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아프간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21.10.22김은희

아프간 인구의 40퍼센트인 탈레반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 되어 세계를 두드리고 있다.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를 차고서.

이쯤 되면 무적이다. 근대 이후 세계 최강국을 차례로 세 번이나 물리친 국가, 아프가니스탄 얘기다.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은 1839년부터 1919년 사이 영국과 무려 세 차례나 전쟁을 했고, 결과적으로 영국은 손을 들고 나왔다. 다음은 소련이었다. 1979년 12월 성탄절 새벽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은 약 10년 뒤인 1989년 철수했다. 다음 차례는 미국이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을 침공한다. 9.11 테러를 자행한 조직 알카에다를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비호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2021년 8월, 미국은 아프간과의 ‘20년 전쟁’을 끝내고 만다.
아프간은 19세기 영국과 러시아라는 제국주의 세력이 패권 전쟁을 벌이며 충돌한 지점이자, 20세기에는 소련과 미국이 세계 패권을 놓고 격돌한 곳이기도 하다. 식민지 쟁탈전이 한창이던 19세기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크게 우려했고, 러시아 역시 영국이 아프간을 통해 러시아의 남쪽 출구를 봉쇄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소련이 1979년 아프간을 침공하자 이번엔 미국이 나서 이슬람 세력을 지원했고, 이때 등장한 세력이 무장 게릴라 조직 무자헤딘, 바로 탈레반의 전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반反 소련을 위해 스스로 길러낸 탈레반 세력과 지난 20년간 전쟁을 벌여온 것이다. 전략적 요충지 아프간이 ‘제국주의의 무덤’이라는 별칭을 얻기 시작한 배경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최강이라는 소련, 미국과의 전쟁 그리고 1989년부터 1995년에 이르는 7년 내전까지, 무려 40여 년간 전쟁을 하고 끝내 모두를 몰아낸 아프간은 대체 어떤 나라일까? 2001년 아프간에 투입된 미군들은 숨 쉬기도 어려운 높고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탈레반과 싸우며 승산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산악지대와 동굴 등에서 버티며 게릴라전을 이어가는 탈레반 세력 앞에선 최신 무기로 무장한 미국도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아프간 내 다양한 종족 및 종파가 존재하고 심지어 언어도 다르지만, 역사적으로 -무엇보다 종교적으로- ‘외세에 대해서는 일단 결집하는’ 아프간의 특성을 미국은 간과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이라는 것도 패배의 핵심 이유다. 아프간에는 14개 부족이 살고 있고 그중 전체 인구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하는 다수족이 파슈툰족, 즉 탈레반이다. 아프간에 거주하는 파슈툰족은 1천5백만 명이지만 2천4백 킬로미터가 넘는 기나긴 국경을 접하는 파키스탄 내에는 약 4천만 명의 파슈툰족이 있다.


미국이 소련을 몰아내기 위해 지원한 세력이 파키스탄 내 이슬람 세력인 무자헤딘이었고 이들이 후에 탈레반으로 변모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들의 관계는 쉽게 그려진다. 국경과 무관하게 ‘파슈툰족 형제’끼리 언제든 전쟁과 전사들을 지원하고 또 서로를 비호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는 의미다. 즉, 아프간 · 파키스탄 접경 지역은 탈레반의 은신처이자 발진 기지이고, 파키스탄 내 파슈툰족은 탈레반의 저수지 같은 존재였다. 마지막은 ‘친미’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와 무능이다. 아프간 정부(군)은 미국이 주는 돈과 무기를 착복하거나 빼돌려 탈레반에 건넸고, 미군 철수를 앞두고 탈레반이 무서운 기세로 점령해오자 무기력하게 투항했다.
짚고 넘어가자면, 9.11 테러범 19명 중 16명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다. 아프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보복 전쟁을 하려면 논리적으로 사우디와 해야 했지만 당시 미국 부시 정부는 아프간을 공격하고 친미 정권을 세웠다. 앞서 설명한 지정학적인 의미가 크다. 그러다 아프간 침공 18년 뒤인 2019년 9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깜짝 글을 올린다. 9월 9일 탈레반 지도자와 예정됐던 회동을 전격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대외 문제에 굳이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트럼프는 이미 2018년부터 탈레반과 접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은 2020년 2월 카타르도하에서 평화협정을 맺었고 이후 바이든이 그 합의 내용을 이행하게 된 것이다.
미군 철수 배경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도저히 가망이 없다”로 요약된다. 첫 번째 근거는 20년간 2조 달러(약 2천6백조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썼지만 미국이 세운 친미 정권은 말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이는 오바마 정부에서부터 나온 판단이기도 하다. 두 번째 근거는 대통령 바이든의 의지다. 그는 아프간 현지를 방문하고 커다란 회의에 빠졌다. 아프간 정부의 개선 가능성을 제로로 판단한 바이든은 2010년 아프간 주민들을 걱정하는 리처드 홀브룩 아프간 특사 앞에서 “엿 먹으라고 해”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바이든은 지난 7월 “두 번의 공화당, 두 번의 민주당 정부가 아프간을 다뤘다. 이를 다섯 번째 정부에 넘겨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프간 탈출 행렬로 아수라장이 된 카불 공항을 보며 바이든은 “아프간 군대가 스스로 싸울 의지가 없는 전쟁에서 미군이 싸우며 죽어서는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미국은 탈레반이 카불을 함락하는 시점을 최소한 6개월 후로 예상하고 이를 토대로 바이든은 지난 7월 “주아프간 미국 대사관의 지붕에서 사람들이 (헬리콥터로) 구조되는 모습을 보게 될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를 비웃듯 8월 15일 카불을 점령했다. 이 때문에 휴가 중이던 바이든은 백악관으로 즉각 날아와야 했다.


종잡을 수 없는 탈레반의 행적에 주변국도 바쁘다. 특히 중국이 그렇다. 지난 7월 28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측을 만난 날,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탈레반 측과 회동했다. 미중 외교 수장이 서로의 적을 만난 격이다. 왕이는 “중국은 아프간의 최대 이웃으로 주권 독립과 영토의 완전성을 존중한다”며 ‘탈레반 인정’을 사실상 선언했다. 중국이 탈레반을 이처럼 긴급하게 만난 이유는 자명하다. 중국이 ‘거대한 감옥’으로 만든 신장 위구르 지역 내 독립 세력(위구르족 대다수가 탈레반과 같은 수니파다)을 지원했던 탈레반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위구르 문제에 손을 뻗지 말라’는 경고인 동시에 중국 최대 사업인 ‘일대일로’에 협조를 구한다는 외교적 손짓이었다.
한편 미국이 탈레반에 대한 자금 동결 등 경제 제재에 나서는 가운데 중국이 탈레반에 자금을 지원한다면 미중 양국이 다시 한번 격돌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뿐만 아니라 아프간과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 이란 등 6개국 그리고 구원舊怨이 있는 러시아 등도 각각 손익계산서를 작성 중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탈레반 세력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며 대사관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탈레반의 저수지’ 역할을 했던 파키스탄은 미국을 돕는 동시에 탈레반 세력을 방치하는 ‘이중 플레이’를 해온 것이 분명해졌다. 이젠 미국의 공백을 스스로 메워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아프가니스탄, 아니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지난 20년간 미군이 주둔하며 ‘불안한 안정’을 유지해왔다면, 이제는 또다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 됐다. 내전 가능성도 언제든 있다. 탈레반이 ‘생존’을 위해 과거와는 다른 전략을 쓰며 외부 세계와 소통할 가능성도 있다. 주변국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근본적 변화를 기대하는 시각은 거의 없다. 9월 11일의 비극이 일어난 2001년, 20년 전 그때 이들의 시계가 멈춘 듯. 글 / 이승원(정치 외교 칼럼니스트)

    피처 에디터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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