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휴 “글을 쓴다는 것은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같아요”

2026.05.23.박나나, 김은희

2026 GQ KOREA HEROES – PARK CHUN HUE
쓰는 사람 박천휴.

블랙 핏츠로이 코트, 스파냐 재킷과 팬츠, 타이 디테일의 클레멘트 셔츠, 블랙 카프스킨 로퍼, 모두 로로피아나.

GQ 작가, 작사가, 연출가, 극작가. 박천휴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많은 호칭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대개 라이터 Writer라고 부른다고요.
CH 이 질문을 윌(윌 애런슨 Will Aronson)이 좋아할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윌을 작곡가, 저를 작가라고 하는데 저희는 대본을 같이 쓰잖아요. 그래서 윌이 “왜 나를 자꾸 작곡가라고 불러? 나는 라이터 Writer인데”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저대로 억울했던 건 또, 한국은 노래는 멜로디를 만드는 사람이 주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작사가도 송 라이터 Song Writer, 작곡가도 송 라이터 Song Writer거든요. 쓰는 사람, 짓는 사람, 다 통칭하는 게 라이터 Writer 같아요. 그 말이 좀 더 포괄적이고, 저한테는 좀 더 페어한 단어예요.
GQ 쓰는 사람. 하긴 곡도 쓰는 것이고, 가사도 쓰는 것이니까요.
CH 맞아요. 멜로디도 짓는 것이고, 노랫말도 짓는 것이니까.
GQ 오늘은 이 단어 하나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쓰다.
CH 쓰다. 네.

레드 크루넥 니트 톱, 실크 클레멘트 셔츠, 캐시미어 펠트 스코티 비니, 모두 로로피아나.

GQ 최근 어디에 돈을 썼어요?
CH 하하하하. 언어 유희네요? 영어와는 다른. LA에 월셋집을 구했어요. 그런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돈으로 월세로 살게 된 집 가운데 처음으로 단독주택이에요. LA니까 가능한 일이긴 해요. 아파트도 많지만 워낙 주택이 많아서. 그 보증금 내는 데 가장 큰돈을 썼습니다.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인가요?
GQ 아뇨, 내심 인테리어 소품이지 않을까 했거든요.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주셨듯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깊으시니까. 그런데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웃음)
CH 월세 보증금!
GQ 집은 어떤 모양새예요?
CH 오래된 집이에요. 그리고 처음으로 작게나마 앞마당과 잔디밭이 있어요.
GQ 그 집도 좀 꾸몄어요?
CH 아뇨, 사실은 제가 화요일에 미국 가는데 그때 처음으로 그 집에서 자요.
GQ 이제 시작이군요. 인테리어를 해달라는 지인들의 부탁도 많이 받는다고 알아서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CH 그런데 지금 지면의 힘을 빌려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말 욕심껏, 좀 더 경제 사정이 좋아서 여유 있게 한다면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유학생 인테리어’예요. 무슨 얘기냐면, 비싸지 않고 깨뜨리거나 손실되어도 괜찮은, 그리고 내가 계속 머물 집이 아니라 나는 이방인이니까 언제든 집주인이 빼라면 뺄 수 있을 정도의 비용만 투자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 인테리어가 대단한 게 아니라 ‘경제적인데 깔끔하네?’ 정도라고 생각해요. 인테리어에 정말 관심 있으신 분들이 보시면 가소롭다고 느끼실 거예요.

애시 카디건, 크루넥 스웨터, 베이지 코튼 팬츠, 스트로 피어 햇, 모두 로로피아나.

GQ 이방인이면서 경제성을 생각하는 목적에서는 아름다운 집이죠. 자신의 아름다운 공간을 꾸미고 싶은 사람들에게 팁을 준다면요?
CH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건 조금 슬픈 얘기일 수도 있는데, 한번은 윌하고 있는데 비둘기가 빨대를 물어다가, 우리 인간이 버린 쓰레기 중 빨대 이런 것들을 물어다가 둥지를 만드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는데 처연하면서도 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결국 내가 가질 수 있는, 내게 가장 최고의 재료로 내 둥지를 아름답게 꾸미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남하고 비교하거나 비싼 브랜드가 좋다는 생각보다는, 내 눈에 보이는 가장 예쁜 빨대를 찾아서 둥지를 꾸리는 것, 그게 좋은 게 아닌가 싶어요.
GQ 뉴욕 대학교에서 전공한 것이 시각예술학이죠?
CH 스튜디오 아트 Studio Art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스튜디오 안에서 할 수 있는 아트는 전부 다 하는 미대의 명칭이에요.
GQ 오늘 마침 그림도 그렸죠. 미대 다니던 시절이 생각나려나 싶었어요.
CH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붓질.(웃음) 정말 오랜만에, 물론 오늘 잡은 건 페인트 브러시이긴 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브러시를 잡아봤고, 그런 식의 그림을 학교 다닐 때 그린 적이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작업물을 만드는 거였는데 큰 캔버스들에 그런 그림들을 그렸어요. 제가 전업 작가가 되기로 하고 그걸 친구들한테 주거나 버렸거든요. 그 큰 캔버스를 뜯어서. 그게 갑자기 문득 생각나더라고요. 아, 마지막에 브러시질 했던 게 그때지 하고.

코튼 데님 재킷, 브라운 캐시미어 폴로 톱, 블루 고카르나 팬츠, 블랙 카프스킨 로퍼, 네이비 베이비 캐시미어 삭스, 모두 로로피아나.

GQ 급작스런 변화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관찰자 입장에서는요. 한국에서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다 훌쩍 미국 미대를 간 선택은 어떤 결단이었어요?
CH 어렸을 때부터 글짓기와 시각 예술에 관심이 있었어요. 음악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글은 문창과를 다니면서 어느 정도 접하게 됐고, 음악은 또 작사가로 일하면서 어느 정도 하게 됐고, 그러면서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또 한 가지가 시각 예술이니까 그걸 하기 위한 결정이었어요.
GQ 돌아보면 다 이어지는 길, 결국 예술은 하나로 모이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CH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충분한 사람은 결국 그걸 하게 되니까.
GQ 새로운 역사도 썼죠. 제가 알기로는···, 왜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어요?
CH 아니, 네.(웃음) ‘역사···?’ 이런 생각에.
GQ 너무 거창한가요? 하지만 한국 창작극으로 토니상을 탔다는 건 분명히, 분명히 새로운 역사잖아요.
CH 한국인 작가가, 게다가 한국계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 국적 작가가 토니상을 받은 건 최초가 맞을 거예요.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GQ 맞아요.
CH 그런데 (브로드웨이에 올린 <어쩌면 해피엔딩>은) 연출이 미국인이니까 미국 공연 아니야? 배우가 영어로 공연하니까 미국 공연 아니야? 이런 얘기들도 있죠. 그런데 저한테 가장 중요한 건 이거 같아요. 이 작품의 배경이 한국이고, 미래의 가상의 한국이지만 한글 지명들이 나오고, 한국인 작가가 썼다는 것. 그것이 아이덴티티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공연을 보고 나서 실제로 제주도에 간 분이 있어요. 제주도에 대해 몰랐는데 공연을 보고 찾아보니까 너무 가보고 싶어져서 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러면 이건 한국 공연이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저는 들었어요.

라이트 퍼플 캐시미어 폴로 톱, 리오 보르도 팬츠, 소프트 램스킨 로퍼, 펠티드 울 멜 비니, 베이비 캐시미어 삭스, 모두 로로피아나.

GQ 처음에 제목이 자꾸 헷갈리는 거예요. 어쩌면 해피엔딩. 어쩌다 해피엔딩. 한 글자 차이인데 참 달라요. 혹시 고민했던 또 다른 제목이 있어요?
CH ‘어쩌다 해피엔딩’ 하면 장르가 코미디로 바뀌는 것 같고, 어감과 느낌이 다르죠. 저도 순간순간 흠칫 놀라요. 그렇게 오타 내시는 분도 많아요. 그래서 ‘Maybe Happy Ending’ 하면 정확하게, ‘It Happened To Be A Happy Ending’이 아니라 ‘Maybe Happy Ending’이라 하면 바로 아실 것 같아요. 그리고 원래 가제는 ‘우린 왜 사랑했을까’였어요. 그게 오프닝 곡이거든요? 그게 워킹 타이틀이었어요.
GQ 우린 왜 사랑했을까. <어쩌면 해피엔딩>을 통해 느낀 건 그 사랑이 영원하지 않을 수 있고,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걸 알면서도 선택하기 때문에 그 끝은 ‘어쩌면 해피엔딩’이 아닐까 하는 거예요.
CH 심지어 사랑이 영원해도 그 사랑을 하는 주체인 인간은 영원하지 않잖아요. 결국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상실한다는 그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껴안는 거예요. 그 고통까지도 삶에 포함시키는 거예요. 이렇게 힘들고 비극적인 게 사랑이지만 ‘그래도 어쩌면 이렇게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결국은 해피엔딩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우린 왜 사랑했을까’의 대답이 ‘Maybe Happy Ending’ 같아요.

카키 헤일 캐시미어 재킷, 캐시미어 스탠포드 팬츠, 실크 클레멘트 셔츠, 소프트 램스킨 로퍼, 캐시미어 펠트 스코티 비니, 모두 로로피아나.
카키 헤일 캐시미어 재킷, 캐시미어 스탠포드 팬츠, 실크 클레멘트 셔츠, 소프트 램스킨 로퍼, 캐시미어 펠트 스코티 비니, 모두 로로피아나.

GQ 6월이면 토니상을 수상한 지 딱 1년이 돼요. 그사이 대단히 변했거나 대단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나요?
CH 대단히 변한 건 <지큐>의 표지 모델을 두 번이나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집에 카메라 12대가 설치되고 제 일상이 텔레비전에 나가는 식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 생각보다 대단히 변하지 않은 건 저의 불안과 조바심, 그리고 저의 외로움.
GQ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조바심 나고 여전히 외로워요?
CH 네. 연애를 하든 안 하든 외로운···, 그러니까, 상대방이 나를 충족시켜주지 못해서 외롭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냥 본질 같아요.
GQ 본질. 지난 <지큐> 인터뷰를 읽으면서 제일 궁금했던 건 사실 이거예요. <어쩌면 해피엔딩>의 올리버 같은 헬퍼봇이라면 인간의 어떤 부분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랬죠. “인간이 스스로 침잠하는 기질이요. 행복도 부숴버릴 것 같은 그런 자기 파괴적인 기질들 있잖아요.” 그 자기 파괴적인 기질이 왜 있을까요, 인간에게는?
CH 그러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GQ 이 말도 했죠. “그러니까 저 같은 사람.” 아, 작가님 자기 파괴적인 사람이구나.
CH 네. 셀프 디스트럭티브 Self-destructive한 사람이고(웃음), 하다못해 인간은 그렇잖아요, 여기 놓인 것만 봐도 몸에 안 좋은 거 잔뜩인데 한밤중에 이걸 먹으면 안 좋은 이유를 우리가 나열하면서도 먹게 되는 이런 것들. 연인의 휴대 전화를 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보는 자기 파괴적인 기질. 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요. 그러게요, 인간의 자기 파괴적인 기질이 왜 있는 걸까요?

카키 헤일 캐시미어 재킷, 캐시미어 스탠포드 팬츠, 실크 클레멘트 셔츠, 소프트 램스킨 로퍼, 캐시미어 펠트 스코티 비니, 모두 로로피아나.
카키 헤일 캐시미어 재킷, 캐시미어 스탠포드 팬츠, 실크 클레멘트 셔츠, 소프트 램스킨 로퍼, 캐시미어 펠트 스코티 비니, 모두 로로피아나.

GQ 왜 있는 걸까요? 제가 생각해봤거든요. 잠깐이지만.
CH 너무 궁금하다.
GQ 파괴돼도 괜찮아서. 그러니까 파괴돼도 상관없어서. 거칠게 말하면 죽어도 상관없어서일 수도 있고, 파괴돼도 다시 극복할 수 있다는 자기 믿음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둘은 이어져 있기도 한 것 같고요.
CH 굉장히 철학적인 얘기인데, 그런데 이게 지면에 실리면 “저기, 심리 상담을 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받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웃음), 왜, 아주 날카로운 칼날을 보면 이걸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방금 말씀하신 두 가지 중 뭘까요? 제 생각엔 되레 그런 자기 파괴적인 기질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를 은근히 편안하게 만드는 구석도 있는 것 같아요. 무슨 얘기냐면, 아델의 ‘Someone Like You’는 시작부터가 “네가 다른 사람 만나서 결혼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잖아요. ‘Settled Down’이라는, 정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시작하죠. 그리고 울부짖는 노래인데, 그 노래가 유행할 때 식당에 가도 나오고, 어딜 가도 나오고, 사람들이 슬퍼하면서도 부르던 걸 보면, 그 센티멘털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마치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그런데 그게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내가 이걸 극복할 수 있어’라는 생각, 어떤 면에서는 원동력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걸 즐기나? 그래서 약간 자기 파괴적으로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소주를 마시기도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 드라마를 내가 극복하겠다는 의지.

카키 헤일 캐시미어 재킷, 캐시미어 스탠포드 팬츠, 실크 클레멘트 셔츠, 소프트 램스킨 로퍼, 캐시미어 펠트 스코티 비니, 모두 로로피아나.
카키 헤일 캐시미어 재킷, 캐시미어 스탠포드 팬츠, 실크 클레멘트 셔츠, 소프트 램스킨 로퍼, 캐시미어 펠트 스코티 비니, 모두 로로피아나.

GQ 요즘 박천휴가 애쓰고 있는 것은 뭐예요?
CH 애쓰고 있는 것. 정말 그냥, 이 불안함을 떨쳐버리는 게 어려운 일 같아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야 하는 타입은 분명하고, 그런데 생각할수록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걸 잘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GQ 무엇이 불안해요?
CH 준비하고 있는 다음 프로젝트들을 이루려면 많은 산을 넘어야 하고, 그리고 예전보다 더 사람들을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이제는 저와 윌에게 오시는 분들을 다 믿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GQ 불안함을 떨치고 싶어요?
CH 네. 건강은 챙겨야 하니까. 조금 더 오랫동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너무 불안하면 그 일을 못 할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의연하고 대범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음···, 자꾸 방해하는 사람들이 생기거든요? 자기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저희의 일들을 방해하는 분들이 생기는데, 그분들에게 막 억울해하고 화내다 보면 거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서, 그냥 대범하게, 내 페이스대로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GQ 불안을 약간의 긴장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CH 그게 건강한 밸런스인 거죠.

크루넥 스트라이프 톱과 화이트 코튼 팬츠, 모두 로로피아나.

GQ 애가 쓰이는 것은요? 무엇에 마음이, 신경이 쓰여요?
CH 이건 아직도 제 자신을 좀 더···, 제 자신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데 애가 쓰여요. 순간순간. 그리고 반대로 그만큼 다른 분들에게도 더 너그러워져야겠다는 것에. 그런데 쉽지가 않아서, 오늘도 그런 순간이 있었거든요? 그럴 때 ‘왜 순간 흔들렸지? 왜 감정이 동요됐지? 그냥, 그만 좀 넘겨’ 생각해요.
GQ ‘대담해져’.
CH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으니까. 거기에 애가 쓰여요.
GQ 실상 박천휴라는 사람에게 ‘쓰다’의 기본형은 ‘글을 쓰다’이지 않을까요? 요즘 쓰고 있는 글 있어요?
CH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일 테노레> 영어 작업을 윌과 하고 있고요, 그리고 비공식적인 소식은 아마 몇 달 안에 발표될 거예요. <일 테 노레>는 이미 한국 공연 전에 윌과 함께 영어로 초벌을 썼지만 더 작업 중이에요.(<일 테노레>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윤이선과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는 독립운동가 서진연, 이수한의 이야기다. 2023년 12월 한국에서 초연을 올렸다.) 그리고 많이 궁금해하시지는 않겠지만 제 개인적인 글,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 조금씩 조금씩.

브라운 캐시미어 폴로 톱, 블루 고카르나 팬츠, 블랙 카프스킨 로퍼, 블랙 스파그나 안경, 네이비 베이비 캐시미어 삭스, 모두 로로피아나.

GQ 어떤 영역에서든 고쳐 쓴 것이 있어요?
CH 무수히. 보통 다.
GQ 늘 고쳐 써요?
CH 저랑 윌은 서로 작업한 파일을 보낼 때 ‘SFD’를 써요. ‘Shitty First Draft’의 약자예요. 그러니까 ‘개똥 같은 초벌’이에요. 그렇게 쓰고 고치는 게 보통의 일이에요. 항상. 혼자 쓰는 글에도.
GQ “아무도 제가 쓴 걸 모를 정도로 되바라진 걸 쓰고 싶다가도 출판사 입장을 고려해야 하나 고민입니다”라고, 관객과의 만남에서 에세이에 대해 하신 말씀을 듣고 그렇잖아도 궁금했어요. 박천휴가 말하는 되바라진 것은 뭘까?
CH 단어 선택이 너무 자극적이었나요? 예를 들면 그냥, 이런 것들인 것 같아요. 저의 치졸함이라든지, 저의 자기 파괴적인 것이라든지, 이런 것을 필터링하지 않는 게 되바라진 건데, 사실 출판사 입장을 고려해서 그걸 안 쓴다기보다는 어느 순간 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람들이 이걸 왜 읽어야 하지?’ 물론 그래도 쓸 수 있지만, 다른 분들에게 저의 불안함과 스트레스를 전이하는 것 같아서 ‘세상에 해가 되는 글은 쓰지 않아야겠다’ 생각한 적도 있어요.

스파냐 재킷과 팬츠, 타이 디테일의 클레멘트 셔츠, 모두 로로피아나.

GQ 하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진 않은 것 같네요?
CH 네, 그래서 일단 공식 발표는 안 했고(웃음) 조금씩 조금씩 쓰고 있습니다.
GQ 가제로라도 제목을 먼저 짓고 글을 시작하는 편인가요?
CH 맞아요.
GQ 그럼 에세이집에 지어놓은 가제도 있어요?
CH 둘 중 고민 중이에요. 하나는 좋아하는 노래 제목에서 따온 ‘퍼펙트 플레이시스 Perfect Places’, 그리고 하나는 ‘인터미션 Intermission’이에요.
GQ 음, 고르기 힘드네요. 뭐가 될지는 나중에 책으로 볼게요.
CH 네.(웃음)
GQ 덕분에 에세이에 이 뜻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사전을 보다가요. ‘시도하다’.
CH 정말요?
GQ 불어 ‘Essayer, 시도하다’에서 기원한 단어래요. 좋은 발견이죠?
CH 저도 몰랐어요.

실크 클레멘트 셔츠, 캐시미어 스탠포드 팬츠, 캐시미어 펠트 스코티 비니, 모두 로로피아나.

GQ 그래서 박천휴는 무엇을 시도하나요?
CH 행복해짐과 너그러워짐. 행복해짐과 너그러워짐을 요즘 많이 시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행복해지는 것.
GQ 박천휴에게 행복해진다는 건 어떤 형태예요?
CH 행복이라는 게 우리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란 걸 알아서, 저의 행복은 사회적으로 봤을 때 누구보다 더 많은 걸 누렸다거나 이런 것보다는,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행복 같아요. 영어로 ‘Content’라는 단어에 ‘만족하다’라는 뜻이 있거든요? 그래서 ‘Content’ 하고 싶습니다.
GQ 나는 어떤 존재인가? 세상은 어떤 곳인가? 그걸 탐구하는 게 이야기를 쓰는 일 같다고 했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매번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현시점 박천휴의 답은 어떤가요? 나는 어떤 존재라고 생각해요?
CH 그 답이 많이 바뀌지 않았어요. 여전히, 여전히 이방인 같아요. 조금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어젯밤에 샤워하다가 ‘이제는 가끔 길 가다가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가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아웃사이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부인. 그러니까 밖에서 들여다보는. 그게 유학생으로서 다른 문화에서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고, 학교 다닐 때도 ‘쟤가 있나 없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게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아웃사이더적인 기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번도, 한 번도 메인 스트림이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GQ 여전히 그렇게 생각해요?
CH 그런데 그게 그냥 저인 것 같아요.

옐로 코트, 베이지 노치드 재킷, 크루넥 스트라이프 톱, 화이트 코튼 팬츠, 모두 로로피아나.

GQ 세상은 어떤 곳이에요?
CH 세상은 굉장히 연약한 곳이라는 생각을 얼마 전에 좀 많이 했어요. LA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할 때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서 차를 마시는데 친구가 너무나 당연하게 “세상이 망하고 있잖아” 말하는 거예요. 요즘 모두가 그걸 기본으로 생각하잖아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생각하게 되고, 그 미래가 가깝게 느껴지잖아요. 무언가 금방 멸망할 것처럼. 그런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거든요? 곧 세상이 망할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도 그랬고, 항상 그래왔어”라고 위로를 하면서도, ‘진짜 곧 망할 것 같아’라는 생각을 순간 하게 됐어요. 요즘 세상이 연약하다고 느껴요.
GQ 그럼에도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CH 글을 쓴다는 것은, 이게 기본인데,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그리고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 그게 글을 쓴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좋은 일 같아요.
GQ 그런데 박천휴라는 사람에게 ‘쓰다’의 기본형이 ‘글을 쓰다’인 것은 맞아요?
CH 제게 ‘쓰다’의 기본형은 이 두 가지 같아요. 애를 쓰다. 마음을 쓰다.

브라운 캐시미어 폴로 톱, 로로피아나.

박나나

박나나

패션 디렉터

박나나는 세련되고 젠틀한 남성과 매니시하고 쿨한 여성의 패션을 담당하고 있는 'GQ KOREA' 패션 디렉터입니다. 워치, 주얼리, 그루밍, 스포츠 등 패션과 관련된 수준 높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더보기
김은희

김은희

피처 에디터

김은희는 'GQ KOREA'의 피처 에디터입니다. 이전에는 'ELLE KOREA', 'ESQUIRE KOREA'에서 근무했습니다. 컬처, 사회, 라이프스타일, 인터뷰를 다룹니다.

더보기
포토그래퍼
김희준
헤어 & 메이크업
이소연
어시스턴트
한예린, 전하이
SPONSORED BY
로로피아나