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자는 약속은 필요 없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정말 우리가 결혼한 부부보다 불완전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보증금 2000에 월세 70. 회사와는 20분 거리. 치킨집과 편의점, 마트랑 영화관이 가깝고, 자전거로 10분만 달리면 한강 공원에 닿는다. 방 2개에 다용도실이 딸린 일본식 이 층 집. 새로 바른 깔끔한 벽지에 생각보다 수납 공간도 많아 고양이도 편히 지낼 수 있는 조용한 주택가의 월셋집에서 우리는 같이 산다. 저녁엔 맥주나 위스키를 마시며 넷플릭스를 보다 잠들곤 하고, 주말 아침에는 늦잠을 자고 간단한 파스타나 가지 덮밥으로 점심을 때우는 날이 잦다.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건과 식재료는 몇만 원 이상이면 무료 배송인 마트 어플로 주문한다. 얼마 전 20대의 마지막 해를 맞이한 직장인 동거 커플의 평범한 일상이다.
“투룸을 구할까?” 출퇴근에 지쳐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자취방을 알아보고 있던 내게 애인이 대뜸 던진 말이다. 사실 처음엔 ‘미쳤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날 얼마나 안다고. 벌써부터 같이 살자는 말을 하지. 날 너무 가볍게 보는 건 아닌가?’ 무엇보다 남의 일일 것만 같던 ‘동거’라는 문제를 내 손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어색했다. 당장 나부터 동거라고 하면 어딘지 껄끄럽게 느껴지는 편견과 거부감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미 일주일에 며칠은 애인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마당에, 단순히 애인이 조금 더 큰 집을 구한다고 생각하면 그게 뭐 큰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애인과 나는 주 6일 출근한다. 두 사람 다 주기적으로 철야 당직이나 새벽 출근을 하는 직업이라, 서로 근무 날짜가 맞지 않으면 며칠씩 제정신으로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함께 살기 전엔 주말 하루 전투적으로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가 지쳐 잠드는 걸 두 달 정도 반복했다. 주중에 영화를 보거나 운동이라도 함께 하려면 잠을 줄여가며 무리를 해야 했다. 마침 8년째 자취방을 전전하고 있던 애인은 고양이와 함께 살 좀 더 큰 집을 찾던 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우리에겐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그것이 동거를 결정하게 된 이유다.
동거를 시작하기 전, 서로에게 바라는 건 싱거울 정도로 적었다. 설거지가 밀리지 않을 것. 지금까지 생각나는 건 이거 하나뿐이다. 어차피 우리 두 사람만 관계된 일이라 무리하지 않아도 되었다. 결정 권한은나와 애인 오직 둘에게만 공평하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살림이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함께 살기 시작하니, 어쩐 일인지 현재를 더 완전하게 살려는 욕심은 생겼다. 8년 동안 자취방을 전전하며 혼자 살아온 애인은 새로 구한 집이 여전히 월세임에도 불구하고, 임시로 거쳐가는 곳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온전히 소속된 공동체와 집이 생긴 기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 ‘잘’ 살기 위해 가사 노동에도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여가를 위해서도 더 많은 돈을 쓰게 됐다. 같이 살면 월세도 반이고, 밥도 직접 해 먹으니 돈이 절약될 줄 알았던 건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함께 살면서 전에 알지 못했던 안정감을 공유하게 되었다.
“혼인 신고는 했지요?” 혼자 부동산 계약을 하러 갔던 애인은 이런 질문을 연달아 받았다. 사거리까지 마중 나온 젊은 중개업자가 대뜸 물은 게 첫 번째였다. 부동산에 도착한 뒤에는 아주머니 중개업자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녀는 애인의 주민등록증을 살피더니 “우리 딸이랑 나이도 같은데…”라며 말끝을 흐렸고, 아무래도 동갑내기 입주자 커플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법적 부부가 아니면 문제가 되는 걸까? 월세를 밀릴지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질문을 받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우리는 그 속을 알 수가 없지만, 동거에 대해 사회가 지닌 편견은 생각보다 공고했다. 그 일을 겪고 세상을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거리마다 부부 식당, 부부 세탁소와 같은 간판이 왜 그렇게 많은지. 결혼한 커플이라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신용으로 쓰이는 세상이었다. 신혼부부 전세 대출, 신혼부부 버팀목 대출, 신혼부부 디딤돌 대출. 이 세상엔 신혼부부 전용인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동거의 사전적 의미는 “부부가 아닌 남녀가 부부 관계를 가지며 한집에서 삶”이다. 영어로 더 친근하게 읽히는 ‘동거’(live together)를 하게 된 지 이제 석 달째. ‘뜨게부부’라는 옛말도 있다. ‘뜨다’라는 말에는 “흉내 내어 똑같게 하다”는 뜻도 있는데 “옷감을 잘라 본을 뜨다”가 그런 뜻이다. 아마 많은 사람에게 우리는 ‘흉내 낸 부부’ 정도로 이해되지 않을까. 동반자로서의 애정과 친밀감을 느끼지만 부부는 아닌 관계, 언젠가는 채워야 할 2퍼센트를 남겨둔 미완성의 불완전한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결혼한 부부보다 불완전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우리는 전에 없이 온전하고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그걸 남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 두 사람의 한 달 계획은 거실에 걸려 있는 종이 달력 위에 함께 적혀 있다. 영원하자는 약속이 아니어도, 지금 이 순간을 충만히 누리려는 노력 또한 가치 있다.
지난 주말에 후배 하나가 청첩장을 주기 위해 우리가 사는 집을 찾아왔다. 우리 두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을 하나씩 둘러보던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사실 결혼보다 그냥 같이 살고 싶은 것 같아. 좀 더 오래 붙어 있고, 같이 아침 먹고, 퇴근하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거.” 오래 만나온 연인의 재촉에 결혼을 결정하긴 했지만, 혼인 신고는 2년 뒤에 하기로 했단다. 요즘 주변을 보면 후배처럼 혼인 신고는 미뤄두는 부부가 많아졌다. 두 사람 사이에 신뢰 관계 이상의 보증이 필요하다며 법적이고 제도적인 관계로 서로를 묶어놓는게 결혼이면서, 막상 공식적인 문서에 도장을 찍는 일은 미룬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확신이 생길 때까지 동거를 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서둘러 식을 올리는 걸까? 게다가 후배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주말부부로 지내야 하는 상황이라, 정작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데이트를 하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함께 살고 싶어 결혼을 하는 것일 텐데 정작 함께 산다고 하긴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두 사람이 온전히 누려야 할 시간을 그보다 덜 중요한 일들을 해치우는 데 더 많이 빼앗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혼을 앞두고, 동거를 갓 시작한 커플의 어설픈 보금자리를 부러워하는 후배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속임수를 써서 쉽게 행복해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이 속이는 쪽은 결혼이 아닌가.
2016년엔 10만 7천 쌍의 부부가 헤어졌다. 세 쌍 중 한 쌍은 결혼한 지 20년이 넘은 부부로 가장 많았다. 요즘 아주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졸혼’이란 신조어를 입에 담는 중년들이 있는데 그가 내뱉은 말에 긴장하는 것은 그의 배우자만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어머니, 아버지가 부부의 삶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했던 20, 30대 자식들이야말로 혼란스럽지 않을까. 우린 아주 오랫동안 범죄 수준으로 쫓아다니거나, 맞선 혹은 양가 부모의 주선으로 두어 번 만나 결혼에 골인한 것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그 시절만의 로맨스라고 들으며 자랐다. 그런 러브 스토리가 아직까지 구전되고 있건만 한 해 결혼하는 커플 숫자는 지난 20년 동안 반 토막 났다. 평생을 해온 부부 관계까지 끝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우리 방식대로 좀 더 신중하게 재보고 결정하자는 게 그렇게 외람된 소리일까. “동거를 할 거면 차라리 결혼을 하지. 책임을 지지 않는건 어른스럽지 못해”라던 어른들이 이제는 결혼에 마침표를 찍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동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몇몇 사람만 알고 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라고 해서 동거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동거 중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을 사람들에게만 이야기를 꺼냈다. 동거가 무책임하다는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그렇다면 결혼은 그만큼 많은 것을 보장하고 책임져주고 있을까? “한국에서는 결혼을 해야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책임감 없는 사람이 결혼한다고 책임감이 생기는 건 아니죠.” <이웃집 찰스>에 출현한 이탈리아인 사무엘의 말은 동거를 하고 있는 나조차 자유롭지 못한 결혼만능주의의 허점을 보여줬다. 결혼을 하면 생기는 책임이란, 두 사람이 갈라서게 될 때 재산 분할과 위자료, 자녀 양육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매뉴얼화된 법적 책임 정도가 아닐까. 게다가 두 배로 늘어난 양가 부모에 대한 부양의 의무는 어떤가. 결혼식이나 살림 밑천을 장만하는 동안 양가 집안에서 받은 막대한 원조를 되갚아나가는 채무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다.
물론 족쇄가 되는 책임 또한 있다. 왜 결혼에 대해 “남자가 여자를 책임진다”는 식의 언사가 관용적으로 오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부정적 가정에서는 오히려 여성이 희생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마련이다. 나는 가족이라는 가부장적 제도가 개인에게 치유 불가능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난 20여 년동안 목격해왔다. 어머니는 내가 동거를 시작한 28세에 결혼했다. 그때부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25년 동안 양가 부모님을 모셨다. 젊은 어머니는 치매에 거동이 불편한 평범한 노인이었던 네 분의 밥상을 손수 차리고, 대소변을 받았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할머니의 소변 통을 갈았고, 좀 더 커서는 할아버지의 대변 빨래를 도왔다. 어머니의 노동과 헌신이 없었다면 아버지는 평생의 사업도, 그토록 소원하는 정치계 입문을 위해 집안의 돈을 가져다 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여성에게 결혼은 그의 삶을 제약하는 굴레이며 희생을 강요하는 족쇄로, 매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아직까지 결혼 생활에서 여성은 분명한 약자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결혼을 선택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누구보다 생활력 강하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재원이건만, 당장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동동거리는 친언니를 보면서 우리 세대에 내려와서도 여전히 결혼은 사회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보장해주지 않는 제도임을 실감한다.
순진한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사실 나는 지금껏 사회에서 크게 거부당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동거를 결정한 뒤부터야, 사회에서 인정하는 범주에 들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답답한 심정을 배워가고 있다. 범주 안에 들기 위해 사회가 권하는 결혼을 향해 돌진하고 있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의 삶은 지금 이대로 완성되어 가는 중이다. 둘 중 한 사람이 감기 몸살로 앓아 누우면 다른 한 사람이 돌봐준다. 사소한 집안일도 함께하는 게 익숙하다. 함께 하는 건 그렇게 일상이 되었다. 20년 뒤 일까지는 몰라도, 당장 오늘 저녁 약속을 잡을 때 상대방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우리 두 사람의 한 달 계획은 거실에 걸려 있는 종이 달력 위에 함께 적혀 있다. 영원하자는 약속이 아니어도, 지금 이 순간을 충만히 누리려는 노력 또한 가치 있다. 그렇게 믿는다.
이성 간의 혼인으로 맺어져 혈연관계로 형성된 집단. 가족의 이 관습적 정의는 곧 바뀌거나 대체될지도 모른다. 비혼과 졸혼을 선언하는 사람들, 동거를 택한 연인들,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들, 법적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성소수자 연인들, 연인 관계가 아니지만 가족이 된 사람들, 서로 모르지만 함께 사는 하우스 메이트들, 완전히 새로운 가족 모델을 찾는 폴리아모리스트들. 2018년, <GQ>는 가족은 무엇인지, 함께 하지만 또 가족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 에디터
- 글 / 장애령(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