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독일 베를린, 도서관이 있는 호텔

2017.05.10GQ

SIR SAVIGNY │ 독일 베를린

베를린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모순으로 가득한 수도다. 가장 최근에 문을 연 호텔인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격식 있는 이름과 과시적 사치를 하는 사람이 많은 부자 동네 샤를로텐부르크에 있다는 것에 속지 말 것. 44개의 객실을 갖춘 이 호텔은 외국 여행을 많이 다닌 현대 귀족의 우아한 주거지와 닮았지만, 어깨 힘을 빼고 즐길 줄도 안다.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그린 천장화로 멋을 낸 벽돌 아치의 통로를 지나면 독특한 구조가 기다리고 있다. 이 호텔에 일반적인 로비와 리셉션 데스크는 없다. 1층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서가와 커다란 공용 테이블이 있고 책이 잘 갖춰진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 한쪽은 사방에서 불을 쬘 수 있는 난로가 설치된‘Wintergarden’까지 확장된다. 그런가 하면 고품격 패스트푸드를 지향하는 버거 바 ‘The Butcher’에는 진짜 소만 한 봉제 소 인형이 창가 쪽에 매달려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무료로 제공되는 와인을 홀짝이고 있으면 쾌활한 직원이 와서 체크인을 도와준다. 방향제 냄새가 살짝 진하게 나는 공용 공간과 객실 곳곳에 호텔 주인으로 설정된 가상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런저런 소품들이 흩어져 있다. 근사한 체스판과 다이얼식 레트로 전화기, 큼직한 골든레트리버 주철 조각상도 보인다. 객실에는 남성적인 느낌의 물건들이 겹겹이 배치돼 있는데 겨자색 벨벳 안락의자, 가죽 소재의 이끼색 침대 헤드보드, 세이지색 베드 스프레드, 지역 예술가 카타리나 무지크의 콜라주, 여기저기 보이는 황동과 거울 같은 것들이 그 예다. 이 호텔은 인근에 아르누보 건축, 재즈 클럽, 갤러리, 웅장한 영화관, 일류 아시아 레스토랑이 많아 둘러보기에 아주 좋다. 하지만 어쩌면 방에서 ‘dial-a-burger’ 버튼을 누르면 배달되는 레어 송로버섯 버거를 먹는 것으로 충분한 관광이 될지도 모르겠다.

sirsavignyhotel.com, 더블 룸 약 11만원부터.

    에디터
    글 / 영국 '콘데나스트 트래블러' 편집팀
    포토그래퍼
    STEVE HER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