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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바텐더가 함께 만든 농장 칵테일 6

2022.02.21전희란

칵테일의 미래는 어쩌면 농장에서 솟아날 지도. 지금 반드시 주목해야 할 ‘준혁이네 농장’의 유일한 멤버십 바텐더, 손석호, 김도형과 이 계절의 칵테일을 꽃피웠다.

아코어 1841 글라스, 바카라.

준혁이네 농장의 얼굴, 이장욱 농부님의 말로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무래도 그게 옳다. “저희 농장에는 멤버십으로 운영하는 ‘Chef’s Farm’이 있어요. 멤버는 대부분 레스토랑 셰프죠. 식당 중심의 소통에 익숙하던 제게 바텐더 손석호, 김도형과의 소통은 무척 신선했어요. 허브 등을 이용해 향을 추출하고 술을 만드는 두 바텐더가 그리는 그림을 현실로 옮길 수 있게 지원하려고 노력 중이죠. 더 나아가 바 문화에 한국적인 정서와 향을 녹여내려는 공동의 목표도 있고요. ‘코리안 바’ 문화를 바 종주국인 해외로 역수출할 수 있도록요.” 소코바 손석호 바텐더가 준혁이네 농장에 드나든 지 어느덧 3년째다. 그는 셰프스 팜의 첫 바텐더 멤버다. 그 사이 바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고 바로 이 칵테일, 스파이시 줄렙 또한 농부와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결코 탄생했을 리 없는 술이다. “청양고추와 오이를 수비드 인퓨징해 맛있게 매운 보드카를 베이스로 하고, 거기에 상쾌하고 단 풍미의 아가베 시럽, 신비로운 매운맛을 풍기는 한련화 잎을 가니시했어요. 농장에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이 한련화였어요. 노란 꽃 한 송이를 통째로 먹었을 때 코를 푹 찌르던 매운맛, 그런데 여운 하나 없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던 그 맛을 잊을 수 없죠. 그래서 한련화로 민트 못지않게 상쾌하고 시원한 줄렙을 만들었어요. 속까지 뻥 뚫릴 것 같은 맛이라, 아마 맛보는 순간 웃음이 픽 터져나올지 몰라요.”

bartender SON SOKO at Soko Bar, KIM DEMIE at Zest Seoul

그리고 이어서 제스트 서울 김도형의 칵테일. “누군가는 왜 구태여 농장까지 가서 재배를 하느냐고 묻기도 해요. 글쎄요. 서울을 잠시 벗어나 해사한 햇볕을 쬐며 재배를 하다 보면 심신을 디톡스하는 기분이 들죠. 그런데 사실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제스트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있어 농장과 바를 직선 긋듯 잇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은 효과를 낳아요. 저희는 ‘파인 드링킹’이라는 키워드를 자주 사용해요. 파인 다이닝처럼 좋은 퀄리티의 음료를 좋은 서비스와 함께 제공한다는 의미와 동시에, 지속 가능성과 상생의 의미를 포함하죠. 지역 생산자와 직접 거래함으로써 우리가 속한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더 나아가 올바른 음주와 소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고요.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포장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빠트릴 수 없죠. 준혁이네 농장과의 만남은 그런 의미에서 무엇보다 뜻 깊은 일이었습니다.” 김도형의 말을 듣고 나니 흙 묻은 바텐더의 손이 반짝 빛나 보인다. 귀여운 당근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 속 칵테일은 클래식 칵테일 가리발디를 트위스트한 ‘Jeju Garibaldi’. 이탤리언 비터 리큐르를 베이스로 제주도 한라봉, 구좌읍 당근으로 제주의 맛을 담고, 그 위에 준혁이네 농장의 펜넬 허브를 왕관처럼 올렸다.

칵테일 글라스, 기무라 글라스 at TWL 숍.

“‘시티 비즈니스 City Bee’s Knees’는 진, 레몬, 꿀을 이용해 만드는 클래식 칵테일 ‘비즈니스’의 트위스트예요. 레몬 주스 대신 시트러스 과일의 부산물을 다시 한번 끓여 리사이클한 시트러스 스톡, 서울 도시 양봉가들과 협업해 직거래로 공급 받은 도시 양봉 꿀, 그리고 가니시로 준혁이네 농장의 알리섬을 올렸어요. 지금을 사는 우리처럼 농장에서 지금 자라나는 재료야말로 가장 신선하고 건강한 제철 식재료죠. 알리섬을 재배할 수 없는 계절에도 칵테일의 생명은 여전할 거예요. 유채꽃, 펜지, 펜넬 꽃 등으로 유연하게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마치 눈 위를 뚫고 올라온 꽃처럼 칵테일 위에 피어난 꽃을 가만히 살펴보면, 준혁이네 농장에서 지금 자라고 있는 꽃을 상상해볼 수 있을 거예요.” 촬영일 아침 막 재배해 온 아주 적은 양의 알리섬을 애지중지 다루는 바텐더의 모습에서 농부의 투박하고 아름다운 손, 그리고 그 너머의 보석 같은 땀과 노동을 상상한다.

밀 누이 플루티시모 클리어 글라스, 바카라.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생각을 텅 비우고 달리다 보면 농장에 도착해요. 그러면 농부님의 들뜬 얼굴이 저를 맞아주죠. 농부님이 권하는 새로운 수확물을 맛보는 시간은 새로운 영감으로 채우는 시간이에요. 이곳에서 순무를 처음 테이스팅했을 때가 또렷이 기억나요. 주먹보다 작은 알맹이에 집약된 특유의 쫄깃하면서 아삭한 식감, 높은 당도와 수분.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죠. 그동안 제가 알던 무와는 전혀 다르고, 채소보다는 맛있게 익은 핵과류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복숭아로 만드는 샴페인 칵테일인 ‘벨리니’에 접목해 복숭아를 순무로 트위스트해보기로 했죠. 이 특별한 순무에서는 깔끔한 풍미, 달콤함, 그리고 감칠맛까지 느낄 수 있어요.” 손석호의 ‘파파 벨리니’는 휴롬으로 깔끔하게 착즙한 순무즙, 풍성한 단맛을 주기 위한 꿀, 크리미한 산미를 내기 위한 플레인 요거트, 벨리니의 기본 재료인 샴페인이 담긴다. 동치미의 맛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베가 마티니 클리어 글라스, 바카라.

“‘일단 해볼까?’ 준혁이네 농장과의 만남이 제게 심어준 자세예요. 기존 틀을 깨고, 일단 해보자는 정신. 불확실하더라도 담가보고, 끓여보고, 향을 내보는 시도 속에 새로운 것이 나오더라고요. 물론 그건 농부님이 시즌마다 정성 들여 키운 가지각색의 허브와 꽃이 있었던 덕분이죠. 저보다 먼저 농장에 다닌 셰프 멤버들과 농부의 실험 정신이 유의미한 협업, 긴밀한 소통으로 이어진 덕분이기도 하고요. 단, 새로운 시도를 위해선 시즌이나 일정한 패턴에 얽매이지 않고 업데이트해주시는 농부님의 작물 가이드를 잘 살펴야 합니다. 이번에 만든 모로칸 마티니는 향이 매혹적이고 강렬한 제라늄 꽃잎으로 인퓨징한 드라이 버무스를 기주로 한 칵테일이에요. 거기에 샤프란, 큐민 시드, 코리앤더 시드로 자연 인퓨징한 모로코의 향신료 향을 지닌 진, 산뜻한 쓴 맛을 내기 위해 캄파리를 더했죠.” 손석호가 제라늄 잎을 코스터 삼아 깔고, 그 위에 붉은 마티니를 올려 턱 하고 내어준 순간, 이미 취한 기분.

“농장에서 재배해오는 세이지, 통카빈을 사용해 증류한 진을 베이스로, 페트병과 캔 배출을 줄이기 위해 방금 직접 만든 제로 웨이스트 토닉 워터를 붓고, 오늘 따온 제철 딸기로 가니시한 시그너처 진토닉, Z&T 칵테일이에요. 기주부터 가니시까지 전 과정에 농부의 노고가 담긴 칵테일이라고 볼 수 있죠. 농장에 다닌 후 달라진 점요? 칵테일을 건넬 때 곁들이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는 점이에요. 농장에 직접 가서 농부가 손수 길러준 허브를 가져와 술을 만들고, 장식을 하다보면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요. 보이는 것 너머의 가치를 알고 깨닫게 될 때 그 한 잔의 가치는 분명 배가 될 테니까요.” 김도형이 갓 완성한 Z&T 칵테일은 말 그대로 ‘팜 투 바 Farm to Bar’다. 그리고 이장욱 농부님의 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아무래도 그게 옳으니까. “농부와 바텐더는 전혀 다른 직종인 듯 하면서도 작물을 매개로 서로 이어져있는 직종이기도 합니다. 소통을 통해 창작을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또한 좌절을 맛보며 우리는 함께 발전하리라 믿어요.”

    피처 에디터
    전희란
    포토그래퍼
    김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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