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이는 또다시.
GQ ‘Neo Christian Flow’ 가사 중 이런 대목이 있죠. “구속 안에서 자유하다”. 이제 막 전역한 비와이에게 군대에서 느낀 자유를 먼저 묻고 싶더라고요.
BY 처음으로 죄책감 없이 긴 휴가를 보낸 것 같아요. 쫓기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전에는 쉬려고 해도 쉬기 어려운 삶을 살았으니까요.
GQ 여유가 가져다준 변화가 있던가요?
BY 굉장히요. 처음으로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저를 비와이가 아닌 사람 이병윤으로 바라보고 편하게 대해주는 선임, 후임들과 지내면서 마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고, 마음에 여유도 생겼죠. 그 전까지는 사람과 연을 맺는 걸 어렵고 귀찮아 했어요. 누군가 접근해오면 ‘뭔가 바라고 접근하나’ 경계하기도 했죠. 그런데 저한테 뭔가를 바란다는 것이 굉장히 감사한 일이잖아요.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니까요. 어릴 땐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잘하는 게 멋진 건 줄 알았는데, 완전히 어린 생각이었어요.
GQ 도움받아야 할 존재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일까요?
BY 맞아요. 결핍, 약점, 미성숙함을 인정하면서 제 삶이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GQ 돌아보니, 자신은 어떤 사람이던가요?
BY 사람을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마음의 문을 꼭 닫고 거절하는 게 전에는 왜 그리 멋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속된 말 잠깐 해도 돼요? 제 자신이 ‘X신’ 같이 느껴졌어요. 우월해지고 싶고, 잘난 삶을 보여주고 싶은 과시욕이 인간 누구나의 본능 안에 있으니까, 어쩌면 그런 데서 나온 어린 마음이었겠지만 많이 아쉬워요. 어릴 때의 제게 가서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GQ 몇 살의 비와이에게요?
BY 스물네 살의 비와이요.
GQ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보니 달라지는 변화들이 있었어요?
BY 도움을 청한다는 게 진짜 도움을 바라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 않을 때도 있죠. 도움을 청하는 행위의 목적 자체는 “그만큼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해요, 그만큼 당신은 내게 가치 있는 사람이에요”라는 메시지를 무언으로 전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는 행위인 거죠.
GQ 그런 생각의 변화가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BY 네. 그동안은 음악도 혼자 만들어왔는데 앞으로는 다른 아티스트와 많이 협업해보려고 해요. 요즘 젠틀 몬스터와 마르지엘라의 협업도 흥미롭게 느껴지고, 팔라스와 구찌처럼 전혀 성격이 다른 브랜드의 협업도 재미있더라고요.
GQ 곧 발매될 싱글을 들으면서 왔는데, 굉장히 새롭게 들리더군요. 비장함과 웅장함에서는 곧장 ‘비와이’가 느껴졌지만, 꽤 절제되었다고 해야 하나.
BY 맞아요. ‘나 힘줬어’란 느낌은 아니죠. 랩에서 음절 수도 많이 덜어냈고, 따라 할 수 있도록 랩을 디자인했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하는 랩은 안 할 것 같아요. 제가 들어도 물리고, 귀가 아프더라고요.(웃음) 지금은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스킬을 보여주는 랩을 구상하고 있어요. 군악대에서 실용음악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 스킬을 많이 익혔거든요. 이번 싱글 이후에 나오는 곡들에서 굉장히 새로움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GQ 늘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든다고 말했는데, 결국 듣고 싶은 음악의 변화가 비와이가 하는 음악을 바꾸었군요.
BY 맞아요. 결혼을 하고, 아이도 생기다 보니까 그 전에 하던 클래식하고 웅장한 음악이 조금 올드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직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좀 더 젊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힘을 빼고 싶었고요. 최근에 나온 켄드릭 라마가 제게는 감흥이 없었어요. 요즘은 드레이크, 제이지, 플레이보이 카티, 퓨처, 영 서그를 듣고 있어요.
GQ 항간에 태교를 힙합으로 한 것 아니냐는 ‘카더라’도 있었죠.
BY 물론 힙합도 많이 들었죠. 뱃속의 아기는 육(肉)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혼(魂)도 없는 상태이지만, 영(靈)만은 존재하죠. 음악에는 영이 담기기 때문에 그 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음악을 많이 들려주려고 했어요. 카니예 웨스트의 , 커크 프랭클린, 프레드 하몬드, 천관웅 목사님의 찬양…
GQ 전역한 뒤 처음 내는 싱글을 고르는 데 많은 고심을 했을 것 같은데, 선택의 기준이 있었어요? 그 기준의 중심에 뭐가 있었어요?
BY 일단은,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강렬함. 첫 번째 기준은 그거였어요. 가사에서는 제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고요. 지금 내가 원하는 것,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아주 단순한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힙합에서 가장 원초적으로 모든 래퍼가 하는 이야기들이죠. 저는 힙합 문화 자체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 힙합의 매력이 존재한다고 느껴요. 불완전함,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나. ‘그래, 나 원래 X신 이고, 그래서 나 이렇게 살아.’ 그것을 인정하는 움직임이 모여서 힙합 문화가 잉태했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제가 갈망하는 것을 얘기하려고
했어요. 불완전한 제 모습을 인정하고, 동시에 완전함에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본능에 집중해 다음 커리어를 이어 나가게 될 것 같아요.
GQ 가사를 읽다 보니 자신의 모순마저 오롯이 바라보려는 게 느껴졌어요.
BY 앞으로도 계속 그런 모습으로 나아가려고 해요. 치부를 드러내는 게 겁이 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 내려놓고 얘기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GQ 다 내려놓고 이야기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시점이 기억나요?
BY 그것도 군생활이에요. ‘있어 보일’ 생각을 하지 않으니 가면을 벗게 되고, 그런 내 모습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 거죠. 요즘 가장 순수한 상태인 것 같아요.
GQ 오랜만에 음악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실험하고 싶은 것도 있었어요?
BY 항상 자극적인 랩을 시도해왔는데, 지금은 단순하게 가려고 해요. 브랜드로 치면 화려한 옷보다는 핏이 좋은 심플한 룩을 추구하는 느낌이에요.
GQ 오늘도 아주 미니멀한 옷을 입고 왔네요.
BY 요즘엔 심플한 것이 더 멋지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동안은 랩적으로 자극적인 시도를 많이 해왔어요. 지난 EP <032 Funk>도 굉장한 도전이었고요. 단지 빠르게만 하는 랩은 쉬워요. 흔히 말하는 ‘차력 랩’이 사람들에게 먹히기는 쉽죠. 그런데 드럼을 빨리 친다고 잘 치는 게 아니듯이, 드럼 리듬마다 종류가 있듯이, 디테일하게 랩을 디자인하는 게 진짜 어렵고 잘하는 랩이죠.
GQ 어렵고 잘하는 것을 해내고 싶다는 말이군요.
BY 그렇죠. 점점 그쪽으로 가고 싶어요.
GQ 좀 아까 디지털 콘텐츠 찍을 때 “요즘 폼이 올랐다”라고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껴요?
BY 랩적인 부분요. 랩 실력이 전보다 훨씬 올라갔어요. 빨리 들려드리고 싶어요.
GQ 힙합엘이에 “비와이가 올해 해야 할 일”이란 글이 올라왔어요. 몇 개나 맞을지 들어보세요. 정규 앨범 발매, 씨잼과의 합작 앨범 발매, 데자부 컴필 앨범2 발매, 청년데자부 2 촬영, 킁 피지컬 데자부에서 발매, 블라인드 스타 피지
컬 재발매, 그리고 전력 육아.
BY 아하하하. 저도 그 글 봤는데 지금 해당되는 건 전력 육아뿐이네요. 그래도 이렇게 말할게요. 지금 육아에 전념하고 있으며, 비와이 앨범 그리고 씨잼과의 합작 앨범을 준비 중. 그러나 시기는 알 수 없다.
GQ 힌트가 될 만한 게 있다면요?
BY 다음에 나올 제 앨범은 지금의 저를 이야기하는 내용이 될 거라는 것. 신앙인들이 듣기에 조금 의아한 가사가 있을 수 있어요. 이를테면 돈 자랑 같은 것.
GQ 씨잼, 디젤까지 영입하고, 한대음 최근 3년 수상자를 모두 보유한 레이블이 되었죠. 데자부 그룹이야말로 차세대를 책임질 국힙으로 주목받고 있어요. 레이블 수장 비와이는 어떤 수장이에요? 래퍼 비와이와 다른가요?
BY 특별히 구분하진 않아요. 자유롭게 해주고, 아티스트가 원하는 건 거의 다 들어줘요. 그래서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씨익) 지금은 좀 더 지혜롭게 하려고 해요. 아티스트도 계속 늘려나갈 거예요. 그리고 ‘데자부 그룹’으로 다양한 영역의 아티스트를 영입할 예정이에요. 앞으로도 음악 작업에는 절대 터치하지 않을 거예요. 단독자로서 모두를 존경하니까요.
GQ 비앙과 비와이의 <쇼미> 프로듀서 조합을 기다리는 팬들도 꽤 있던데요.
BY <쇼미>는 나가지 않으려고 해요. <쇼미>가 아니라도 저와 데자부 그룹이 하나의 브랜드로서 사람들을 기대하게 하고 싶거든요. 그것이 제 소망이에요. 그런데 또 모르죠. 그때 되면 다시 고민하게 될지도요.
GQ 아까부터 ‘브랜드’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데, 지금 비와이라는 브랜드를 맛으로 표현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BY 지금요? 된장찌개인 것 같아요.
GQ 된장찌개 맛 나는 래퍼요?
BY 의도하지 않았는데 국민 래퍼 같은 이미지가 돼버린 것 같아서요.
GQ 그건 좋은 의미인가요?
BY 반반인 것 같아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사람들은 제가 욕하기를 바라지 않고, 욕하지 않는 래퍼로 남길 원해요. 그런데 저도 욕 하거든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에요. 조금만 엇나가면 “실망했어요”라는 말을 듣는데, 그 기대 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어요. 선한 사람 프레임은 쓰고 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