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번역은 관객과 감독 사이의 벽을 한없이 투명하게 만드는 일이다. 과한 자의식도 잔재주도 필요 없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틀리지 않는 것이다.
“이상적인 번역가는 유리처럼 투명해서 독자가 그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게 해야 한다.” 1800년대에 소설가 겸 극작가로 활동한 러시아의 문호 고골리가 한 말이다. 관객은 감독이 제작한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것이지, 번역가의 자막을 감상하러 가는 게 아니다. 관객들이 자막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못 챌 만큼 영화 자체에 몰입하도록 돕는 게, 영화 번역의 미덕인 셈이다. 그러므로 영화 번역가에게 가장 필요한 초능력은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때 작품 자체에 대한 여운이 남는 게 아니라, 번역에 대한 평가를 먼저 하게 되는 건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번역 때문에 영화의 메시지가 달라졌다”라는 평가가 더 화제가 된다면, 번역가가 유리처럼 투명하게 번역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투명하게 번역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어벤져스3: 인피니티 워>(이하 <어벤져스3>)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단순히 ‘의역이 좋다, 직역이 좋다’의 문제가 아니다.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물론 번역가 입장에서 ‘감독의 의도’를 파악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고,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 자막에 반영할지는 번역가가 판단해야 할 몫이다. 그 판단뿐 아니라 적용 방식에서도 오역이 발생할 수 있다.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어벤져스3>에 나오는 외계 식물 종족인 그루트는 “나는 그루트다(I’m groot)”라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말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관객은 “나는 그루트다”라는 대사가 나올 때마다 진짜 속뜻이 뭔지 상상할 수밖에 없다. 한 영화 팬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감독이자 <어벤져스3> 기획에도 참여한 제임스 건 감독의 트위터에 질문을 남겼다. <어벤져스3>에서 그루트가 마지막에 로켓을 보며 말한 “나는 그루트다”의 속뜻이 뭐냐고. 제임스 건 감독은 “Dad(아빠)”라고 대답했다. 그루트가 늘 곁에서 자기를 보살펴준 로켓을 아빠처럼 의지했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대사다. 만약 번역가가 이런 감독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아빠’라고 번역했다고 가정해보자. 이건 지나치게 친절한 번역이다. 번역가가 ‘아빠’라는 속뜻을 알았다 쳐도 번역할 때는 영어 원문을 직역해서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는 것이 합당하다.
<어벤져스3>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된 번역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사인 “We’re in the endgame now”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타노스에게 타임 스톤을 넘긴 뒤, 왜 그랬냐는 토니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제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어”라는 의도로 한 말인데 “이젠 가망이 없어”라고 번역해 캐릭터의 성격과 극 전개가 바뀌었다며 관객의 원성을 샀다. 이와 관련해 <어벤져스4>에 대한 궁금증을 유도하기 위해 “가망이 없다”라고 번역했다는 후문이 기사를 통해 밝혀졌지만, 관객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아직 끝이 아니다’라는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의역으로 핵심 내용이 바뀐 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영화 번역 현장에서는 번역가나 홍보 팀의 의도가 개입돼 원작의 분위기가 바뀌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홍보 방향에 따라 번역 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타깃 관객층의 연령에 맞춰 자막 표현 수위를 정하기도 하고 어디까지 쉽게 풀어서 번역할지 결정한다.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서 어린이가 장래 희망에 대해 “I’m gonna be an actuary!”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극장 자막판에서는 “보험 전문가로 꼭 성공할래요”라고 ‘actuary’를 직역한 반면 더빙판에서는 “수학 선생님이 될 거예요”라고 의역했다. 어린이가 주요 타깃이므로 더 쉬운 표현으로 바꾼 것인데, 성인 타깃인 자막판에서 ‘수학 선생님’으로 번역했다가는 오역이라고 지적받을 것이다.
영화 자체가 밋밋할 때는 더 웃기게, 더 세련되게 한글 자막을 다듬는 게 어디까지 가능한지 번역가는 갈등하게 마련이다. 영화의 재미를 자막으로 100퍼센트 이상 끌어올리려고 과욕을 부리다 보면, 원작의 분위기를 해치는 역효과가 난다. 예를 들어, “It’s amazing”이라는 문장에 유머를 가미하겠다고 ‘쩐다’라고 번역한다고 쳐 보자. 캐릭터와 상황에 꼭 알맞다면 괜찮겠으나, 평범한 성인이 진지한 상황에서 저렇게 말하는 것이라면 의욕이 앞선 의역이 될 것이다. 타깃 관객을 고려하되 맥락에 맞게 의역을 해야 자막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
<어벤져스3: 인피니티 워>에서 또 다른 논란이 된 번역은 마지막에 어벤져스의 수장 닉 퓨리가 사라지면서 “어머니”라고 말한 부분이다. 원문 대사가 “Mother fu…”로 욕설인 “Mother fucker”를 말하려다 끊긴 것이다. 원문의 뉘앙스를 다 담아낼 수 없다면 “이런…” 정도로 번역하면 된다.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져 가는 심각한 상황에서 닉 퓨리도 사라지는 순간, “어머니” 한마디만 남기고 영화가 끝이 나니 관객들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번역 당시, 번역가에게 어떠한 가이드나 주석 자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영상에서는 “Mother…”까지만 분명하게 들리므로, 특정 캐릭터를 가리키는지 욕설인지 판단하기가 애매해 일단 ‘어머니’로 번역하고 마블에서 승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영화 번역을 하다 보면, 불명확했던 대사가 후속 시리즈에서 명확하게 밝혀지는 경우가 많아 일부러 모호하게 번역하거나 직역할 때도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aunt’라는 대사가 나왔을 때 이모인지, 고모인지, 숙모인지 정보가 없을 때, ‘친척’이라고 애매하게 번역하는 것이다. ‘이모’라고 번역했다가 뒤에서 ‘고모’라고 밝혀질 수도 있으니, 오역을 피해가려는 차선책이다. “Mother fu…”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니 번역가의 선택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긴 어려우나, 자료 조사를 했다면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벤져스3>에 앞서 개봉한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오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메이 숙모가 스파이더맨 슈트를 입은 피터를 보며 “What the Fu….”라고 말하는데 자막은 “이런 ㅆ…”라고 번역했다. 같은 마블 시리즈, 같은 대사에서도 번역은 이렇게 달라진다. 수입사와 번역가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문제라 해도, 앞선 시리즈만 참고했더라도 “Mother…”가 욕설이라는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오역을 하지 않는 번역가는 없다. 단 한 번도 오역을 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번도’ 번역을 해보지 않은 사람뿐이다. 번역 경력이 길어지고 번역 목록이 쌓일수록, 오역 리스트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번역가만 믿어서는 안 된다. 번역가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감수 과정을 강화해야 한다. 미드 번역의 경우, 여러 차례 감수 단계를 거치며 오역을 잡아내고 문장을 다듬는다. 그런데 영화 번역은 사전 심의 일정, 홍보 일정, 개봉 일정 등 내부 사정을 이유로 감수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못한다. 오역이 발생하는 건 번역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배급사에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한편, 오역 논란이 이어지는데도 한 번역가가 마블 시리즈를 독점 번역하는 것에 대해 영화 번역계에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관객도 있다. 실제로 영화 번역 인력 풀은 풍부하지 못하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애당초 새로운 인재가 진입하거나 성장하기 힘든 구조다. 갓 발을 들인 초보 번역가들의 경우, 터무니없이 낮은 번역료를 받고 촉박한 번역 일정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번역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서 못 버티고 번역계를 떠나는 이들이 부지기수고, 블록버스터를 맡아 흥행에 성공한 번역가에게만 일이 몰린다.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영화 번역가들도 있지만 대개는 관객수가 1만 명도 채 안 되는 작품들이다. 소수의 번역가가 블록버스터의 번역을 독점하다 보니, 눈 밝은 관객들은 자막만 보고도 특정 번역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번역가가 영화에 자신의 인장을 남기는 것이 잘하는 번역일까? 제각기 감독도 스타일도 다른 영화들을 특정 번역가의 스타일이 녹아든 자막으로 감상한다는 게 과연 관객에게 좋은 일일까? 글 / 함혜숙(영상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