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쿼터 종료. 다시, 이재인의 시작.

GQ 지난달 기내에서 우연히 <하이파이브>를 봤어요.
JI 저도 얼마 전에 비행기를 탈 일이 있었는데 옆에 앉은 친구가 제가 나오는 줄 모르고 그걸 보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이렇게도 내가 나온 영화를 볼 수 있겠구나 싶어 신기했어요.
GQ 영화 속 이재인이 강렬해서 바로 검색해보기도 했는데 이력이 독특하더라고요. 읊어보자면, 데뷔는 뽀뽀뽀, 유치원은 딩동댕, 14년 차 배우, 중 3때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올해 첫 단편영화를 선보인 감독으로 나이는 스물셋.
JI 가능성을 열어두고 스스로에게 선택할 기회를 많이 주고 싶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배우 일을 시작했지만 나한테도 다른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요. 연기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니, 그런 가능성을 경험해보는 과정이 배우 일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GQ 어렸을 때는 어떤 아이였어요? 어떤 아이여야 이런 스물셋이 될 수 있나요? 질문이 이상한가?
JI 다섯 살 때쯤 자아가 생기는 순간이 있잖아요. 기억이 시작된 이후로는 배우 일을 하고 있었어요.
GQ 눈떠보니 배우였던 거네요.
JI 부모님의 증언을 토대로 얘기하자면, 어렸을 때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렌즈를 보면서 웃었대요. 그래서 그런 쪽에 재능이 있나 생각을 하셨대요. 크면서 I가 됐지만 어릴 땐 장기자랑 같은 거 하면 꼭 나가서 춤추고 노래하고, 못해도 분위기 살리려는 스타일이었어요.

GQ 운동을 좋아하는 반전 매력이 있더라고요.
JI 스케이트보드는 작품 때문에 연습하다 재미가 들려서 종종 타는 정도예요. 종종 한강에서 농구도 하고, 아주 가끔 친구들이 풋살한다고 하면 끼기도 하고요. 운동 관련 작품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접하기도 했고, 취미를 많이 가지는 걸 좋아해서 이것저것 해봤거든요.
GQ 그러고 보니 운동선수 역할이 정말 많았네요?
JI <아코디언 도어>는 축구 선수, <라켓소년단>은 배드민턴 선수, <하이파이브>는 태권도 겨루기 선수였어요. 저도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데요, 감독님들이 일단 운동복이 잘 어울리고 건강한 이미지가 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아! 생각해보니 <미지의 서울>에서는 육상 선수였어요.
GQ 해본 운동 중 제일 재밌었던 건요?
JI 검도요. 한 1년 정도 했는데, 일하다 보면 무엇 하나 꾸준히 하기가 쉽지 않아서. 빨리빨리 다음 스포츠로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GQ 한강에 농구하러 다닌다는 말을 듣고, 오늘도 정말 한강으로 초대했어요. 어떤 계기로 농구를 좋아하게 됐어요?
JI 부모님 직업 때문에 어렸을 때 학교 사택에 살았거든요. 학교엔 운동장도 있고 농구장도 있으니 혼자 농구공 가지고 나가서 슛 연습도 하고 그랬어요. 스스로 어? 나 재능 있는 것 같은데 하며 관심이 생기던 찰나에 <슬램덩크>에 빠지게 된 거예요. 웹툰 <가비지타임> 같은 농구 콘텐츠 만화를 보고 농구 되게 멋지다고 생각했죠. 또 제가 키가 작아서 농구는 나랑 연이 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원바운드 대결에서 슛만큼은 제가 항상 친구들을 이길 수 있는 분야더라고요. 아이스크림 내기에서 이길 수 있는 종목이라는 게 약간 농구에 대한 애정을 키워준 것 같아요.
GQ 스포츠 앞에서 이기고 싶은 사람인가요 잘하고 싶은 사람인가요?
JI 개인 기록을 넘는 스포츠들보다는 승패가 있는 스포츠를 더 좋아해요.
GQ 승부사네요.
JI 게임할 땐 좀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GQ 주로 누구랑 플레이해요?
JI 한강에 혼자 가서 공 좀 튀기고 슛 해보곤 해요. 안지호 배우가 <리바운드>라는 농구 영화를 찍고 농구를 잘해서 같이 한 판 하자! 할 때도 있어요. 요즘은 e스포츠의 삶을 살고 있지만.
GQ 농구 코트 위의 이재인을 캐릭터로 만든다면 어떤 인물일까요?
JI 코트 위에서 기복이 있는 슈터? 그치만 한 번 쏠 때는 엄청 잘 쏘는? 제가 3점 슛까지는 못 쏴도 2.5슈터는 되거든요. 나름 원핸드로 쏠 수 있는 장거리 슈터입니다.(웃음)

GQ 연기 얘기도 해보고 싶어요. ‘이것도 나였다’ 하고 이재인의 신스틸러 필모를 짚어본다면요?
JI 특이한 필모가 좀 많긴 한 것 같아요. <무서운 이야기 3>에서 로봇 역할을 한 적도 있고, <사바하>에서는 심지어 이름도 ‘그것’인 신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존재였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이 재밌어서 연기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 같아요.
GQ 다른 사람은 생애 한번 만날까 말까 한 배역이긴 하네요.
JI <딩동댕 유치원>의 MC도 했어요. <겨울왕국>의 엘사 목소리도 저예요.
GQ 엘사요?
JI 엘사의 어린 시절 역으로 한국어 더빙을 했었거든요. 솔직히 제목이 <겨울왕국>이라고 하길래 제목이 이상한데 싶었어요. 그렇게 잘될지 몰랐는데 막상 개봉하니 천만 영화가 된 거죠. 제가 아직 천만 필모는 없지만 천만 더빙 필모는 있는 느낌입니다.(웃음)
GQ 과거에 애늙은이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괴물>의 변희봉 배우 대사를 연구했다고요. 그 밖에 캐릭터 연구를 위한 독특한 공부가 있었다면요?
JI 눈물 연기할 때, 보통은 대본에 ‘슬프다’만 쓰여 있고 어떻게 슬픈지 해석하는 건 배우의 역량이잖아요. 카메라 앞에서 진실되게 우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다 육아 프로그램의 금쪽이들을 열심히 관찰했어요. 아이들이 카메라에 자기가 찍히는 걸 모르고 울 때 나는 소리 같은 게 자연스럽더라고요. 딸꾹질하듯이 울기도 하고. 성인 연기에 대입하면 튈 때도 있지만, 그런 요소를 떼어다 쓸 수 있긴 하거든요.
GQ 아역 배우 시기도 길었어요. 이재인이 만난 많은 선배의 말 중 기억에 남는 한마디가 있다면요?
JI 강형철 감독님이 “너는 눈이 엄청 크고 예쁜데 얼굴이 꼬질꼬질할수록 그 눈이 잘 들어와”라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그럴 때 내 장점이 더 많이 보이는구나 싶어서, 까무잡잡한 먼지투성이나 주근깨 분장하는 것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얘기 듣고서 화면에 예쁘게 나오고 싶은 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마음에 계속 있긴 했어요.

GQ 올해 한예종 합격 소식을 알렸죠? 지금 4월이니까 개강했겠네요. 학교 생활은 어때요?
JI 올해 촬영할 게 3개 있어서 내년쯤 복학해서 집중해서 학교를 다니지 않을까 싶어요.
GQ 이렇게 바쁜데 언제 또 입시 준비를 했대요?
JI 10대에 학교 그만둔 게 되게 아쉬웠어요. 이것저것 동아리도 들면서 학교 생활 재밌게 하고, 쉬지 않고 일하는 와중에 학원도 다니면서 나름 공부도 했거든요. 어떤 반열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고용 불안정이 있는 직업이잖아요.
GQ 고용 불안정을 생각하는 10대라니.
JI 아역 배우 친구들이 다 비슷한 것 같아요. 다른 길을 열어놓는다고 해야 되나요? 배우는 언제 작품이 없어질지 모르는데 학교를 아예 그만두면 나는 정말 이 일밖에 못 하네 싶어 무섭기도 해서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쉴 때 틈틈이 공부했어요.
GQ 연출 공부도 하고 있잖아요. 요즘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나요?
JI B급 코미디에 잔인함이 한 스푼 들어간 액션 코미디 같은 컬트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좀 더 재밌는 사람이 되어서 그런 B급 코미디를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GQ 배우로서 감정을 연기하는 것, 시나리오를 쓰며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 감독으로서 이야기를 연출하는 것. 이재인이 좋아하는 일은 어떤 공통점으로 맞닿아 있나요?
JI 초등학교 때부터 연출을 되게 하고 싶어 했어요. 접었다 폈다 하는 30센티미터 자를 슬레이트 삼아 학교에서 맨날 휴대폰 영상을 찍었거든요. 한창 아이폰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게 화두인 시절이라, 그런 저를 보고 부모님이 큰맘 먹고 일찍 아이폰을 사주셨어요. 저는 영화가 좋아요. 연기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에 얼굴을 비추고 일원이 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고, 연출은 제가 좋아하는 걸 직접 만들 수 있는 일이고요. 단편소설 같은 글을 쓰는 일도, 이야기에 관련된 건 다 좋아해요.

GQ 결국 이재인이 말하고 싶은 건 뭐예요?
JI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해요. <바빌론>이나 <원스 어폰어 타임 인 할리우드>, <사랑은 비를 타고> 처럼 영화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담은 영화들 있잖아요. 영화라는 일을 하는 게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연기하고, 내 삶과는 다른 배경 세트에서 촬영을 하는 이상한 일이고, 굉장히 고용 불안정이 심각한 직업이고, 참 다이내믹한 직업이고. 근데 그게 매력인 직업이라 생각하는데, 그 포인트에서 되게 영화적이더라고요.
GQ 너무 잘 아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JI 예전에는 자전적인 게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에 대해 의심이 많았어요. 작가가 느껴지는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근데 결국 자전적인 게 제일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내가 지금까지 계속 일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GQ 인생 경기는 몇 쿼터쯤 온 것 같아요? 속도를 올리는 구간인가요, 숨을 고르는 구간인가요?
JI 제 나이가 굉장히 어리다는 거는 알고 있는데, 굉장히 후반에 다다른 느낌이 있어요. 또래 친구들이랑 이런저런 상담할 때도, 나는 30대라고 생각하라고 하거든요. 일곱 살 때 어린이 방송으로 데뷔해서 쉬지 않고 일을 했고, 친구들이랑 걸어가는 속도나 환경이 달랐다 보니 오래 일을 한 기분이 들어요.
GQ 마지막 쿼터쯤 왔겠네요?
JI 일단은 이 경기가 끝나가는 느낌이에요. 10-20대의 저와 30-40대 배우의 삶이 또 너무 다를 거니까요. 서른 살쯤까지는 여전히 학생 역할을 할 것 같기는 하지만요. 마음가짐도 그렇고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GQ 4쿼터가 끝나도 곧 새 경기가 시작되겠죠?
JI 네, 지금까지의 이재인은 마지막 쿼터 같은 느낌이지만 다음 경기를 기대해주세요. 저의 새로운 챕터가 곧 시작될 거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