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폼을 잡는 사람은 “오늘 나 너무 폼 잡는 거 아니에요?” 라고 묻지 못한다. 최백호는 늘 그를 따라다닌 낭만 혹은 고독 같은 단어가 자기의 것이라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전통 가요’라고 부르잖아요. 전통이란 건 어떤 면에서 익숙하고 습관적인 건데, 그런 의미에서 아닌 거죠. 특히나 이 앨범은 원래 가지고 있던 자유로운 음악 성향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앨범이고요.
공부를 많이 했어요. 음악 공부를 기초부터 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기초가 많이 모자라는데, 기초적인 작업이 많았죠. 그래서 갈등도 하고, 고민도 하면서 결국 해냈어요. 노래나 음악을 떠나서 나이 60이 넘어서 해냈다는 게 스스로 대견하고, 기쁩니다.
흥분해서 말씀하시는 걸 보면, 결과물이 정말 만족스러우신가 봐요.
이번 앨범은 90점 줄 수 있어요. 지금까지 만든 건 70점도 안 줬어요. 이번 앨범에서 아쉬운 건 키만 조금…. 더 높여서 강렬하게 불렀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목련’도 한 키만 올려서 부를걸,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 키에서의 매력이 있으니까. 암튼 만족하는 편이에요.
이전 앨범과 다르게 이번 앨범은 당신 목소리에 담긴 결이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해요. 의도하신 건가요?
아, 그렇죠. 하지만 노래할 때 의도적인 소리를 만들진 않아요. 만드는 기술은 없어요. 어떻게 노래에 빠지느냐가 중요한데, 빠지지 못한 상태에서 한 게 몇 곡 있어요, 이번 앨범에. 성격이 타협적이지 못해서, 의도를 잘 못해요. 콘서트 할 때 밴드가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노래를 제대로 못하거든요. 그걸 계속 신경 쓰는 거예요. 아주 나쁜 점이죠. 어느 정도 포기를 하고 내 노래에 집중해야 하는데.
타협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마음이, 어떨 때는 몸도 휙 떠나버리는 자유로운 영혼이군요.
까다로운 영혼이죠. 하하.
기존 팬들은 이 앨범을 낯설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해보지 않을까요? 이 앨범은 새로운 경향의 시작일까, 한 번의 일탈일까.
새로운 시작은 아니에요.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을까 싶어서 했죠. 앨범 녹음이 끝나고 몇 곡을 썼는데, 보니까 달라졌어요.
이렇게 앨범을 냈지만, 앨범이라는 형식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안타까움은 없나요?
없어요. 지나간 것에 별로 미련이 없어요. 금방 잊어버려요. 물건에 대한 것, 사람에 대한 것, 어떤 면에서는 기억력이 굉장히 나쁘죠. 그래서 스트레스가 별로 없어요. 막 고민하고 그러질 않아요. 저는 편하죠. 주변 사람이 힘들지.
수집벽 같은 건 정말 머나먼 얘기겠어요.
정말 없어요. 지금까지 제 앨범도 없었어요. 한두 장 있었는데, 어떤 분이 갖다 주셔서 있죠. 물욕도 없고, 탐내는 건 자동차 정도?
“먹고살려고 음악했다”고 했죠. 한 원로 음악가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요즘 애들은 왜 음악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돈도 못 벌고 배고픈데. 우리 때는 음악을 하면 여자한테 인기도 많고, 돈도 잘 버니까 했다고.
어떻게 보면 우리 세대한테는 직업이었어요. 가족 부양하고 먹고사는, 그러니까 나는 영원히 가수다, 하는 그런 게 있었어요. 근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얼마 나오다 안 되면 안 나오잖아요. 저 친구들 어떡하지, 나이 들면 어떻게 하지, 싶어요. 특히나 춤추는 아이들은 30대 되면 금세 없어져요. 연예 프로 나와서, 돈도 많이 벌고 지금은 좋겠지만, 우리 시각에서는 안됐어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게 있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 세대가 불쌍한가요?
아니요. 전 옛날 사람들이 더 불쌍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부러워요. 홍대에 가보면 어렵게 생활하면서 음악하는 좋은 밴드들이 참 많지만, 젊은 시절에는 그런 과정 한번 씩 겪어보는 게 좋아요. 요즘은 기회가 많잖아요. 실력만 있으면 나갈 데는 많다고요. 우리 땐 실력이 아무리 있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기회를 못 잡았어요. 악기 하나 구하기 힘들었고. 악보나 가사도 마찬가지였죠. 요즘엔 인터넷에 다 있잖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 부럽죠.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지만, 동기를 못 찾는 것 같아요. 당신처럼 “돈을 벌어야겠다”는 절박함조차 없는 거죠. 그래서 스스로 불쌍해지는 건 아닐지.
그건 가수만이 아니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 다 그래요. 우리 땐 굶어 죽었어요. 정말 굶어 죽는 사람이 있었고, 굶어 죽어도 아무도 몰랐어요. 지금이야 굶어 죽으면 신문에서 야단이 나겠지만요. 그러니까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로 매달렸어요. 젊었을 때 표정에 여유가 없는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음악은 그런 마음만으로 하긴 어렵지 않나요?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어야죠.
그런데 묘하게도 유신 시절에, 군사정권 때, 좋은 음악이 많이 나왔어요. 김민기, 송창식, 김정호. 굉장한 억압 속에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옛날엔 심의란 것도 있었고요. 그걸 피해가기 위해 가사를 절묘하게 꾸미면서, 노래가 좋아졌어요. 지금은 다 열려 있는데, 왜 김민기도, 한대수도, 송창식도 없나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음악이 나오는 건 아닌 거죠. 절박해야 돼요. 요즘은 노래를 너무 남한테 배워요. 실용음악과가 생기면서 연주는 좋아졌어요. 근데 가수의 목소리나 창법은 너무 획일화됐어요. 옛날의 송창식이나 조용필을 봐요. 들으면 딱 알잖아요. 지금은 선생 흉내를 내거나, 선생이 하라는 대로 하죠. 옛날엔 내 마음대로 호흡대로 하면서 개성을 만들어갔어요. 그런 게 참 아쉽달까요.
물론 스승은 없었지만, 나도 저렇게 부르고 싶다, 하는 가수도 없었나요?
없었어요. 노래 자체를 아주 좋아했던 건 송창식 선배예요. 송창식 선배 가사가 정말 좋았어요. 흉내낼 수도 없었지만, 흉내내려고도 안 했어요. 그런 좋은 선배가 많이 필요해요.
듣고 보는 게 많다 보니, 이걸 해야겠다는 확신보다는, 저 사람처럼 되면 어떨까 하는 고려만 발달하는 것 같아요.
환경이 워낙 열악하기도 했지만, 예를 들면 비틀스는 아득히 먼 신화적인 존재였어요. 그 사람들이 실제로 노래하는 걸 본 적도 없고, 가사도 모르고, 그 상태에서 경험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번 검색하면 비틀스 노래 듣고 볼 수 있잖아요. 기능적으로는 디지털이 뛰어날지 몰라도, 감성적으로는 아날로그가 맞는 것 같아요.
자기가 만드는 과정이 없어서일까요?
숙성을 거쳐야 하는데, 그거 없이 건너뛰니까.
운을 말씀하셨는데, 스스로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가수로서는 참 좋았죠. 우스갯소리로 천운을 타고났다고. 하지만 데뷔까지는 쉽지 않았어요. 서울로 와서 레코드사에서 테스트 받고, 소속 작곡가들 곡을 받았는데, 실례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근데 새까만 신인 가수가 어떻게 거절해요. 고민을 무지하게 했어요. 이걸 부르고 쉽게 가느냐, 거절하고 찍히느냐.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에요. 거절했거든요. 그러다가 최종혁 씨를 만났는데, 딱 이 사람이라고 느꼈죠.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가사 써놓은 걸 술 마시다가 그 분한테 보여줬어요. 쓸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한 일주일 뒤에 곡을 들고 만나러 왔죠. 노래 나오고 일주일 만에, 명동의 레코드점에서 다 나왔습니다. 30대에서 40대 중반까지는 방황도 많이 했지만, ‘낭만에 대하여’라는 또 다른 노래가 잘됐고, 이 앨범까지 왔죠.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절대 재능이나 이런 걸로는 될 수 없는.
하지만 옳은 선택을 했죠.
노래 외적인 것 때문에 노래에 대한 제 주관이 흔들린 적은 없어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른 걸 했으면 했지. 노래가 흔들리진 않았어요.
말씀하시는 여유란, 실수도 노래 안으로 받아들이는 건가요?
맞아요. 실수 많았어요. 틀린 부분이 많았는데, 듣기 괜찮더라고요. 내년에는 좀 더 좋은 가수가 되지 않을까요? 하하. 근데, 오늘 나 너무 폼 잡는 거 아니에요?
- 에디터
- 정우영
- 포토그래퍼
- 박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