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네 명의 시선으로 본,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

2026.06.26.박지윤, 임채원

CURATED BY.

CURATED BY 박천휴

저명한 미술평론가 존 버거의 저서 의 핵심 통찰은 이러하다. “우리가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아는 것, 믿는 것, 속한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 <지큐>가 루이 비통과 손잡고 기획한 ‘Curated By’ 도슨트 프로그램은 이런 인문학적 관점에서 출발했다. 다채로운 시선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해석의 층위. 하나의 대상을 둘러싼 무궁무진한 이야기. 패션과 문화, 트렌드 교류의 장, ‘지큐 살롱’이 동시대 예술가와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을 다시 읽어보고자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LV 더 플레이스 서울 신세계 더 리저브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는 트렁크로 시작한 루이 비통의 긴 여정과 여행 미학을 깊게 탐구한다.

4인의 스페셜 도슨트 선정 과정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박천휴 작가. 미국 연극·뮤지컬계 최고 권위, 토니상을 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자로, 브로드웨이에 한국인의 이름을 새긴 이 수상은 문화 예술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인간의 감정, 개인의 시간, 세계의 기억을 엮어내는 스토리텔러는 ‘여행의 방식, 삶의 미학’이라는 제목 아래 전시 투어를 펼쳐나갔다.

시간의 정밀함과 형태의 조형미를 집약한 ‘워치 룸’에서 그는 극작가로서의 창작 궤적을 내보인다. <어쩌면 해피엔딩>, <일 테노레>, <고스트 베이커리> 등 자신의 모든 이야기 중심에는 늘 ‘시간의 유한함’이 있었음을 고백하며, 유한성 덕에 비로소 발생하는 사랑과 후회의 감정을 영화 <어바웃 타임> 속 시간 여행의 서사와 연결 짓는다. 이어지는 ‘피크닉 룸’에서는 하우스의 유산이 삶의 예술(Art of Living)로 확장되는 낭만을 포착한다. 번거로움을 기꺼이 선택하는 피크닉의 행위를 연극을 위해 무대 위 시닉 디자인을 선택하는 과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무질서한 풍경에 질서를 부여한 피크닉 트렁크 피스를 보며 뮤지컬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와 모네의 전원 풍경화를 동시에 소환한다. 무대와 스크린,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그의 지적 스펙트럼은 가장 장난스럽고 기발한 감각이 돋보이는 ‘모노그램 룸’에서도 발휘된다.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변주 가능한 문법으로서의 모노그램을 바라보며, 영화 <화양연화> 속 시각적 반복과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음악적 변주를 도출해낸다.

시각과 청각, 문학의 경계를 유연하게 좁혀가는 박천휴의 예리한 응시. 그의 시선을 경유한 이번 도슨트는 서로 다른 장르와 포맷이 섞인 ‘콜라주’야말로 이야기의 즐거운 본질임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CURATED BY 대니구

바이올린 선율이 울려 퍼지는 전시회는 어떨까? 더구나 눈앞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연주라면.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는 오직 음악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소리와 해석으로 전시를 공감각적인 몰입의 세계로 인도한다. 서울을 대표하는 클래식 뮤지션이자 지난 3월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오른 그는 클래식 음악을 보다 넓은 문화적 경험으로 확장해온 인물이다. 지큐 살롱에서, 그의 활 끝에서 시작되는 소리는 전시장의 공기를 바꾸고, 아카이브 피스들에 또 다른 감동을 불어넣었다.

럭셔리 하우스에서 음악은 감정을 전달하고, 공간과 이미지에 고유한 리듬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다. 루이 비통은 음악을 통해 동시대적 정서를 강력하게 각인시켜 온 브랜드다. 파리 퐁뇌프 다리를 거대한 가스펠 콘서트장으로 탈바꿈시켰던 루이 비통 맨즈 컬렉션 디렉터 퍼렐 윌리엄스의 쇼처럼, 음악은 철학을 완성하는 서사의 큰 일부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니 구는 고전의 위대함을 꿰뚫어보는 안목과 음악을 입체적인 내러티브의 도구로 사용하는 스토리텔러로서, 색다른 몰입감을 선사해준 가장 흥미로운 화자로 기억된다.

그는 단풍나무 한 덩어리가 명기로 거듭나는 이탈리아 크레모나의 공방을 떠올리며 전시의 첫 번째 방, ‘기원 룸’의 문을 연다. 음악이 시작되기 전 나무가 존재하듯, 루이 비통의 트렁크 역시 멜로디를 담는 바이올린처럼 여정을 담는 그릇이라는 해석이 절묘하다. ‘맞춤 제작 룸’에서는 같은 곡도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결이 달라지는 시실리엔느를 연주하며, 트렁크에 새겨진 이니셜을 연주자 고유의 떨림인 ‘비브라토’에 비유한다.

도슨트의 하이라이트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정체성이 가장 고조되었던 ‘아이콘 룸’. 그는 시대를 초월해 살아남은 루이 비통의 스피디와 노에 백을 보며 베토벤 협주곡 같은 클래식의 ‘스탠더드 레퍼토리’를 소환한다. 바이올린을 들 때마다 수세기에 걸친 위대한 계보 속에 서 있음을 느낀다는 그의 고백은, 시간의 시험을 통과한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역사와 절묘하게 맞물렸다. 그는 이 방에서 어울리는 곡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꼽아 감미로운 여정의 정점을 찍었다.

시간의 흐름을 가장 직관적으로 일깨우는 감각인 ‘청각’을 전시장으로 과감히 끌어와, 관람객에게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탁월하고 유쾌한 예술가를 따라가다 보면, 정지해 있던 오브제들이 고유의 음악적 파동을 지닌 채 살아 숨 쉬는 경이로운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CURATED BY 양태오

서울의 디자인 미감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빼어난 취향을 공간으로 번역하는 양태오가 지큐 살롱의 마지막 주자로 도슨트를 진행했다. ‘카르마’. 미래는 곧 과거, 과거가 다시 현재를 빚어낸다는 순환의 철학. 양태오와의 사전 미팅에서는 예상치 못한 이 단어를 마주했다. 그의 스토리텔링이 독특한 빛을 발한 것은 유서 깊은 프랑스 메종 안에서 동양의 시간관과 사상을 짚어냈다는 점에 있다. 여행을 이동이 아닌 수행과 성장의 여정으로 해석하고, 그 안에서 시간이 축적되는 방식을 설명한 대목이 바로 그러하다.

디자이너답게 OMA 건축사무소의 파트너 시게마츠 쇼헤이가 한국의 창호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공간 구조를 소개하는가 하면, 이동이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의 여행 문화와 인간이 낯선 환경 앞에서 느끼는 불안정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확장했다. 트렁크를 수납 도구가 아닌 욕망의 상징으로 읽어내고, 대량생산과 익명성의 시대에 맞춤 제작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는 등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 전시 서사의 아주 디테일한 단서들을 채집해 퍼즐 조각을 맞추어 나가는 듯한 재미를 주었다.

굽이치는 형태의 ‘기원 룸’에서는 생선의 뼈대처럼 서로 연결되고 하중을 분산하는 구조를 설명하며, 한식 건축의 틀이면서 동시에 트렁크를 지탱하는 구조적 원리와 맞닿아 있음을 조명했다. 나무와 가죽, 메탈 역시 시간을 축적하고 기억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표현하며 표면에 남은 흔적과 디테일을 통해 시간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맞춤 제작 룸’에서는 격자 패턴과 비색을 연상시키는 컬러, 절제된 여백의 사용을 통해 한국적 공예 미학의 흔적을 발견했는데, 여러 도시를 거친 전시가 서울에서 어떻게 로컬라이제이션됐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어지는 ‘협업 룸’에서는 박서보 작가의 ‘묘법’을 통해 인간의 유한한 시간성을 뛰어넘는 예술의 무한함을 논했다. 디자이너의 시선, 직업인으로서의 고민, 애독가의 사유,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경험까지. 양태오의 큐레이팅에서는 오브제 설명을 넘어 여행과 취향, 기억과 욕망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술 감상에 정답은 없다. 자신이 본 것, 들은 것,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이 곧 하나의 해석이다. 네 명의 창작자와 함께한 이 여정은 특별한 지식보다 저마다의 시선임을 말해준다. 독특한 생각과 각자의 경험은 하나의 생경한 이야기가 된다.

CURATED BY 전고운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는 세계 주요 도시를 배경으로 선보이는 전시 프로젝트다. 방콕과 상하이를 지나 서울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문화적 맥락을 입고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해왔다. 시공간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모하는 전시 특성과 열한 개의 챕터로 구성된 방대한 서사를 관통하기 위해서는 이를 읽어낼 예술가의 시선이 필요했다.

전시 공간이라는 프레임 안에 숨겨진 내러티브를 본능적으로 포착해내는 감각. 과거와 미래를 잇는 타임라인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내고 그 안에 깃든 감정의 결까지 길어 올리는 스토리텔링의 힘은 영화감독만의 고유한 영역이다. <소공녀>를 연출한 전고운 감독은 자신만의 독법으로 전시를 안내했다. 뜻밖의 영화적 레퍼런스와 장면에 대한 디테일한 해석은 익숙한 전시에 새로운 층위를 더했다. 시네필로 가득 찬 살롱의 관람객들은 감독의 내비게이션을 따라 서울에서 펼쳐진 루이 비통이 써 내려간 여행의 로드무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전고운 감독은 여섯 개의 공간을 각기 다른 영화와 연결했다. ‘기원 룸’에서는 루이 비통의 시작을 인류 최초의 도구에서 우주선으로 이어지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장면에 빗대어 설명하며, 트렁크 하나에 압축된 이동의 역사와 문명의 진화를 이야기했다. ‘피크닉 룸’에서는 웨스 앤더슨의 <다즐링 주식회사> 속 트렁크를 소환해 일상을 예술로 바꾸는 디테일의 힘을 짚어냈다. ‘테스트 룸’에서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테스트 기계를 보며 인간 노동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AI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기술의 진보 속에서도 인간다움의 본질을 탐구하는 감독의 시선이 돋보였다.

이어 ‘공방 룸’에서는 <담뽀뽀>를 통해 결과물 뒤에 가려진 장인들의 시간을 조명했고, ‘협업 룸’에서는 <홀리 모터스>를 예로 들어 하나의 주인공 협업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읽어냈다. 마지막 ‘패션 룸’에서는 <터미널>을 소환해 플랩보드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여행의 기억을 연결하며, 이동과 여정이라는 전시의 주제를 다시금 환기했다.

전고운 감독의 SF적 상상력은 전시를 과거의 아카이브가 아닌 미래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했다. 인간의 이동과 노동, 기술과 기억에 관한 사유는 전시 곳곳을 관통하며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이어졌다. 영화라는 렌즈를 통해 전시를 문명과 기술, 인간에 관한 사유로 연결한 점은 전고운 감독만의 도슨트가 보여준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박지윤

박지윤

디지털 에디터

박지윤은 트렌드를 디깅하며 세상의 모든 것에 마음을 쓰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GQ KOREA' 디지털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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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강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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