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앨범을 낸 마미손이 2019년의 마지막을 장식 중이다. 이상하다. 마미손이 왜 날 울리지? 키워드로 보는 마미손의 음악 세계.
#구원자
힙합을 망치러 온 힙합의 구원자.
지난 여름 폭염에 핑크색 니트 복면을 쓰고 <쇼미더머니 777>에 나타난 마미손. 처절하게 가사를 절어버리는 바람에 불구덩이에 쳐박혔던 그는 하필 <쇼미더머니 777> 결승 날 ‘한국 힙합 망하라’며 싱글 ‘소년점프’를 발표했다. 이 곡은 처음엔 서로 말도 안되게 디스를 하다 순위가 올라갈수록 돈 벌이 자랑을 하다가 결승전에서 갑자기 가족 얘기하며 즙을 짜내는 <쇼미더머니>의 뻔한 패턴을 단숨에 부서버렸다. 더워 죽겠는데 복면 쓰고 떨어져서 기분 안 좋고 니네 다 망했으면 좋겠다던 마미손은 그 후로 1년 동안 인기 정점에서 식상해져버린 한국 힙합의 새로운 대안이 됐다.
#아는 형님
참으로 의미 적절한 아는 형님들의 피처링.
‘소년점프’의 도입부분은 걸쭉한 배기성의 보컬로 시작한다. ‘비겁하다 욕하지마’로 대변되는 캔의 배기성 형님. 그가 악당이라고 노래하는 스윙스, 기리, 팔로, 코쿤은 정말 나쁜놈이라 응징을 해야할 것만 같다. 노래 시켰더니 대충 웅얼거리는 게 힙하게 된 지금 시대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배기성의 보컬이 마미손의 랩과 어우러지자 통쾌함으로 바뀌었다. ‘별의 노래’ 클라이맥스는 유진 박의 바이올린 연주다. 그간 사회면에서 주로 만날 수 있었던 비운의 천재 유진 박을 무대로 이끌어 마음 놓고 연주하게 만든 마미손 덕분에 유진박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졌다. 마미손은 잠시 기억 속에 잊혀졌던 형님들의 사연을 힙합 속에 녹이는 방법을 안다.
#메시지
놓치고 있던 한국 힙합의 메시지.
어떤 장르의 예술이건 간에 창작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동안 한국 힙합의 창작자들은 내가 얼마나 벌어서 얼마나 썼는지, 내가 얼마나 잘나가서 얼마나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지를 유행처럼 이야기했다. 플렉스가 너무 넘쳐나다보니 그마저 진부해졌다. 마미손은 음악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통해선 15년 힙합을 해 차트인 하루도 못 가는 현실을 노래했다. 휴대폰 천 개로 ‘별의 노래’만 스트리밍하고 싶은 솔직한 욕망,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런게 메시지다.
#페르소나
매드클라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마미손.
왜 ‘소년점프’ 작사 작곡이 매드클라운인지, 우리 모두 알면서 모른척 하고 있다. 마미손이라는 페르소나는 십수년 한국 땅에서 힙합을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래퍼가 자기 자신을 깨고 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싶을 때 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지 모른다. 한때 음원 깡패였던, 여자들에게 인기 많았던 매드클라운은 새로운 트렌드에 잠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특유의 때려 박는 래핑도, 사랑과 이별에 대한 가사도 별 감흥이 없어졌을 때, 그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마미손이 등장했다. 복면 안의 모습이 대충 짐작은 가지만 절대 모르는 걸로 해야한다. 그래야 우리는 마미손의 음악을 더욱 즐길 수 있으니까.
#피씨방 패션
모든 래퍼가 돈다발, 명품으로 칠갑을 할 때 동네 피씨방 룩 을 하는 용기.
‘별의 노래’ 뮤직비디오를 보고 가장 놀란 점은 아웃도어 브랜드 로고가 딱 박힌 스웨트 셔츠에 물이 빠지고 무릎이 나온 바지를 입은 마미손의 룩이었다. 주렁주렁 금붙이에 금니까지 총동원해 가며 블링블링을 과시하는 여타의 래퍼들과는 또 다른 신선함. 우리는 어제 저녁에도 저 차림으로 피씨방 가는 동네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이제 저 차림으로 피씨방 대신 음악 방송을 갈 수도 있다.
#카타르시스
우리 다 찌질해, 그거 인정하면 인생이 편해진다.
‘나도 한때 찌질 했지만 지금은 돈 쓸 시간도 없이 바빠’가 그간의 유행하던 힙합이었다면, 마미손의 힙합은 ‘우리 모두 다 찌질해. 그래서 뭐?’다. SNS에 피드만 둘러봐도 대충 나보다 잘 나가는 인간들 천지다. 방구석에서 그걸 보는 내가 찌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그거 다 보기 좋은 순간만을 포착한 거라는거, 우리 다 알지 않나. 마미손은 울고 짜고 찌질한 우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우리는 이상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진한 위로를 얻는다. 울고 싶으면 실컷 울라던 ‘별의 노래’를 듣고 울 수 밖이 없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에디터
- 글 / 서동현(프리랜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