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를 편안하게 연기하면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혼돈 멀티버스를 뛰어다닐 수 있는 배우, 하지만 진짜 에지오포는 더 깊은 것을 좇고 있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장소. 이곳은 에지오포가 때때로 찾는 곳이다. “산맥과 호수 그리고 넓은 들판이 있죠. 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워요.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기서 뭔가가 느껴지고요.”
에지오포의 아지트는 이 언덕 꼭대기에 있다.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위안이자 무거운 생각을 떨쳐내고 긍정과 진부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어디인지조차 몰랐다. “저는 몇 년 전, 원더에서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다 이곳을 발견했죠.”
여기서 원더Wander는 오큘러스 가상현실 어플이다. 처음에는 에지오포가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 이 어플을 다운받았지만, 마음은 곧 다른 호기심으로 옮겨갔다. “마치 소풍을 가듯이 양탄자 위에서 VR 헤드셋을 끼고 드러누워요. 아주 편안하죠. 이곳은 저만의 평온한 세상입니다.”
사색가로 알려진 치웨텔 에지오포. 그래서인지 그가 가상현실에서도 명상을 하는 것은 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는 사색을 통해 정보를 얻고, 다시 크고 작은 일에 의문을 품으며 깊게 고민하는 과정을 즐긴다. “이 언덕에 이르는 여정은 무얼 의미할까요? 가상현실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언덕 꼭대기를 여행하는 건 실제 우리의 경험을 반감시킬까요? 예를 들어 VR 같은 기술을 어디로 가져가야 우리의 사고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더 확장시킬 수 있을까요?”
(에지오포가 가진 이런 철학자와 같은 면모를 잘 모를지라도)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작품을 살펴보면 그가 가진 다양성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돈마르의 <오델로>와 내셔널 시어터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이미 전설적인 연기를 접했고, 오스카상을 수상한 <노예 12년>, 코미디물 <러브 액츄얼리>와 <킨키 부츠>, <라이온 킹>의 스카 목소리,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의 연출과 각색, 또 가장 최근에 모르도로 분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까지. 우리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그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스크린에서 우리는 에지오포가 가진 강렬한 에너지를 가장 명확히 느낄 수 있다. 맥퀸, 스필버그, 스콧, 쿠아론, 리 등 우리 시대 최고의 감독들을 매료시킨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배우들 사이에서 에지오포는 고집과 열정이 남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알프리 우다드는 2013년 스티브 맥퀸의 <노예 12년>에 출연했을 때를 회상한다. “한 장면을 위해 그는 전속력으로 3백 미터를 달렸어요. 땀에 흠뻑 젖은 채 숨은 가파르고, 눈은 다 튀어나올 정도였죠. 너무 열정적이었어요. 그가 너무 치열한 나머지 나랑 성격이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여주인공이었던 배우 나오미 해리스는 에지오포가 이렇게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건 그의 날카로운 지성과 엄청난 노력, 그리고 치밀한 준비에 있다고 말한다. “이토록 준비성과 통찰력이 철저한 배우를 만나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에지오포에겐 몇몇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장난기도 있다. “카메라 뒤에서 현장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가장 먼저 뛰어들어요. 그가 사소한 농담이라도 툭 던지면 현장의 모든 사람이 웃고 있죠.”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 함께 출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말한다.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설득하는 특별한 재능을 지녔어요. 격한 다툼이나 무거운 대화, 그 어디에든 에지오포가 끼어들면 어느새 해결되어 있죠. 그건 에지오포의 인간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면모 덕분인 것 같아요. 풍부하고 깊고, 복합적인 무언가를 가졌어요. 그를 위대하게 만드는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 있어요.”
‘지혜로움이란 내가 모르는 걸 아는 것’이라 했나. 에지오포는 그가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한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에지오포에 대한 사소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현재 마흔네 살, 노래방 애창곡은 척 베리의 ‘Johnny B. Goode’, 애완견은 ‘클레이’라 불리는 피레니언 셰퍼드, 좋아하는 이모티콘은 독수리(크리스탈 팰리스 팀의 팬이다), 하루에 마시는 커피는 최대 두 잔, 퓨즈를 갈 줄은 알지만 줌 콜에는 약하다는 것들 정도. 더 깊이 들어가면, 성경을 읽었고 어린 시절 가톨릭 신자로 자란 덕분에 2018년 <컴 선데이>에서 목사 역할이 꽤 자연스러웠다는 것.(몇몇 종교적 가르침은 꽤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젊었을 땐 더 늙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지금은 나이가 드는 것을 약간 원망하고 있다는 것.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자연과 인간의 ‘에너지 교환’이라는 측면에서 종종 나무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
에지오포는 우즈베키스탄에 대해 이야기한다. “너무 복잡한 세상이고, 복잡한 시간이에요.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은 게 있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제가 있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연주하고 싶은 음악의 음표를 계속 찾고 싶은 것이죠. 이해가 되나요?“
에지오포(이그보우어로 ‘진실’’이라는 뜻)는 런던의 남부 지방에서 자랐다. 1960년대 비아프라 전쟁에서 탈출해 영국으로 이주한 그의 부모는 아들을 덜위치 대학에 보냈고, 여기서 연극을 접하게 된 그에게 학교 극장은 곧 신성한 공간이 됐다. 연기를 하는 것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는 걸 깨달은 건 셰익스피어의 <자에는 자로: Measure for Measure>를 연습하면서부터다. “연극을 통해 권력, 성 정치학, 좌절, 굴욕에 관한 믿을 수 없는 역학을 발견하게 됐어요 10대로서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극장 렌즈를 통해서는 얼마든지 공개적인 표현이 가능했죠.”
그가 열한 살 때, 에지오포는 아버지 아린즈(이그보우어로 ‘신에게 감사’라는 뜻)와 함께 가족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나이지리아로 가다 고속도로에서 트럭과 충돌했고, 이 사고에서 뼈가 부러지고 혼수상태에 빠졌던 에지오포만 살아남았다. 당시 사고로 그의 이마엔 흉터가 남아 있다.
“슬픔은 다른 방식으로 영원히 함께 살아 있어요. 상실감은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줍니다. 어린 나이에 어떤 것의 가치와 인생 자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데, 그건 대부분 나중에 습득하는 것이죠. 아무래도 일종의 두려움이나 신경증 비슷한 걸 달고 다니니까요. 게다가 그런 감정 때문에 제 나이에 습득해야 할 지식의 일부도 잃게 됐죠.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인생의 여정을 거치면서 제게 어느 순간, 지식의 공백이 생긴 건 사실이에요.” 상실에는 많은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상실감이 그의 자신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궁금했다.
“때론 신경증이 자신감보다 더 창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마비될 수 있는 위험이 있어요. 그 과정에서 얻는 두려움은 인격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라나고, 결국 사람과 사물에 접근하는 나름의 방법이 생기죠. 하지만 그런 두려움은 내가 만들어내는 착각일 뿐이에요. 운이 좋게도 저는 그 두려움을 깨뜨릴 수 있었죠. 그런 후에야 진로와 인격에 대해서 더 깊고 강하게 생각할 수 있죠.”
어머니 오비아줄루(이그보우어로 ‘내 마음은 평화롭다’라는 뜻)는 여전히 웨스트 노우드에 살고 있다. “웨스트 노우드와 유대감이 아주 강해요. 무엇보다 셀허스트 공원 산책하는 걸 좋아하죠. 그곳의 분위기를 사랑하고요.” 축구를 좋아하는 에지오포는 크리스탈 팰리스가 항상 그의 팀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의 축구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뻐요. 흥분되고요.”
아프리카의 유산을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또 다른 축구 사랑은 나이지리아의 ‘슈퍼이글스’다. 그렇다면 잉글랜드와 나이지리아의 경기가 벌어진다면 누굴 응원하겠느냐는 질문에 에지오포는 “그건 어머니와 아버지 중 한 명을 선택하라는 것과 같지 않나요?”라며 웃는다. “사실 두 곳 모두 강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때그때마다 심리적이거나 문화적인 감정이 더해지죠. 누굴 응원해야 할지는 그때 가봐야 알 것 같아요.”
2007년 에디터는 돈마르 웨어하우스에서 <오델로>의 이완 맥그리거와 에지오포를 보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선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로렌스 올리비에 남우주연상을 받은 에지오포의 연기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무대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그의 연기는 그야말로 ‘묘미’가 있었다. “명예, 명예, 오~ 내 명예를 잃고 말았네! 내가 죽고 나서도 영원할 그 명예 말이야. 남은 건 다 짐승 같은 것들일 뿐. 내 명예를 어찌해야 하나!” 그의 대사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에지오포와 셰익스피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햄릿>에는 “모든 이에게 네 귀를 주되, 네 목소리는 몇몇에게만 주어라!”라는 대사가 있다. 그에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에지오포는 잠시 멈추더니 “듣는 걸 좋아하지만, 그건 오직 말할 수 없을 때죠!”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누군가 무언가를 설명하고 상호작용하는 방법이 없을 때, 그럴 땐 듣는 것을 좋아해요. 하지만 만일 제 개입과 참여가 가능하다면, 때때로 말하는 걸 거부할 수 없을 테죠. 음악만 들으면서 죽고 싶진 않으니까요. 음악을 꺼내야 해요. 이야기를 통해서요.”
영화 <노예 12년>에 출연한 지 거의 10년이 지났다. 비평가들의 갈채와 주요 수상(오스카 3관왕)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의 장기적인 영향은 계속해서 결실을 맺고 있다. “문화적 중요성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했고, 계속해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어요.” 침체되었던 흑인 중심 영화에 대한 대화의 불씨를 되살렸을 뿐 아니라, 결코 만들어지지 않았을 영화적 다양성에도 그린 라이트를 비추었다. “<노예 12년>의 성공이 <블랙 팬서>로 이어졌다는 주장까지 있었죠.”
에지오포의 친구이자 감독인 스티브 맥퀸은 “<노예 12년> 전과 후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보면 그 차이를 알게 될 겁니다”라고 말한다. “영화산업을 변화시켰고 에지오포는 그중 큰 부분을 차지했어요. 흑인이 주연과 조연인 영화들이 큰 성공을 거뒀고,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흑인 스토리를 담은 더 다양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계기였어요.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는 국제적으로 팔리지 않는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결코 잊지 못해요.”맥퀸은 덧붙였다. “에지오포는 그런 오해를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했죠.”
우다드는 이메일을 통해 “우린 역사적으로 아프리카 노예에 대한 많은 스토리를 지켜보았어요. 자유인이었던 솔로몬 노섭에게 안전장치는 없었어요. 영화에선 비교적 침착한 시선으로 보여주었지만, 우리 모두는 그와 함께 테러를 경험했습니다. 폭력과 정신적 한계를 겪었고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었죠.”
에지오포는 현재 마블의 우주와 얽혀 있다. 셰익스피어 시절부터 발휘해온 극적인 마력은 어쩌면 MCU와도 잘 어울린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로 돌아온 그는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항상 괴짜 틈새시장 같았던 앨런 무어의 모든 것, 이를테면 <왓치맨>이나 <2000AD> 등 그 세계가 확장되는 걸 보는 건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상상이 가득한 극장을 좋아했지만, 에지오포는 두 개의 플랫폼을 결합하는 개념도, 상호 연결된 프랜차이즈와 스핀오프 그리고 멀티버스 세계관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극장이 나의 우주였기에 심지어는 영화와 TV조차도 동떨어진 것 같았어요. 지금의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개념은 쉽게 규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팬들이 가지는 큰 기대감 중 하나는 호러의 거장 샘 레이미의 복귀다. 그의 <스파이더맨> 3부작은 오늘날 코믹북 프랜차이즈의 토대를 마련했다. 에지오포는 “이 장르 안에는 샘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스콧(닥터 스트레인지 1편 감독)을 만났을 때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수은 에너지와 강력하게 맞아떨어질 전설의 귀환’이라 말했어요. 샘이 하는 일에는 무언가가 겹겹이 겹쳐 있어요. 깊으면서도, 마법처럼 신비롭죠. 이런 유형의 미스터리와 영화 속에 완벽하게 들어맞죠.”
에지오포는 ‘루머 공장’보다는 마블 영화의 성공이 우리에게 무얼 말해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판타지의 역동성은 우리의 세상 안에도 있어요. 판타지는 살아 있는 경험과 잠재의식 사이에서 풍부한 분위기를 조성하죠. 분비되는 호르몬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판타지에서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상상이든 현실이든, 우리가 몰두하고 있는 무언가를 떠올리면서 각자의 삶에서 스릴, 흥분, 만족의 감정을 좇게 되니까요. 사실 판타지는 출발부터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이중적인 플레이를 해요. 그래서 이 게임이 매력적이고요.“
에지오포의 캐릭터인 ‘칼 모르도’에겐 셰익스피어와 닮은 무엇이 있다. 친구인지 적인지 모를 꼬인 관계에 놓여 있고, 확고한 자신만의 모럴을 갖고 있다. 에지오포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들에게 매료된다고 말한다. “칼(모르도)은 약간 어두운 질투와 뭔지 모를 복합성을 갖고 있는데, 그건 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어서 의외로 심리학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어요.”
에지오포에게 ‘동기 부여와 지위에 중독되는 인간’에 대해 물었다. “우린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는 걸 좋아해요. 지위에 얽매이면서도 이를 인정하길 거부하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서 훨씬 더 교묘한 방법을 띠게 되죠. 세계의 분쟁 중 대부분은 이 지위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고요.”
<오셀로>를 처음 읽었을 때, 그는 셰익스피어가 베네치아 군대의 흑인 장군을 묘사한 데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마땅히 존경받아야 하고 권위와 역동성과 로맨스를 모두 가졌음에도 결국 백인에 의해 그 이미지는 훼손되고 만다.” 셰익스피어는 인종에 대한 과도한 정치화, 인종적 위계질서, 노예 무역과 식민주의의 결과로 생긴 일상 문화에 대해 자유롭게 적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셰익스피어가 <오셀로>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솔직하게 글을 쓰는 백인 작가는 극히 드물죠. 영국의 식민지 역사와 인종 정치에 관련된 많은 부분이 학교 커리큘럼에서 무시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요. 왜냐하면 역사나 문학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근거로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허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거의 모든 공동체의 비극이죠.“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는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2주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이었다. 에지오포는 항상 평등을 위한 투쟁에 목소리를 높였고, 2020년에 영국 연예계에서 인종 차별을 중단하라는 공개 편지에 서명한 많은 배우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변했다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이런 개방적인 대화를 나눌 때면 행복하고 흥분됩니다. 저는 모든 종류의 의견이 자유롭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넓게는 세상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요. 더욱이 상호작용은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세상을 또 다른 차원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요. 진보에는 시간이 걸려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을 경멸하기 위해 서구에서 300~400년간 프로그래밍해온 걸 보고 있어요. 제 말은, 그건 서양식 DNA와 구조화의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화를 없애는 일은 하룻밤 사이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죠.“
에지오포는 배우들이 대중과 정치 계층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안다. 2008년 예술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제국훈장을 받았으며, 정치는 그가 꺼려하는 영역이 아니다. “인종적 위계질서 개념을 해체하려면 지속적인 세대 간 노력이 필요해요. ‘BLM(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은 서구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도록 이끈 성공적인 캠페인이죠. 많은 곳에서 낡은 프로그램을 없애려 애써요. 하지만 그건 진짜 열정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길고도 고된 일이죠.“
그가 생각하는 건 이런 것이다. 세상이 직면한 문제, 한 사람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여부, 긍정적 변화를 위해 어떤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등이다. “우리는 주로 부정성을 자극하는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결과에 둘러싸여 있어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체계죠. 지리, 장소, 시간, 역사상 물려받은 것들이 있지만, 그걸 붙잡고 있는 사회-정치적 이유가 무엇이든지, 이걸 보편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일 순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교육 방식은 종종 아무런 가치가 없는 감정들을 부추기고 계속해서 분열을 일으켜요. 이러한 구조화가 몇몇 개인에게 엄청난 부를 만들어준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시간은 이미 지났어요. 이제 우리는 집단적으로 인종과 국적을 초월하는 걸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요.”
에지오포는 좀 더 이야기했다. “저는 1970년대 말에 런던에서 태어났고, 단지 서류상으로 기록되는 x, y, z가 있어요. 왜 이 기록이 우리가 집단적으로 참여해야 할 이슈가 되는 겁니까? 인종적 개념을 축소하고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인간이라는 생각을 높일 방법은 없나요?” 에지오포가 말하는 국가와 인종은 하나의 축구팀과도 같다. 이건 싸울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파괴할 일도 아니다. 궁극적으로 완전히 무의미하게 상속된 꼬리표일 뿐이다.(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분명 마음에 두고 있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는다.)
에디터는 그가 말했던 “무언가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한다. “오래된 슬픔은 놓쳤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계속 붙잡고 있는 걸 뜻해요.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요.”
에지오포는 말한다. “슬픔의 밑바닥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의미에서 요점은 그게 아니죠. 보살핌과 사랑과 연결의 감정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게 핵심이죠.” 에지오포는 한 가지를 더 말해준다. “나이 들수록 비밀스러운 지식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건 그냥 아직 접근하지 않은 것에 불과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