘이 하고 사람도 하지요. 10년 정도 하니까 가닥이 잡혔어요. 요것은 뿌려보니께 되더라. 요것은 안 되더라, 진주 쪽 사람들하고 나눠 써보기도 하고 교류하면서 여기까지 온 거지요. 작년엔 약재 끓이다 온몸에 다 화상을 다 입었어요. 그게 폭발해가지고.

아이고.
그래도 인자, 별 탈은 없으니께 붕대를 이렇게 감고, 싸고, 막 댕기면서 또 약재를 끓였지요. 나보고, 저 홍순영이 미친 놈이라고, 우리 마을 사람들도 그러고 본 사람들마다 다 그러고.

진짜 백 프로 유기농을 하는지는 농사짓는 사람의 양심문제지요.
우리 같은 사람이야 그 밭에 가서 흙만 만져봐도 알 수 있지만…. 곶감만 해도 대개는 황을 피워서 말리거든요. 미생물 때문에.

썩지 않게 하려고요?
그라지요. 미생물이 침투 못하게시리 황을 피운단 말이요. 그런데 나는 황을 안 피우고, 감을 깎아서 그냥 건조기에 넣어요. 유황으로 말리면 색도 오래가고 그럴싸해 보이지요. 제 꺼는 며칠 지나면 검어지니까 사신 분들이 욕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인자 이런 과정을 알게 되면 이게 좋은 거구나 알게 되시는 거죠.

멋쩍습니다만, 홍순영 곶감을 먹고 이제까지 먹은 것은 곶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맛은 어떨지 몰라도 착실하게 만든 감이지요. 내가 뭐 배운 것도 없지만은, 내가 봐도, 농사는 자식농사 못지않게 짓지 않았나 싶어요. 자식농사는 딸 다섯, 아들 하나예요. 아들이 막둥인데.

육남매가 얼마나 든든하세요.
막둥이가 농대를 간다고 그랬을 때, 네가 알아서 해라 그랬지요. 공직 생활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그랬어요. 아빠하고 농사지으면서 힘든 것은 감안해라. 나는 느그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증여 받은 땅 없이 그저 열심히 한 것밖에 없다, 그게 하나의 꿈이 되었다, 네가 알다시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농사다. 대신 공직 생활하면 감사 받아야지, 뭐 해야지, 농사는 그런 거 없다. 네가 구상을 해서 판단을 해라 그랬지요. 막내 딸내미 진주는 순천대 산림조경학과 4학년을 졸업했는디, 직장생활하면 월급을 얼마 준다냐 물었더만 얼마라고 하길래, 그러지 말고 아빠한테서 월 1백만원씩 받고 일하면 어쩌겄냐 했더니 그러겠다고 해서, 우리 진주 죽어라 일하고 있지요.

진주 씨 임금 인상 계획 있으신가요?
예, 그래야지요. 농사를 취미붙여서 해보니까 저도 재밌거든요. 물론 다 인력으로 하니께 힘들 때는 굉장히 힘들죠. 하지만 인자, 지가 나중에 출가해서 나가더라도 우리 엄마랑 아빠랑 농사짓고 산 거를 아끼고 생각하지 않겠나 하는 거지요. 우리 진주랑 통화해보셨지요? 인터넷으로 주문 받고 이런 거는 다 진주가 하지요.

겨울은 농한기라고들 하잖아요. 요즘엔 어떤 일을 하시나요?
지금 인자, 요렇게 눈이 오고, 바람 안 불을 때는 감나무 전지를 해요.

실은 아까부터 감나무가 너무 앙상한 거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어요.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 그런 감나무가 아니라서. 제가 전지를 심허게 하지요. (그가 주머니에서 가위를 꺼낸다.)

바로 꺼내시네요. 어떤 식으로 하시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나 전지하는 거 보면 입을 딱 벌려요. 열 개 열릴 자리가 있으면 세 개 남기고 잘라버리니까요. 실제 수확해보면, 통기성이 좋으니까 이게 상품 가치가 더 나가요.

전지는 화끈하게 해야 되는 거군요?
그라지요. 여그 나무 밑에는 뭐 심어놓았냐면, 호밀 있죠 호밀? 전부 호밀을 심어 놨어요. 이걸 사월에 한 번 베어주고, 오월에 한 번, 또 유월달에 한 번, 이렇게 세 번을 베어주는데, 이것이 땅을, 수심을, 땅심을 좋게 해줘요. 땅에 구멍을 내주니까요.

다들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만큼 일이 많아지니까요. 가끔, 이렇게 하면 좋겄습니다 얘기하면, ‘저 미친 놈’, 그런 얘기들 많이 하지요.

그런가 하면 상도 받으셨죠?
작년에 12월 1일자로 새농민상을 받았어요. 새농민상이 뭔지 알지도 못했고 농협에서 뭐 하나 주나 보다 했는데, 시상식 가보니께 큰 상이더라고요. 그런 걸 느껴보기도 하고, 어제 그저께는 도지사께서 농산물 생산분야에서 우수상을 받아오시기도 했고요. 그라면서 인자, 목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어려서 목표는 쉰 됐을 때 논 한 30마지기 갖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거였는데, 인제는 땅도 몇 만 평인디, 우리집에서 쌀 시켜드시는 분들이 한 2백여 가구 되거든요. 그 분들이 와서 쉬어가는 공간을 맨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집에 있는 장이랑 김치랑 나눠 먹고요. 농사 짓는 것도 보시고요. 그런 공간 만드는 게 인자 요즘 제 목표입니다.

워낙 형제도 많고 자식도 많이 두셔서 그런지, 사람 북적대는 게 좋으신가봐요.
어머님이 노환이실 때도, 나 공부 못 가르쳐서 후회된다는 말씀은 한 번도 안 하셨어요. 아버님도, 저놈은 욕심이 많아서 일하다 죽을 거라고 그라셨고요. 형제 중에 하나라도 시골에 주저앉히려고 그런 계산을 하셨나 싶기도 해요. 집에 형제들이 잔뜩 와있어도 나는 일하러 나가요. 보통 때야 저녁밥 먹으면 잠자는 것이 일이고. 새벽 두 시 되면 또 일어나고.

새벽 두 시에요?
예, 일어나서 부시럭부시럭 이런 것도 해 보고 저런 것도 해 보고. 그러다 날 반짝 새면 신발 신고 일 나가고.

텔레비전, 안 보세요?
아, 테레비도 보긴 보지요. 뭐 다른 특별한 건 없어요. 그렇게 해온 건데, 요즘 들어 도시 사람들이 친환경 얘기하고 그러는 거 보면, 내가 일찌감치 잘 생각했는갑다 하고요. 내가 비록 못 배웠지만 어떤 분들이 나한테 제재 만드는 거나 그런 거 배우러 오면, 내가 아는 데까진 다 얘기해줍니다. 바라는 것은 없고요. 뭐가 있겠어요. 나는 일 욕심밖에 없습니다.

저기 보이는 산이 지리산이지요?
예, 지리산 끝자락이지요. 열다섯 살 때 천왕봉까지 보따리 하나 짊어지고 이박 삼일로 갔다 온 적이 있지요.

논둑에 이러고 서 있으니까 시간이 참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만, 실은 바쁘신 시간을 제가 뺏고 있는 거겠지요? 곶감 좀 사갈 수 있을까요?
막둥이가 준비해놓았을 겁니다. 돈은 안 받을라요.

아닙니다. 여기로 오다가 아차 싶어서 읍내로 다시 나가 현금 찾아왔는데요?
아이고, 그건 이 담에 쓰시고요. 지금은 여기 오셨응께요. 취재 오셨다고 특별히 드리는 게 아니라, 나는 여기 온 사람마다 그냥은 안 보내요. 내가 어디 가보니까 그렇더라고요. 가보면 거기서 뭘 주는 게 참 좋더라고요.

하하, 그건 그렇지만요.
그럼, 오신 김에 우리 약재 만들어 담아놓은 거 보고 가실래요?

이러다 밥까지 얻어먹고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시골에 딴 건 없어도 밥은 많지요. 언제라도 구례 지나는 길이면 들러서 감나무에 감 달린 것도 보고, 벼 자라는 것도 보고 들판에 부는 바람도 쏘이고 그라믄 좋지요. 참으로 좋지요. 진순아 이리 와 사진찍자. 진순아~.

    에디터
    장우철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