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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드 <펜트하우스 2>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

2021.03.11GQ

순옥드.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를 일컫는 조어이자,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와 볼 수밖에 없는 드라마 사이의 교집합. 순옥드, <펜트하우스 2>가 시작된다.

김순옥 드라마의 아주 큰 특징은 고전에 충실한 서사 구조다. 김순옥의 모든 드라마 구조는 비극의 기본인 원한-복수다. 일부 네티즌은 <펜트하우스>와 그리스 신화의 구조가 비슷하다고 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는 트로이 전쟁 서사와 비슷하고, 로건과 수련의 복수극은 오레스테스 신화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신화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수천 년간 움직여온 검증된 스토리 라인이다. 스스로 밝힌 적은 없으나 김순옥은 서양 고전과 극작 구성에 깊은 이해도가 있는 듯 보인다. 학창 시절의 3분의 2를 문학회에서 시와 소설을 읽으며 토론을 했다는 사람답다.

김순옥은 ‘막장 드라마’라는 말을 유행시킨 <아내의 유혹>에서도 고전적인 서사를 작동시켰다. 서사 구조의 차용은 음악의 코드 진행과 비슷하므로 표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고전 서사의 창의적 재해석이라고 보는 게 맞다. 김순옥이 <아내의 유혹>에서 차용한 서사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한국어판으로만 5권 분량의 대작이다. 이야기는 선량한 선원 에드몽 당테스가 마르세유로 입항하며 시작한다. 당테스는 능력이 뛰어나고 인성이 발라서 젊은 나이에 선장이 될 예정이고, 동네에서 가장 예쁜 메르세데스와 결혼도 할 예정이다. 그러나 당테스가 응당 가져야 할 행복을 가지기 직전에 누명을 쓰게 되고, 그는 감옥에 평생 갇히고 만다. 감옥 안에서 세상의 온갖 지식을 아는 파리아 신부를 만나 엄청난 지식을 쌓고, 파리아 신부가 죽은 후 파리아의 시체 대신 바다에 던져졌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 나온다. 살아 나온 후 파리아가 알려준 보물을 얻고, 그 부를 이용해 신비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된 당테스는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들에게 철저히 복수한다.

<아내의 유혹>을 본 분들이라면 이 줄거리만 봐도 ‘어 구은재와 신애리잖아…’ 싶을 것이다. 선량한 구은재는 아내의 유혹 월드의 에드몽 당테스다. 구은재는 모든 것을 뺏기고 당테스처럼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나고, 그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아내의 유혹> 속 민현주가 파리아 신부다. 구은재는 민현주의 지도 속에 민소희로 다시 태어난다. 당테스가 파리아 신부의 지도를 받아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엄청난 능력을 가지듯.

검증된 고전적 서사 위로 ‘이게 한국이구나’ 싶은 에피소드가 가득 덮인다. 뿌링클 소스를 듬뿍 뿌려 닭 가슴살의 맛은 느껴지지도 않는 뿌링클 치킨처럼, 순간순간 자극적인 에피소드가 가득해 기본 서사의 구조는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서사가 식재료라면 그 안의 에피소드는 소스다. 식재료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소스 맛, 김순옥 드라마의 압도적인 성공 비결이다. 다른 드라마라면 3회에 생길 일들이 20분 안에 몰아쳐버리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걸 기술적으로 말하면 ‘극성이 센 드라마’가 된다. “극성이 세고 속도가 빠르면 사람들에게 계속 자극을 줄 수 있죠.” 어느 드라마 작가는 김순옥 작품을 이렇게 정리했다. “(김순옥 드라마는) 국면 전환이 빨라요. 4회쯤 나올 이야기가 2회에 나오는 식이에요. 그러려면 드라마 안에서 사건이 더 많아져야죠. 그만큼 초반 속도가 빨라지고요. 계속해서 위기도 늘어나겠죠.” 초반의 속도감을 위한 에피소드의 다량 전진 배치. 이 역시 김순옥 드라마의 공통점이다.

“사실 현실은 재미가 없어요.” 익명의 드라마 작가가 한 말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그러니 이야기에 조미료를 조금 치는 거죠. 그걸 극성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죽인다거나, 쫓아온다거나, 이런 이야기가 김순옥 작가님 드라마에는 조금 세고 많아요. 다만 이야기가 무겁기만 하면 안 되니 일종의 감초 역할이 필요하죠. 그런 코믹 릴리프가 극을 환기시켜요.” <펜트하우스>에서는 신은경이 연기하는 강마리가 그런 역할을 한다.

시청자는 김순옥 드라마를 비난할 수 있겠으나 이야기를 만드는 프로 입장에서는 김순옥의 기술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 드라마라는 큰 틀 안에서 에피소드가 터질 때 가장 놀라워지는 타이밍이 있다. 그 타이밍을 어디에 놓아 시청자를 어떻게 놀래키고, 또 어떻게 계속 잡아두는지가 모든 서사물의 노하우다. “(드라마를)‘보게 하는 힘’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는 사실 정확히 모르겠어요. 어느 정도의 논리성이 필요하고, 동시에 극적 허용도 어느 정도는 가능해요. 저는 김 작가님 드라마를 보지 않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아요. (김순옥 작가 드라마를 보지 않는 건 평가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라는 점을 언급해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드라마 작가는 의견을 마무리했다.

김순옥의 2011년 이화여대 방송국 인터뷰에는 원고를 작성하는 이라면 숙연해지는 말이 많다. “드라마란 인간의 행동을 심도 있게 그려서 보는 사람한테 어떤 즐거움이나 감동이나 유쾌함을 줘야 해요. 그 사람이 긍정적인 삶을 살도록 유도하는 것이 드라마거든요. 좋은 쪽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수 있을 만큼 뭔가 되려면 자기 스스로가 뚜렷한 작가 정신, 인생관이 정립되어 있는 사람이 글을 써야 된다는 거예요”라는 말은 정말 맞다. 뚜렷한 작가 정신을 말하는 작가 김순옥과 모든 등장인물이 피의 춤을 추는 <펜트하우스> 작가 순옥 중 무엇이 김순옥일까.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시청률이 생각보다 안 오를 땐 ‘작가님 독약 풀어주세요~’라고 전화가 와요. 그러면 집에 있는 운동 기구에 올라 고민하다가 ‘센’ 내용을 넣습니다.” 2018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작가 임성한은 말했다. 그렇다. TV 드라마는 비즈니스다. 비즈니스는 수익을 내야 한다. 수익은 제작자가 아닌 손님이 원하는 것을 줄 때 난다. 자극적인 이야기는 손님이 불러낸 거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말처럼. 중요한 건 욕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김순옥 드라마에 따르면 좋은 사람은 잘되고 나쁜 사람은 안 된다. 김순옥을 비롯한 한국의 대중 드라마는, 아니 모든 희극과 비극은 이 공식을 벗어나는 적이 없다. 그러니 <펜트하우스 2>는 더욱 강력하고 복잡한 복수극이 될 것이다. 오윤희와 심수련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원한을 갚을 것이고, 주단태와 천서진 역시 자신을 지키고 숨기고 가지기 위해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이 모두는 그리스 비극처럼 처절한 절정으로 치닫을 것이고, 방송사는 각종 중간 광고와 PPL로 엄청난 수익을 낼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을 끌어들이는 건 결국 강렬한 이야기다. 김순옥 역시 동서고금의 법칙을 21세기 한국풍으로 재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 원고를 위한 자료를 찾던 중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발견한 이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스 사람들이 왜 비극에 환장했는지 알 것 같다.”

    박찬용('요즘 브랜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