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포수가 없다고 한다. 포수 기근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좋은 포수의 조건은 무엇일까? 각기 다른 영역에서 포수를 지켜보는 세 명의 전문가가 답했다.
프로야구 각 구단은 매년 신인을 뽑는다. 좋은 포수는 20승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드래프트에서 상위 순번으로 지명되는 선수들은 거의 모두가 투수다. 산술적으로 26명의 엔트리를 구성할 때 투수가 절반 정도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 야구의 포수 기근 현상이 꽤 심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아마야구의 경향은, 팀 사정에 따라 코칭스태프가 포지션을 정하기보다 선수들의 희망 포지션을 보장해주는 쪽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신체조건이 뛰어난 선수들은 프로의 문턱을 넘기 쉽고, 화려한 투수를 택한다. 포수는 공을 받는 포지션이다. 몸이 작으면 투수가 던질 타깃도 함께 작아진다. 달리는 주자를 잡기 위해선 강한 어깨도 중요하다. 그러나 덩치도 좋고 어깨도 강한 선수들이 포수를 하려 할까? 신인 투수가 혜성같이 나타나 10승, 15승을 거둘 수는 있지만, 신인 포수가 안정적인 한 시즌을 보내기가 쉽지 않은 데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신체조건이 뛰어난 포수가 없다면, 좀 다른 방향으로 포수의 자질을 평가한다. 첫 번째는 포수가 그라운드에서 하는 행동을 본다. 경기 중은 물론이고 이닝이 교체되는 시점, 경기 후까지 포수의 동선을 면밀하게 살핀다. 이닝이 끝나고 투수와 야수를 어떻게 격려해주는지, 덕아웃에선 어떤 자세로 경기를 지켜보는지 등의 요소가 평가대상이다.
포수는‘ 하드웨어’나 개인의 능력이 다소 떨어져도 동료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팀에 기여해야 한다. 기술적으론 풋워크가 중요하다. 포수의 첫 번째 목표는 도루를 잡는 것이다. 앉아서도 2루까지 빠르고 정확하게 쏠 수 있는 강견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발동작이 빨라야 한다. 투수의 공을 받아서 송구할 때까지의 연결동작이 좋은 포수가 발전 가능성이 높다. 같은 맥락에서 송구의 회전력도 중요하다. 공의 회전이 좋으면 야수들이 공을 잡기가 편하다. 공이 좀 느려도 정확히 날아가기 때문이다. 회전이 정상적으로 걸리지 않으면 공이 날아가는 중간에 떨어지거나 휜다. 그런 경우 야수는 공을 잡는 데 급급해 정확한 태그를 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포수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기라 할 수 있다. 투수가 아무리 고교 시절부터 140킬로미터 이상의 강속구를 던져도, 힘으로 윽박지르는 식으로 공을 뿌리거나, 폼이 좋지 않으면 프로에서 선호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쁜 습관이 들어 있는 선수는 고치는 게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포수의 중요한 자질로 꼽히는 볼 배합은 사실상 투수가 한다. 포수가 원하는 코스대로만 공이 들어간다면 한 경기에 두 점 이상 줄 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팀이 지다 보면 포수의 능력을 의심받고, 팀이 이기면 포수의 능력에 환상을 갖게 된다. 물론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베테랑 포수의 노련한 수읽기는 팀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중요한 포수의 덕목이라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복근(두산 베어스 스카우트)
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자기 얼굴이 신문과 방송에 대문짝만 하게 나오길 바란다. 하지만 포수에겐 그럴 기회가 적다. 포수는 경기시간 내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하는 자리다. 게다가 혼자서만 관중들을 등지고 쪼그려 앉아 경기를 치른다. 포수 출신의 한 야구인은 “그것이 포수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포수에게 희생정신은 필수다. 투수는 심리적으로 예민한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항상 대신 매를 맞는 것은 포수들이다.” 한화 신경현이 대표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는 후배 투수들의 컨트롤 난조와 견제능력 부재로 인한 모든 결과를 혼자 다 뒤집어썼다. 팬들의 비난과 달리 현장에서 신경현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신경현이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투수들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기를 희생하는 포수는 투수들의 신뢰를 받는다. 올해 청룡기에서 우승한 상원고 포수 김종덕은 대회 내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사인과 반대로 온 공도, 주자 없는 상황에서 크게 바운드된 공도 사력을 다해 잡아냈다. “투수들에게 어떤 공을 던져도 내가 다 막아낼 테니 자신 있게 던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게 이유다. 상원고 투수들은 김종덕이 낸 사인에 단 한 번도 고개를 젓는 법이 없었다. 물론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니다. 유승안 경찰청 감독은 “포수는 경기장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신뢰를 쌓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수의 신뢰를 얻는 건 포수의 신체능력이나 재능과는 별개의 문제다. 강견에 컴퓨터 두뇌를 지닌 포수도 투수들에게 불신의 대상인 경우가 적지 않다. SK 김정준 전력분석팀장은 포수를 벽에 비유하며, 신뢰를 얻지 못하는 포수는 공을 튕겨내는 벽과 같다고 했다. 반면 일본의 다쓰카와 미쓰오처럼 캐칭도 어깨도 타격도 전부 평균 이하지만 투수가 좋은 공을 던질 수 있게 이끌어내는 재능만으로 최고 포수가 된 예도 있다. 이런 포수는 투수의 공을 흡수하는 벽에 해당한다.
건국대 차동철 감독은 LG 시절 김정민과 배터리를 이루면 더 좋은 공을 던질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내가 던질 때마다 공이 너무 좋아서 손목이 아프다며 공을 돌려줬다. 그게 투수에게 자신감을 주고 잠재력을 100퍼센트 이끌어냈다.” 결국 좋은 포수는 아마추어 심리학자까지 겸한다. 투수의 마음을 헤아리고, 타자의 심리를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경험이 필수인 이유다. 김정준 팀장은 ”포수에겐 많은 실전 경험은 물론 인생 경험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1년을 돌고 돌아 올해 SK 1군 포수가 된 ‘호프집 사장’ 허웅이 대표적이다. 박경완조차도 주전급으로 성장하는 데 4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충분한 시간과 기회 없이는, 좋은 포수도 없다.
-배지헌(야구 칼럼니스트)
포수는 야전사령관이라고 불린다. 실제로 경기에서 큰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감독이나 코칭스태프가 대타나 대주자, 투수 교체 같은 작전을 통해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포수도 사인을 내서 투수가 타자와의 승부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높인다. 예를 들어 타석에 강타자가 서 있는데 1루가 비어 있으면 포수의 재량으로 1루를 채울 수 있다. 포수가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다. 포수는 그라운드 밖에서도 꾸준히 상대편 타자들을 분석해야 한다. 습관이나 타자의 카운트별 노림수 같은, 수치화하기 힘든 부분까지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 투수들은 예민하다. 투수가 거부감 없이 사인을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투수 생각대로 해서 얻어 맞았는데, 포수 사인대로 던져 한두 명씩 잡기 시작하면 투수가 포수를 믿고 공을 던질 수 있다. 반신반의하는 상태에서 던지는 공과 확신에 찬 상태에서 던지는 공은 다르다. 물론 아무리 유능한 포수가 공을 배합하고 좋은 코스를 유도해도 투수의 능력이 떨어지면 성공하기 어렵다. 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공은 정해져 있다. 재료가 같다는 말이다. 즉, 똑같은 재료를 잘 이용해 좀 더 높은 확률을 제시해주는 것이 포수의 역할이자, 좋은 포수의 자질이다. 선동열, 김시진 같은 명투수에겐 포수의 역할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기량이 떨어지는 투수들의 공을 받을 땐, 포수가 바빠진다. 포수가 투수를 기른다고 할 수도 있다. 마냥 고집부리면 젊은 투수들은 성장을 못한다. 투수는 결국 자기가 자신 있는 공을 던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포수는 요리사와 같다.
물리적으로 공을 어떻게 잡느냐도 투수의 심리에 꽤 큰 영향을 끼친다. 투수들은 포구에 민감하다. 어떻게 미트질을 하느냐에 따라 스트라이크가 볼이 되기도 하고, 볼이 스트라이크가 될 때도 있다. 자세도 마찬가지다. 투수들마다 제각기 좋아하는 포수의 자세가 있다. 글러브를 크게 벌려주는 걸 좋아하는 투수, 정확히 낮은 자세로 앉는 걸 좋아하는 투수 등 다양하다. 투수는 보통 자기 공에 대해 연구하기도 버겁다. 그러나 포수는 상대 타자부터 자기 투수들이 뭘 좋아하는지까지 다 알아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공부를 통해 포수들이 타격에 눈을 뜨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포수들은 타율이 낮아도 ‘한 방’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반복적인 공부를 통해 상대 배터리의 볼 배합을 예측하고, 노려서 칠 수 있는 요령이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 활약 중인 포수 중에선 강민호가 눈에 띈다. 현역 때만 해도 강민호가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다음 공이 예측가능했다. 그러나 올 시즌 강민호는 더 이상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는 인터뷰에서 “예전엔 맞을 것 같아 도망갔는데, 이젠 사인을 내면 안 맞을 것 같단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포수의 자신감이 바로 투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김정민(LG 트윈스 배터리 코치)
- 에디터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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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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