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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종협은 뭐든 시키면 다 할 것 같아서요

2021.10.09김영재

눈에 확 들어온다. 채종협이 하나씩 보여줄 색깔들.

블랙 레더 블루종, 블랙 팬츠, 모두 송지오. 블랙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루키 시즌이라 할 수 있는 작년과 2년 차인 올해를 비교하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JH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1년 차, 2년 차로 구분 짓기보다 데뷔 후 지금까지의 시간이 하나의 챕터처럼 인식되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좋아하는 일을 하게 돼 경험을 쌓고 배워가며 깊어지는 시기라고, 그렇게 생각해요.
GQ 계획대로, 생각대로 착착 흘러가고 있어요?
JH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작은 목표를 세우는 편이에요.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요. 그래서 데뷔작 <스토브리그>를 마치고 인터뷰에서 대본 리딩을 할 때 구석이 아닌 테이블에 앉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 다음은 감독님 옆에서 대본 리딩을 하고 싶었고, 이후에는 포스터를 찍고 싶었어요.
GQ 올해 드라마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와 <알고있지만,>을 통해 그 목표를 다 이뤘네요.
JH 네, 이름 있는 배역을 맡기까지 4~5년이 걸렸어요. 빠르지도, 늦지도 않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데뷔 후에 세운 목표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빨리 이뤄진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머릿속이 복잡해요. 다음 목표를 세우느라. 원래 생각이 많긴 한데 잠을 못 잘 정도예요. 하루에 운동을 세 번씩 해도, 몸이 녹초가 되도록 뛰어도 멀뚱멀뚱 잠이 오지 않아요.

오렌지 모헤어 니트, 오렌지 터틀넥, 네이비 팬츠, 모두 디올 맨. 블랙 부츠, 오프 화이트.

GQ 뭘 하며 그 시간을 보내요?
JH 새벽에 나가서 혼자 걷곤 해요.
GQ 새벽과 산책이라, 생각과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완벽한 조합일 텐데요.
JH 그래서 스스로 주문을 걸 듯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해요. 밤하늘을 보면 제일 빛나는 별이 있어요. 남들은 그게 인공위성이라고 하지만 저는 별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보면서 계속 걸어요.
GQ 걷는 취미는 언제 처음 시작했어요?
JH 학창 시절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보냈어요. 부모님에게 떠밀리다시피 간 유학이었죠. 그 시절을 추억하면 힘듦, 슬픔이 먼저 떠올라요. 어린 나이였고, 말도 안 통하는 곳이었으니까.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으로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걷기도 시작했어요.
GQ 미루어보건대 힘든 시기를 씩씩하게 잘 보냈군요. 지금이 인생의 몇 번째 챕터라고 생각해요?
JH 세 번째 챕터요. 유학 생활이 첫 번째, 모델 일을 했을 때가 두 번째. 이 시기는 짧았죠. 열아홉 살 때 모델이란 목표를 갖고 일을 하다가 스물네 살 무렵 연기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GQ 어떤 부분 때문에 연기에 흥미를 느꼈어요?
JH 모델 일보다는 공부할 게 많고 대사를 통해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경험이나 감정을 접할 수도 있고요.
GQ 그런 측면에서 연기를 통해 처음 느껴본 감정 있어요?
JH 로또 1등 당첨의 기쁨요. 드라마 <시지프스>에서 당첨 장면을 연기했어요.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도저히 그 기분을 알 수 없잖아요. 주어진 상황에 집중해서 제가 느끼는 감정이 진짜라고 믿고 연기했어요.
GQ 궁금해요. 로또에 당첨되면 어떤 기분인지.
JH 일단 믿기지 않아요. 입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나와요. 그냥 멍해요. 당첨금을 손에 쥐기 전에는 실감이 나지 않고 붕 뜬 기분이에요. 제가 진짜라고 느꼈던 기쁨은 그랬어요.

퍼플 브이넥 니트, 블랙 팬츠,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 블랙 첼시 부츠, 오프 화이트.

GQ 말한 것처럼 멍할 정도로 기뻤던 적 있어요?
JH 데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요. 회사로부터 <스토브리그>에 캐스팅됐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장난치는 줄 알았죠. 그런데 진짜였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부모님한테 제일 먼저 연락을 드렸더니 “무슨 일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눈물이 확 쏟아졌어요.
GQ 자신이 출연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많이 본 장면은 뭐예요?
JH <스토브리그>에서 윤병희 선배님과 고깃집에서 대화하는 장면요. 왜 저를 뽑았냐고, 나 말고 다른 선수 뽑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대사를 했어요. 본방송에는 나가지 않고 클립 영상으로 따로 공개됐거든요. 정말 많이 봤어요. 그냥 애착이 가요. ‘왜 채종협일까?’라고 제 현실을 대사에 빗댈 수 있겠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이유 없이 제 마음에 계속 남더라고요.
GQ 나름 의미가 있는 대사를 꼽는다면요?
JH 되게 많아요. 지금 생각나는 것만 말하면,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에서는 “한 번 더 빌 수 있다면 곁에 있어주는 거 말고 지켜주는 걸로, 아니면 누나가 행복해지는 걸로 바꾸고 싶어요”. <알고있지만,>은 “너한테 다른 사람 생기거나 다른 이유 없어도, 난 아니라고 할 때까진 포기 못할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던 대사라 잊을 수가 없어요.
GQ 그러고 보니 연달아 유순하고 상냥한 캐릭터를 연기했어요. 변신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JH 있죠, 당연히. 하지만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제대로 하는 게 우선이에요. 잘하지 못하는데 무작정 변화를 시도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로고 프린팅 버킷 햇, 네이비 블루종, 모두 구찌. 화이트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만약 연출자로서 배우 채종협을 캐스팅한다면 어떤 역할을 맡기고 싶어요?
JH 세상의 모든 것에서 떨어져 있는 인물. 그게 괜찮겠네요. 오지 같은 곳에서 다른 출연자 없이 혼자 연기하는 거예요.
GQ 뜻밖의 대답이네요. 이유가 뭐죠?
JH 채종협은 뭐든 시키면 다 할 것 같아서요.
GQ 혼자 있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니고요?
JH 음, 아마도요. 생각이 너무 많다 보니 고민거리들에서 저를 떼어놓고 싶은가 봐요.
GQ 채종협 하면 눈웃음을 빼놓을 수 없던데, 자신을 미소 짓게 만드는 뭔가가 하나는 있겠죠?
JH 촬영요. 슛 돌아가는 그 순간이 제일 즐겁고 행복해요. 생각만 해도 들썩여요. 그래서 다음 작품이 기다려져요.
GQ 카메라 밖에서는요?
JH 턱걸이를 한 개 더 했을 때. 평소 실력보다 한 개를 더 하는 게 정말 힘들거든요. 힘을 짜내서 그 하나를 해내면 기분이 끝내줘요.

    피처 에디터
    김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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