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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열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에요"

2022.04.25전희란

김무열은 무수한 흔들림 위에 서 있다.

셔츠, 팬츠, 슈즈, 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인터뷰하는 거 좋아해요?
MY 요즘 들어 말이 길어진 것 같아요. 종종 ‘내가 너무 길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말을 좀 줄이고 싶은데, 표현력, 문장 구사력이 모자라서···. 그래도 인터뷰,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마음껏 말할 수 있으니까.
GQ 요즘 테이블에 자주 올리는 화두는 뭐예요?
MY 코로나19죠. 초반에 느낀 공포와는 달리 요즘은 조금 무뎌졌지만 누구든 만나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이야기. “올해는 끝나겠죠?” 밝은 미래를 꿈꾸고, 예전의 우리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가끔은 반성도 하고.
GQ 어떤 반성을 해요?
MY 마스크를 쓰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드는 미안함이랄까···.
GQ <그리드>, <소년심판>, <보이스> 등 최근 선택한 작품을 보면 동시대 배우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그게 어쩌면 반성적 태도일지 모르겠네요.
MY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배우로 살아가는 시간이 축적되다 보니, 배우로서 책임감은 커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다만 여유가 생긴 부분도 있어요. 이 일이 평생 해야 할 내 업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진 것 같아요.

재킷, 슬리브리스 톱, 팬츠, 링, 모두 돌체&가바나. 선글라스, 젠틀 몬스터. 스웨이드 로퍼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어떤 이야기에 점점 더 마음이 움직여요?
MY 특별한 기준을 정해두지는 않아요. 다만 평소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고 좋아하는 편이라, 최근에는 사회적 이슈를 담은 이야기에 관심이 더 가더라고요.
GQ ‘점점 더’라는 마음의 변화란?
MY 시대가 점점 변하니까 자연스럽게 제 생각도 흐른 게 아닐까 해요.
GQ 어떤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이면 곧장 ‘그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MY 그보다는 가급적 이성적 판단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연기적인 부분도, 삶에서도. 다만 매번 그러진 못 하는 것 같아요.
GQ 왜요?
MY 아직 뜨거운 가슴이 있는 건가.(미소)
GQ 마음을 움직이는 극에 참여한다는 것은, 결국 배우로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이 되기도 해요?
MY 작품 속에서 캐릭터로 살아가는 시간, 그 전부를 통해서 매번 배워나가요.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제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에요. 그만큼 저라는 사람에게도 미치는 영향이 크죠. 다만 이것이 변화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GQ 인상적이네요.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말.
MY 극을 이해하기 위해서 극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공부하기도, 상상하기도 하죠. 그 인물에 대해서도요. 그런 과정은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을 들여다보게 되는 일이고, 미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는 과정이에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건, 결국 공감이에요. 이성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어떠한 편견을 가지지 않고, 단순하게 선악을 떠나서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칼라 크롭트 재킷, 팬츠, 모두 아미. 차이나 칼라 셔츠,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최근 <소년심판> 인터뷰에서 “배우들은 아는 외로움이란 게 있다”라고 말했어요. 그 외로움이란 어떤 모양, 어떤 성질일까요?
MY 글쎄요. 그냥 불현듯 찾아와요.
GQ 불현듯?
MY 음···. 듣고 보니 외로움이란 종류가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말한 외로움은 연기를 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단 하나의 존재로서의 외로움이었어요. 연기를 하며 놓이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와 행동의 결과에 따르는 책임을 체감할 때 느끼는 외로움.
GQ 외로움 앞에서 김무열은 어떻게 달라져요?
MY 지체하지 않아요. 그냥 순간에 몸을 맡기죠. 그럴 때일수록 상대 배우에게 더 의존하기도 하고요.
GQ 배우이기에 숙명처럼 만져지는 감정의 덩어리들이 있나요?
MY 만질 수도 없고 꺼내기도 힘든 수많은 감정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이 배우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감정과 기억을 간직하고 꺼내기도 하고,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공감이 되는 것은 간접적 공감을 통해 제 속에 간직해두는 편이에요. 가끔은 사회적 트라우마를 품고 사는 게 필연적이라는 생각도 해요. 예전에 선배들이 “배우는 무당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말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의 아픔을 제 몸과 저의 연기를 통해서 고스란히 발현하는 것.
GQ 관객이 어떻게 반응해줄 때 가장 짜릿해요? 디테일 속에 꼭꼭 숨겨놓은 배우만의 해석을 발견해줄 때? 혹은 전혀 엉뚱한 방식으로 해석할 때?
MY 둘 다 좋아요. 애정을 가지고 관심 있게 봐주셨다는 증거니까. 열 명의 관객이 있으면 열 개의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 참여한 작품이라도 관객에게 가는 순간 그분들의 것이 되는 거니까요.
GQ 흔히 건축의 완성은 건축물이 완성된 시점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삶이 담긴 뒤라고 이야기하죠. 김무열 배우에게 연기란 어쩌면 관객과 만난 뒤에 완성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MY 정확한 이야기예요. 저는 작품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라는 기능적 역할 그 이상으로 관객분들께 다가서고 싶지 않아요. 나의 작품이 관객 한 분 한 분에게 오롯이 그분들만의 것으로 다가가 그분들만의 것으로 재탄생하는 것, 그래서 수많은 해석과 이야기가 더 만들어지는 것.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이야말로 제가 작품을 통해 관객분들과 만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아이스 민트 웨이브 패턴 재킷, 팬츠, 모두 카사블랑카 at 무이.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최근에 이성민 배우가 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김무열은 김무열이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를 창조해가는 배우다.”
MY 제가 캐릭터에 다가가고 구현해내는 방식을 칭찬해주신 것 같아요. 제 방식을 고수하고 더 발전시키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굉장히 감사하고 감동했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메소드식 접근 방식만을 고집하진 않아요. 다른 방식을 사용해야 하는 작품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유연하게 받아들여야죠.
GQ 배우가 어떤 캐릭터의 옷을 입을 때 사상과 편견, 믿음과 의심이 반영될 수밖에 없을 텐데, 무열 씨는 비교적 편견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MY 늘 제 주관적 입장으로부터 가장 동떨어진 상태에서 접근하려 노력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마음가짐이라도 굳게 먹고 작업하려고 하죠. 물론 도저히 동의가 어려운 부분은 연출가와 상의해서 바꾸기도 하고, 여러 의견을 취합해 상황을 바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목표이자 대전제가 ‘작품 전체를 위한 것’이라는 거예요. 항상 명확하게 주관은 가지되,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며 객관성 있게 하려고 노력해요.
GQ <보이스>의 김곡 감독은 곽프로를 연기하는 김무열 배우를 보고 “곽프로라는 인물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라고 했지요. 배우로서 캐릭터보다 자기 자신이 먼저 드러나는 걸 의식적으로 경계하는 편이에요?
MY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요. 작품의 특성에 맞게 캐릭터를 구현하는 방식은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것 같아요. 예로, <보이스>의 경우 철저하게 나를 버린 채로 ‘곽프로’라는 인물에 다가서려 노력했고, <소년심판>은 제가 가진 것들을 최대한 가진 채로 자연스럽게 인물이 내게 오도록 노력했어요.
GQ 나, 김무열이라는 사람이 자체로 드러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나요?
MY 인간 김무열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라 재미없으실걸요?(미소)
GQ 김혜수 배우는 이렇게 말했죠. “김무열은 톤을 높이거나 힘을 주지 않아도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배우다. 눈앞에 있는 상대를 진심으로 설득하는 연기를 한다”라고요. 이 정도 극찬을 받았으니 영업 비밀 하나 공개해주세요.
MY 선배님들께 잘하는 것? 덕분에 이런 칭찬도 들었고요. 흐흐.

슬리브리스 톱, 팬츠, 모두 돌체&가바나.

GQ 나는 왜 연기를 하는가에 대해서도 자주 고민하나요?
MY 아뇨, 요즘은 안 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걸 알아서.
GQ 시나리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고요. 배우로서 작품 전체를 보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MY 협업이니까. 주연 배우도 작품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고, 그 이야기를 만드는 데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우리의 작품이 빛나야 나도 빛날 수 있어요.
GQ 배우 김무열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건요?
MY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우리 가족. 연기를 지켜봐주는 관객. 너무 뻔하죠?
GQ 네.(웃음) 그러면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한 일상의 노력은요?
MY 배우로서도 ‘워라밸’을 지키려고 하는 편이에요.
GQ 균형감 있는 삶은 결국 좋은 연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MY 그럼요. 결국 삶을 흉내 내는 일이니까. 예술보다 삶이 먼저여야 하죠.
GQ 언젠가 “흔들리는 건 중심을 잡는 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균형을 위해 무열 씨는 어떤 흔들림에 몸을 맡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나요?
MY 무수한 흔들림 위에 서 있죠. 내가 하는 연기에 대한 의심, 나에 대한 불신, 걱정, 불안···. 수많은 부정적 감정이 수반돼요. 그것을 긍정적인 에너지의 원료로 쓰려고 노력하고요. 저를 움직이는 큰 힘 중 하나는 열등감입니다.
GQ 지금 배우 김무열을 흔들고 있는 어떤 것은요?
MY 새 작품을 시작하면서 불안과 의심도 다시 시작되었어요. 그걸 잠재우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중이죠. 매 순간,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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