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감독에게 힘을 줘

2011.07.19유지성

기술위원회가 조광래 축구 대표팀 감독의 선수선발에 제동을 걸었다. 일리는 있었지만, 권위는 없었다.

조광래가 폭발했다. 선수 선발을 두고 이회택 기술 위원장과 맞섰다. 6월 3일과 7일 차례로 열린 세르비아와 가나전을 앞두고였다. 그는 5월 23일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기술위원장을 향해 공개적으로 질문했다. 선수 선발권에 대한 기술위원장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해달라는 것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과의 중복 선수 차출 문제 때문이었다. 6월 1일엔 올림픽 대표팀의 오만과의 평가전이 잡혀 있었다. 기술위원회에선 지동원, 구자철, 김보경을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시킬 것을 권고했다.

“조광래 감독에겐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기예요. 박지성과 이영표가 동시에 빠져나간 자리에 대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8월에 한일전이 있긴 하지만 세르비아와 가나란 강팀을 상태로 제대로 된 승부를 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평가전이었거든요.”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의 말이다. 이기는 축구를 할 수밖에 없는 한일전을 제외하고 나면, 바로 월드컵 3차 예선이다. 구자철은 아시안컵에서 득점왕이었다. 지동원, 김보경은 박지성의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선수다. 조광래로선 분명 급한 상황이었다.

축구협회 정관 제 7장 분과위원회 제 50조 1항 기술위원회 총론엔“ 기술위원회는 선수와 지도자의 양성, 각급 국가대표급 지도자와 선수의 선발, 축구 기술발전 및 교육을 목적으로 한다”고 쓰여 있다. 동시에 2항엔“ 선수 선발과 관련된 업무의 검토 및 건의”가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다. 모호하고 헷갈린다. 조광래 감독과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똑같은 정관을 두고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할 땐 당연히 계약서를 쓴다. 외국인 감독들은 까다롭다. 가장 먼저 포함시키길 원하는 조항이 바로 전적인 대표선수 선발 권한이다. 반면 한국 감독의 경우엔 꼭 그렇지만은 않다“. 히딩크 감독과 일할 때도 마찰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선수 선발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히딩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 조항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기술위원회는 정보 제공, 추후 승인에 중점을 뒀을 뿐 최종판단은 히딩크가 했지요.” 2002년 월드컵 당시 기술위원장을 지낸 이용수 세종대 교수의 말이다.

책임은 감독이 진다.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잘린다. 98년 월드컵에서 차범근 감독을 해임한 건 조중연 당시 기술위원장의 직권이었다. 기술위원회는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고 경질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감독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긴 힘들다. 조중연 위원장은 지금 축구협회장이다. 같이 월드컵을 치렀지만, 감독은 죽고 기술위원장은 살아남았다. 코엘류 전 대표팀 감독이 흔들릴 때 그가 한“ 전쟁에서 패하면 장수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기술위원회의 책임 회피적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올림픽 대표팀도 중요하다. 올림픽에서 축구가 갖는 단체운동으로서의 상징성은 물론, 젊은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하다. 경기가 겹칠 때 선수를 나눠쓰자는, 이회택 기술위원장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올림픽팀은 곧 최종예선이다. 월드컵은 3년 남았고 올림픽은 1년 남았다. 그러나 방식이 독선적이었다.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조광래 감독에게 모욕감을 줬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조광래 감독이 건넨 대표팀 명단을 집어던졌다고 한다. 물론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부인했다. 그러나 명단을 던졌건 안 던졌건 간에 그 자리엔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모조리 동석해 있었다. 감독으로선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표팀 감독이 된 이후 선수 선발과 관련해 줄곧 시달려온 조광래 감독이‘ 15인 보호선수안’이라는 타협안을 내놓았지만 이 또한 무시당했다.

3월에 이미 조중연 축구협회장 주관하에 대표 선발 원칙을 세운 지 두 달 만이었다. 중복 차출이 될 경우, 국가대표팀이 우선권을 가진다는 내용이었다. 조광래로선 화가 날수밖에 없다. 공개질의 이후, 조광래와 이회택의 비호를 입은 홍명보가 대립각을 세우는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정몽준과 허승표 회장으로 나뉘는, 해묵은 축구판의 여/야 논쟁까지 다시 수면에 올랐다‘. 팩트’는 없고, 가정과 추측이 난무했다. 좋을 게 하나 없는 모양새다. 안으로 단속 할 수 있는 일을 권위를 부리는 탓에 밖으로 벌린 것이다.

“기술위가 얼마나 자주 모이는지 한번 보세요. 2주에 한번, 한 달에 한 번 한두 시간 모일 뿐이에요. 다들 바빠요.” 이용수 교수는 기술위원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기술위원들은 각자 직업이 있다. 상근 직원이 아니다. 또한 조직도에서도 결재 라인 밖에 위치한 조직이다. 쉽게 말해 예산을 따내고, 일을 제대로 기획하고 집행하기 어려운 구조다. 반면 조광래는 K리그 경기장을 자주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언론과의 접촉이 잦은 것도 자연스럽게 경기장에서 기자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장에서 뛴다. 조광래는“ 이회택 기술위원장이 6월 1일 오만과의 경기가 평가전인지 올림픽 예선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이미 기능은 없고 권한만 있는 기술위의 구조에 대한 불신이 쌓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자철과 김보경은 소속팀에서 올림픽팀차출을 거부했다. 기술위원회는 대표팀 간의 교통정리만 해놓으면 소속팀에서 선수를 다 보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구자철의 볼프스부르크와 김보경의 세레소 오사카 모두 올림픽 2차 예선의 선수 차출을 거부했다. 유럽에선 올림픽 예선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21세 이하 선수권에서 1, 2, 3위를 차지한 세 국가가 본선에 진출한다. 본선도 아닌 예선에 선수를 보내줄 이유가 전혀 없다. 시즌이 끝난 후라 안일하게 생각한 축구협회와 기술위원회의 오판이다. 세레소 오사카는 자국 선수들은 올림픽 예선 차출에 응했다. 그러나 김보경은 보내주지 않았다. 미리 협의만 제대로 했다면, 충분히 설득할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축구계에선 2014년 월드컵은 홍명보 감독이 유력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몇몇 K리그 감독들이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고 공석이 된 감독직을 고사한 건, 어차피 임시직이라는 우려가 있어서였을 겁니다. 4년이나 남았었으니까요.” 익명을 요구한 축구해설위원 A가 말했다. 조광래는 아시안컵에서 한 번 실패했다. 경기력은 좋았지만, 성적은 아쉬웠다. 예선에서 삐끗하기라도 한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대한민국 대표팀 설립 이래, 4년간 직위를 유지한 감독은‘ 단 한 명’도 없다. 조광래는 자신이 원하는 축구가 확실하다‘. 만화 축구’라 불리는, 스페인식 축구다. 스페인식 축구는 자주 모여 공을 차야 한다. 스페인이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FC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진을 거의 고스란히 사용한 것은 그들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조직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르비아,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대표팀은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껏 한국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축구를 위한 기술적인 지원은 못해줄 망정, 원하는 선수를 뽑지 못해서 이제까지 기껏 키워 만들어놓은 감독의 축구를 망쳐선 안 된다.

권한만 있고 기능은 부실한 조직. 지금 기술위원회의 모습이 그렇다.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못하고, 안 해도 될 일로 축구계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기술위원회에서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을 상근하는 직원들이 실제 하게끔 만들어줘야 합니다.” 이용수 교수의 지적이다. 현재 축구협회엔 기술교육국이란 기관이 있다. 상근 직원들이 근무한다. 축구협회 직원들이다 보니 전문성은 떨어진다. 반대로 기술위원회는 전문성은 있지만 바쁘다. 기술위원회와 기술교육국과의 긴밀한 협의든, 기술교육국의 증편이든, 기술위원회의 상설화든 방향은 다양하다. 선수 선발과 달리 감독이나 선수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줘야 한다. 예를들어 외국 구단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 스페인 축구의 장점을 부지런히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대표팀엔 큰 도움이 된다. 현재 한국의 연령별 축구 대표팀은 U-17과 U-20 대회에서 연거푸 8강에 진출하는 등,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앞으론 더 많은 선수가 해외에 진출할 테고, 각 구단과의 단계는 더 골치 아파진다. 기술위원회의 권위는 그런 업무적 성과와 제대로 된 지원을 통해 생기는 것이지 결정을 번복하는 막무가내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선택은 대중이 한다. 대중이 등을 돌린 감독을 기술위원회가 끝까지 고집할 순 없다. 반대로 대중이 좋아하는 감독은 기술위원회의 권한일지라도 함부로 하기 힘들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아직 대중은 조광래를 좋아한다. 경기력도 좋다. 대한민국에서 축구는 그렇게 돌아간다.

    에디터
    유지성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Lee Jae J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