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퍼페추얼 캘린더부터 클래식 다이버까지, 1980년대와 1990년대 시계는 가치, 신뢰성, 그리고 감성을 동시에 갖춘 절묘한 균형점에 있다.

빈티지 시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알프레도 파라미코는 희귀하고 아름다운 시계를 찾는 일을 거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지난해 한화 약 230억 원 이상에 판매된 스틸 파텍 필립 레퍼런스 1518을 기억하는가. 알프레도는 최초 제작된 모델을 소유했던 사람이다. 1990년대 보석 세팅 롤렉스 데이토나가 가득한 시계 박스를 보고 싶다면 그의 컬렉션을 보는 게 가장 빠를 것이다. 그는 겸손한 편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시계로만 구성된 약 340억 원 규모 투자 펀드를 만들어 S&P 500 수익률을 능가했던 이야기도 들려줬을 것이다. 이런 경력을 보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컬렉터 중 한 명인 그가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시계를 연구하고 수집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그가 특히 많이 생각하는 시계는 1990년대 모델들이다.

파라미코는 ‘네오 빈티지’라고 불리는 시계 역사 속 특정 시기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는 컬렉터들 가운데 한 명이다. 정확한 범위는 모호하지만 보통 1980년대 초중반에 시작해 1990년대에 절정을 맞고 2000년대 초반에 끝난 시기를 말한다. 최근 몇 년 동안 1960년대 크로노그래프와 1970년대 일체형 브레이슬릿 시계 열풍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놀라운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로우라이즈 청바지, 첨바왐바 음악, 베이워치 나이트 같은 문화가 유행했던 시대가 사실은 시계 제작 역사에서 매우 풍부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파라미코와 여러 유명 컬렉터들에 따르면, 네오 빈티지 시대는 전통적인 빈티지 시계 시대에서 현대 시계 시대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고, 20세기 시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일 수도 있다.
네오 빈티지 시계를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 중 하나는 가치다. 특히 클래식 툴 워치에서 그렇다. 외형은 옛 빈티지 모델과 비슷하지만 무브먼트는 현대적이고 신뢰성이 높으며 가격은 최신 모델보다 훨씬 낮다. 두 세계의 장점을 모두 가진 셈이다. 시계 플랫폼 애널로그:시프트의 창립자 제임스 램딘은 이렇게 말한다. “1990년대 스피드마스터는 여전히 1960년대 스피드마스터처럼 보입니다. 서브마리너도 마찬가지죠. 크기, 레이아웃, 기본 디자인은 거의 동일하고 달라진 것은 일부 소재 정도입니다.” 이 시계들은 또한 현대의 슈퍼루미노바 대신 트리튬 야광을 사용한다. 이 소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변해 따뜻한 노란색 톤의 파티나를 만든다. 램딘은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재의 변화, 즉 흰색에서 따뜻한 크림색으로 변하는 과정이 시계마다 고유한 성격과 낭만을 만들어 줍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낭만이라 부르지만 네오 빈티지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의견이다. 그것은 이 시계들이 20세기 중반 황금기 시계와 비슷한 수준의 장인정신과 세심한 제작 과정을 거친 마지막 세대라는 것이다. 헤어스프링 워치스의 창립자 에릭 구스타프손은 이렇게 말한다. “나이 든 사람처럼 들리고 싶지는 않지만 현대 시계는 영혼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네오 빈티지 시계의 마감 수준과 비율, 케이스 디자인은 제 취향에 훨씬 가깝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작업의 가치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네오 빈티지 세계의 상위 단계로 올라갈수록 이런 특징이 더욱 분명해진다. 1980년대에는 지샥, 스와치 젤리피시, 카시오 계산기 시계 같은 전자 시계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동시에 스위스 시계 업계 최고의 기술자들은 기계식 시계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었다. 블랑팡은 퍼페추얼 캘린더와 미닛 리피터 등을 포함한 ‘식스 마스터피스’ 컬렉션으로 먼저 반격을 시작했다. IWC는 역사적인 다빈치 퍼페추얼 캘린더를 출시했다. 이는 모든 기능을 크라운 하나로 조정할 수 있는 최초의 모델이었다. 율리스 나르덴은 천문 시계 아스트롤라비움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출시했고, 오데마 피게는 세계 최초의 자동 투르비용을 발표했다. 이어 파텍 필립 최초의 애뉴얼 캘린더인 레퍼런스 5035, 그리고 ‘프리 벤돔’ 시기의 파네라이 루미노르 같은 현대의 전설적인 모델들이 등장했다.
전자 쿼츠 시계가 시장을 장악하던 시대에 전통적인 기계식 시계를 부활시키려 했던 이 움직임이 바로 파라미코 같은 컬렉터들을 매료시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장인들과 비전 있는 시계 제작자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1950년대 스위스 시계 황금기를 다시 연결하고 싶어 했습니다. 열정과 창의성, 기술력으로 산업을 다시 세우려는 그 정신이 바로 1990년대 시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1990년대 시계를 상징하는 브랜드를 하나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독일 글라슈테에 기반을 둔 랑에 운트 죄네를 말할 것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994년에 부활한 이 브랜드는 랑에 1이라는 독창적인 시계로 1990년대의 창의적 정신을 대표했다. 파라미코 역시 이 브랜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브레게,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시계도 좋아하지만 특히 오데마 피게의 스켈레톤 퍼페추얼 캘린더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의 기준에서 랑에는 독보적이다. “아 랑에 운트 죄네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신뢰성에 완전히 매료돼 있습니다. 그들의 시계는 절제, 정밀함, 깊이, 그리고 절제된 미학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보여줍니다.”
1990년대에는 독립 시계 제작자들의 부활도 일어났다. 로저 뒤뷔, F.P. 주른, 필립 뒤포, 다니엘 로스, 그리고 프랭크 뮬러 같은 이름들이 등장했다. F.P. 주른의 1990년대 시계는 지금 수십억 원대까지 올라갔고 다니엘 로스 브랜드는 루이비통에 의해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프랭크 뮬러는 예전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하는 편이다.
파텍 필립 복원 전문가 출신인 프랭크 뮬러는 1991년에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했고 혁신적인 복잡 기능 시계로 ‘컴플리케이션의 마스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모델은 크레이지 아워스 컬러 드림이었다. 다이얼에 숫자가 무작위로 배치돼 있고 시침은 그 순서에 따라 점프하는 방식이다. 이후 브랜드는 지나치게 확장하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전성기 시절 그의 시계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는 과소평가하기 어렵다. 제임스 램딘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1990년대에 시계 산업을 경험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 시대를 경험한 수많은 컬렉터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뉴욕에서 조금이라도 시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프랭크 뮬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계를 보면 바로 그 시대가 떠오릅니다.”

물론 프랭크 뮬러의 독특한 디자인은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네오 빈티지 시대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성이다. 아크릴 글라스를 가진 수동 스피드마스터를 찾고 있다면 1990년대는 좋은 가격의 모델을 발견하기에 훌륭한 시기다. 드레스 워치를 좋아한다면 브레게나 블랑팡의 매력적인 모델을 찾을 수도 있다. 조금 더 투자할 수 있다면 초기 랑에 1 같은 시계를 노려볼 수도 있다. 진지한 컬렉터들에게는 단번에 인정받을 모델이다.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든 결정을 너무 오래 미루지 않는 것이 좋다. 지난 10년 동안 툴 워치 시장이 보여준 열풍을 떠올리면 네오 빈티지 역시 곧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