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사진 기자 3인이 보여주는 우리가 외면한 현실

2022.10.23김은희

보았으나 보지 않았다. 알았으나 알지 못했다. 우리가 스쳐온 자국. 이를 응시한 시선을 여기 모았다. 사진 기자 3인의 렌즈가 향한 현실.

나의 딸 아이가 내 나이쯤 됐을 때 산소 호흡기를 끼지 않고 사는 시대, 그 정도만 되어도 다행이겠다 싶었다.
지난 6월, 50년 만의 극심한 봄 가뭄이 이어져 이윽고 갈라진 강 바닥이 드러난 강원 인제군 남면 소양강 상류 지역을 드론으로 촬영했다. 이는 <한국일보>에서 2021년 3월 6일부터 2022년 6월 11일까지 진행한 기획/연재 ‘서재훈의 형형색색’ 기사 중 하나다. 연재를 처음 기획할 때는 코로나19가 계속되는 상황에 독자들에게 쉼을 주고 싶었다. ‘이게 뭐지?’ 싶은 신기한 이미지, 흔하지 않은 이미지를 선물처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연재 첫 기사로 꽃 시장에서 봄꽃을 한다발 사다 꽃잎과 꽃술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런데 갈 수록 그 주제가 환경, 온난화, 리사이클링,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여덟 살 난 나의 딸 아이가 커서 내 나이쯤 됐을 때 산소 호흡기를 끼지 않고 사는 시대, 그 정도만 되어도 다행이겠다 싶어서. 아무래도 관심이 자꾸 환경으로 쏠렸다. 드론으로 내려다 본 소양강 상류는 바닥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물결대로 쌓인 퇴적층만이 이곳이 강이었음을 짐작케 했고, 퇴적물 중철 성분이 공기 중에 노출되면서 생긴 산화 현상은 혈관을 연상시켰다.‘물색’이라 칭할 수 없는 이 오묘한 색의 ‘물’이었던 곳은 어쩌면 대지가 보내는 SOS 신호가 아닐까. 서재훈 <한국일보>기자

사진 기자로 일하며 익숙해진 것이 있다면, 관찰이다.
양파 속이 여물어가던 2022년 3월 1일, 전남 무안군 주민들은 양파 수확을 한 달여 앞두고 양파밭을 통째로 갈아엎었다. 무안군 청계면 구로리의 정상철 농민회장은 일대 양파밭이 갈아엎어진 이유를 “코로나19로 양파 소비가 줄면서 저장 양파 가격이 크게 떨어졌는데 조생 양파까지 출하하면 가격이 더 떨어질 게 뻔하고, 인건비도 건지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고, 전국양파생산자협회는 정부의 수급 조절 실패가 가격 폭락의 원인이라며 현실적인 지원대책을 요구했다. 갈아 엎은 양파밭에는 푸릇한 양파 대신 붉은 황토가 드러났다.
이를 드론으로 촬영한 이 사진 또한 기획/연재 ‘형형색색’ 중 하나다. 연재 시작 당시 사진 기자가 꾸리는 기획물인만큼 시각적으로도 드라져야 할 점은 기본 사항으로 두었다. 다만, 그렇다고 예쁜 사진과 예쁜 이야기가 포커스 대상인가. 아니다. 우리 일상인데 무심코 지나쳤던 이야기, 들여다보면 나름의 숨겨진 내용이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 사진과 함께 풀어내고 싶었다. 틔워 오른 푸른 생명이 보여야 할 시기에 비워진 황토의 붉은 살을 본 적 있는가. 그 붉은 색에 무엇이 담겼는가. 사진 기자로 일하며 익숙해진 것이 있다면, 관찰이다. 서재훈 <한국일보>기자

퇴근하지 못하는 삶을 찾아다녔다.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들은 직장을 잃으면 집도 잃게 된다.
퇴근하지 못하는 삶을 찾아다녔다. 일을 멈추면 집이 되고 눈을 뜨면 직장이 되는 곳에 살며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들은 직장을 잃으면 집도 잃게 된다. 처음으로 만난 A씨는 컨테이너에 살고 있었다. 경남의 한 섬마을, 다리가 놓인 지 얼마 안된 섬에서 굴 양식장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국토부가 정한 최저 주거 기준을 살짝 넘는 15제곱미터의 개조된 컨테이너에 거주 했다. 그 곳에서 눈을 뜨면 컨테이너 바로 앞 바닷가의 굴 양식장으로 향한다. 누군가에겐 낭만적인 파도 소리가 일터의 쇠 깎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을까? 하단 사진은 의외의 직업인 목사의 집이다. 시무할 교회를 찾는 큰 요소의 하나는 사택 제공 여부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교회의 사택 옥탑방이 집이다. 집은 교회와 붙어 있다. 바로 아래층 담임 목사의 집을 거쳐 오른 계단 끝 옥상, 비 내린 날 만난 B목사의 집에선 ‘타닥타닥’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샌드위치 패널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였다. 세간살이를 쉽게 늘릴 수도, 싼 짐을 마음껏 풀기도 어렵다. 또 언제 이사를 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을 가장 잘 전달할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서술과 묘사보다 전체를 직접 보여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실제 공간을 독자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옮겨 오는 증강현실을 선택했고, 가상 화면같은 이 현실의 모습을 추출했다. 일하는 공간에서 사는 삶, 경계가 허물어진 일터와 삶의 경계가 만들어 낸 불안은 안정적인 삶이지 못했다. 이희훈 <오마이뉴스> 기자

격렬했던 시위 현장은 경찰의 차지가 되었고, 시위대가 지녔던 흔적들만 아스팔트에 뒹굴었다.
최루탄의 메케한 연기가 도로 위를 뒤덮고 경찰이 쏜 총의 고무탄을 맞은 시위대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쓰러진 부상자는 재빠르게 우산으로 둘러싸고 응급 치료한다.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이 쏜 최루탄을 되돌려주기도 하며 정부를 향한 시위대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하지만 공권력의 지속된 해산 시도에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져 또다른 기습 시위 장소에서 다시 모인다. 2019년 5년 만에 일어난 홍콩 민주화 시위는 중국 본토와 정부를 향해 있었고, 중앙정부 청사가 있는 애드미럴티역은 시위대가 저항하는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무더웠던 2019년 8월 4번의 홍콩 취재 중 3번째. 과격한 시위가 예상 되었고 급하게 다시 홍콩으로 향했다. 긴 시간의 평화 행진을 이어가던 시위대의 분위기는 냉랭해졌고 ‘프런트라이너’라 불리는 전방 시위대가 행렬 곳곳에서 나타나 방독면을 쓰고 팔과 다리에 랩을 쌓기 시작했다. 중앙정부 청사에 프런트라이너들이 도착하자 경찰의 경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합류한 시위대와 함께 송환법 반대와 “홍콩자유”를 외치며 경찰에 저항했다. 격렬했던 시위 현장은 푸른 제복에 무장한 경찰의 차지가 되었고, 시위대가 지녔던 흔적들이 떨어 뜨린 장수의 칼처럼 아스팔트에 뒹굴었다. 누군가의 눈이 되어준 안경은 짓밟혀 깨졌고, 물대포를 막았던 우산은 부러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며, 최루탄 연기를 끄기 위해 사용했던 라바콘은 나뒹굴고, 미처 던지지 못한 화염병은 기름을 머금은 채 버려졌다. 이희훈 <오마이뉴스> 기자

서로 베끼고 베낀 욕망의 결과물들은 대부분 일회용 스펙터클로 소비되고 만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관이라고요? 이제 직접 밟고 들어가 여러분 스스로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 보세요.” 전국의 산하에 우후죽순 들어선 관광 시설물에 내재하는 구호다. 특히나 근래 들어 명승지마다 유행처럼 번지는 ‘출렁다리’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빼어난 경관이 있는 곳이라면 산, 강 가리지 않고 짓는 이 구조물은 전국적으로 2백여 개에 이른다. 2020년 6월부터 2021년 6월 까지 1년 동안 새로운 출렁다리 25개가 생겼다. 지자체는 국내 최장, 유일,생태,힐링 등의 수식어를 달고 홍보에 열을 올린다. 이름난 관광지에 스릴이라는 자극적인 요소가 더해지니 단기간에 다수의 관광객이 몰린다. 시민들의 관심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머지않아 비슷하지만 더 길고, 높고, 짜릿한 시설물이 인근 지역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베끼고 베낀 욕망의 결과물들은 대부분 일회용 스펙터클로 소비되고 만다. 출렁다리 열풍은 다양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지난해 개장한 강원도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의 절벽 구간에 포함된 잔도棧道는 절벽에 구멍을 뚫고 기둥을 박아 그 위로 길을 놓았다. 경관 훼손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이 일대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사실을 생각하면 아연하다. 멸종 위기종 서식지도 예외일 수 없었다. 지난해 11월 개장한 영랑호수윗길은 강원도 속초 영랑호를 가로지는 폭 2.5미터, 길이 4백 미터의 부교 Floating Bridge다. 이름만 보면 ‘물 위로 부유하는 형태이겠거니’ 생각할 수 있으나, 호수 바닥에 고정된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생태계 교란을 피할 수 없다. 보전 가치가 높은 야생 동물 서식지에서 행해진 토건사업임에도 평가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환경영향평가는 생략됐다. 출렁다리, 잔도, 부교 등 앞서 언급한 시설물들은 하나같이 ‘연결’을 이야기한다. 값싼 체험과 스릴을 목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이 연결들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경기, 충북, 경북 등 7개 지역을 이동하며 갓 개통한 그리고 개통이 임박한 시설물들을 기록 했다.각각 다른 장소에 다른 듯 비슷한 금들이 그어져있었다. 하상윤 <세계일보> 기자

사라지거나 훼손될 위기에 놓인 제주의 대지위에선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한 해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은 2016년 1천5백85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7년 1천4백75만 명, 2018년 1천4백33만 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2021년엔 1천2백1만명이 제주를 방문했고, 올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퍼센트 이상 관광객 수가 증가하며 역대 최다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매해 67만 제주 인구의 20배가 넘는 사람이 제주를 다녀간 셈이다. 제주 관광은 짧은 시간에 양적 팽창을 이뤘지만, 도로나 수도같은 도시 인프라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활성화된 저비용 항공사는 중국 관광객의 폭발적 증가와 더불어 제주도의 포화를 부추겼다. 빠르게 팽창한 제주 관광은 용천수 고갈, 쓰레기 매립장·하수처리장 과부하, 곶자왈(산림) 훼손, 교통체증 등 광범위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국토부가 2018년 2천8백30만 명인 제주공항 수요 추이를 2035년 4천5백49만 명으로 상정한 것에 대해 “제주도민의 삶과 자연이 그 미래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그런데도 ‘더’를 외치며 증량 정책을 고수하는 제주도정의 모습은 놀라울 따름이다. 쓰레기가 넘치면 폐기장을 더 지어 땅에 묻어버리고, 차량이 늘면 숲을 베어 도로를 더 넓히고, 공항이 복잡하면 농지를 메워 하나 더 지으면 그만인 그런 정책 말이다. 도정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라는 수평적 관점의 슬로건을 제시하지만,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은 지극히 수직적이다. 이미 철저하게 자연에 기대어 살고 있으면서도, 자연을 훼손할 때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 난개발과 과잉 관광으로 섬 전체가 신음하고 있음에도 국토부와 제주도정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내세워 초대형 토건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 효율성과 경쟁력의 세계관에 주민의 삶과 지역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이 끼어들 틈이 있을까. 사라지거나 훼손될 위기에 놓인 제주의 대지 위에 선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그리고 질문했다. “당신에게 제주는 어떤 의미입니까? 여러분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하상윤 <세계일보> 기자

피처 에디터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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